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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군주 이성계-31화 (31/33)
  • 031. 하로산또와 궤네깃또 (1)

    “발전자 궁극기! 뇌제강림(雷帝降臨)!”

    파지지지직-!

    어두운 새벽 하늘에서 10여 개의 벼락이 내리꽂혔다. 물 속에 있던 해전용(海戰用) 기갑기들이 거대한 전기 스파크 속에서 전율했다.

    해전용 기갑기들은 유선형의 어류나 고래 모양인 경우가 많았다. 전설의 거대 문어 크라켄처럼 생긴 기갑기도 있었다.

    인간형으로 만들면 바닷속에서 움직이기 불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인간도 물고기보다 빠를 순 없으니까.

    어쨌든 뇌제강림을 쓰는 순간, 이성계는 발전자와의 연결을 잠시 끊어 버렸다. 안 그랬으면 바닷물 속에서 튀겨지던 몽골 기갑기사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었을 테니까.

    유린청과 현표, 바가투르, 발전자로 이어지는 현란한 공격!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몽골 기갑기사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 이럴 수가……!”

    “이것이 촉망받는 고려 장수의 실력인가?”

    “아니야! 저 사람이 대단한 거야!”

    “그건 그래! 여러 대의 기갑기들을 한꺼번에 조종하다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그곳에 있던 기갑기사들 대부분은 실전을 경험한 적이 없는 기갑기 장인들이었다. 실전 경험이 있다 해도 몇 번에 불과하거나, 비교적 안전한 2, 3선에서 보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해온 ‘훈련’도 가베치들이 하는 빡센 전투훈련이 아니라, 기갑기를 만든 다음에 진행하는 성능 테스트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전투의 프로페셔널> 이성계가 ‘각 잡고’ 싸우는 모습에 기가 질리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성계는 칭기스칸의 10대 장군 중에서도 제1장군이었고, 최영, 정지 장군과 함께 고려를 지킨 3대 명장 중 한 명이었다.

    “어떤가, 아직 더 싸울 텐가?”

    이성계가 덤덤하게 말했다.

    “참고로, 나는 아직 내 전용기를 꺼내지 않았다.”

    “뭐, 뭐라고? 기갑기가 또 있다고?!”

    “도대체 몇 대나 조종할 수 있는 거야?”

    “그보다 전용기라면…… 저것들보다 더 강하단 말야?”

    ‘강하지. 여기 있는 모든 기갑기가 전부 덤벼도 안 될 정도로.’

    인간형으로 변신한 상어 기갑기 <아바르가 자가스>에 타고 있던 테무게가 카라 쥬르켄의 건방진 모습을 생각하며 웃었다. 해마 기갑기 <달라인 모리>를 조종하던 나릉토야도 마찬가지였다.

    “제기랄! 이렇게 된 이상…….”

    “탐라국왕과 다루가치들께 알리자!”

    “그래! 제주도에 있는 수백 대의 기갑기가 전부 달려온다면……!”

    혈기왕성한 젊은 기술자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나이 든 기술자들이 만류했다.

    “그만들 하게! 더 이상 일을 키우면 안 돼!”

    “대원제국과 고려 양쪽에서 혼나고 싶나?”

    “황제폐하조차 고려의 눈치를 보시는 판국에…….”

    “다루가치 따위가 뭘 어쩐다는 겐가?”

    “크윽……!!”

    기갑기에 타고 있던 젊은 몽골 기술자들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연장자들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30명만 데려온 이유가 있었구나!’

    ‘숫자가 적다고 얕봤었는데…….’

    ‘저 젊은 귀족은 다 생각이 있었던 거야!’

    몽골 기갑기술자들이 또 한 번 신음했다.

    “우리가 졌소이다.”

    “마음대로 하시오.”

    “테무게를 데려가든, 우리를 죽이든…….”

    몽골 기술자들과 기갑기사들이 힘없이 말했다.

    “좋아, 전부 죽여 주지.”

    이성계가 차갑게 말했다.

    “나를 죽이려 한 죄는 크다. 모두 죽음으로 속죄하도록.”

    이성계가 충샨과 판챠에게 눈짓했다.

    “전원! 기갑기를 꺼내라!”

    “대(對) 기갑기 공격 대형이다!”

    충샨과 판챠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30여 대의 가베치 기갑기들이 등장했다.

    기웅-! 기우웅-! 기우우웅-!

    기갑기에 타고 있던 몽골 기술자들이 새하얗게 질렸다. 덜덜 떠는 자, 오줌을 지리는 자들까지 나왔다.

