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21화 (21/33)

021. 쌍성총관부 (1)

이성계와 고려군이 함흥으로 진군하던 바로 그때,

화령성에서 출발한 이자춘이 쌍성총관부에 도착했다.

말에 탄 이자춘 뒤로 5백여 기의 가베치들과 두 대의 소형 기갑기가 보였다. 소형 기갑기들은 거대한 동상을 들고 있었다. 쌍성총관부 총관 조소생의 동상이었다.

쌍성총관부는 이씨 천호부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3중 4중의 강력한 마법방어막은 물론이고 기갑기 파괴용 무기들도 즐비했다. 웬만한 기갑기는 성벽에 닿기도 전에 박살 날 것 같았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가베치들조차 총관부의 위용에 주눅이 들었다.

“소집 명령을 받고 왔소! 문을 열어 주시오!”

이자춘의 몽골인 참모 카이샨이 외쳤다. 그러자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화령성주 겸 다루가치 이자춘이 성문을 통과했습니다.]

성문 뒤에 있던 병사들이 마력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그 음성이 내성(內城) 한복판에 있는 총관 집무실로 전달되었다.

“이자춘이 왔군. 여우 같은 놈이라 안 올 줄 알았는데…….”

총관 조소생이 걸쭉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툼한 입술이 움직이자 이중턱이 씰룩거렸다.

“마니응개나 무칼리 같은 일류 기갑기사들은 없다고 합니다. 이원계와 이천계도 없고요.”

탁씨 천호부의 우두머리 탁도경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찢어진 눈 아래에 길게 구부러진 매부리코가 벌름거렸다.

“하늘이 주신 기회예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요!”

키가 작고 뚱뚱한 조씨 부인이 새빨간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그녀는 눈앞에 앉아 있는 총관 조소생의 동생이자 이자춘의 의붓어머니였다. 이자춘의 아버지 이춘(李椿)의 둘째 부인이었던 것이다.

“금쪽같은 내 아들을 죽인 원수 이자춘! 오늘 네놈의 심장을 씹어먹을 것이다! 반드시!”

조씨 부인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조소생과 탁도경은 심드렁했다.

그녀의 아들은 조카에게 돌아가야 할 권력을 넘보다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조선으로 치면 단종의 왕위를 넘보던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에게 응징당한 셈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탁도경이 화제를 돌렸다. 조소생과 조씨 부인이 탁도경을 바라보았다.

“이자춘이 총관님께 드릴 동상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총관부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총관부에 대한 충성심? 개가 웃을 소리.”

조소생이 비웃었다. 그러자 조씨 부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받지 마요 오라버니. 나 왠지 기분이 찜찜해.”

“껄껄 걱정 말거라. 그깟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내 손바닥 위에 있느니라!”

조소생이 두툼한 뱃가죽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했다.

“그놈이 고려에 붙으려다가 잘 안 된 모양이군. 동상 같은 걸로 내 환심을 사려 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놈의 셋째아들 이성계도 고려에 볼모로 잡혀 있다고 합니다.”

“이자춘이 말로는 자발적으로 남은 거라던데…….”

“흐흐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제와서 총관 님께 아양을 떠는 거지요.”

“허어 참으로 박쥐 같은 놈이로고! 오늘 그자를 없애고 그자의 기갑기들과 가베치들을 차지할 것이야! 두 가지 모두 일개 천호에게는 과분한 것이었지! 아참, 이씨 천호부 땅은 탁 천호, 자네에게 주겠네!”

“감사합니다 총관 각하!”

***

쿠르르르르…… 쿠웅!

총관부의 육중한 정문이 닫혔다. 이자춘을 따라온 가베치들이 소형 기갑기로 조소생의 동상을 옮겼다.

“어서 오시오 이 천호! 기다리고 있었소!”

조소생과 탁도경, 조씨 부인이 내성 성벽 위에 등장했다. 외성과 내성 사이의 넓은 지대에 있던 이자춘이 군례를 갖추었다.

“총관님을 뵙습니다.”

조소생이 군례를 받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요새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 이씨 총관부가 고려에 붙었다고 하더구먼.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증표로 이와 같이 총관님의 동상을…….”

“닥쳐라!”

성벽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자춘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울루스부카(이자춘) 네 이놈! 네놈은 대원제국의 천호이자 다루가치인 주제에 반역자 바얀테무르(공민왕)와 손을 잡고 고려에 붙으려고 했다! 이곳 쌍성총관부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자춘의 몽골인 참모 카이샨이 소리쳤다. 이씨 천호부에서 함께 출발해서 방금 전까지도 같이 있었는데, 어느새 내성의 성벽 위, 조소생과 탁도경 사이에 서 있었다.

