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장사성 토벌전 (3)
얼마 전,
환관 카마(哈麻)가 토크토아 테무르를 참소(모함)하기 시작했다.
“토크토아 테무르는 아무런 승전보를 올리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왜냐하면 황실이 준 군자금을 빼돌리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무엇이? 당장 그자를 체포해서 내 앞에 무릎 꿇리시오!”
기황후가 소리쳤다.
오코차르와 설설이 황제의 칙사 자격으로 고우성에 파견되었다. 그리고는 토크토아 테무르를 다짜고짜 포박해서 대도(북경)로 보내 버렸다.
유능한 행정가이자 군사지휘관이었던 토크토아 테무르는 간신들에게 모욕당하고, 탄핵되었으며,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리고 유배지로 끌려가던 도중에 독살당했다. 물론 환관 카마의 짓이었지만, 토크토아 테무르와 사이가 나빴던 기황후의 뜻이기도 했다.
8백만 원정군의 지휘권이 기황후가 보낸 오코차르와 설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면에서 토크토아 테무르보다 부족했다. 분노한 장수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야전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형편없었다.
이 <장사성 토벌군>은 다양한 민족과 국가에서 차출된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혼성군이 큰 잡음 없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재상 토크토아 테무르의 지도력 덕분이었다.
그런 그가 전투 중에 억울하게 압송된 것이다.
구심점을 잃은 원나라군이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장수들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고, 한족(漢族) 병사들은 주원장이나 장사성에게 투항했다. 특히 홍건적의 병력이 크게 늘어났다.
토번(티벳), 위구르 등에서 징발된 군대들은 자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8백만을 자랑하던 <장사성 토벌군>이 각자도생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무너져 가는 원나라의 모습 그 자체였다.
***
같은 시각,
저주성에서 주원장과 싸웠던 원나라군이 육합성으로 되돌아왔다.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지가 멀쩡한 병사가 열에 두셋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주원장이 추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에 그친 것이었다.
육합성에 있던 고려 장졸들이 낄낄거리며 구경했다. 원나라 장수들은 부끄럽고 풀이 죽어서 화도 내지 못했다.
고우성에서 뒤늦게 전령이 도착했다. 오코차르와 설설이 보낸 전령이었다.
“무어라? 토크토아 태사가 체포되어 압송되었다고?!!”
고려 장수들이 경악했다. 원나라 장수들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분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구나……!’
유탁이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영과 이방실, 황상, 정세운, 안우를 비롯한 장수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태사가 압송된 지가 언젠데 그걸 이제야 알려 주다니…….’
고우성의 혼란이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전령이 오코차르와 설설의 마지막 지시를 전했다.
“육합성의 고려군은 회안성으로 이동하여 그 일대를 사수하라고 하셨습니다!”
회안성은 고우성의 북쪽에 있는 성이었다. 그래서 고우성보다 먼저 원나라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제 와서 회안성을 사수하라고?”
“고려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고려 장수들이 웅성거렸다. 그러자 고려군 총사령관 유탁이 말했다.
“자자,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요. 이곳 육합성은 장사성의 고우성과 주원장의 저주성 사이에 있으니까 말이오.”
장수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지금 즉시 출발하겠소. 이후의 일은 회안성에 도착한 다음 고민해도 늦지 않소.”
유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수들이 달려나갔다.
그로부터 불과 한두 시진 후,
두두두두두~
육합성에 있던 고려군과 원나라군이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기병들은 물론이고 보병들도 죽을 힘을 다해서 뛰고 있었다.
“낙오되지 마라! 낙오자는 버리고 간다!”
말에 탄 장수들이 고함쳤다.
고려군과 원나라군은 지옥과도 같은 행군 끝에 회안성에 도착했다.
그러나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장사성과, 주원장, 진우량이 대군을 이끌고 추격해 왔기 때문이다.
“토크토아 테무르가 쫓겨났다!”
“원나라군은 사분오열되어 지리멸렬해졌다!”
