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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군주 이성계-8화 (8/33)
  • 008. 장사성 토벌전 (2)

    그날 밤, 고우성.

    기이잉~ 기이이잉~

    장사성군의 공병용 기갑기들과 건설용 기갑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사람보다 큰 마석(魔石) 벽돌을 무너진 성벽 위에 쌓고 있었다. 마석 벽돌은 마석가루와 돌가루를 섞어 구워 낸 성곽용 벽돌이었다.

    마력 순도가 훨씬 높은 마정석은 너무 비싸서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마석이라도 갈아 넣어야 마력이 실린 공격을 견딜 수 있었다.

    고려군이 피땀흘려 무너뜨린 성벽이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그러나 원나라 장수들은 시시덕거리면서 구경만 했다. 성벽을 복구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고려군을 내쫓은 명분이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하자’라는 것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려군이 무너뜨렸으니 우리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원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는 건 똑같으니까.’

    유탁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우성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우리 고려보다는 낫지만…….’

    ***

    다음 날 아침,

    수백 대의 기갑기를 앞세운 원나라군이 고우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쿠콰쾅! 콰아아앙!

    대지가 흔들리고 대기가 떨렸다. 귀를 찢는 파공음과 충격파가 수십 장(수백 미터) 이상 퍼져 나갔다. 수십만 명이 내뿜는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뒤로한 채, 2만 2천의 고려군이 육합성으로 출발했다. 토크토아 테무르가 붙여 준 10만의 원나라군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며칠 뒤,

    육합성에 도착한 고려군은 투덜거리면서도 용맹하게 싸웠다. 고려군의 맹활약 덕분에 육합성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고려군을 따라온 원나라 장수들이 고려 기갑기들의 화끈한 전투를 보고 흥분했다.

    “우리도 공을 세울 수 있소! 아니, 세워야 하오!”

    “옳소! 언제까지 고려 놈들에게 맡겨 둘 셈이오?”

    “대원제국의 위대함을 보여 줍시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홍건적의 거점, 저주성(滁州城)이었다.

    “저주성은 주원장이라는 애송이가 지키고 있다!”

    “그놈을 잡으면 큰 상이 있을 터!”

    “우환의 싹은 일찍 제거할수록 좋은 법!”

    원나라군이 출격 준비를 시작했다. 고려 장수들이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몽골 놈들, 힘이 남아도나 보구먼.”

    “우린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자고~!”

    고려 장수들과 병사들은 최소한의 경비병들만 배치해 놓고 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격전과 행군으로 몹시 피곤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육합성의 성문이 열리며 원나라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저주성으로 호기롭게 진군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저주성을 지키고 있던 주원장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육합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즉 저주성의 홍건군은 육합성으로, 육합성의 원나라군은 저주성으로 진군하고 있는 셈이었다.

    주원장의 관상은 아주 특이했다. 이렇게 보면 비렁뱅이에 원숭이의 상인데, 저렇게 보면 범상치 않은 귀인의 상이었다.

    하지만 결코 미남은 아니었다. 천연두 때문에 얽은 얼굴과 심하게 튀어나온 주걱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못생긴 남자는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의 태조가 된다.

    그 주원장이 이끄는 홍건군(軍)이 행군을 시작한 지 얼마 후,

    저주성과 육합성 사이의 도로 한가운데에 덩치 큰 원나라 장수 한 명이 말을 타고 서 있었다.

    “정지!”

    주원장이 오른손을 들었다. 깃발이 휘날리고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군이 멈춰 섰다.

    다그닥 다그닥…….

    원나라 장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원장의 부하들이 일제히 무기를 고쳐 쥐었다.

    하지만 원나라 장수는 무기를 꺼내지도, 살기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주원장을 응시할 뿐.

    원나라 장수가 약 1장(3m) 앞에서 멈춰 섰다.

    “귀하가 주원장이오?”

    원나라 장수가 생각보다 훨씬 젊다는 것에 놀라며 주원장이 대답했다.

    “……그렇다. 그대의 이름은?”

    “내 이름은 이(李)아미르바투르. 고려인이오.”

    “고려인이라고?”

    “그렇소. 내 고려 이름은…….”

    원나라 장수가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이성계라 하오.”

    ***

    “이 아미르바투르, 고려 이름은 이성계라……?”

    주원장이 주걱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미안하군. 기억이 안 난다.”

