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26화 (26/33)

026. 왜구와 기갑기 (2)

쿵쿵쿵쿵쿵

쿵- 쿵- 쿵- 쿵-

두 대의 중형 기갑기가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빠른 쿵쿵쿵쿵은 원숭이 기갑기 보뇨의 발소리였고, 느린 쿵- 쿵- 쿵- 쿵-은 쌍도끼를 꼬나든 파워형 기갑기 수허의 발소리였다.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과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백성들이 동시에 언덕을 바라보았다.

“저, 저건 또 뭐래요?”

“기갑기에 새겨진 이(李) 자를 봐! 고려군이 분명해!”

“이씨 세가(世家)에서 우릴 구하러 왔나 봐요!”

“이씨 세가라고……?”

“근방에 이씨 성을 쓰는 토호가 있었나?”

백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씨든 김씨든 무슨 상관이야?”

“그래! 우릴 구하러 왔다는 게 중요하지!”

“멍청아! 우릴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왜구를 토벌하러 온 거잖아!”

“그거나 그거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기갑기 전투에 휘말리면 뼈도 못 추려!”

“그래요!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해요!”

백성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왜구들은 그걸 보면서도 쫓아가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두 대의 기갑기, <보뇨>와 <수허> 때문이었다.

“우오오오오-!”

“다 죽었어 왜구 새끼덜!”

원숭이처럼 호리호리한 보뇨와 두툼하고 각진 수허가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왔다.

쿵쿵쿵쿵쿵!

보뇨와 수허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충샨과 판챠는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 부상을 안고 싸우는 경우는 흔했기 때문이다.

“민나! 키코키오 토리다세!”

(모두 기갑기를 꺼내라!)

사무라이들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데테코이! 000!”

(나와라 000!)

기우웅-!

열 대의 기갑기가 공간을 가르고 나왔다. 사무라이들이 재빨리 기갑기에 탑승했다.

꽈아앙!!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내려가던 보뇨가 맨 앞에 있던 <왜갑기(왜군 기갑기)>와 충돌했다.

콰앙-!

사무라이 갑옷처럼 생긴 화려한 중형 기갑기가 열 장(30m) 넘게 날아가서 땅바닥에 쳐박혔다. 보뇨가 기세를 늦추지 않고 달려가서 쓰러진 기갑기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일본 기갑기의 얼굴에 곤봉을 쑤셔 박았다.

푸우욱-!

“끄아아 칙쇼오오오-!”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사마아앗-!!”

나머지 기갑기들이 5장(15m)이 넘는 장검과 10장(30m)이 넘는 장창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후웅-!

후우웅-!

괴력형 기갑기 수허가 거대한 두 개의 도끼를 휘둘렀다. 장검와 장창을 휘두르려던 왜갑기들이 황급히 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콰지직!

수허의 도끼가 앞에 있던 왜갑기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두 손으로 장창을 쳐들어 막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끄아아악!”

가슴이 둘로 쪼개지는 고통! 사람끼리의 싸움이었다면 허파가 찢어져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좋아!”

“붙어!”

보뇨와 수허가 등을 붙이고 섰다. 보뇨는 원숭이처럼 긴 팔로 곤봉을 휘둘렀고, 수허는 거대한 도끼를 양팔로 휘둘렀다.

이자춘이 수많은 가베치들 중에서 직접 선발한 베테랑들다웠다.

하지만 이성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저놈들…… 완전 허당이잖아?”

언덕 위에 있던 이성계가 쓴웃음을 지었다.

“잘난 척, 멋진 척은 다 하더니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실력만 믿고 너무 성급하게 달려들었다. 전형적인 여진족 무사다웠다.

‘여진족 무사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전사들이지.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략적인 사고가 부족해.’

그래서 <여진족 2만이 모이면 천하가 벌벌 떤다>는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중국과 고려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충샨과 판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조종하는 수허와 보뇨는 10여 대의 왜갑기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10여 자루의 장검과 장창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 자식들, 왜구 주제에 엄청 노련하잖아!”

“원나라 놈들보다 훨씬 나은데?!”

충샨과 판챠가 소리쳤다. 입꼬리를 올려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당황하고 있었다.

왜갑기들이 순식간에 포위를 마친 뒤, 곧바로 연계기까지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반기 연계기>가 아니라 <궁극기 연계기>였다. 오랜 경험과 숙달된 팀워크가 없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충샨과 판챠도 만만치 않았다.

“포위망을 뚫자 판챠!”

“좋아! 가자 충샨!”

“하나! 둘! 셋!”

쿵 쿵쿵 쿵쿵쿵쿵!

쿵- 쿵- 쿵- 쿵-!

수허와 보뇨가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기갑기들이 더 빨랐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수허, 보뇨와 함께 뛰었다.

그들은 수허와 보뇨를 둘러싼 채로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

열 대가 넘는 기갑기들이 한꺼번에 뛰자 지축이 울리고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충샨과 판챠가 욕설을 내뱉았다.

“와 시펄 이것들 왜구 맞아?”

“조직력만큼은 가베치보다 나은데?”

“시네!(죽어!)”

10여 대의 왜갑기들이 장창과 장검을 치켜들고 외쳤다. 포위되어 있던 충샨과 판챠도 무기를 꼬나들고 외쳤다.

“니미럴! 붙어 보자!”

“다 덤벼 새끼들아!”

그때였다.

파지지지지직-!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

“발전자 궁극기! 뇌제강림(雷帝降臨)!”

파직!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기갑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는 충샨과 판챠의 비명 소리도 섞여 있었다.

“끄흑…… 아니 공자님!”

“저희까지 튀겨 버리심 어떡합니까?!”