“몽골 놈들을 쫓아내고 한족 병사들을 흡수하라!”
장사성, 주원장, 진우량이 소리를 지르며 전투를 독려했다. 수십만 대군이 고우성, 팔리장(八里莊), 사주(泗州), 화주(和州), 회안성(淮安城) 일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 싸우자던 원나라군 장수들은 병사들을 버려 두고 제일 먼저 도망쳐 버렸다. 고려군은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원나라 놈들! 이럴려고 끝까지 싸우자고 한 거였구만!!”
고려 장수들이 이를 갈았다.
“원망할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죽입시다!”
다섯 대의 홍건적 기갑기와 뒤엉켜서 개싸움을 벌이던 최영이 소리쳤다. 고려 장수들이 그에 호응해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모두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푹! 푸욱! 푸우우욱!
홍건적들의 기갑기가 전(前) 제주목사 이권(李權)의 기갑기에 창을 찔러 넣었다.
네 개의 창날이 목과 가슴, 배와 허벅지를 꿰뚫었다.
“끄아아아-!!”
이권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절명했다. 이권의 기갑기가 두 눈의 빛을 잃으며 정지했다.
그러자 장사성-진우량-주원장군의 법사들과 도사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이권의 기갑기에서 마정석과 인공근육을 빼 가기 위해서였다.
고려군 보병들과 각성자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인해전술을 견뎌 낼 순 없었다.
“이 목사!” “이권 장군!!” “형님!!”
기갑기에 탄 고려 장수들이 절규했다. 유탁이 마력통신기로 모두에게 지시했다.
“싸우면서 퇴각하시오! 더 이상 누구도 죽어선 안 되오!”
“우리는 고려의 국방력 그 자체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하오!”
“알겠습니다!”
“존명!”
40여 명의 고려 장수들이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장사성-진우량-주원장군의 기갑기들은 고려군을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기갑기의 엔진이자 배터리인 마력핵, 그리고 마정합금(魔精合金)으로 만들어진 인공근육과 장갑들까지, 모든 것을 재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다 팔기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장사성-진우량-주원장 연합군이 동원한 8천 척의 배들도 큰 위협이었다. 회안성은 두 개의 큰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와 대운하와도 가까웠기 때문에 평소에도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길목이었다.
수십만의 보병들과 수천 명의 기갑기사들이 집요하게 공격해 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휘유~ 역시 까오리빵즈 놈들이 매섭단 말이지~!”
후위에서 지켜보던 주원장이 주걱턱을 긁으며 웃었다.
“슬슬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주원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와라 백련신장!”
기우웅-!
미륵불을 연상케하는 새하얀 기갑기가 공간의 틈새에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추악하게 생긴 주원장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때였다.
“어이~ 곽자흥 똘마니 주원장! 너는 거기서 구경이나 하라고!”
대형 기갑기 <악비붕거(岳飛鵬舉)>에서 진우량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비붕거는 송나라의 한족(漢族) 영웅 악비 장군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기갑기였다. 등에는 창, 허리에는 검, 왼손에는 쇠뇌(弩)를 들고 있었다.
진우량은 서수휘가 세운 천완 송제국(天完 宋帝國)의 장수였다. <천완(天完)>은 <대원(大元)>의 윗부분에 획을 하나씩 더해서 만들어졌다. 원나라를 찍어 누르겠다는 열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어허! 둘 다 비켜라 애송이들아! 이 싸움은 본좌의 싸움이니라!”
묵직한 기갑기 <손권대제(孫權大帝)>를 타고 나온 장사성이 외쳤다. 기갑기의 오른손에는 거대한 고정도(古錠刀)가 들려 있었다.
장사성은 10여 년 뒤에 스스로 오왕(吳王)의 자리에 오른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이 장사성의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애송이라니 어이가 없구만!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주제에!”
진우량이 발끈했다.
“허허 적을 앞에 두고 다퉈서야 되겠소이까?”
