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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군주 이성계-20화 (20/33)
  • 020. 황금의 여신 (2)

    노국대장공주가 황금의 기갑기 <알탄 다리에크>에 탑승했다. 18미터가 넘는 초대형 기갑기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와 대결하기 전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조종석에 앉은 노국대장공주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이기면 청을 들어 달라고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알탄 다리에크에 의해 증폭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그 청이 뭔지 들어본 적도 없다는 걸?”

    즉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공민왕이 유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아암! 그렇고말고! 기고만장해서 도전하던 장수들도 전부 나가떨어졌지! 알탄 다리에크의 가랑이 사이를 두 손 두 발로 엉금엉금 기어간 자도 있었고! 푸하하하!”

    “전하 부디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군왕의 권위를 보전하시옵소서 전하!”

    늙은 환관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읍소했다.

    그러나 공민왕은 개의치 않았다. 사사건건 방해하던 기철 무리도 처단했겠다, 취기도 적당히 올랐겠다, 오늘만큼은 ‘계급장 떼고’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쌍성총관부 탈환과 요동 공격을 준비하느라 바빠질 테고.

    “이 만호는 뭘 하는 겐가? 어서 기갑기를 꺼내지 않고?”

    술잔을 든 공민왕이 이성계에게 외쳤다.

    “아랫사람이 기갑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법도이거늘! 내 왕비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오?”

    “송구하옵니다 전하!”

    이성계가 머리를 조아린 다음 외쳤다.

    “나와라 현표!”

    기우웅-!

    검은 기갑표범 현표가 네 발로 걸어 나왔다.

    “호오~ 가변형 기갑기인가 보군!”

    “동작이 부드럽고 유연하군요!”

    “준대형(13.5m)인데도 발소리가 작구먼!”

    지켜보던 관료들과 장수들이 감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전마마에겐 안되겠어요.”

    “맞아요. 뛰어난 장인이 만든 건 분명해 보이지만…….”

    “체급부터가 다르니까요.”

    그 말대로였다. 노국대장공주가 탄 알탄 다리에크는 현표보다 5미터나 더 컸기 때문이다.

    기갑기는 경형(6m)에서 출발하여 준소형(7.5m), 소형(9m), 준중형(10.5m), 중형(12m), 준대형(13.5m), 대형(15m), 초대형(18m)으로 분류되었다.

    국가별로 세부 기준이나 명칭이 다른 경우도 많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세계제국인 원나라가 위와 같은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기갑기의 ‘크기’로 등급을 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크면 클수록 무거워지기 마련이고, 무거운 기체를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마력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6장(18m)을 넘는 초대형 기갑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았다. 그 정도로 거대한 쇳덩이를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출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크기가 곧 마력핵의 출력이었고, 마력핵의 출력이 클수록 더 강력한 일반기와 특수기, 궁극기를 쓸 수 있었다.

    ***

    현표와 알탄 다리에크가 30미터 정도 떨어진 채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현표가 반시계 방향으로 어슬렁어슬렁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황금의 기갑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허공이 가로로 길게 열리면서 거대한 황금색 창이 내려왔다.

    키이잉-

    황금의 여신 알탄 다리에크가 두 손을 들어 그 창을 잡았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알탄 다리에크의 주무기, <부르카니 자드>로구나!’

    현표를 조종하던 이성계가 감탄했다. <부르카니 자드>는 <신(神)의 창(槍)>이라는 뜻이었다. 눈앞에서 직접 보니 <신의 창>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키가 18미터나 되는 알탄 다리에크가 8장(24m)이나 되는 날렵한 장창을 붕붕 휘둘렀다.

    훙- 훙- 훙- 후우웅-

    무시무시한 풍압이 휘몰아쳤다. 궁중법사들과 도사들이 강안전 주위에 결계를 쳤다. 두 기갑기가 엉켜 싸우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사각의 링’을 만든 셈이다.

    “자, 이제 시작할까요?”

    노국대장공주가 부르카니 자드를 꼬나잡으며 말했다. 이성계가 예, 라고 하는 순간, 날카로운 창끝이 현표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쐐애액-!

    현표가 펄쩍 뛰어서 피했다. 뛰어서 피한 곳에도 창끝이 날아들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에도 몇 번씩 날아오는 거대한 창!

    이성계가 그 창을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순수하게 감탄했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인류 최강의 기갑기사 칭기스칸의 후손답군.’

    그러는 동안에도 창 공격이 계속되었다. 현표가 몸을 비틀면서 간신히 피했다. 그러자 알탄 다리에크가 부르카니 자드를-마치 야구배트를 휘두르듯이-수평으로 휘둘렀다.

    “차원가르기!”

    키우우우웅-!

    말 그대로 공간이 수평으로 갈라졌다. 상대방 기갑기의 장갑이 아무리 두꺼워도 무조건 잘라 버리는 무시무시한 <특수기>였다. 차원을 그 자체를 갈라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아서는 안 되고 무조건 피해야 했다.

    ‘저딴 게 궁극기도 아니고 특수기라니…….’

    이성계조차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이것만큼 강력한 <일반기>들도 있지.’