    “당연하지. 이번이 첫 출전이니까.”

    “하하하 강호초출(江湖初出)이셨구만! 아니, 맹호출림(호랑이가 숲에서 나옴)인가?”

    “하하하하!”

    붉은 두건을 쓴 주원장과 부하들이 크게 웃었다.

    “그래 대장군 이성계 나으리, 불초 소생에겐 무슨 볼일이신가?”

    “거래를 하고 싶소.”

    “거래? 장수인 줄 알았는데 장사꾼이셨구먼. 그래, 뭘 거래하자는 거지?”

    “그대의 기갑기를 보여 주시오. 그러면 쓸 만한 정보를 주겠소.”

    “기갑기를 보여 달라고? 이유가 뭐지?”

    “강호에 이름을 떨치는 귀하의 기갑기를 견식하고 싶을 뿐이오.”

    곰보 장수 주원장이 부리부리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냥 보여 주는 것만이라면 별 것 아니긴 한데…….’

    그의 기갑기는 이미 수십 번의 전투 과정에서 수만 명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오(好)! 보여 주는 것만이라면 상관없지. 하지만…….”

    실실 웃던 주원장의 눈동자가 독사처럼 번득였다.

    “정보의 가치가 없거나 거짓이면…… 알지?”

    이성계는 무표정했다. 주원장이 이성계를 노려보며 외쳤다.

    “나와라 백련신장(白蓮神將)!”

    구우웅-!

    5장(15m) 크기의 새하얀 기갑기가 공간을 열고 걸어 나왔다. 푸른 색의 유린청에 뒤지지 않는 멋진 모습이었다. 손목과 발목, 허리, 목 등이 연꽃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이성계가 슥 올려다본 뒤에 주원장을 바라보았다. 아무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주원장이 전투 겸 지휘용 기갑기 <백련신장>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네 차례다.”

    주원장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쓸 만한 정보여야 할 거다. 안 그러면…….”

    “저주성으로 돌아가시오.”

    이성계가 말했다.

    “육합성은 이미 끝났소.”

    ***

    “육합성이 끝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고려군, 아니 여몽연합군이 이미 점령했다는 뜻이오.”

    “흐음~ 꽤 괜찮은 정보군. 네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주원장이 이성계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네놈을 어떻게 믿지? 우리가 육합성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려는 계책일지도 모르는데. 최소한의 증거라도…….”

    “어차피 곧 알게 될 거요.”

    “뭐?”

    “그게 무슨……?”

    주원장과 부하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장군님! 육합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육합성 방향에서 달려온 척후병이 외쳤다.

    “뭐라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원나라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주원장이 깜짝 놀랐다. 부하장수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놀랄 틈도 없이 또 하나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상위(上位)님 큰일났습니다! 우리 성이…… 저주성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저주성에서 달려온 전령이 외쳤다. 이번에는 모두가 경악했다.

    “적은 얼마나 되느냐?”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갑기들이 있습니다!”

    “원나라군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제기랄! 전군 뒤로 돌앗! 저주성으로 돌아간다! 전속력이다!”

    두두두두두-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쓴 10만 명의 병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장수들이 말에 박차를 가했다.

    “네 이름을 기억해 두마! 아미르바투르, 아니 이성계!”

    주원장이 말등 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주원장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말을 달렸다.

    ***

    주원장과 군사들이 저주성에 도착했다. 급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말도 사람도 지쳐 있었다.

    그러나 적 기갑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적은 어디에 있느냐?”

    말을 달려서 성문을 통과한 주원장이 외쳤다. 그러자 성을 지키고 있던 장수가 부복하며 말했다.

    “한식경 전에 사라졌습니다!”

    “피해 상황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강하게 반격했더니 금세 달아났습니다.”

    저주성을 지키던 장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주원장은 안도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느꼈다.

    ‘기분이 이상하군. 뭔가 찝찝해. 마치 누군가에 의해 놀아난 것처럼…….’

    그러자 청년 장수 이성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그 녀석이……?’

    주원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주원장의 육감이 옳았다.

    저주성을 공격한 자들은 원나라 갑옷을 입은 가베치(가별초)들이었던 것이다.

    가베치들은 왕의 군대가 아니었다. 국가 소속도 아니었다. 이성계, 정확히 말하면 이자춘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적당히 공격하다가 주원장의 군대가 오면 퇴각하라는 이성계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했다. 최소한의 수비병력밖에 없던 저주성에 공격을 퍼부은 다음 재빨리 후퇴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회안성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주원장은 가베치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육합성에서 출발한 원나라군이 근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시진(2시간)도 지나기 전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와아아아-!”