주원장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은 힘을 합쳐 싸울 때요. 눈앞에 있는 고려 침략자 놈들을 궤멸시킨 다음, 고려를 정벌하여 속국으로 삼읍시다. 그러면 원나라를 앞뒤에서 협공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호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이게 바로 천하를 경영한다는 거로군요!”
장사성, 주원장, 진우량군 장수들이 모두 감탄했다. 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진우량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고려가 여기서 얼마나 먼지 모르느냐? 그리고, 황하 이북에 우글거리는 수백만 원나라군은 죄다 허수아비라더냐?”
“바보는 당신이오, 진우량!”
주원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내가 언제 육로로 간다고 했소? 배를 타고 가면 되지 않소? 여기서 고려 벽란도까지 2, 3일이면 충분하오. 산동반도에서 출발하면 더 빠르고.”
“……크흠! 일개 장수 놈이 고려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냐? 동이족은 수 양제도, 당 태종도 굴복시키지 못했거늘!”
진우량이 말했다. 그러자 주원장이 피식 웃었다.
“상관없소. 지금도 보시오! 원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우리 한족을 핍박하고 있지 않소? 건방진 고려 놈들은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오!”
주원장이 부리부리한 눈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진우량과 장사성이 20대 중반에 불과한 주원장에게 새삼스레 감탄했다.
“자자, 잡설이 길었군요! 일단 저 고려 놈들부터 몰살시킵시다!”
진우량의 악비붕거와 장사성의 손권대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원장의 백련신장이 걷기 시작했다.
쿵~ 쿠웅~ 쿠우웅~
보급형 기갑기들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세 대의 기갑기가 회안성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회안성을 중심으로 육박전을 벌이던 40여 대의 고려군 기갑기들과, 그들과 뒤엉켜 싸우던 150여 대의 장사성, 진우량, 주원장군 기갑기들이 일제히 그들을 주목했다.
‘젠장! 산 넘어 산, 엎친 데 덮친 격이군!’
유탁이 신음했다.
***
같은 시각,
회안성 근처 해안가에 있는 어느 절벽 위.
이성계가 절벽 위에서 황토빛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이 솟아오르듯 뾰족하게 솟아오른 검은 바위섬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 어부들이 흑룡도(黑龍島)라 부르는 섬이었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군. 이제부터가 중요해.’
이성계가 흑룡도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마니응개와 필사적인 기갑기 대결을 벌인 것도, 그 보상으로 장사성 토벌전에 보내 달라고 했던 것도, 육합성으로 가는 주원장을 되돌려 보낸 것도,
모두가 오늘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정복자 칭기스칸의 기갑기 <카라 쥬르켄(Qara Jurken)>이 이곳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전생에서 주원장은 저주성에서 육합성으로 가던 도중, 육합성에서 출병한 원나라군과 교전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전설의 검은 용갑기(龍甲機), 카라 쥬르켄을 손에 넣었다.
이 과정은 우연과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주원장은 그것을 천명(天命), 즉 하늘의 뜻이라고 선전했었다.
이성계가 기갑기를 보여 달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주원장이 카라 쥬르켄을 이미 손에 넣었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다행히 주원장의 기갑기는 아직 <백련신장>이었다.
백련신장은 유린청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기갑기였다. 하지만 전설의 기갑기 카라 쥬르켄에는 미치지 못했다.
‘주원장! 그대의 천명, 이번엔 내가 받아 가겠소!’
휘익-!
이성계가 절벽에서 몸을 날리며 외쳤다.
“나와라 용등자(龍騰紫)!”
절벽에서 몸을 날린 이성계가 공중에서 외쳤다. 용등자는 이성계의 집, 그러니까 함흥에서 가지고 나온 기갑기였다.
기우웅-!
공간이 열리며 날렵한 모양의 기갑기가 등장했다. 크기는 약 4장 5척(13.5m)이었다.
이성계의 몸이 조종석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슴의 기갑이 빠르게 닫혔다.
첨벙!
수(水)속성 기갑기 용등자가 바닷속으로 빠져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