    기갑기의 기술(스킬)에는 궁극기-특수기-일반기가 있었다. 보급형 기갑기에는 특수기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인 공격과 회심의 일격(궁극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성명기갑기(네임드 기갑기)들은 엄청난 위력의 궁극기 하나, 그보다는 못하지만 꽤 강력한 몇 가지의 특수기, 그리고 다양한 일반기를 갖고 있었다.

    “차원가르기!”

    큐우우우우-!

    이번에는 비스듬하게 날아왔다. 공간이 길게 갈라지면서 시커먼 아공간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현표가 우스꽝스럽게 몸을 비틀며 간신히 피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공간 째로’ 잘렸을 것이다.

    “천수관음(千手觀音)!”

    또 하나의 특수기가 발동되었다.

    촤르르르~ 촤르르르르르~

    부르카니 자드의 창끝이 춤을 추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천 개의 창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알탄 다리에크의 팔도 수없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너무 빨라서 잔상이 남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일반인의 시각이었다. 이성계를 비롯한 상급 각성자들은 현혹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조차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었다.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격은커녕 부르카니 자드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대련을 신청한 보람이 있군.’

    이성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생각했다.

    전생에서는 알탄 다리에크와 대련해 본 적이 없었다. 왜구나 홍건적을 막기 위해 같이 싸운 적도 없었다.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끼고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바람에 이 좋은 기갑기가 전쟁터에 나간 일이 거의 없었지. 공주가 죽은 뒤에는 그대로 땅속에 묻혔고 말이야.’

    말 그대로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제일 강력한 ‘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어 주마, 알탄 다리에크! 아니, 보르지긴 보타슈리!’

    이성계의 눈동자가 번득였다.

    “변신이다 현표!”

    이성계가 외쳤다. 현표가 키리리릭 소리를 내며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설프군요.”

    노국대장공주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쐐애애액-!

    푸우욱!

    황금의 장창(長槍) 부르카니 자드가 화살처럼 날아들어와서 현표의 복부를 관통했다. 지켜보던 장수들과 관료들이 탄성을 내뱉았다.

    “끝났군.”

    공민왕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때였다.

    “……어라?”

    노국대장공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부르카니 자드가…… 빠지지 않아?’

    노국대장공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현표를 주시했다.

    ‘관통한 게 아니라 변신부 사이에 끼었잖아?!’

    그 순간 이성계가 외쳤다.

    “나와라 바가투르!”

    기우웅-!

    기철의 기갑기 바가투르가 공간을 가르고 나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부르카니 자드를 붙잡았다.

    [바가투르 궁극기, 무릉도원!]

    슈웃-!

    바가투르와 부르카니 자드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몇 초 후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부르카니 자드는 없었다.

    너무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공민왕과 문무백관이 고함쳤다.

    “저것은 기철의 기갑기가 아닌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성계와 노국대장공주의 기갑기 대결이 계속되었다. 노국대장공주가 입술을 깨물며 반격에 나섰다. 그녀의 기갑기 알탄 다리에크는 창이 없어도 충분히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형으로 되돌아간 기갑표범 현표와 바가투르가 더 빨랐다. 알탄 다리에크가 기술을 쓰기 전에 오른쪽 어깨를 현표에게 물렸고, 왼쪽 허벅지를 바가투르의 검에 찔렸다.

    꽈드드득-!

    푸우우욱-!

    “꺄아악!”

    노국대장공주가 비명을 질렀다.

    “중지! 중지하라!”

    공민왕이 용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알탄 다리에크의 거대한 다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법사들과 도사들이 황급히 결계를 해제했다.

    “괜찮으시오 공주!”

    공민왕이 알탄 다리에크의 발치에서 고함쳤다. 당황한 내시들과 환관들, 호위무사들이 다급하게 왕을 둘러쌌다. 현표와 바가투르는 이미 아공간으로 돌아간 뒤였다.

    “괜찮소 중전? 부디 대답하시오!”

    공민왕이 울부짖었다. 그러자 푸슉 하고 조종석 장갑이 열리더니 노국대장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 마세요 전하. 소첩은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노국대장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기분이 좋사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결을 했으니까요.”

    “어깨와 다리를 보여 주시오. 상처가 나진 않았소?”

    “물론이옵니다. 기갑기사가 느끼는 고통은 일종의 환상통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노국대장공주가 공민왕을 달래고 있었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잉꼬부부라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죄인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이성계의 표정은 씁쓸했다.

    ‘전생에서 노국대장공주가 갑자기 죽었을 때, 공민왕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직접 보았으니까. 그로 인해 고려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직접 겪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노국대장공주가 머지 않아 죽으니까 적당히 좋아하시옵소서!”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일어나세요 이 만호. 물어볼 게 있습니다.”

    노국대장공주가 이성계를 보며 말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매서웠다.

    “1대1 대결 아니었나요? 어째서 다른 기갑기가 등장한 거죠? 그것도 반역자 기철의 기갑기가!”

    “그래, 당장 해명하라 만호 이성계! 설마 기철과 한패는 아니겠지?”

