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7화 (7/33)
  • 007. 장사성 토벌전 (1)

    1354년 1월, 소금장수 장사성(張士誠)이 형제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대주국(大周國)이라는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다.

    장사성이 점령한 강회, 고우, 태주 지방은 강남의 소금과 식량이 모여드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원나라 조정은 재상인 토크토아 테무르(脫脫帖木兒)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장사성 토벌군>을 조직했다.

    토크토아 테무르는 중원 대륙은 물론이고 토번(티베트)과 회회(중동), 위구르 등에서도 병력을 모집했다. 또한 고려 조정에도 파병을 요구했다.

    “우리 원나라와 고려가 우호관계를 맺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최근 (장사성, 주원장을 비롯한) 한족들이 앞다투어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나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남쪽을 정벌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고려 국왕께서는 용맹한 장수와 정예 병력을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민왕은 울며 겨자먹기로 승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6개월 뒤인 1354년 6월,

    최영, 김용, 강윤충, 정세운, 이방실, 황상을 비롯한 40여 명의 장수들이 2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원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6개월 후인 1354년 겨울, 장사성의 본거지인 고우성 앞.

    “개 같은 원나라 놈들!”

    39살의 최영이 기갑기를 조종하며 고함쳤다.

    “8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끌고 왔으면서, 2만 2천밖에 안되는 고려군을 앞장세우다니!!”

    2만 2천 중에서 정예병력, 즉 각성자들은 2천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만은 대도(북경)으로 가는 도중에 징발한 농민병에 불과했다.

    즉 8백만을 자랑하는 원나라 군대는 구경만 하고 있고, 2천에 불과한 고려군만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사실 8백만 중에서 제대로된 전투병력은 100만도 안 되어 보였지만…….

    [외부 손상이 심합니다. 잠시 물러나서 정비를 받으십시오.]

    최영의 기갑기 <장절대공(壯節大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절대공은 고려 태조 왕건을 구하다가 죽은 <장절공 신숭겸>의 시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허수아비라도 빌려오고 싶은 심정이거늘!”

    최영이 소리쳤다.<허수아비>는 고려군의 훈련용 기갑기였다. 즉 고려판 오르타크인 셈이다.

    “다시 간다!”

    기이이이잉-

    장절대공의 푸른색 마력핵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안개 같은 감괘(坎卦)의 기운이 장절대공의 거대한 몸을 감쌌다.

    “수월광참(水月光斬)!!”

    장절대공이 휘두르는 거대한 언월도가 허공을 갈랐다.

    슈카칵-!

    6장(18m)나 되는 거대한 언월도가 적 기갑기의 목을 깔끔하게 날려 버렸다. 팔을 들어서 막으려고 하는 바람에 팔까지 같이 잘렸다.

    끄아아아-!!

    적 기갑기사가 울부짖었다. 머리와 두 팔이 한꺼번에 잘려 나가는 고통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영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수백 대의 크고 작은 기갑기들이 고우성 주위에서 격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지축이 울리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각성자들과 비각성자들의 비명과 고함 소리, 마석 대포와 마법무기들이 만들어 내는 파공음도 무시무시했다.

    최영은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8백만 정벌군의 맨 앞자리! 그곳이 바로 최영의 전장(戰場)이었다.

    “이야아아아!!!”

    장절대공의 조종석에 앉은 최영이 내력을 끌어올리며 고함쳤다.

    키가 5장(15m)이나 되는 기갑기 장절대공이 키보다 더 긴 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뛰어다녔다. 놀라운 실력으로 장사성군(軍)의 기갑기들을 몰아붙이던 정세운, 김득배, 황상, 이방실, 안우 등의 고려 장수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악귀야차다! 저 까오리빵즈는 악귀야차야!”

    장사성군 장수들과 병사들이 울부짖었다.

    “성벽을 뚫어라!”

    유탁이 외쳤다. 그러자 수십 대의 공성용 기갑기들이 지축을 울리며 걸어 나갔다. 전투용 경(輕) 기갑기들과 도사들, 법사들이 엄호했다. 포격형 기갑기들도 쾅 쾅 소리를 내며 마석 포탄을 퍼부어 댔다.

    쾅! 쾅! 콰아앙!

