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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군주 이성계-17화 (17/33)
  • 017. 병신정변 (3)

    키이이이잉-!

    이성계의 기갑기 <현표>와 기철의 기갑기 <바가투르>의 발밑에 거대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슈웃! 하는 소리와 함께 현표와 바가투르가 동시에 사라졌다. 두 명의 가베치와 궁중기갑기사들, 그리고 기갑지원병들이 경악했다.

    “공자니임-!!”

    충샨과 판챠가 절규했다. 그 소리가 원숭이 기갑기 <보뇨>와 도끼를 든 기갑기 <수허>의 음성증폭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공자님도 문제지만 우리가 더 문제야!’

    가베치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마주보았다.

    ‘천호님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만일 이대로 셋째 공자님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냉철하고 잔혹한 이자춘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터!

    ‘단순 작전 실패로도 그럴진대, 자신의 아들이 죽거나 크게 다친다면…….’

    하물며 그 아들이 네 명 중에서 가장 총애하는 셋째아들이라면??

    닳고 닳은 중년 가베치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여기는 어디지?”

    이성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기갑표범 현표의 목이 좌우로 움직였다.

    탁 트인 평야 위에 복숭아나무가 만발했다. 북쪽에는 빙산이, 남쪽에는 바다가, 동쪽에는 산이, 서쪽에는 사막과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복숭앗빛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함께 떠 있었다.

    “이곳은 나의 무릉도원일세. 오행절대공간(五行絶對空間)이라고도 하지.”

    거대한 황금 옥좌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바가투르가 말했다.

    “기철, 너는 고려의 왕이 아니라 중원의 황제가 되고 싶은 거였나?”

    이성계가 황금옥좌를 바라보며 말했다. 몽골 황제의 옥좌와 똑같이 생긴 의자였다.

    “물론이지! 고려는 내 야망을 위한 발판일 뿐! 내 누이동생이 원나라 조정을 장악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바가투르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곳 무릉도원은 바가투르의 마력핵으로 만든 아공간(亞空間)이다. 따라서 모든 게 내 마음대로지. 오행도! 팔괘도! 자연법칙도! 심지어 시간까지도!”

    대부분의 기갑기는 마력핵을 이용해서 아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마력핵의 에너지가 중력을 왜곡시키고, 그 결과 차원의 틈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가투르의 궁극기 ‘무릉도원’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술법인 셈이었다.

    “보아하니 좋은 기갑기를 갖고 있구나. 내 부하가 되거라! 그러면 여기서 나가게 해 주마!”

    기철이 거만하게 말했다.

    “원나라가 망해 가고 있거늘, 원나라 앞잡이의 부하가 되란 말이냐?”

    “대원제국은 곧 부활한다! 카라 쥬르켄이 재림한 것도 모르느냐?”

    “뭐, 소문은 들었다.”

    이성계가 낮게 웃었다.

    “웃어? 뭐가 우스운 거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 공간, 완벽하게 단절된 것이 맞느냐?”

    “그렇다! 누구도 너를 구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네 목숨은 내 손안에 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

    기이잉-!

    현표가 엎드렸다. 그와 동시에 옆구리의 장갑이 열리고 이성계가 뛰어내렸다.

    “크하하 드디어 복종할 마음이 생긴 게냐?”

    “아니. 그 반대다.”

    이성계가 바가투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와라 카라 쥬르켄!”

    ***

    조금 전,

    연경궁 내전(內殿)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경천흥, 강중경, 이인임을 비롯한 근왕파 신하들이 현장에서 날아오는 소식을 취합해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살장에서 가해들과 너허이들이 난동 중!!]

    [적군 기갑기 10대와 아군 기갑기 8대가 격전 중입니다!]

    [아군이 밀리는…… 아앗! 코르치 한 명이 엄청나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활쏘기 실력입니다! 기갑기들까지 당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코르치라면…… 활을 가진 호위병 아닌가?”

    “사람이 쏜 화살에 기갑기들이 당황한다고?”

    “궁궐 코르치 중에 그런 실력자가 있었나?”

    대신들이 웅성거렸다. 법사들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기갑기 두 대가 늘어났습니다! 중형 기갑기들이고 기종은…… 여진족 계열입니다!]

    [아앗! 대호군 목인길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다시 등장했습니다!]

    [대호군 목인길 전투불능! 생존 여부도 확인 불가능!]

    “사라졌다가 등장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끌려가자마자 돌아왔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전투불능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냐?”

    대신들이 아우성을 쳤다. 체통이고 뭐고 없었다.

    “에잇! 암호는 집어치우고 그냥 말해라!”

    [예! 기철의 기갑기가 요망한 술법을 시전했습니다!]

