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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군주 이성계-22화 (22/33)
  • 022. 쌍성총관부 (2)

    둥 둥 둥 둥

    뿌우우~!

    저벅 저벅 저벅

    1만의 군사들이 북과 나팔, 소라고둥 소리에 맞춰 진군했다. 수백 개의 깃발이 나부끼며 장관을 만들어 냈다.

    대열의 선두에 있던 선봉장 이성계가 외쳤다.

    “나와라 현표!”

    “나와라 바가투르!”

    기우우웅-!

    이성계가 현표에 탑승했다. 두 대의 기갑기가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려 장수들과 병사들이 경악했다.

    “자, 잠깐!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한꺼번에 두 대를 조종한다고?!”

    “기갑기사가 없는데 움직인단 말야?”

    “말도 안 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총관부 소속 병사들은 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저…… 저것은 기철 대사도님의 바가투르가 아닌가?”

    “기철 님을 살해하고 기갑기를 초기화한 다음, 강제로 계약을 맺은 게 틀림없어!”

    “악독한 고려 놈들! 반드시 복수해 주마!”

    쌍성총관부 장졸들이 저주와 야유를 퍼부었다.

    “여러 장수들께서는 분위기만 잡아 주십시오! 전투는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이성계가 고려 장수들에게 말했다.

    “쌍성총관부 탈환은 저희 힘으로 할 것입니다. 주상전하께도 그리 말씀드렸고요.”

    그러나 고려 장수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어허, 무슨 소릴 하는 겐가, 이 만호!”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말인가?”

    “우릴 그렇게 보았다니, 섭섭하구만그래!”

    “예? 그러면…”

    “몰래 싸우면 되지. 말씀을 안 드리면 어찌 아시겠는가?”

    “들키면 왕명을 어긴 걸로 치지 뭐!”

    “고려 땅을 되찾는 전쟁인데 구경만 할 순 없지!”

    “아암! 고려 장수가 그래선 안 되지!”

    “……감사합니다.”

    이성계가 오랜만에 짙은 전우애를 느꼈다.

    가장 먼저 기갑기를 꺼낸 것은 황금을 돌같이 보는 싸움꾼, 최영이었다.

    “나와라 장절대공!”

    구우우웅-!

    장절대공의 푸른색 마력핵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 같은 물기운(坎卦)이 장절대공의 거대한 몸을 감쌌다.

    그 다음은 노책을 쳐죽인 동지밀직사사 강중경이었다.

    “나와라 북해신장!”

    기이잉-!

    은빛 기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북면병마사 유인우, 공부보, 이인임 등도 기갑기를 꺼냈다.

    “기갑기 제1진! 전진 앞으로-!”

    총사령관 유인우가 고함쳤다.

    “전진 앞으로오-!”

    쿵 쿵 쿵 쿵

    20여 대의 성명기갑(네임드 기갑기)들이 무기를 들고 총관부로 걸어갔다. 하급 장수들의 중급 기갑기 100여 대도 제2진을 형성하며 뒤쪽에 포진했다.

    “적이 기갑기를 꺼냈다!”

    “기갑기사들은 빨리 탑승하라!”

    “기갑지원병들도 전원 전투배치하라!”

    기우웅-!

    기우우웅-!

    총관부 기갑기들도 앞다투어 모습을 드러냈다. 기갑기사들이 기갑기에 탑승했다. 내성에 있던 기갑지원병들이 우루루 달려 나왔다.

    “외성을 둘러싼 마력방어막과 수성(守城)병기들을 돌파해야 합니다!”

    현표에 탄 이성계가 외쳤다. 그러자 최영을 비롯한 고려 장수들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걱정 말게! 공성전 한두 번 해보나?”

    “처음 몇 대만 견디면 돼!”

    “아암! 피해가 없진 않겠지만 한 번 뚫으면 끝이지!”

    이성계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기갑표범 현표의 머리가 숙여졌다.

    총사령관 유인우가 몸을 돌려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고려의 용사들아, 모두 잘 들어라! 이곳 쌍성총관부는 100년 전에 원나라에 빼앗긴 땅이다! 저기 있는 조소생, 탁도경 두 놈의 선조들이 고려를 배신하고 원나라에 갖다바쳤기 때문이지! 바로 지금! 그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유인우가 쌍성총관부를 가리키며 포효했다.

    “전원- 강행돌파하라-!!”

    “우오오오오-!!”

    쿵쿵쿵쿵쿵

    기갑기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쏴라! 쏴! 모두 부숴 버려라!”

    조소생과 탁도경, 카이샨이 고함쳤다. 대 기갑기용 마력포와 초대형 화살이 고려군 기갑기들을 겨냥했다.