충샨과 판챠가 소리쳤다.

“엄살은. 살짝 찌릿했을 뿐이면서.”

“두 번 찌릿했다간 골로 가겠습니다요!”

“불평은 좀 이따 해. 일단 전투부터 마무리하자고.”

“존명!!”

“끄으응~!”

“이따이요~(아파~)”

잠시 마비되어 있던 10여 대의 왜갑기들이 하나 둘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왜군 기갑기들이 생각보다 튼튼하군. 확실히 단순한 해적은 아니야. 일본 남조(南朝)의 정규군이겠지.’

지금 일본은 남조와 북조(北朝)로 나누어져서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소위 <남북조 시대>로 불렸다.

이중에서 일본의 서쪽을 지배하던 남조의 군벌들이 군량미를 마련하기 위해 고려와 원나라에 쳐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려 말 왜구>의 정체였다.

“나와라 현표! 나와라 바가투르!”

기우웅-! 기우우웅-!

“목표는 제일 크고 화려한 놈! 뒤에서 관망하고 있는 저 놈이다!”

“옙!”

“이야아아아-!!”

원숭이 기갑기 보뇨, 쌍도끼 기갑기 수허, 길고 뾰족한 가시가 튀어나온 발전자, 흑표범 기갑기 현표, 우아한 원나라식 기갑기 바가투르가 단 한 대의 왜갑기를 향해 돌진했다.

“토마레(멈춰라)!”

10여 대의 왜갑기들이 황급히 가로막았다. 장창과 장검을 휘두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성계와 충샨, 판챠의 기갑기들은 부상을 무릅쓰고 무조건 앞으로 돌진했다.

캬오오-!

흑표범 기갑기 현표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콰직!

현표가 사무라이 기갑기의 오른팔을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수허의 도끼가 왼쪽 무릎을 찍었고, 보뇨의 곤봉이 오른쪽 허벅지를 강타했다.

“크으으윽 키사마아앗-!”

사무라이가 고통을 참으며 궁극기를 쓰려 했다. 주위에 있던 왜갑기들도 장검과 장창을 휘둘렀다. 충샨과 판챠가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

“바가투르 궁극기! 무릉도원!”

이성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이이잉-!

바가투르와 사무라이 기갑기의 아래에 두 개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둘 다 사라졌다.

***

그로부터 약 반 시진(1시간) 후,

“충샨, 판챠!”

“예, 공자님!”

“봤지? 왜구들과의 전투에서는 적장을 치는 게 최우선이야. 혈연관계로 맺어진 자들이니까, 지휘관이 곧 집안 어른이거든.”

사실 고려군도, 몽골군도, 여진족도 비슷했다. 일본군이 좀 더 유별났을 뿐.

“왜구들의 갑옷은 하체가 부실하지. 기갑기도 마찬가지야. 왜구들과 백병전을 할 때는 하체를 노리는 게 좋지. 아, 물론 가능하면 근접전을 피해야 해. 왜놈들은 근접 전투의 달인들이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요 공자님!”

충샨과 판챠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허와 보뇨는 이미 아공간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이성계의 기갑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한테 포격형이나 저격형, 마법형 기갑기가 없어서 그런 거지! 있었으면 원거리에서 최대한 퍼부었을 거야. 근접전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피했을 거고.”

“그러게 말입니다! 유린청만 있었어도…….”

“그러니까 <아무리 강한 기갑기도 혼자서는 못 싸운다>라고 하는 게지요!”

“그런데 공자님, 포격형 기갑기는 중국에만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충샨과 판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성계가 아차 했다.

‘포격형 기갑기는 2, 30년 뒤에야 고려에 등장했었지!’

최무선은 건괘석이라 불리는 특수한 마정석을 특별한 방법으로 가공해서 <마도화약(魔道火藥)>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중국산 마도화약보다 못했지만 얼마 못 가서 더 뛰어난 화약을 만들어 냈다.

“우리도 이젠 포격기를 가질 수 있잖아. 원나라 말에 따를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충샨과 판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계가 몸을 돌려 왜구들을 바라보았다.

10여 명의 사무라이들이 두 손을 뒤로 묶인 채로 꿇어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기갑기사들이었다. 200명이 넘는 일반 병사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갑옷과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기갑기도 없는 일반 병사 따위,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나?”

이성계가 10여 명의 사무라이들에게 말했다. 대마도 출신의 왜구가 일본말로 통역했다. 그러자 꿇어앉아 있던 사무라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라나이! 코로세!”

이성계와 비슷한 나이의 귀공자가 외쳤다.

“필요 없다! 죽여라! 라고 하시므니다.”

통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계가 무덤덤한 눈으로 귀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장 크고 화려한 기갑기에 타고 있던, 그래서 이성계와 충샨, 판챠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바로 그 사무라이였다.

“아직 어리구나. 남자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가족, 가문, 백성, 영토, 그리고 주군. 그것들에 비하면 일신의 명예 따위는 깃털보다 가벼운 법.”

통역의 말을 전해들은 귀공자가 눈을 크게 떴다. 충샨과 판챠도 고개를 미간을 좁혔다.

‘비슷한 나이 아닌감?’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말씀하시네……?’

“마지막으로 물어보마. 살고 싶으냐, 아니면 죽고 싶으냐?”

귀공자 사무라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키타이(살고 싶다)!”

“좋다.”

이성계가 통역의 말도 듣기 전에 웃으며 말했다.

“거기 너희들!”

10여 명의 사무라이들이 이성계를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모두 살려 주마.”

“공자님!”

충샨과 판챠가 놀라서 외쳤다.

“단, 조건이 있다.”

이성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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