    공민왕이 성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이성계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기철은 제 손으로 죽였사옵니다 전하. 그리고 1대1이 맞습니다.”

    “하지만 바가투르는 분명…… 잠깐, 설마?! 혼자 두 대를 동시에 조종한 건가요?”

    노국대장공주가 소리쳤다.

    “그렇사옵니다 중전마마. 바가투르도 제가 움직였사옵니다.”

    “말도 안 돼!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 기갑기가 기갑기사 없이 움직이다니! 그건 불가능해요!”

    이성계가 바가투르를 다시 불러낸 다음 가슴 장갑을 열어서 보여 주었다. 조종석에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두 대 이상의 기갑기를 움직일 수 있죠?”

    “그것이…… 칭기스 대칸 폐하 덕분입니다.”

    “그럴 수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군요. 참으로 놀라워요.”

    노국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놀랍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 이성계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 것이었다. 칭기스칸이 자신의 혼백을 이크호리크에 붙잡아두었던 주박술을 전수해 준 덕분이니까.

    하지만 노국대장공주와 공민왕, 그리고 문무백관들은 ‘조상님 덕분이었어요’ 정도의 말로 이해한 듯했다.

    ‘무리도 아니지. 칭기스칸은 100여 년 전에 죽었으니까.’

    이성계가 쓴웃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긴 건 중전마마가 봐주셨기 때문입니다. 궁극기를 안 쓰셨으니까요. 만약 쓰셨다면 제가 졌을 겁니다. 기갑기가 두 대든 세 대든 간에요.”

    “겸손하군요 이 만호. 본인도 궁극기를 안 썼으면서.”

    노국대장공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첫 번째로군요. 나를 이기고 요청을 말하는 사람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래, 요청이 뭐죠?”

    “소신을 알탄 다리에크의 부(副) 계약자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성계가 노국대장공주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뭐? 부 계약자로?”

    “유사시엔 자기가 타겠다는 말 아닌가?”

    “어찌 저리도 오만방자할 수가!!”

    좌중이 웅성거렸다. 공민왕과 고려 장수들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부계약자는 가족이나 사제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물론 기연을 만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는 예외지만…….’

    “……하는 수 없군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노국대장공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러자 공민왕이 두 팔을 벌려 가로막았다.

    “아니되오 중전! 어찌 그런 방자한 요구를 들어준단 말이오?”

    “괜찮사옵니다. 어차피 부계약은 예비 계약 같은 것이니까요.”

    “그래도 아니 되오!”

    수십 명의 궁녀들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잘생긴 왕에 대한 짝사랑과, 그런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노국대장공주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다.

    ‘공민왕에게 직접 요청하지 않은 게 정답이었어.’

    이성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직접 요청했으면 절대로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노국대장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성계가 대련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거절했을 것이다.

    이성계가 굳이 대련을 통해 노국대장공주에게 직접 요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공민왕은 아직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러자 노국대장공주가 공민왕을 살짝 껴안으며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오히려 최고의 기갑기사를 얻었다고 생각하세요.”

    “하, 하지만…….”

    공민왕이 망설였다. 그러자 노국대장공주가 이성계를 보며 말했다.

    “만호 이성계! 그 능력, 고려만을 위해 쓸 것임을 맹세하겠는가?”

    쿵!

    이성계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신 만호 이성계! 제 모든 걸 다 바쳐 고려를 지킬 것이옵니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긴다면 천지신명이 용서치 않을 것이옵니다!”

    짝짝짝짝짝!

    문무백관들이 박수를 쳤다. 공민왕도 한숨을 내쉰 다음 수긍했다.

    “좋아요. 일어나세요 이 만호.”

    노국대장공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와 같은 뛰어난 장수가 고려에 충성을 맹세하니, 참으로 고려의 복입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부계약자로 삼겠어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성계가 한 번 절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국대장공주가 황금의 기갑기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알탄 다리에크.”

    [예, 주인이시여.]

    매끄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계약의 의식을 시작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스웅-!

    알탄 다리에크의 가슴 장갑이 열리고 조종석이 드러났다. 이성계가 몸을 날려 조종석에 들어가 앉았다. 그와 동시에 가슴 장갑이 닫혔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후우우우웅-

    이성계가 눈을 감고 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카라 쥬르켄만큼은 아니지만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여성형 기갑기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었다.

    슈우우우-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성계가 눈을 떴다.

    [당신은 부계약자로 계약되었습니다.]

    알탄 다리에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계약자와의 계약이 해지될 경우 자동으로 주계약자가 됩니다.]

    ***

    그로부터 얼마 후,

    “빼앗긴 옛 땅을 되찾을 것이오! 원나라가 망해 가는 지금이 기회요!”

    공민왕이 선언했다.

    <빼앗긴 옛 땅>은 쌍성총관부가 지배하는 원산-함흥-영흥 일대를 뜻했다.

    “만호 이성계가 선봉에 서라! 그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전하의 기대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도록 하겠나이다!”

    이성계가 한쪽 무릎을 꿇고 외쳤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성계와 고려군이 쌍성총관부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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