    고려군 기갑기사들이 이를 악물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기갑기사들은 기갑기에 가해지는 고통을 그대로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통이 최대한 빨리 지나가기를,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몸통이 꿰뚫리지 않기를,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성벽을 돌파하기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노부모와 처자식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콰아앙!

    쌍성총관부의 높고 두터운 성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어라?”

    “뭐여? 왜 아무 반응이 없어?”

    성벽 앞에 있던 고려 기갑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총관부 병사들과 기갑기사들은 경악했다.

    “뭐, 뭐야?”

    “수성병기들이 왜 반격을 안 하는 거냐?”

    “빨리 원인을 알아내라! 지금 당장!”

    그때였다. 부상을 입은 병사 한 명이 달려와서 마력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총관님! 조돈 님이…… 조돈 님이……!”

    “뭐? 숙부님이 어쨌단 말이냐?”

    “조돈 님이 방어무기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조돈 님과 조인벽, 조인옥 님이 미리 손을 써 놨습니다!”

    “마정석에 부적을 붙이고 법사와 도사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이…… 이럴 수가……!”

    조소생과 탁도경, 조씨 부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동시에 발전자를 바라보았다.

    “네놈 짓이냐 이자춘?”

    “네놈이 숙부를 꼬드겼구나!”

    “천벌을 받을 놈아!”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광역기를 연속으로 쓰느라 초췌해져 있던 이자춘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이자춘이 입꼬리가 비뚜룸히 솟아올랐다.

    “배신은 너희 가문의 전통 아니냐?”

    ***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조소생의 기갑기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대형 기갑기가 전속력으로 달려오자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자춘의 눈빛은 고요했다.

    “미숙한 놈.”

    이자춘이 벼락처럼 소리쳤다.

    “발전자 궁극기! 뇌제강림(雷帝降臨)!”

    파즈즈즈즈즛-

    머리 위로 쳐든 발전자의 오른손에 거대한 번개의 창이 생겨났다. 조소생의 기갑기가 휘두른 철퇴가 발전자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발전자가 오른팔을 앞으로 힘껏 내뻗었다.

    푸우욱-!

    달려오던 조소생의 기갑기가 번개의 창에 관통당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전기 스파크가 기갑기를 뒤덮었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

    조소생이 산 채로 튀겨지며 절규했다.

    쿠웅-!

    조소생의 대형 기갑기가 두 무릎을 꿇었다. 하필이면 마력핵을 관통당했기 때문에 가망이 없었다.

    “오라버니잇-!”

    조씨 부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바로 그 순간,

    빠가각!

    조씨 부인의 기갑기 <보르테>의 왼쪽 무릎이 박살 났다. 무칼리의 기갑기 <텝 오르타크>가 휘두른 철봉이 무릎을 직격한 것이다.

    꺄아아-!

    조씨 부인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칼리는 영리하게도 보르테의 다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상체의 장갑이 두꺼워졌고, 그로 인해 상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씨 천호부의 기갑기 훈련교관다웠다.

    콰앙-!

    보르테도 무릎을 꿇었다. 무칼리가 인정사정없이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니응개와 카이샨의 싸움은 좀 더 복잡했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이샨이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칭기스칸의 후예를 자부하는 카이샨의 기갑기가 성능이 더 좋았지만, 마니응개에 비해서 전투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작전이나 짜는 참모 주제에 야전사령관인 나에게 맞서다니! 후회는 지옥에 가서 하거라!”

    기갑호랑이 타스하의 입에서 마니응개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촤아아악-!

    타스하의 거대한 발톱이 카이샨의 기갑기를 깊이 할퀴었다. 외부 장갑을 뚫고 들어간 발톱이 인공 근육들을 찢어발겼다.

    카이샨이 고통을 참으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마니응개가 노련하게 회피했다.

    이원계와 탁도경의 기갑기 전투는 탁도경 쪽이 우세했다. 탁도경의 경험과 임기응변이 이원계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원계도 나쁘지 않은 기갑기사였지만 탁씨 천호부의 수장인 탁도경에게는 한참 모자랐다.

    “본좌를 상대하려면 백 년은 이르다! 죽어라 반역자 놈아!”

    탁도경이 호기롭게 외치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이원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콰아앙!

    이성계가 조종하는 기갑표범 현표가 난입했다.

    “어딜!”

    탁도경이 여유롭게 피하며 장창을 휘둘렀다. 회피와 동시에 상대방의 사각을 찔러 들어오는 절륜한 공격이었다.

    푸우욱!

    거대한 장창이 현표의 머리를 꿰뚫었다. 탁도경이 웃으며 소리쳤다.

    “흐하하! 애송이 놈들아! 이게 바로 경험의 차이니라!”

