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기갑기 장인 테무게 (3)
“테무게 님! 괜찮으십니까?”
“협박당하신 거 아닙니까?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몽골 무사들과 기갑기 장인들이 테무게를 둘러싸고 질문을 퍼부었다.
“난 괜찮네. 호들갑 떨지 말게.’
테무게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만든 바가투르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야. 오랜만에 무릉도원에도 한 번 들어가 보고.”
테무게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기갑기 장인들과 함께 공장으로 되돌아갔다.
이성계도 가베치들을 이끌고 공장을 떠났다.
***
그날 밤, 테무게의 집.
테무게의 가족들이 안방에 모여 앉았다.
“내일 새벽에 고려로 떠날 거요.”
테무게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 고려로 이사 가잔 말이오.”
“예에? 고려에 가서 살자고요?”
“아빠!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부인과 딸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쉿! 목소리가 너무 커!”
테무게가 집게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꼭 필요한 짐만 꾸려서 준비해요. 새벽에 사람이 올 거요.”
“잠깐만요 여보!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맞아요 아빠!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요?”
테무게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하지만 난세가 시작되고 있다오.”
“난세라고요?”
“그렇소. 우리 대원제국이 망하고, 홍건적을 비롯한 한족들이 흥기하고 있소. 어디 그뿐이오? 왜구들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지. 그런데 이곳 제주도의 위치를 보시오. 고려와 원나라, 홍건적, 왜구들의 한복판에 있잖소? 언젠가는 피바람이 불 수밖에 없지.”
“그, 그럴 수가…….”
테무게의 아내와 딸이 불안한 표정으로 마주보았다.
“오늘 낮에 젊은 고려 귀족이 찾아왔었소. 그분의 아버지도 몽골의 다루가치 겸 천호였다더군. 그런데 얼마 전, 망해가는 원나라를 버리고 고려로 귀의했다고 하오.”
“혹시 쌍성총관부의 이자춘, 이성계 부자 아니예요?”
두 볼에 주근깨가 박힌 테무게의 딸, 나릉토야가 물었다. 그녀 역시 뛰어난 기갑기 장인이었다.
“그래 맞다. 네가 그걸 어떻게……?”
“항구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얘기해 줬어요. 곰처럼 크고 사자처럼 잘생긴 고려 귀족의 배가 입항했다고요.”
“그랬구나.”
“사실 저도 알고 있었어요. 대원제국이 위태롭다는 것도, 고려 국왕이 그 틈을 타서 독립을 선포했다는 것도요.”
“그렇구나. 어쨌든 그분이 나에게 말해 주었어. 무너져 가는 원나라를 벗어나 고려로 오라고. 그분에게는 내가 꼭 필요하니, 최고의 대우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단다.”
“하지만 여보…… 그분 말만 믿고 고려로 간다는 건 좀…… 여긴 몽골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좋잖아요?”
테무게의 아내가 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말했다. 나릉토야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오래 전부터 수많은 몽골 목동들이 말을 키우기 위해 제주도로 이주했다. 제주도는 천혜의 목장이었기 때문이다.
몽골 목동들은 제주도의 말들을 원나라에 보냈다. 한 번에 수천 마리씩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와 중국 사이에는 왜구와 중국 해적들이 우글거렸다. 그래서 해상전투용 기갑기가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기갑기 제작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고려 본토와 달리 기갑기 생산 제한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몽골인들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원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원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면…….”
“섬에 고립된 우리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어!”
실제로 약 15년 뒤, 제주도에서 <목호의 난>이라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난다. 목호는 <말을 키우는(牧) 오랑캐(胡)>, 즉 몽골인들을 뜻했다.
