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29화 (29/33)
  • 029. 기갑기 장인 테무게 (2)

    “바가투르 궁극기! 무릉도원!

    슈웃!

    바가투르와 이성계, 테무게가 제주도 기갑기 공장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릉도원에 등장했다.

    “이보쇼 나으리! 방금 궁극기 쓴 거 아니오?”

    테무게가 경악했다.

    “말도 안 돼! 기갑기사가 타지도 않았는데 기갑기가 작동하다니!”

    “그 정도쯤이야. 나는 여러 대의 기갑기를 한꺼번에 조종할 수 있다네.”

    이성계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거짓말 마시오! 조종석에 타지도 않고, 동기화도 안 하고 기갑기를 조종하다니! 그건 불가능하오! 절대로!”

    “이 세상에 <절대로>는 없네.”

    이성계가 담담하게 말했다.

    “칭기스칸이 가르쳐 준 교훈이지.”

    “칭기스칸이 가르쳐 줬다니, 그건 또 무슨 개소립니까?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빨리 대답해 주세요! 기갑기에 안 타고 밖에서 조종하는 방법이요!”

    테무게가 기술자다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그쳤다. 그러자 이성계가 무릉도원의 아름다운 폭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도 칭기스칸 덕분일세.”

    “뭐, 뭐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줌세. 그건 그렇고, 나도 두 가지만 물어보고 싶네만.”

    “후우…… 뭡니까?”

    “첫 번째 질문. 아까 바가투르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더군.”

    “당연하죠! 바가투르는 내가 만든 기갑기니까!!”

    “오, 역시 그랬군! 조종석에 몽골 문자로 <테무게>라고 적혀 있어서 예상은 했네만.”

    “그것만 갖고 나를 찾아낸 겁니까? 말도 안 돼요! 솔직하게 말해 주십쇼! 누가 나를 추천했습니까?”

    “내 질문 하나 더 남았네.”

    “크윽…… 빨리 물어보시오!”

    “덩치는 큰데 성질이 급하군. 어쨌든 두 번째 질문. 바가투르는 어떤 괴수로 만들었지?”

    이성계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하더군. 궁극기가 워낙 특이해서 말일세. 적과 함께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니, 정말로 특이하지 않은가?”

    “파사(巴蛇)로 만들었소.”

    테무게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뭐? 코끼리를 먹고 사는 거대 괴수, 파사 말인가? 한입에 삼킨 코끼리 뼈를 3천 년 뒤에야 내뱉는다지?”

    “그렇소이다. 파사는 뱃속에 아공간을 만들어 내서 먹이와 보물을 숨기지요. 잡아먹은 코끼리 뼈를 3천 년 후에 뱉는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온 것도 그래서고요.”

    “그랬구만! 참으로 대단하군 테무게! 파사의 능력을 활용해서 이 <무릉도원> 같은 강력한 궁극기를 만들어 내다니 말이야!”

    테무게가 코를 쓱 훔치며 웃었다. 자신의 기술과 기갑기가 칭찬받는데 싫어할 기갑기 장인은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으리, 이번엔 내가 좀 물어봅시다. 바가투르가 왜 당신, 아니 나으리 기갑기가 된 거요? 내가 만들어서 황제 폐하께 납품, 아니 납품이래, 진상했고, 황제께서 대사도 기바얀부카 나으리에게 하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기바얀부카? 기철 말인가? 내가 죽였다.”

    “뭐, 뭐라고?!”

    테무게가 이를 갈며 외쳤다.

    “역시 그랬군! 당신은 원나라의 적이오! 아무리 나를 고문해도, 나는 절대로 고려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요!”

    “하하 고문이라……? 그것도 좋지. 내가 고문하면 굴복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흥! 내가 고문 따위에 질 것 같소?”

    “칭기스칸의 고문법을 쓴다면? 그래도 버틸 수 있을까?”

    “칭기스칸의……? 그래, 들어본 적이 있소. 너무나도 잔혹해서 봉인되었다는 고문법! 헌데, 나으리가 그걸 안다는 거요?”

    “잘 알지.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지, 직접 봤다고?”

