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10화 (10/33)

010. 전설의 기갑기 (1)

쿠르르르르…….

이성계가 탑승한 용등자가 동중국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높이 4장 3척 3치(약 13m), 무게 4만 2천근(약 25톤)의 거인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주위가 빠르게 어두워졌다. 이성계가 두 눈에 기를 담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용등자가 두 눈에서 빛을 뿜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성계와 동기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이야기한 곳이 이 근처가 틀림없는데…….’

전생(前生)에서 주원장은 칭기스칸의 기갑기, <카라 쥬르켄>을 손에 넣은 이야기를 널리 퍼뜨렸다. 하늘이 나를 선택했다! 내가 칭기스칸의 천명을 이어받았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저주성에 있던 주원장이 육합성을 돕기 위해 출발했다. 그런데 육합성에 있던 원나라군도 저주성으로 오고 있었다. 주원장의 군대와 원나라 군대가 저주성과 육합성의 중간 지점에서 마주쳤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가 끝나고 저주성으로 귀환하던 중, 주원장은 우연히 마을 어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에 흑룡도 앞바다의 마기(魔氣)가 너무 강해!”

“거긴 원래 그렇잖은가? 바닷괴물도 많고.”

“그래. 헌데 일전에 지진이 난 후에 더 심해졌어. 근처만 가도 오싹하다니까.”

“그러고 보니 자네, 각성자라고 했지? 전쟁터로 안 가고 왜 고기나 잡고 있어?”

“이 친구야! 각성자라고 다 같은 줄 아는가? 나 정도론 어림도 없다네!”

주원장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어부들을 앞세워서 흑룡도로 갔다. 그리고는 도박에 가까운 투자와 집요한 노력 끝에 칭기스칸의 수중 무덤을 발견했다.

칭기스칸의 기갑기 카라 쥬르켄은 그 무덤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칭기스칸의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주원장은 수십 대의 기갑기와 수천 명의 부하를 갈아 넣은 끝에 카라 쥬르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주원장은 자신의 힘만으로 세 가지 시험을 통과했다고 꾸며냈다. 나쁘게 말하면 ‘구라를 친’ 것이고, 좋게 말하면 ‘윤색을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카라 쥬르켄이 주원장을 황제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주원장 자신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었지. 카라 쥬르켄을 얻지 못했더라도, 백련신장밖에 없었더라도 결국은 황제가 되었을 거야.’

하지만 카라 쥬르켄이 없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도 오래 걸렸을 테고.

‘이번 생에는 다르다. 카라 쥬르켄은 내가 차지한다.’

인구도, 군사력도, 땅덩어리도 작은 고려가 원나라, 명나라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기 위해서!

원나라를 북원(北元)으로, 명나라를 남명(南明)으로 억제하기 위해서!

쿠우웅!

용등자가 바다 밑바닥에 착지했다. 바다 밑바닥에 쌓여 있던 부유물들이 부옇게 솟아올랐다.

용등자에 탄 이성계가 마력탐지기를 이용해서 절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기다!’

해저 절벽에 약 1장(3m) 크기의 인공적인 문이 달려 있었다. 거대한 바다에 비하면 하나의 점처럼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졌다.

이성계가 안력(眼力)을 끌어올렸다.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었다. 용등자의 두 눈이 불그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을 뒤덮고 있던 복잡한 마법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몽골 문자와 산스크리트어, 서역의 룬 문자와 기호들이 동심원과 육망성 사이에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예상대로군. 강력한 마법진이 2중 3중으로 덮여 있어. 위험해 보이는 부적들도 수십 장이나 붙어 있고.’

이성계가 망설였다. 억지로 열거나 부숴 버리면 내부 전체가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것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직감이었다.

‘하는 수 없군. 파훼한다.’

용등자가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용등자의 손바닥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용등자의 거대한 손바닥과 문 사이에 복잡한 술식들이 떠올랐다. 반투명하게 빛나는 홀로그램 같은 화상(畵像)이었다.