목호의 난이 일어난 것은 주원장 때문이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고려에 대량의 말과 기갑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 본토에는 두 가지 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공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제주도에 있던 몽골 목동들과 기갑기 장인들이 반발했다. 주원장은 원나라를 몰아낸 철천지 원수였기 때문이다. 힘없는 고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최영이 제주도에 파견되었다. 그는 고려 최고의 ‘노빠꾸 참군인’답게 몽골인들을 철저하게 학살했다. 테무게와 나릉토야도 자신들이 만든 기갑기를 타고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성계는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목호의 난이 일어나기 전, 남해안에 쳐들어온 왜구들과 싸우다가 우연히 테무게와 친해졌었기 때문이다. 나릉토야도 이성계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래서 그들을 구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었다. 기갑학교 교수가 되라는 공민왕의 지시를 늦추면서까지 제주도에 찾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전생에 일어난 일이었다. 테무게와 나릉토야는 이성계의 존재조차 몰랐다.
오늘 낮에 이성계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이성계 님에게 칭기스칸 폐하의 의지가 이어진 것을 보았소.”
“칭기스칸 폐하의 의지라고요?”
나릉토야의 두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설마 카라…….”
“쉿!”
테무게가 집게손가락을 세워서 입술에 갖다 댔다.
“넌 정말 눈치가 빠르구나 나릉토야. 하지만 그걸 입에 담으면 안 된다는 걸 알 정도로 원숙하진 못해.”
테무게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릉토야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테무게의 가족들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
두두두두두…….
가베치들의 엄호를 받으며 테무게의 가족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달은 기울었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덕분에 어두컴컴하진 않았다.
테무게는 물론이고 테무게의 아내와 딸, 나릉토야도 말을 탈 수 있었다. 몽골인들은 태어나자마자 말을 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마술에 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베치들은 테무게의 가족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테무게 가족의 짐을 등에 매고 말에 매달았는데도 그랬다.
‘가베치가 숫자는 적지만 전투력은 최강이라더니…….’
테무게가 감탄했다. 이성계의 할아버지 이춘과 아버지 이자춘이 수십 년 동안 길러낸 정예병력다웠다.
쏴아아~ 철썩!
그들은 어느새 바닷가에 도착했다. 항구가 아닌 곳에 큰 배가 정박해 있었다.
“저 배에 타시면 됩니다!”
가베치 장수가 테무게에게 말했다. 테무게와 가족들이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
촤아아아-
검푸른 새벽 바다 속에서 10여 대의 기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래, 게, 바다사자 등을 닮은 해상전투용 기갑기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육지에서도 10여 대가 등장했다. 육상전용 기갑기도 있었고, 해상전용 기갑기가 변신한 기체들도 있었다.
이성계의 배와 가베치들, 그리고 테무게의 가족이 순식간에 포위되었다. 가베치들이 기갑기를 꺼내려 했지만 이성계가 제지했다.
“너희들은 기갑기를 안 꺼내도 된다.”
‘안 꺼내도 된다고?’
‘설마 혼자 싸우실 생각인가?’
가베치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성계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육지 쪽 기갑기에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는……!”
“실망이오 테무게 형님.”
“혼자만 살겠다고 조국을 버리고 고려로 도망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테무게!”
나머지 기갑기들도 앞다투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테무게가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나와라 아바르가 자가스!”
<아바르가 자가스>는 상어라는 뜻의 몽골말이었다. 그러자 상어 모양의 중형 기갑기가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공중에서 인간형으로 변신하며 착지했다.
쿠웅!
그와 동시에 나릉토야가 외쳤다.
“나와라 달라인 모리!”
해마(海馬)처럼 특이하게 생긴 기갑기가 공간을 가르며 등장했다. 테무게의 아내는 기갑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베치들 사이에서 떨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 내가 지금 떠나는 건 원나라를 위해서요!”
인간형으로 변신한 상어 모양 기갑기에서 테무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기는 소리!!”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요?”
“원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야!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거, 너희들도 잘 알지 않느냐?”
“시끄럽소! 더 이상 추한 꼴 보이지 마시오!”
“옳소! 지금이라도 항복하시오!”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어쩔 건데?”
이성계가 말했다.