    “으음~ 그건 정말이지…… 끔찍하더군. 나도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는 데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칭기스칸의 직속 고문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성계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잠깐만요! 아까부터 말도 안 되는 말씀만 하시는데…… 갓 스물을 넘긴 햇병아리 주제에, 거짓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테무게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외쳤다.

    “거짓말이라…….”

    이성계가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테무게, 내가 너를 왜 이곳, 무릉도원에 데려왔는지 아는가?”

    “흥!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문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절대로…….”

    “틀렸네.”

    “틀렸다고?”

    “자넬 고문하려고 데려온 게 아니란 말일세. 고문할 거였으면 자네가 아니라 자네 가족들도 데려왔겠지.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

    “그, 그런 짓을 했다간 내가 기필코 당신을…….”

    테무게가 이성계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성계가 말없이 테무게를 마주보았다. 거대한 살기가 갈무리된 깊고 강렬한 눈빛이었다.

    ‘이, 이게 진정 20대 초반 애송이의 눈빛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지옥을 헤쳐왔길래……?’

    테무게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다.

    “고문할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데려온 겁니까?”

    테무게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숨기기 위해서다.”

    “숨기다뇨? 무엇을 말입니까?

    “사상 최강의 기갑기.”

    “사, 사상 최강의 기갑기라고?”

    테무게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감히 어디서 최강의 기갑기 운운하는 거요? 사상 최강의 기갑기는 오직 단 하나! 대군주 칭기스칸 폐하의 전용기, 카라 쥬르켄뿐이란 말이오!”

    테무게가 씨근덕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평온했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테무게를 바라볼 뿐.

    테무게가 이성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잠깐…… 설마……?!”

    “그래, 맞다.”

    이성계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와라 카라 쥬르켄!”

    ***

    기우웅-!

    몸 전체가 새까만 초대형 기갑기, 카라 쥬르켄이 아공간을 열고 등장했다.

    “오랜만이군, 카라 쥬르켄.”

    [이거 놀랍군.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나?]

    건조하면서도 요사스럽고, 가슴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묵직하면서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또 네가 날 잊은 줄 알았지.]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삐쳤나 보구나.”

    [삐치다니! 나의 분노를 그런 저속한 말로 매도하지 마라!]

    카라 쥬르켄이 고함쳤다. 그러자 테무게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카라 쥬르켄이 뿜어낸 살기 때문이었다.

    테무게가 거대 괴수와 기갑기에 익숙한 각성자였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기절하거나 미쳐 버렸을 것이다.

    물론 이성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역시 자아가 너무 강해. 다루기가 힘들군.’

    이성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테무게가 벌벌 떨며 외쳤다.

    “말이 안 된다니, 어느 쪽이 말이냐? 기갑기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거? 아니면 고려인인 내가, 그것도 원나라의 적인 내가 카라 쥬르켄을 가지고 있다는 거냐?”

    “당연히 후자지! 말하는 괴물이 드물긴 하지만 없지는 않으니까!”

    테무게가 외쳤다.

    “카라 쥬르켄을 어떻게 손에 넣었소? 사악한 술법을 쓴 거 아니오? 솔직하게 말해 주시오!”

    테무게가 의심할 만도 했다. 전생의 주원장은 비열한 술법을 총동원해서 카라 쥬르켄을 속박했기 때문이다.

    “아니, 비겁한 수단은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대금역 이크호리크에 혼자 들어가서 칭기스칸의 시험을 통과했다. 그 덕분에 카라 쥬르켄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 그렇다면 대군주 칭기스칸께서…….”

    “그래, 나를 정식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로서, 카라 쥬르켄의 주인으로서!”

    “아니야! 당신은 몽골족이 아니야! 대군주께서 몽골족이 아닌 고려인에게 카라 쥬르켄을 물려주셨다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이제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이성계가 조용히 말했다.

    “나를 돕는 게 원나라를 돕는 것일세. 아니, 나를 도와야 원나라가 살 수 있네. 그대는 그걸 모르고 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이번에는 세 치 혀로 나를 농락하려는 게요?!”

    테무게가 외쳤다. 그때였다.

    [이럴 거면 나를 왜 불렀느냐?]

    카라 쥬르켄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끼리만 떠들어 대고 말이지! 나는 내 안식처로 돌아가련다. 그럼 이만.]