    원나라군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기갑기들도 쿵쿵거리며 돌격해 왔다. 저주성의 수성(守城)용 기갑기들이 반격을 개시했다. 저주성 앞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싸늘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주원장이 외쳤다.

    “나와라 백련신장!”

    기우웅-!

    백련신장이 공간의 틈새에서 걸어 나왔다. 못생긴 주원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기갑기였다. 주원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백련신장에 탑승했다.

    그와 동시에 백련신장이 두 손을 모아 팔법연화인(八法蓮花印)을 맺었다. 그러자 백련신장의 머리 위에 거대한 아공간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반투명하게 빛나는 연꽃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슈웅- 슈우웅- 슈우우웅-!

    꽈과과과광!!

    저주성 주변이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길달의 궁극기 <대지붕괴(大地崩壞)>보다 범위가 훨씬 넓었다. 원나라 병사들과 기갑기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보았느냐? 이것이 백련신장의 궁극기 <백련화우(白蓮花雨)>이니라!”

    주원장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러자 머리에 붉은 두건을 맨 병사들이 환호했다.

    “오오 미륵불이시다! 미륵불이 현신하시었어!”

    “백련교 만세! 곽자흥 만세! 주원장 만만세!”

    원나라 장수들도 지지 않았다.

    “저놈이 바로 주원장이다! 저놈을 잡으면 큰 상을 받을 수 있다!!”

    쿵쿵쿵쿵쿵!

    원나라 기갑기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고우성.

    와아아아-

    와아아아-

    토크토아 테무르가 이끄는 ‘8백만’ 원나라군이 고우성에 총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전투용 기갑기와 공성용 기갑기, 공병용 기갑기들이 거대한 창과 망치로 성벽을 두들겼다.

    지축이 울리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도사들과 법사들의 버프를 받은 수십만의 병사들이 성벽을 기어올랐다.

    번쩍-! 꽈과과광-!!

    기갑기에 탄 도사와 법사들이 뇌전과 화염 공격을 퍼부어 댔다.

    기갑기에는 인간의 단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량이 큰 마력핵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술법이나 마법의 위력도 수십 배, 수백 배나 되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대규모 전투시에 후방에서 원거리 공격을 퍼붓거나 버프를 걸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력만으로 이루어진 공격은 기갑기에게 큰 효과가 없었다. 기갑기의 내부에는 강력한 마력핵이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기갑기는 걸어다니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인 셈이다.

    그래서 기갑기는 마력이 실린 무기로 ‘물리적으로’ 파괴해야만 했다. 마법계, 도술계 기갑기보다 전투형 기갑기가 훨씬 더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고우성은 함락되기 직전이었다.

    구멍 난 치즈처럼 엉망이 된 성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고려군에게 성벽이 무너졌을 때와 달리 10여 곳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너진 자리마다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우글거렸다.

    “이번엔 진짜 끝이로구나! 오호 통재라!”

    장사성과 그의 형제들, 부하들이 울부짖었다. 필사적으로 벼텼지만 원나라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주원장이나 방국진, 진우량 같은 한족 군벌들도 도와주지 않았다.

    “방심하지 마라! 끝까지 밀어붙여라!”

    토크토아 테무르가 외쳤다.

    그때였다.

    “죄인 토크토아 테무르는 황명을 받으라!”

    중서평장사 오코차르(月闊察兒)와 지추밀원사 설설(雪雪)이 황실의 케식(친위대)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토크토아 테무르는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고 포승줄에 묶였다.

    “이것 보시오! 전쟁 중에 지휘관을 체포하는 법이 어디 있소?”

    “옳소! 이건 환관 카마(哈麻)의 모함이오!”

    토크토아의 부하 장수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자 긴장한 케식들이 칼을 뽑아들었고, 그것을 본 장수들도 일제히 칼과 활을 꺼내들었다.

    “모두 그만두어라! 적전분열을 일으킬 셈인가!”

    토크토아 테무르가 외쳤다.

    “내가 지금 황명을 거부하면 정말로 반역자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그대들도 마찬가지!”

    “크윽……!”

    “태사 각하……!”

    원나라 장수들이 눈물을 머금고 칼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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