    공성기갑기들이 거대한 망치로 성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벽을 감싸고 있던 마력방어막이 흔들렸다. 빛나는 반투명 막이 깜빡거렸다.

    성벽 위에 있던 장사성군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성벽 앞에서 싸우던 기갑기들이 거의 파괴되었기 때문에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공성군 수성군보다 5배 이상 많아야 한다는 상식(?)이 깨어진지 오래였다. 거대한 기갑기들 때문에 성벽의 가치가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최강의 기갑기사로 유명했던 칭기스칸이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쩌저적- 쿠웅! 콰르르르-

    결국 성벽 한곳이 굉음을 내며 붕괴했다.

    장사성군과 원나라군이 깜짝 놀랐다. 예상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좋아! 들어간다!”

    고려 파병군 총사령관 유탁(柳濯)이 고함쳤다. 그러자 30여 대의 고려 기갑기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성 안에 있던 장사성군 기갑기들도 그곳으로 달려왔다.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때였다.

    “그만! 공격 중지!”

    기갑기에 탄 원나라 장수들이 외쳤다. 고려 기갑기들이 멈춰섰다.

    “중지라니,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최영이 갑옷 소매로 코피를 닦으며 으르렁거렸다. 다른 장수들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그만 하죠.”

    “그래요. 푹 쉬고 내일 합시다.”

    원나라 장수들이 말했다. 고려 장수들이 소리쳤다.

    “아니 전투가 벼농사요? 날이 저물었다고 그만하게?”

    “땅거미도 안 졌는데 무슨 소리요?!”

    그러자 원나라 기갑기들이 무기를 치켜들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속국 놈들 주제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너희들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알아들어?”

    고려 기갑기들이 몸을 돌려 원나라 기갑기들을 마주보았다. 무기를 꼬나들고 허리를 낮춰 전투 자세를 잡았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 당장이라도 패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

    “무어라? 고려 기갑기들이 성벽을 무너뜨렸다고?!”

    내성 깊숙한 곳에 있던 대주왕(大周王) 장사성이 외쳤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싸우다 죽겠다! 너희들도 나를 따르라!”

    “안 됩니다! 대왕님은 비밀 통로로 몸을 피하십시오!”

    “듣기 싫다! 나는 기갑기를 타고 끝까지 싸우다 죽겠노라!”

    “끄흐흑!”

    참모들이 눈물을 흘렸다.

    무너진 성벽 안쪽에 있던 장사성군 병사들도 절망에 빠져 있었다. 무시무시한 고려군 기갑기들,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원나라군 기갑기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고우성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초긴장 상태로 닥쳐올 지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왜 아무 일도 없는 것이냐?”

    옥좌에 앉아 있던 장사성이 참모들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바깥의 상황을 보고해라!”

    장사성이 고함쳤다. 그러자 척후병들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대왕님! 무너진 성벽 앞에서 원나라군과 고려군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원나라와 고려 기갑기들이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습니다!”

    “그, 그렇다면 고려군과 원나라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는 말이 아닙니까?!”

    장사성의 부하들이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뭣들 하는 거냐! 마석 벽돌을 구워라! 성벽을 보수하라!”

    장사성이 외쳤다.

    “예, 전하!”

    부하들과 전령들이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고우성 안에 있던 건설용 기갑기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고려군 사령관 유탁의 기갑기가 후방으로 걸어 나왔다.

    원나라 기갑기들 사이를 통과한 유탁이 기갑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원나라군 본진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놀라운 속도였다. 전투계열 각성자, 그것도 품계가 높은 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탁이 원나라군 본진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본진 한가운데에 있는 총사령관 막사였다.

    호위병들이 막아섰지만 거칠게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사 각하!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유탁이 군례를 올린 뒤에 외쳤다. 그러자 원나라의 태사(우승상)이자 장사성 토벌군의 총사령관, 토크토아 테무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유라니? 무슨 이유 말이오?”

    “기껏 성벽을 뚫어 놨는데 하룻밤을 쉬라니, 이게 말이 되냔 말입니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 일선 장수들이 그리 판단했나보지.”

    “왜 적에게 시간을 주십니까? 이대로 밀고 들어가면 승리가 눈앞에…….”

    열정적으로 외치던 유탁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딴청을 피우는 토크토아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그랬군. 예상대로였어.”