    카라 쥬르켄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아공간으로 돌아가 버렸다. 테무게가 입을 크게 벌리고 어버버했다. 세계 최고의 기갑기 장인인 그가 보기에도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한숨을 내쉰 다음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자네를 농락한다고? 내가 그렇게 언변이 좋아 보이나? 뭐, 오래 살다 보니 말솜씨가 늘긴 했다만…… 나는 뼛속까지 군인일세. 달변으로 남을 꼬드기는 짓 따윈 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아.”

    이성계가 진지한 눈으로 테무게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눈이 아니야……!’

    테무게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테무게, 자네가 알다시피 대원제국은 큰 위기에 빠져 있네. 이대로 가면 중원을 모두 잃고 황량한 몽골 초원으로 쫓겨나게 될 거야. 늦어도 2, 30년 안으로.”

    “아니오! 대원제국은 아직 건재하오! 기라성 같은 군벌들과 막강한 귀족들과 장군들이…….”

    “그래? 그럼 왜 장사성 토벌전에 실패했지?”

    “그, 그건…… 썩어빠진 황족들과 귀족들이…… 환관들과 기황후 때문에…….”

    “횡설수설하는군. 자네도 사실은 불안하기 때문이야.”

    “그, 그것은…….”

    “자네가 대도(북경)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제주도로 쫓겨 온 것도, 기황후에게 숙청당한 승상 토크토아 테무르가 총애하던 기갑기 장인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중원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절해고도에 유배된 것이고!”

    “그건 또 어떻게 아셨소?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네. 중요한 건 원나라가 황하 이남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걸세. 강남의 거대한 토지와 염전에서 거두던 막대한 세금이 사라져 버렸단 말일세! 이제 원나라에게 남은 건 시름시름 말라 죽어가는 것뿐!!”

    “되찾을 겁니다! 반드시! 제가 만든 기갑기들로!!”

    “좋은 각오야. 하지만 어떻게 되찾을 텐가? 홍건적이 송나라를 세운 지 2년이나 되었네. 그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대해지고 있지. 광동성과 절강성, 복건성은 물론이고 하남성, 화북성, 강소성을 점령한지 오래! 이제는 산동성까지 위협받고 있지 않은가?”

    이성계가 진심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솔직해지게. 원나라는 이제 끝일세.”

    “크윽……!”

    테무게가 커다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기름때와 흉터로 얼룩진 손이었다. 하지만 이성계의 눈에는 노국대장공주의 섬섬옥수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너무 걱정 말게. 원나라를 되살릴 방법이 있으니.”

    “그, 그게 뭡니까?”

    “나와 고려가 충분히 강해지는 걸세. 그래서 원나라와 고려, 홍건적이 천하를 나누어 갖는 거지.”

    “처…… 천하삼분지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이성계가 웃으며 말했다.

    “대원제국의 영광은 사라지겠지. 하지만 멸망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

    기갑기 공장 앞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중요한 기술자인 테무게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이오?”

    “이건 엄연한 납치요!”

    “테무게 님을 돌려주시오! 지금 당장!!”

    문앞을 지키던 몽골 무사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아니~ 둘이서 오붓하게 하실 이야기가 있으신가보지~”

    “조금만 있으면 나오실 텐데, 뭘 그리 걱정하고 그래~?”

    충샨과 판챠가 느물거렸다. 그러나 몽골 무사들은 막무가내였다.

    “분명히 여길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을 거요!”

    “하~ 시펄! 거 더럽게 찡찡거리네!”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여진족 무사답게 성질이 급한 충샨과 판챠가 으르렁거렸다.

    “뭐, 뭐라고?!”

    “말 다했어?”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구만!”

    “왜 그렇게 인내심이 없어?”

    “당신들이 할 소리요?”

    “함 붙어보자 이거지?”

    공장 안에서 기갑기 장인들이 몰려나왔다. 충샨과 판챠를 비롯한 30여 명의 가베치들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그들 대부분은 각성자이자 기갑기사였다. 그래서 자칫하면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난투극을 벌일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마법진이 지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슈슛!

    바가투르와 이성계, 그리고 테무게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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