    [대호군의 기갑기를 아공간으로 끌고간 것으로 보입니다!]

    “무어라?!”

    “아공간으로 끌고갔다고?”

    “납치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니, 그런 것 같습니다!]

    “기갑기를 납치하다니…… 기철의 기갑기한테 그런 궁극기가 있었소?”

    공민왕이 초조하게 물었다. 그러자 대신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얼마 전에 원나라에서 대사도 벼슬을 받을 때 새로운 기갑기를 받은 듯하옵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신들을 죽여 주시옵소서 전하!”

    그때였다. 건덕전 앞마당에 있던 법사들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가해와 너허이, 아니 기철과 권겸의 기갑기 부대가 내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기철 일당이 이곳으로 온단 말이냐?!”

    대신들이 고함쳤다. 공민왕의 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노국대장공주가 공민왕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천첩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시옵니까?”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던 절세미남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나에게는 왕비가 있소! 왕비만 있다면 나 바얀테무르, 세상에 아무 것도 두렵지 않소!”

    “그렇사옵니다. 부디 성심(聖心)을 편히 하소서!”

    공민왕의 손을 잡고 있던 노국대장공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턱대고 달래기 위한 억지 미소가 아니었다. 진정한 자신감이 충만한 미소였다.

    [잠깐! 코르치 한 명이 그들을 멈춰 세웠습니다!]

    “코르치가?”

    “활을 잘 쏜다던 그 코르치인가?”

    [그렇습니다! 앗! 그 코르치가 기갑표범에 탑승했습니다!]

    “오오 기갑기사였구나!”

    “그것도 변신형 기갑기라니!”

    “필시 성명기갑(네임드 타이탄)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아앗! 바가투르와 기갑표범이 사라졌습니다!]

    [바가투르가 이번에도 아공간으로 납치한 것 같습니다!]

    “무…… 무어라?!!”

    내전이 충격에 빠졌다. 노국대장공주의 손을 맞잡은 공민왕의 손이 차갑고 축축했다.

    “걱정하실 것 없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연경궁 내의 모든 궁중기갑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사옵니다!”

    “개경에 있는 장수들도 모여들고 있사옵니다!”

    대신들이 앞다투어 외쳤다. 그러나 기철과 권겸, 노책의 기갑기사들도 궁궐로 달려오고 있었다. 특히 기씨 가문의 기갑기사들이 많았다. 기철이 몇 년 전부터 반란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개경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경궁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개경은 물론이고 정동행성과 동녕부, 전라-경상-충청-경기-황해 5도와 양계, 탐라총관부, 쌍성총관부에도 소문이 퍼져 나갔다.

    더 나아가 요양행성, 개원로, 그리고 기철의 막냇동생 기황후가 있는 대도(북경)의 황궁에도 전령이 달려가고 있었다.

    ***

    “나와라 카라 쥬르켄!”

    기우웅-!

    칠흑의 기갑기 카라 쥬르켄이 공간을 가르고 나왔다. 그러더니 바가투르를 향해 곧바로 걸어갔다.

    쿵쿵쿵쿵

    퍼어억!

    카라 쥬르켄의 거대한 주먹이 바가투르의 턱에 꽂혔다.

    쿠당탕탕!

    바가투르가 황금옥좌에서 굴러 떨어졌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이성계가 고개를 저었다. 2회차 인생에서 칭기스칸이 타는 걸 많이 봤는데도 그랬다.

    ‘기갑기사가 타기도 전에 날뛰는 기갑기라니!’

    그만큼 자아가 강하다는 뜻이었다. 마정석은 영혼이 없는 백체(魄體)라는 걸 감안합면 더욱 놀라웠다.

    “이럴 수가! 네놈이…… 네놈이 어떻게 카라 쥬르켄을?!”

    쓰러진 바가투르에서 기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크호리크에 잠들어 있던 칭기스칸에게서 물려받았다.”

    “개소리 하지 마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믿든 말든 네 자유다.”

    “그래! 저게 진짜 카라 쥬르켄일 리가 없다!”

    기철이 발광했다.

    “저건 가짜다! 진짜일 리가 없어!”

    실제로 수없이 많은 가짜 카라 쥬르켄들이 등장했었다. 기철이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감히 칭기스칸의 기갑기를 흉내 내다니! 그 죄값은 목숨으로 갚아라!”

    쿠르릉-!

    화산이 폭발했다. 바다가 일어섰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땅에서는 바위들이, 호수에서는 괴수들이 달려들었다. 이 세계 전체가 카라 쥬르켄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쾅! 콰쾅! 쿠콰콰콰콰-!