“카, 카이샨 님!”

“어째서 거기 계시는 겁니까?”

“설마 천호님을 배신한 겁니까?”

이자춘과 함께 온 가베치들이 경악했다. 그러나 정작 이자춘 본인은 담담했다.

“떠들지들 마라. 카이샨은 배신한 게 아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누가 봐도 이 상황은…….”

“나는 카이샨을 믿은 적이 없다. 믿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배신당한단 말이냐?”

이자춘이 무덤덤한 눈으로 카이샨을 올려다보았다.

“네놈의 일거수일투족 따위는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카이샨. 네놈이 총관부와 내통해 왔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우, 웃기지 마라! 그럼 여긴 왜 왔느냐?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왔단 말이냐?”

카이샨이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죽어? 나는 여기서 죽지 않는다. 죽는 건 네놈들이지.”

“저 박쥐 같은 놈이 끝까지 허세를 부리는구나!”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던 조씨 부인이 고함쳤다.

“네놈이 얕은 재주를 믿고 까부나본데, 수백 대 1도 이길 수 있을지 보자꾸나!”

조씨 부인이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나와라 보르테!”

기우웅-!

5장(15m) 크기의 여성형 기갑기가 공간을 가르고 출현했다. 같은 여성형 기갑기인 백련신장이나 알탄 다리에크와 달리 무겁고 둔한 느낌이었다.

총관 조소생과 탁도경, 총관부의 고위 무장들도 각자의 기갑기를 꺼냈다. 모든 기갑기가 준대형 이상의 강력한 기갑기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부에 불과했다. 수백 명의 기갑기사들이 주변에 쫙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조씨 부인이 “수백 대 1”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와라 발전자(發雷赭)!”

이자춘의 외침과 동시에 특이한 형상의 기갑기가 걸어나왔다. 훗날 이성계의 팔준마(八駿馬) 중 하나로 불리게 될 발전자였다.

전기를 발생시킨다는 이름 그대로, 피뢰침처럼 긴 가시들이 열두 개나 돌출되어 있었다.

이자춘이 재빨리 발전자에 탑승했다. 그러자 발전자의 온몸에 전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길게 뻗어나온 가시들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깜짝 놀란 총관부 기갑기들이 뒤로 몇 걸음씩 물러섰다.

그러나 발전자 말고 쓸만한 아군 기갑기는 한 대도 없었다. 조소생의 동상을 옮긴 소형 기갑기들은 있으나마나였다.

모든 것이 카이샨의 계획대로였다.

“자, 어떠냐? 이래도 허세를 부릴 테냐?”

육중한 여성형 기갑기 <보르테>에서 조씨 부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르테는 칭기스칸의 조강지처 이름이었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어라! 그러면 편히 죽여 주마!”

“뭘 빌라는 거지?”

“죄없는 내 아들을 죽인 것! 그걸 사죄하란 말이다!”

“죄없는 아들이라…… 혹시 의붓조카의 권력을 훔치려다 나한테 맞아죽은 나하이(那海), 그 모지리 말인가?”

“그렇게 말하지 마라! 그 불쌍한 아이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란 말이다!”

조씨 부인이 미친듯이 소리쳤다.

“네 시체를 수백 개, 수천 개로 잘라서 들판에 뿌릴 것이다! 네 피를 들개들과 전갈들에게 먹일 것이다!”

키이잉-!

조씨 부인의 기갑기 <보르테>가 허리의 장검을 뽑았다. 그러자 5장(15m)나 되는 거대한 검이 눈부신 빛을 튕겨냈다.

조소생과 탁도경의 기갑기도 창과 방패, 그리고 철퇴를 꺼내들었다. 이자춘을 포위하고 있던 준대형, 중형 기갑기들도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들은 조소생의 손짓 한 번에 이자춘을 덮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자춘이 아무리 노련해도, 발전자가 아무리 강해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조 총관, 탁 천호, 조씨 부인, 그리고 카이샨.”

몇 겹으로 포위당한 발전자에서 이자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트로이의 목마가 뭔지 아나?”

“……트로이의 목마?”

그리스 신화는 고려에도 알려져 있었다. 고려는 무역대국이었기 때문이다. 마정석의 힘으로 항해하는 선박들도 있었기 때문에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조소생과 탁도경, 카이샨의 눈이 커졌다.

“잠깐! 설마……?”

콰앙!!

이자춘이 가져온 동상이 안에서부터 산산조각났다. 그와 동시에 30여 명의 가베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니응개, 무칼리, 이원계를 비롯한 기갑기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나와라 000!”

***

기우우웅-!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공간을 가르고 나왔다. 그리고는 재빨리 발전자를 둘러쌌다. 500여 명의 가베치들이 기갑기를 지원하기 위한 전투배치를 시작했다.

