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괴수와 기갑기 (2)
두두두두두…….
이성계가 말을 달려서 마을로 들어갔다. 거구의 여진족 가베치, 충샨과 판챠가 그의 뒤를 따랐다.
콰앙! 콰아앙!
30미터가 넘는 거대 지네 괴수 <향랑香娘)>이 초가집을 들이받고, 기와집을 무너뜨리며 발광했다. 그러자 집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향랑의 의도대로였다.
끼에에에-!
향랑이 몸의 절반 정도를 곧추세우고 포효했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주변 생물들을 얼어붙게 했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쭈뼛거렸다.
기력이 좋은 자들은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달렸다. 노인이나 아이들은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에잇! 도저히 안 되겠다!”
젊은이들 중 일부가 부모자식을 내팽개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울부짖었지만 부모들은 오히려 안도했다. 빨리 뛰라고, 너라도 살라고 외치며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그것은 향랑을 잘 모르는 행동이었다.
“안 돼! 뛰지 마! 뛰지 말란 말이다!”
말을 타고 달려오던 이성계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향랑이 더 빨랐다.
촤아악-
향랑의 입에서 녹색의 독액이 발사되었다. 목구멍에 있는 독샘에서 총알처럼 발사된 독액이 달리던 자들의 등에 명중했다. 그러자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녹아내렸다.
끄아아악!!
달리던 젊은이들이 그대로 엎어졌다. 향랑이 거대한 몸으로 쇄도해 왔다.
사사사사삭-!
향랑이 거대한 주둥이를 벌려서 흐물흐물해진 젊은이들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먹이에 독액을 주입해서 먹기 좋게 만드는 거미와 같은 행태였다.
“으아아 안 돼! 안 돼애애-!”
남겨졌던 노인들과 아이들이 절규했다. 향랑이 자신의 <포효>를 이겨 내고 달릴 정도로 싱싱한 먹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몰랐던 탓이었다.
‘기력이 떨어지거나 속도가 느린 인간은 그 다음에 잡아먹어도 되니까.’
말을 달리던 이성계가 입술을 깨물었다.
“물러서십시오 공자님!”
“저희가 먼저 가겠습니다!”
충샨과 판챠가 외쳤다.
“나와라 <보뇨>!”
“나와라 <수허>!”
기우웅-
원숭이처럼 팔이 긴 기갑기와 양손에 도끼를 든 두툼한 기갑기가 등장했다. 둘 다 중형(12m)이었다.
붕~ 부웅~
만주어로 원숭이를 뜻하는 <보뇨>가 여의봉처럼 생긴 곤봉을 휘둘렀다. 도끼를 뜻하는 <수허>는 그 이름대로 쌍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두 대의 기갑기가 쿵쿵거리며 돌진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기갑기다!”
“기갑기가 왔어!”
“우린 살았어!”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나와라 발전자!”
이성계가 재빨리 발전자에 탑승했다.
“빨리! 이쪽으로 달려라!”
이성계가 외쳤다. 백성들이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이이잇!!!
향랑이 몸을 곧추세웠다. 그러자 보뇨와 수허보다 훨씬 높이 솟아올랐다.
끼에에에-!!
촤아악-!
향랑각시의 입에서 대량의 독액이 뿜어져 나왔다. 수허와 보뇨가 침착하게 몸을 피했다. 아까와는 달리 보라색 독액이었다.
치이이익-!
독액에 뒤덮인 돌담과 기와집들이 녹아내렸다. 수허와 보뇨를 조종하던 충샨과 판챠가 헛웃음을 지었다.
“엄청난 부식력이구만!”
“잘못 맞으면 한방에 가겠는데?”
수허가 왼쪽으로, 보뇨가 오른쪽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머리가 하나뿐인 향랑이 일시적으로 혼선을 일으켰다. 수허와 보뇨가 도끼와 곤봉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퍽! 퍼억!
꽈직! 꽈지직!
수허의 도끼와 보뇨의 곤봉이 향랑의 긴 몸에 내리꽂혔다. 향랑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상급 가베치들다웠다. 그때였다.
쐐애액-!
푸욱!
향랑의 꼬리독침이 보뇨의 오른팔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보라색 독액이 수허를 덮쳤다.
촤아악!
“크으윽!”
독액을 덮어쓴 수허의 상반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독침을 맞은 보뇨의 오른팔이 시커멓게 변해 갔다.
끄아아아-!
두 사람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충샨이 외쳤다.
“도와줘 판챠!”
그러자 독액을 뒤집어쓴 수허가 보뇨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향랑의 꼬리를 도끼로 찍어 버렸다.
키이익!!
향랑각시가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며 독침을 뽑았다. 수허의 도끼가 땅바닥에 박혔다.