    그 순간,

    꽈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탁도경의 장창이 구부러졌다.

    “뭐, 뭐냐?!”

    탁도경이 외쳤다. 그러자 현표가 장창을 퉤! 하고 내뱉았다.

    “뭐긴 뭐야?”

    이성계(의 기갑기 현표)가 높이 뛰어오르며 말했다.

    “속은 거지.”

    촤아아악!!

    세 개의 칼날이 나란히 붙어 있는 거대한 발톱이 탁도경의 기갑기를 찢어발겼다.

    “끄아아아-!”

    탁도경이 절규했다. 그러나 현표의 이빨은 이미 탁도경의 허벅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으아아 이 개새끼가! 죽어! 죽으란 말이다!”

    탁도경이 구부러진 창을 휘두르며 고함쳤다. 그러나 이성계는 노련하게 옆으로 돌며 종아리와 발목,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끄아아아…… 끄흐흑……!”

    표범에게 산 채로 물어뜯기는 고통! 그 고통 속에서도 탁도경은 장창으로 집요하게 현표를 찔러 댔다. 그러나 현표는 한 대도 맞지 않았다.

    쿠웅!

    온몸을 물리고 난도질당한 탁도경의 기갑기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 순간, ㄱ(기역) 자로 굽힌 무릎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현표가 탁도경의 기갑기 머리를 깨물었다.

    꽈지지직!

    “으아아아-!”

    머리가 뽑히는 소리와 탁도경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현표가 퉤! 하고 머리를 뱉었다. 이빨 자국이 선명한 머리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탁도경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이성계가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차이다.”

    ***

    고려군 기갑기들은 성벽을 돌파하는 데에 주력했다.

    쾅! 쾅! 콰콰쾅!

    성벽이 박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마력방어막과 대(對) 기갑기용 무기가 없는 성벽은 최소 10미터가 넘는 기갑기들에겐 손쉬운 목표물일 뿐이었다.

    총관부 소속 도사들과 법사들, 기갑지원병들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인간과 기갑기는 체급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꽈르르릉-!

    순식간에 성벽이 무너지고 기갑기들이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혼잡스럽던 외성 내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와아아아-!”

    고려군 기갑기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최영의 장절대공이 맨 앞에서 달려 들어왔다.

    “수월광참(水月光斬)!!”

    거대한 언월도가 허공을 갈랐다. 세 대의 중형 기갑기가 한꺼번에 갈려나갔다.

    “북해신장(北海神將) 궁극기! 만년빙옥(萬年氷獄)!”

    최영의 뒤에 있던 강중경이 외쳤다. 쩌저저적! 소리와 함께 기갑기들이 얼어붙었다. 그러자 최영의 언월도가 다시 한 번 춤을 추었다.

    얼어붙은 기갑기들은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산산히 부서졌다.

    유인우와 공부보, 이인임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적 기갑기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주박술 덕분에 혼자서 싸우던 ‘무인자율기갑기’ 바가투르도 제몫을 해냈다. 궁극기 <무릉도원>을 이용해서 중형 기갑기들을 하나씩 깨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

    같은 시각,

    쌍성총관부 부근에 살던 백성들이 몰려나왔다. 지축을 울리는 거대 기갑기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위험하니까 흩어지라고 해도 막무내였다.

    평범한 백성들은 3장(9m)보다 큰 기갑기를 볼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대형 괴수나 국가급 침략이 아니면 경형(6m), 준소형(7.5m), 소형(9m) 기갑기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일반 장수들이 타는 4장(12m)미터 이상의 중형 기갑기들은 본격적인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었다. 준대형(13.5m)은 물론이고 대형(15m)을 볼 일조차 거의 없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기갑기들이 준중형이나 중형이었다. 하지만 2백 대를 넘는 기갑기들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 자체가 장관이었다. 그런 장관을 눈앞에서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켜보던 백성들이 판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고려군이 이겼구먼.”

    “그려,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어.”

    “이씨 천호장님이 총관님을 꺾은 순간, 승부는 났다고 봐야지.”

    촌로들과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

    그로부터 약 한 시진 뒤,

    치열했던 기갑기 전투가 끝났다.

    상당수의 기갑기들과 기갑지원병들은 전세가 완전히 기운 순간 투항했다.

    쌍성총관부는 100년 만에 고려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공민왕과 문무백관들은 물론이고 백성들도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원나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보셨습니까 폐하!”

    기황후가 핏대를 올리며 외쳤다.

    “폐하의 자비에 대한 고려 놈들의 대답이 이것이옵니다! 이래도 참으실 것이옵니까?”

    “후우우우…….”

    순제가 눈을 감고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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