똑같은 화상이 조종석 안에도 생겨났다. 이성계가 두 손을 들어서 술식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순서가 중요해. 함정술식과 허(虛)술식은 건드리지 말고.’

서역의 고대 문자들이 파자(破字)되어 흩어졌다. 기호와 도형이 해체되고 육망성과 동심원만 남았다. 용등자의 손바닥과 문 사이에 있는 화상들도 똑같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방어술식이 산산히 부서졌다.

이성계가 두 번째 술식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울분을 달래기 위해 늘그막에 마도학(魔道學)에 몰두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이방원은 이성계의 어린 아들을 둘이나 죽였다. 그리고 이성계를 뒷방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 <태상왕>이라는 허울을 씌웠지만 명백한 반역이었다.

실의에 빠진 이성계는 불교와 마도학에 몰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으니까.

파지직-!

두 번째 마법진도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문에 빽빽히 음각된 문자들과 마력회로뿐!

‘순서가 중요하다.’

용등자가 집게손가락 끝으로 마력회로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마정합금으로 만들어진 손가락 끝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복잡한 글자들과 도형들이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새빨간 핏물이 바닷물 속으로 퍼져 나갔다.

‘피……? 어떻게? 아니, 무엇 때문에?’

이성계의 이마에 식은땀이 솟아났다.

‘참으로 사이(邪異)하고 까다로운 술법이로군. 어쨌든 파훼는 끝났다.’

용등자가 커다란 두 손으로 문을 밀었다. 그러자 육중한 석문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쿠르르르…….

문 안쪽에도 물이 차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통로가 좁아서 기갑기는 안 되겠군. 일단 맨몸으로 들어가야겠어.’

이성계가 조종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 순간,

꽈지직!

비늘 달린 용이 용등자의 왼팔을 깨물었다. 또 다른 괴수가 오른쪽 다리를 부서질 듯이 붙잡았다. 돌아보니 거대한 게였다.

‘산해경에 나오는 교룡(蛟龍)과 대해(大蟹)로군! 피냄새를 맡고 온 건가?’

큭……!

왼팔과 오른다리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이성계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가 이런 데서 죽으려고 회귀한 줄 아느냐!!”

이성계가 고함쳤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밑바닥,

용등자가 두 마리의 거대 괴수들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

서력기원으로 기원전 6세기 전,

정체불명의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했다. 그러자 기(氣) 또는 마나라고 불리는 제3의 에너지가 지구를 뒤덮었다.

기의 밀도가 높아지자 수많은 생물들이 괴물로 진화(?)했다. 손가락만한 지네가 6장(18m) 크기의 지네괴물인 <향랑각시>가 되었고, 뱀이 이무기가 되었으며, 이무기가 용(드래곤)이 되었다.

이 괴물들이 2천 년 동안이나 이종교배를 했다. 끔찍한 혼종들과 강력한 돌연변이들이 계속해서 태어났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인(超人), 즉 일종의 돌연변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를 각성한 자’, 줄여서 <각성자(覺性者)>라고 불렸다.

석가모니와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와 같은 최상급 각성자들이 수많은 괴물들을 잡아죽였다. 구라파(유럽)인들이 각성자를 <헌터(사냥꾼)>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들 각성자(헌터) 덕분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괴물의 뼈와 고기, 껍질과 마정석 덕분에 더욱 윤택해졌다. 마정석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석(魔石)들도 유용하게 쓰였다.

문제는 괴물들 중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큰 ‘괴수’들이었다. 인간 각성자가 아무리 강해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 괴수를 상대할 순 없었다. 체급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아무리 강해도 호랑이를 이길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기갑기가 탄생했다. 서역 말로는 <타이탄(titan)>이었다.