“고맙다 판챠.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뭘 우리 사이에.”
“넌 괜찮냐?”
“좀 쓰라리긴 하네.”
독액을 뒤집어쓴 판챠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끼에에엑-!!
분노의 포효 소리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수허와 보뇨가 싸우는 동안 이성계가 백성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끼에엑! 끼에에엑-!
향랑각시가 계속 포효했다. 하지만 얼어붙는 백성은 거의 없었다. 이미 꽤 멀리 도망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빨리, 더 필사적으로 도망치게 할 뿐!
시이잇! 시이이익!!
독이 바짝 오른 향랑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결 부위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쿵! 쿠웅! 쿠쿠쿵!
땅에 떨어진 향랑의 토막들! 그 토막들의 앞뒤에서 흉측한 머리와 꼬리가 튀어나왔다. 머리는 사마귀와 바퀴벌레를 합쳐 놓은 것처럼 생겼고, 꼬리는 전갈의 꼬리처럼 생겼다.
그런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인간보다 훨씬 빨랐다. 하나의 토막마다 세 쌍의 긴 다리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다리만큼이나 커진 곤충의 다리였다.
스사사사삭!!
사사사사삭!!
“크…… 큰일이다!”
“사람들이 위험해!”
충샨과 판챠가 외쳤다. 그러자 이성계는 여유로웠다.
“발전자 궁극기! 뇌제강림(雷帝降臨)!”
발전자에 타고 있던 이성계가 외쳤다.
쿠르릉~!
검은 먹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꽈과과과광-!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끼엑?! 끽! 끼에에에에-!!
거대한 번개가 ‘작은 향랑들’, 즉 향랑의 토막들에게 정확히 내리꽂혔다. 향량의 토막들이 튀겨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망치던 백성들이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의 위기조차 잊게 만드는 장엄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해 분리될 거라고 생각했지.”
이성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발전자의 궁극기를 쓰기 딱~ 좋게 말이야.”
***
부우웅-!
원숭이 기갑기 보뇨가 왼손으로 곤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퍼걱!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향랑들’의 등껍질이 터져 나갔다.
후웅-! 후우웅-!
독액에 상체가 부식된 수허가 쌍도끼를 휘두르자 향랑의 토막들이 땔나무처럼 쪼개졌다.
끽!
끼엑!
끼에엑!
기절해 있던 향랑의 토막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끼엑! 끼에엑! 끼에에엑!
향랑의 토막들이 재빨리 합체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향랑이 다시 만들어졌다.
“제길! 너무 늦었어!”
“하여튼 더럽게 빠르구만!”
충샨과 판챠가 소리쳤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번에도 무덤덤했다.
“크기가 줄었구나. 지루하니 이만 끝내자.”
이성계의 말대로 향랑은 절반(15m)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분리되어 있던 향랑의 토막들 중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와라 바가투르!”
기우웅-!
퍽! 퍼퍽! 퍼거걱!
촥! 촤악! 촤아악!
부웅- 부웅- 부우웅!
파지지지직!
보뇨와 수허, 발전자와 바가투르가 아담해진(?) 향랑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앙칼지게 반항하는 향랑! 그러나 대형 기갑기 두 대와 중형 기갑기 두 대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발전자가 전기로 지지는 동안에 바가투르의 칼, 수허의 도끼, 보뇨의 곤봉이 춤을 추었다. 그래서 독액을 내뿜거나 독침을 꽂아 넣을 기회조차 없었다.
끼히이이잉~
향랑각시가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쿠웅!
그러자 수허가 도끼로 머리를 쪼갠 다음, 그 안에 있던 마정석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백성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
“머리와 꼬리, 기타 주요 부위만 확보하고 고기는 백성들에게 줘. 살코기는 먹을 수 있으니까. 참! 내장은 절대 먹으면 안 돼.”
이성계가 말했다. 수허와 보뇨가 이성계의 말대로 머리와 꼬리를 따로 챙겼다.
마을 사람들이 부서진 집에서 땔감과 도마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향랑의 토막들에 달라붙어서 고기를 발라 내기 시작했다. 두꺼운 껍질이 산산조각나 있어서 식칼로도 충분했다.
“괴물의 고기는 굉장히 비싼데…….”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공짜로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요 나으리!”
백성들이 몰려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성계와 충샨, 판챠는 기갑기를 돌려보내고 쉬는 중이었다.
“어차피 기갑지원병이 없어서 고기를 들고 가기 힘들었네. 부담 갖지 말고 많이들 먹게. 남으면 팔아서 살림에 보태고.”
이성계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엎드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으리…… 이 은혜를 어찌 갚사올지…….”
“목숨을 구해 주신 것만도 감지덕지이온데…….”