“시끄럽다! 넌 빠져라!”
“넌 좀 이따 죽여 주마!”
“얌전히 기다려라 까오리빵즈 놈아!”
“흐음~ 날 이대로 내버려둬도 될까? 너희가 불리해질 텐데?”
이성계가 기운을 실어서 말했다. 그러자 낮게 말하는데도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하! 무슨 개소리냐? 바닷속에 열 대, 육지에 열 대 넘게 있는데!”
“너희 고려 놈들이 기갑기를 꺼내는 순간, 기갑기사들을 전부 죽여 버릴 것이다!”
“기갑기사 없는 기갑기는 고철덩어리지!”
“아니, 손쉬운 전리품이라고 해야지!”
“전부 녹여서 새 기갑기로 만들어 주마!”
“하하하하!”
20여 대의 몽골 기갑기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갑기사가 기갑기에 타기 전, 또는 타는 순간을 노리는 게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복해 있던 것도 몰랐던 주제에!”
“우리가 먼저 기갑기에 타고 등장한 순간, 너희는 이미 진 것이다!”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라! 곧 죽여 줄 테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이성계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 세 가지를 잘못 알고 있군.”
“뭐?”
“첫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희들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뭐, 뭐라고?”
“거짓말하지 마라!”
“둘째, 기갑기 전투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개소리!”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기갑기 장인들이다!”
“너희 고려 놈들의 허접한 고물 기갑기와 같은 줄 아느냐?!”
“셋째, 이 세상에는…….”
쐐애애액-!
거대한 기갑기 전용 화살이 날아왔다.
“기갑기에 안 타고 기갑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퍼억!
허벅지에 화살이 박힌 수륙양용 기갑기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화살이 워낙 크고 빨라서 몸 전체가 고꾸라진 것이다.
“끄아아아-!”
“뭐, 뭐냐?!”
“고려 놈들이 또 있었나?”
그러자 멀리 중산간 쪽에서 대형 기갑기 한 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쿵쿵쿵쿵쿵!
유린청이 달려오면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쐑! 쐐애액!
퍽! 퍼어억!
“이런 제길! 대형 궁술 기갑기다!”
땅 위에 있던 기갑기들이 유린청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크아앙-!
검은 표범 기갑기, 현표가 변신한 해상전용 기갑기를 덮쳤다. 기갑기사가 너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물고기 모양으로 되돌아갔다.
까득! 까드득! 까드드득!
마치 고양이가 생선을 뜯어먹는 모습 같았다. 해마 모양 기갑기에 타고 있던 나릉토야가 푸흐흣!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테무게의 <아바르가 자가스>와 나릉토야의 <달라인 모리>가 두세 대의 기갑기를 묶어 두는 동안, 유린청과 현표가 나머지 기갑기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어, 엄청난 몸놀림이다!”
“이이익! 성능은 분명 우리 쪽이 나은데!!”
“기갑기에 대한 이해도도 우리 쪽이 높단 말이다!”
몽골 기갑기사-겸 기갑기 제작자-들이 고함쳤다. 그러자 이성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게 기술자들의 한계지. 똑같은 기갑기도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거늘…….”
“맞습니다 공자님!”
“훈련과 실전은 천지차이죠!”
충샨과 판챠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등장했는지도 모를 바가투르가 <무릉도원>으로 적을 하나씩 지워 버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몽골 쪽 기갑기들이 ‘순삭’되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도저히 안 되겠다! 누가 가서 다루가치들에게 알려라!”
“바다에 있는 기갑기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 빨리 올라와서 싸워라!”
“이미 늦었어.”
이성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촤아아-
발전자의 뾰족한 몸이 물 위로 반쯤 떠올랐다. 물 속에 있던 몽골 기갑기들이 깜짝 놀랐다.
“이 놈은 또 뭐냐?!”
“발전자 궁극기! 뇌제강림(雷帝降臨)!”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아-!
바닷속에 있던 기갑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