    “이젠 끝이야! 우린 다 죽었어!”

    “내가 그냥 보내 주자고 했잖아!”

    몽골 기술자들이 울부짖었다.

    가베치 기갑기들은 정형화된 모습이 없었다. 일본 기갑기, 원나라 기갑기, 여진족 기갑기, 심지어는 아라비아와 서역의 기갑기들까지 뒤섞여 있었다. 얼마 전에 땅딸막한 토호를 죽인 왜구들의 기갑기도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각양각색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나 가베치 기갑기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살기가 풀풀 풍긴다는 점, 그래서 척 보기에도 살벌해 보인다는 점이 첫 번째 공통점이요, 기갑기의 온몸에 수많은 상처와 흉터가 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공통점이었다. 모든 기갑기들이 수많은 전투와 괴수 토벌을 해 왔다는 증거였다. 매끈하게 관리가 잘 된 몽골 기술자들의 기갑기와는 정반대였다.

    쿵! 쿵! 쿵! 쿵!

    가베치 기갑기들이 몽골 기갑기들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사형집행인들 같았다. 몽골 기갑기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첫 번째 표적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테무게의 <아바르가 자가스>와 나릉토야의 <달라인 모리>가 몽골 기갑기들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어 주십시오!”

    두 팔을 벌리고 막아선 <아바르가 자가스>에서 테무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탁드립니다! 저들은 저를 붙잡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으리를 죽이려는 게 아니었어요!”

    “저도 부탁드려요!”

    <달라인 모리>를 조종하던 나릉토야가 외쳤다.

    “다들 좋은 분들이에요! 그리고 다들 가족들이 있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장군님!”

    <아바르가 자가스>와 <달라인 모리>가 무릎을 꿇었다. 멀리서 보면 상어인간과 해마인간이 꿇어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성계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가족이 있으니 살려 달라? 전쟁터에서 그딴 소리를 하면 퍽이나 살려 주겠구나.”

    기갑기에 탄 가베치들이 피식거렸다. 그러자 <아바르가 자가스>가 몸을 일으키며 칼을 뽑았다.

    “저들을 죽이고 싶다면 나부터 죽이시오!”

    “저도요!”

    테무게와 나릉토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성계가 팔짱을 끼고 <아바르가 자가스>와 <달라인 모리>를 바라보았다. 30여 기의 가베치 기갑기들이 우두커니 서서 이성계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러지 말게 테무게!”

    “그래! 기왕 이리 된 거, 자네라도 가서 잘 살어!”

    몽골 기술자들이 외쳤다. 그러나 테무게와 나릉토야 부녀는 전투 자세를 풀지 않았다.

    이성계가 한라산 쪽을 흘낏 바라본 다음 외쳤다.

    “그럼 죽어라! 유린청 궁극기! <대초명적(大哨鳴鏑)>”

    유린청의 눈에서 도깨비불이 일어났다. 그러더니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에 감겨 있던 거대한 활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유린청이 허리에 감긴 활을 잡고 뽑아냈다. 그러자 활 속에 내장되어 있던 두꺼운 활줄이 티잉~! 하는 소리와 함께 저절로 매겨졌다.

    그와 동시에 유린청의 오른쪽 손목이 위로 꺾였다. 팔뚝 안에서 거대한 화살이 튀어나왔다. 최고급 마정석으로 만든 화살촉이 횃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유린청이 거대한 화살, <대초명적>을 활에 걸고 뒤로 당겼다.

    뿌드드득-!

    “아…… 안 돼!”

    “기갑기에서 내리게 테무게!”

    “나릉토야 너도 빨리 내리거라!”

    “니들 기갑기는 일격에 박살 난다고!!”

    몽골 기술자들이 외쳤다. 그들은 대초명적의 무서움과 아바르가 자가스, 달라인 모리의 방어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최고의 기갑기 장인들다웠다.

    하지만 이성계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쏴라!”

    투웅-!

    유린청의 활줄이 대초명적을 튕겨 냈다.

    끼에에에엑!!

    대초명적이 소름끼치는 귀곡성을 내지르며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테무게와 나릉토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한라산 귀퉁이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

    테무게와 나릉토야가 눈을 떴다. 그러자 유린청의 거대한 등이 보였다.

    유린청은 테무게와 나릉토야가 아니라, 반대편에 있던 한라산 쪽으로 대초명적을 쏘아 보낸 것이다.