    유탁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장수들의 전공(戰功)을 빼앗아서 원나라 장수들에게 주려는 거군요.”

    적의 성벽 위에 제일 먼저 올라가거나, 성벽을 무너뜨리는 군사는 가장 큰 보상을 받았다. 그 공을 고려 장수들에게 주지 않으려는 꼼수였던 것이다.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토크토아의 회회인(아랍인) 참모가 칼을 뽑으며 윽박질렀다. 그러자 토크토아가 눈을 부라렸다. 회회인 참모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이해해 주시오 장군. 아시다시피 황궁에 나를 참소하는 자들이 많소. 작은 승전보라도 보내야 하오.”

    토크토아가 탁자에 놓인 큰 지도를 짚으며 말했다.

    “이곳 고우성은 우리가 맡겠소. 병력을 나누어 줄 테니 고려군을 이끌고 육합성으로 가시오.”

    유탁이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송구하오나 태사 각하. 이 성의 전략적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듯합니다만…….”

    “역시 유장군! 정확히 보았소. 육합성을 먼저 치는 건 저주성을 견제하기 위해서요.”

    “저주성(滁州城)이라면…… 홍건적이 점령하고 있는 성이 아닙니까?”

    “잘 아는군. 저주성의 성주는 홍건적의 괴수인 곽자흥의 사위, 주원장이라는 자요. 만약 그자가 장사성을 돕기 위해 고우성으로 오면 골치 아파지오.”

    끝까지 원나라군의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유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크토아가 실제로 정치적인 위기에 몰려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육합성을 점령하여 홍건군의 참전을 막겠습니다.”

    “고맙소. 정예군 10만을 붙여 주겠소.”

    “감사합니다. 무운을 빕니다, 각하.”

    “무운을 비오.”

    유탁이 돌아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스르렁-!

    유탁의 환도가 회회인 참모의 목을 겨누었다.

    “잘 들어라 색목인! 나는 여기 계신 태사 각하의 친동생인 에센 테무르 님의 처남이고, 대원제국의 부마국인 고려의 태사다! 또다시 나에게 칼을 겨누면 네 사지를 잘라서 개들의 먹이로 줄 것이다.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색목인의 바지가 누렇게 젖어들었다. 유탁이 환도를 집어넣고 막사를 나섰다.

    토크토아 테무르가 유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유탁이 무너진 성벽 앞으로 돌아왔다. 원나라 기갑기들과 대치하고 있던 고려 기갑기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유탁의 설명을 들은 장수들이 분노했다.

    “역시 전공을 독차지하겠다는 거였군!”

    “제기랄! 죽 쒀서 개 준 꼴이구만그래!”

    “게다가 얌전히 육합성으로 꺼지라니! 이거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유탁이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내가 소국의 장수라서 설움을 당하는 것과, 주군의 명을 받들어 반란군을 토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요.”

    최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가겠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운 최영의 말이었다. 그래서 무게감이 남달랐다. 기갑기에 탄 장수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휴~ 하는 수 없구만.”

    “가라면 가고, 까라면 까야지 뭐!”

    쿵…… 쿵…… 쿵…….

    고려군 기갑기들이 등을 돌려 성에서 멀어져 갔다.

    원나라 장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것이 약소국의 설움 아니겠소? 유탁 장군, 최영 장군.”

    멀리서 바라보던 이성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오. 그런 설움도 오래가진 않을 테니까.”

    마니응개와의 기갑기 대결 이후, 이성계는 3개월 동안의 혹독한 수련과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장사성 토벌전>에 참전해도 좋다. 총관부에는 내가 연락하지.”

    이자춘이 말했다.

    이성계는 고려군이 아니라 원나라군 소속이었다. 화령성의 이씨 천호부는 쌍성총관부 소속이었고, 쌍성총관부는 개원로-옷치긴 왕가로 이어지는 원나라 행정구역이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함흥을 떠나 북경을 거쳐 고우성으로 왔다. 800만 대군을 지휘하는 토크토아 테무르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20살짜리 풋내기 장수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게 더 편했다. 이성계는 직속상관에게 뇌물을 듬뿍 먹이고 단독행동을 보장받았다.

    ‘어차피 내 목적은 <그 기갑기>를 찾는 거니까.’

    슈웃-!

    이성계와 부하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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