“모두 일어나게. 빨리 구워야 우리도 맛 좀 볼 것 아닌가?”
이성계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환하게 웃으며 향랑의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지금 뭣들 하는 게냐!”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보니 지역 토호와 그의 사병(私兵)들이었다.
“어허! 괴수에게서 손을 떼지 못할까?
“이 땅이 뉘 땅인데 네놈들 마음대로 행동한단 말이냐?”
“이 천한 놈들이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칼과 활을 든 수십 명의 사병들이 윽박질렀다. 그러자 백성들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번드르한 비단옷을 입은 짜리몽땅한 토호가 만족스럽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하-! 싯팔 어이가 없네?”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할 땐 외면하더니! 다 죽여 놓으니까 등장해서, 뭐가 어째?”
거구의 여진족 가베치, 충샨과 판챠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토호의 사병들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야!’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살기가 엄청나!’
‘사람이 아니라 맹수 같아!’
가베치들은 광활한 동북면을 누비며 괴수와 왜구를 때려잡아온 정예 전투집단이었다. 일반 귀족들의 사병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오랑캐 놈들! 내가 누군지 알고 나서느냐?”
짝딸막한 토호가 배를 내밀며 외쳤다. 그러자 앉아 있던 이성계가 일어서며 말했다.
“네가 누군데?”
충샨과 판챠보다 더 큰 이성계가 거대한 근육을 씰룩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토호와 사병들이 자기도 모르게 반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세 번째 삶을 살며 수만 명을 썰어 죽였던 이성계! 그가 살기를 흘리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싸하게 얼어붙었다. 충샨과 판챠마저도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보, 보아하니 세가(世家)의 말석에 걸친 놈이로구나! 하지만 상대를 잘못 짚었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
“누가 있는데?”
“서북면병마사이자 평리이신 인당 님이시다!”
토호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외쳤다. 그러자 이성계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인당, 그 새끼가 문제로군.’
전생에서 강중경은 인당과 함께 서북면 토벌군에 배속되었다. 인당은 사소한 트집을 잡아서 강중경을 죽여 버렸고. 분노한 공민왕은 서북면에서 돌아온 인당을 처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성계가 공민왕에게 특별히 요청해서 강중경을 동북면 토벌군, 즉 쌍성총관부 토벌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공민왕 입장에서는 <북해신장>의 기갑기사 강중경이 어느 쪽에 배속되든 큰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흔쾌히 강중경을 쌍성총관부 토벌군으로 바꿔 준 것이다.
결국 이성계가 강중경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공민왕과 강중경은 꿈에도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밝혀지지만 인당은 원나라 황실의 고려인 환관들과 내통하고 있었지. 박부카나 고용보 같은…….’
“하하 이제 정신이 좀 드느냐? 알았으면 썩 꺼지거라!”
이성계가 인당의 이름에 겁먹었다고 생각한 토호가 외쳤다. 그의 사병들도 기세를 되찾았다.
“너, 내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느냐?”
이성계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토호가 거들먹거리며 외쳤다.
“그래, 네놈 이름자나 한 번 말해 보거라!”
“나는 동북면병마사 이자춘의 아들, 만호 이성계다.”
“뭐, 뭐라고?!”
토호와 사병들이 깜짝 놀랐다. 지방에 있었지만 개경의 소식은 항상 접해 왔기 때문이다.
“그, 그렇다면 네가, 아니 당신이 바로……,”
토호가 땅딸한 몸을 떨며 외쳤다.
“대사도 기철을 죽였다는 그 젊은 무장이었소?”
“그래. 그러니까 내가 제안 하나 하지.”
“무, 무슨 제안?”
“지금 바로 꺼져라. 안 그러면 너와 네 집, 너의 농장, 그리고 네 뒤에 있는 알량한 사병들까지 전부 없애 버릴 테니까.”
이성계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은가? 그럼 기갑기를 꺼내라. 남자답게 힘으로 결정하자.”
충샨과 판챠가 팔짱을 끼고 이성계의 좌우에 섰다.
“이길 자신이 있다면 말이지.”
“크…… 크으윽…….”
토호가 수염을 떨며 이성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었다.
‘저 자는 왕비마마의 기갑기 <알탄 다리에크>조차도 이겼으니까…….’
게다가 한꺼번에 두 대 이상의 기갑기를 조종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아는 한, 이 세상에 그게 가능한 기갑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알겠소…….”
토호와 그의 사병들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노와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말이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백성들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그들이 처음으로 맛본 ‘사이다’였으니까.
“저…… 공자님, 저런 놈들은 꼭 보복하려고 듭니다요.”
“그러믄요. 뒤끝이 얼마나 더러운 놈들인데요.”
충샨과 판챠가 이성계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이성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