    “구오오오오-!”

    한라산 쪽에서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산등성이에 숨어서 몰래 훔쳐보다니.”

    이성계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긍지 높은 영물(靈物)답지 않구나.”

    “저저저 저것은……??”

    “한라산의 주인, <하로산또>잖아!”

    몽골인들이 패닉에 빠졌다. 하로산또는 한라산의 신(神)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었다.

    “큰일났다! 하로산또가 노하셨어!”

    “한라산 꼭대기에서만 노닐던 분이…….”

    “어째서 여기까지 내려오신 거지?”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성계가 일부러 하로산또의 영역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한라산의 주인>이라 불리는 거대 괴수 하로산또를 잡는 것!

    이것이 제주도에 온 또 하나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대초명적에 맞았는데 끄떡도 없군.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제주도까지 온 보람이 있지.’

    이성계가 가베치들에게 하로산또 사냥을 명령하려는 순간,

    우오오오오-!

    거대한 인간형 괴수가 한라산 남쪽에서 포효했다. 이성계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5장(15m)를 넘는 비대한 거인이 불곰처럼 쿵쿵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크…… 큰일 났다!”

    “궤네깃또가 나오셨어!”

    “하로산또에 궤네깃또까지?!”

    “우린 다 죽었다! 다 죽었단 말이다!”

    몽골 기술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이성계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괴수 궤네깃또인가? 과연 크긴 크구나.”

    사실 이성계는 궤네깃또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나야 더 좋긴 한데…….’

    이성계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저렇게 강한 놈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다니…… 카라 쥬르켄을 꺼내지 않기만을 바랄 뿐!’

    이성계가 가베치들을 향해 외쳤다.

    “자랑스러운 가베치 용사들이여! 지금부터 저 두 놈을 잡을 것이다!”

    기갑기에 탄 가베치들이 두려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놈들을 죽여 마정석을 뽑아내고 살을 발라내어 육포를 뜨자! 공을 세운 자들에겐 두둑한 포상이 있을 것이다!”

    “우오오오오!!”

    30여 대의 가베치 기갑기들이 무기를 치켜들고 환호했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기겁을 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건 신입니다!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존재란 말입니다!”

    몽골 기술자들이 고함쳤다. 그러자 이성계가 윽박질렀다.

    “멍청한 놈들아! 저놈들은 신이 아니다! 괴수일 뿐이다! 사람이 신의 이름을 준 것뿐이란 말이다!”

    이성계가 바다에서 올라온 발전자에 탑승했다.

    “언제까지 괴수 밑에서 전전긍긍하며 살 테냐? 언제까지 흑돼지와 소, 말을 바치면서 노예처럼 살 거냔 말이다!”

    이성계가 일갈했다. 그러자 겁에 질려 있던 몽골 기갑기사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까짓거, 한 번 해 볼까?”

    “뭐? 너 미쳤어?”

    “시팔! 이 기회에 함 붙어 보자고!”

    “그래! 저 고려 장수랑 가베치들도 있잖아!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하지만 베테랑인 충샨과 판챠는 신중했다.

    “공자님! 의욕이 넘치시는 건 좋지만…….”

    “하로산또와 궤네깃또는 여느 괴수들과는 격이 다릅니다.”

    “맞습니다. 야차급도 아니고 아수라급이라고요. 그것도 두 마리나!”

    충샨과 판챠가 속삭였다. 그러자 이성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기갑기사 30명에 기갑기 30대, 다 죽이고 날려먹으면 아버지께 혼나겠지?”

    “아 혼나다 뿐입니까?”

    “큰 벌을 받으실 거예요!”

    “주상 전하와 고려 조정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어요!”

    “그놈들, 아니 그분들은 가베치들을 고려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고려군은 무슨! 용병단 정도로 생각하겠지!”

    “하여튼 잘 생각하십시오 공자님!”

    거구의 충샨과 판챠가 그들답지 않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구오오오오-!

    우오오오오-!

    하로산또와 궤네깃또가 동시에 울부짖었다. 때마침 떠오른 아침 햇살이 두 거대 괴수를 비추기 시작했다.

    남색 바다와 하늘색 하늘, 그 사이를 비집고 솟아오르는 주황색 태양! 그 빛에 휩싸인 거대한 네 발 괴수와 두 발 거인!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50여 대의 기갑기들!

    참으로 보기 드문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수십 명의 몽골인들과 가베치들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이성계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오랜만이군, 이런 느낌은.”

    이성계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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