    세상의 모든 물, 불, 번개, 바람, 흙, 괴수들이 카라 쥬르켄에게 쏟아졌다. 자욱한 연기와 흙먼지, 물안개가 퍼져 나갔다.

    “크하하 어떠냐? 네가 어떤 속성이든 상관없다! 5행 8괘 중에 하나일 테니까!”

    기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카라 쥬르켄이 멀쩡히 걸어 나왔다.

    “소용없다.”

    이성계가 싸늘하게 말했다.

    “카라 쥬르켄은 오행팔괘 속성 전부를 가지고 있으니까. 상생상극이 없으니 약점도 없지.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이럴 수가……! 진짜…… 진짜 카라 쥬르켄이었구나!!”

    뒷걸음질치던 바가투르가 등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카라 쥬르켄이 더 빨랐다.

    꽈직!

    뿌드득!

    카라 쥬르켄의 거대한 오른손이 바가투르의 뒤통수를, 왼손이 바가투르의 왼팔을 붙잡았다.

    <마기강탈(魔氣强奪)>!!

    슈우우우~

    바가투르와 기철의 기가 카라 쥬르켄에게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놔줘! 제발! 제발!!”

    기철이 아이처럼 애원했다. 그러나 카라 쥬르켄은 자비가 없었다. 오히려 바가투르가 버둥거릴수록 즐거워하는 느낌이었다.

    “천하는 공물(公物)이라 주인이 없긴 하지만…….”

    이성계가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

    “아무나 얻을 순 없다.”

    카라 쥬르켄이 두 손을 펼쳤다. 그러자 바가투르의 거대한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쿠우웅- 털썩!

    바가투르의 두 눈이 빛을 잃었다. 바로 그 순간, 칭기스칸의 목소리가 이성계의 뇌리를 스쳤다.

    [이것이 자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걸세.]

    [최강의 주박술(呪縛術)일세. 100년 넘게 나를 이곳에 묶어 놓은 술법이지.]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걸세.]

    이성계의 두 눈이 커졌다.

    ‘이제야 알겠다! 이크호리크에서 칭기스칸이 한 말의 의미를!’

    이성계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카라 쥬르켄의 거대한 두 팔이 동시에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성계의 오른쪽 손바닥에 피처럼 붉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칭기스칸이 준 장갑을 꼈을 때 나타났던 바로 그 마법진이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

    똑같은 모양의 마법진이 카라 쥬르켄의 손바닥에도 생겨났다.

    “끄으으윽……!”

    강렬한 고통이 밀려 왔다. 뜨거운 칼로 손바닥을 쑤시는 느낌이었다. 이성계가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다행히도 고통은 길지 않았다.

    슈우우우-

    핏빛 마법진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카라 쥬르켄의 손바닥에 생겼던 마법진도 사라졌다.

    바로 그 순간,

    기이이잉-!

    바가투르의 눈에 두 개의 회색 불빛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푸슉! 하고 가슴 장갑이 열렸다.

    털썩!

    조종석에 앉아 있던 기철의 시체가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가슴 장갑이 닫혔다.

    기이이잉-

    바가투르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시여.]

    “성공이군.”

    이성계가 말했다.

    ***

    잠시 후, 건덕전 앞마당.

    슈우우웅!

    두 개의 거대 마법진이 땅바닥 위에 떠올랐다. 그중 하나의 마법진 위에 현표가 등장했다.

    크아아아!!

    기갑표범 현표가 포효했다. 그러자 현표의 입에 물려 있던 기철의 시체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와아아아!!

    가베치들과 궁중기갑기사들, 코르치를 비롯한 무사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실실 웃고 있던 기철과 권겸의 부하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 이럴 수가……!”

    “대사도님의 절대공간이 깨졌단 말인가?!”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바가투르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기철과 권겸 쪽 기갑기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성계가 벽력같이 소리쳤다.

    “어딜 도망치느냐!”

    캬오오옹!

    기갑표범 현표가 뛰어올랐다. 아름드리 나무에 뛰어오르는 표범처럼 부드럽고 재빨랐다.

    콱! 꽈지지직!

    현표의 이빨이 적 기갑기의 목을 물어뜯었다. 기철의 부하가 타고 있던 중대형 기갑기였다.

    끄아아아!

    목을 물어뜯긴 기갑기사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표가 쇳덩어리를 뱉어 낸 다음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촤르르르~ 철컥!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인간형으로 변신했다.

    쿠웅!

    공중에서 변신을 마친 현표가 부드럽게 착지했다. 기갑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큰 소리가 나긴 했지만.

    “역적의 도당들이 이미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잔당을 소탕하라!”

    현표의 입에서 이성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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