초기 기갑기는 1~2장(3~6m)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1천 년 넘게 기술이 축적되자 지금과 같은 형태의 ‘기갑거인’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

악전고투 끝에 용등자가 승리를 거두었다.

‘비늘이 있는 용’을 뜻하는 교룡과 ‘거대한 게’라는 뜻의 대해가 초록색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용등자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이성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저 두 놈의 마정석을 빼내야 하는데…….”

대형 괴수들의 마정석이라서 쓸모가 많았다. 중대형 기갑기를 만들어도 좋고, 몇 조각으로 쪼개서 여러 대의 소형 기갑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고기와 뼈, 비늘, 발톱, 이빨, 심지어 지느러미조차 고가에 팔 수 있었다.

‘아깝지만 하는 수 없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용등자가 수중 절벽에 난 문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가슴의 덮개가 열리면서 조종석이 드러났다. 이성계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쿠르륵! 소리와 함께 용등자가 사라졌다. 차원의 틈새로 들어간 것이다.

크윽!

문을 통과한 이성계가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지름 3미터 정도의 통로를 필사적으로 수영해 들어갔다.

‘수압이 엄청나서 몸을 가눌 수가 없어!’

강한 신체와 정신력으로 견디며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촤아악-!

“푸하-”

이성계가 물 위로 솟아올랐다.

콜록! 콜록!

이성계가 뭍으로 올라가서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한참 동안이나 헉헉거리면서 호흡을 진정시켰다. 심신이 차분해지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했다.

이성계가 눈을 떴다. 눈앞에 거대한 산이 솟아 있었다.

‘검은 산……?’

산도 검고 땅도 검고 숲도 검었다. 이성계가 뒤를 돌아보았다. 바다가 아니라 큰 호수가 있었다. 이성계가 나온 호수였다.

‘말도 안 돼! 바닷속 통로가 땅 위의 호수와 연결되어 있다고?’

파란 하늘에 태양까지 빛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땅 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남부 지방도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북방 초원지대처럼 보였다. 검은 호수 너머에는 초록색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큰 강과 광활한 고원이 보였다.

그때였다.

두두두두…….

열다섯 살 정도 되는 몽골 소년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온몸이 상처 투성이였는데도 웃고 있었다. 말안장에 가로놓인 사슴 때문이었다.

‘화살로 숫사슴을 잡았군. 어린 나이에 대단한 솜씨야.’

소년이 호숫가에 있는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이성계도 홀린 듯이 따라들어갔다. 오두막에 있던 가족들이 소년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니! 사슴을 잡아왔어요!”

“어머나 정말로 큰 사슴이구나! 장하다 테무진!”

‘테무진이라고? 그렇다면 이곳은 설마…???’

이성계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여기가 바로 카라 쥬르켄 산이로구나! 15세의 칭기스칸이 타이치우트 부족에게서 도망쳐서 정착했던 곳!”

카라 쥬르켄(Qara Jurken)은 ‘검은 심장’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검은 산과 검은 소나무숲을 뜻하는 실제 지명이기도 했다.

이성계는 칭기스칸과 주원장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었다. 자신과 달리 죽을 때까지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했던 그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이 어딘지, 소년이 누구인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칭기스칸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

이곳은 칭기스칸의 인생, 그러니까 그의 기억 속이었다.

이성계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오두막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뭇가지를 주워 만든 어설픈 움막이었다.

하지만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호호 사슴고기는 오랜만인 걸?”

“아빠가 돌아가신 후엔 처음이에요.”

“고마워 테무진 형!”

“고마워 큰오빠!”

테무진의 친어머니 호엘룬과 의붓어머니 소치겔,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테물룬, 벨구테이 등의 동생들이 사이좋게 둘러앉아서 사슴고기를 해체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줄기 바람이 허술한 나무문을 치고 지나갔다.

삐걱!

웃으며 사슴가죽을 벗겨 내던 15살의 칭기스칸이 고개를 돌려 이성계를 바라보았다.

이성계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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