이씨 천호부의 기갑기 훈련교관 무칼리가 <텝 오르타크>에 탑승했다. 훈련용의 소형(9m) 오르타크와는 완전히 다른, ‘마개조된’ 준대형(13.5m) 오르타크였다.

“셋째 도련님이 오르타크를 조종하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지! 겉모습만 보고 방심하면 큰코 다칠 걸!”

쿵쿵쿵쿵- 콰아앙!

무칼리의 <텝 오르타크>가 조씨 부인의 <보르테>를 들이받았다. 조씨 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배신자 카이샨! 네놈은 내가 처리해 주마!”

<타스하>에 탑승한 마니응개가 외쳤다. 기갑호랑이 타스하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카이샨의 기갑기 머리를 물어뜯었다. 카이샨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이자춘의 장남 이원계가 <용등자(龍騰紫)>에 타고 탁도경을 공격했다. 이성계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공격이었다. 사마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탁도경의 기갑기가 맹렬하게 반격하기 시작했다.

기갑기들의 난전이 시작되었다. 대지가 떨리고 총관부 성벽이 진동했다. 기갑기 전투에 익숙한 기갑지원병들조차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란에 빠졌다.

그 대난투의 한복판,

쿵- 쿵- 쿠웅-!

하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발전자가 조소생의 기갑기 앞에 섰다. 그와 동시에 이자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는 놈! 네놈은 총관의 자격이 없다!”

“개소리 하지 마라 반역자 놈아!!”

조소생이 철퇴를 휘둘렀다.

콰아앙-!

그곳에 있던 모든 기갑기 중에서 가장 강한 두 대의 기갑기가 전투를 시작했다. 백병전에서는 조소생의 기갑기가 훨씬 유리했지만 상성이 나빴다. 물(水) 속성 기갑기다 보니 전기 공격에 취약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전자는 지금과 같은 난전에 특히 유리했다. 사방으로 전기를 발산하는 광역기 덕분이었다.

파지지지직!!

발전자가 뇌전을 분출할 때마다 총관부 기갑기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출력이 낮은 기갑기에 탄 기갑기사들은 조종석에 앉은 채로 감전되어 죽어 갔다.

“네 이노옴!!”

조소생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자춘은 영리하게 흘려보내면서 총관부 기갑기들을 학살했다.

쾅! 콰앙! 콰콰쾅!

30여 명의 가베치 기갑기사들도 열심히 싸웠다. 공격기와 방어기, 필살기와 필살기, 궁극기와 궁극기가 충돌했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맹렬한 전투가 반 시진(1시간)이나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춘과 가베치들이 불리해졌다. 천호부 소속 기갑기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괴되는 순간에 곧바로 보충되었다.

그러나 이자춘과 그의 부하들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천호부 쪽에 유리한 요소들이 이자춘 쪽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성과 외성 사이에 몰아넣은 것도, 처음에는 독안에 든 쥐라면서 좋아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난전이 되는 바람에 숫자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적과 아군이 뒤엉켜서 싸우다 보니 광역기를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성벽이 무너질 우려도 있었고.

마니응개와 싸우던 카이샨이 외쳤다.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합니다 총관 각하! 그렇지 않으면…….”

꽈지직!

기갑호랑이 타스하가 카이샨의 기갑기의 무릎을 물어뜯었다. 카이샨이 고통을 참으며 창을 휘둘렀다. 뒤로 펄쩍 물러나 피한 타스하가 쇳덩이를 퉤! 하고 뱉어 냈다.

“어디서 한눈을 파는 게냐? 배신자 주제에!”

마니응개가 호통을 쳤다. 카이샨이 이를 갈며 나머지 말을 내뱉았다.

“고려군이 올 겁니다!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됩니다! 빨리 끝장내야 합니다!”

카이샨의 말을 들은 총관부 기갑기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총공격이다!”

“반역자들을 척살하라!”

“우오오오오-!!”

총관부 기갑기들이 일제히 자세를 잡았다. 궁극기를 준비하는 기갑기들도 많았다. 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새로 등장했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무칼리와 마니응개가 외쳤다.

그때였다.

날렵하게 움직이며 전기를 뿜어내던 발전자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았다.

“맞는 말이야.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막대한 기를 소모하여 수척해진 이자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나보다 나은 아들 놈이 도착했으니까.”

***

뿌우우우우-!

둥 둥 둥 둥

군사용 소라고둥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1만의 고려군이 쌍성총관부를 향해 진군하는 소리였다.

선두에 있던 이성계가 소리쳤다.

“나와라 현표!”

“나와라 바가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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