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용사의 자격 (3)
“아니 공자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마니응개가 소리쳤다.
이성계가 오르타크의 오른손 손바닥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기이잉-!
오르타크의 투박한 오른손이 이성계를 쥐었다.
그리고는 하늘 위로 냅다 던져 버렸다.
휘이익-!
이성계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아무리 훈련용 기갑기라도 수백 마력은 우습게 넘어간다. 사람을 수십 미터 공중으로 던지는 것 따위는 식은죽먹기였다.
“으아아-!”
“뭐하는 짓이야?”
구경꾼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베치들조차 황당해했다. 특히 최씨 부인과 한씨 부인은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와 동시에 공간의 틈새가 열렸다. 오르타크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로로 길게 갈라졌던 공간의 틈새가 곧바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하늘 높이 솟구치는 이성계와, 땅바닥에서 올려다보는 기갑호랑이 타스하뿐!
“하하하 마음이 참으로 상쾌하구나! 가슴이 뻥 뚫려!”
이성계가 시원하게 웃어제꼈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마음껏 웃어 본 것이…….’
이성계의 말년은 슬픔과 후회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성계가 아련한 눈으로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았다.
옛 전쟁터로 내 마음 달려가나니
그들은 나를 보고 웃을 테지
내가 정이 많아 흰머리가 많다고
인생은 꿈 같은 것
한 잔의 술을 강 속의 달에 붓는다
이성계가 소동파의 시를 떠올렸다. 붉게 충혈된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그 순간, 이성계의 몸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차!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지!’
이성계가 스카이다이버처럼 사지를 벌리며 외쳤다.
“나와라 오르타크!”
키우우웅-!
이성계와 지표면 사이, 수십 미터 높이의 허공이 가로로 갈라졌다. 그 속에서 오르타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타크는 위를 보고 누운 자세였다. 조종석 장갑이 활짝 열려 있었다.
털썩!
이성계가 조종석으로 들어갔다. 열려 있던 가슴 장갑이 순식간에 닫혔다. 오르타크의 등장부터 탑승까지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후우우웅-!
오르타크가 몸을 세워서 낙하했다. 두 다리를 쭉 뻗은 자세였다. 발끝은 물론 타스하를 향해 있었다.
쿠우웅-!
오르타크가 타스하의 몸에 내리꽂혔다.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연병장이 흔들렸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고 두 기갑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타스하와 오르타크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두 대 모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기이이잉-!
오르타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타스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쿵…….
쿵…….
쿵…….
오르타크가 타스하의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기 시작했다. 타스하는 등과 허리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부서진 외부 장갑 틈새로 찢어진 인공근육 다발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오르타크의 부상이 더 심했다. 특히 허리 아래는 서 있는 게 기적일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두 발목과 무릎이 박살 나서 심하게 삐걱거렸다.
“저, 저거 엄청 아플 텐데…….”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다!”
가베치 병사들과 장수들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기갑기와 기갑기사는 모든 감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이성계는 산산조각난 두 다리로 걷고 있는 셈이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몇 번은 기절했을 것이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그 셋째 도련님 맞아?'
'그러게. 그래서 '한량'으로 통했잖아.'
'분위기랑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가베치들이 웅성거렸다.
첨벙!
오르타크가 타스하를 질질 끌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나거나 전쟁이 났을 때 불을 끄기 위해 만든 작은 인공호수였다.
끄워어엉~!
타스하가 앞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오르타크는 끈질기게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첨벙!
꼬르르륵~
타스하의 몸이 호수에 잠겼다. 호수의 물이 흘러넘쳐서 연병장을 덮쳤다.
슈아아아아-!
불 속성인 타스하의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양의 수증기였다. 호수의 물이 급격히 줄어들 정도였다.
크아앙! 크아아앙!!
첨벙 첨벙 첨벙!
?d! 촤아아- 촤아아아-!
기갑호랑이 타스하가 발버둥쳤다. 타스하는 물을 끔찍이 싫어했다. 물은 불을 제압하기(水剋火) 때문이었다.
100여년 전에 타스하를 귀여워했던 쿠빌라이 칸이, “호랑이는 물을 좋아하고 고양이는 싫어하니, 기갑고양이라고 해라!”라고 놀렸을 정도였다. 목(木) 속성인 유린청이 물을 좋아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그러나 쉽사리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오르타크가 두 팔로는 오른쪽 뒷다리를, 두 다리로는 왼쪽 뒷다리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다리의 힘만으로는 호수를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데다 물속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크윽…….”
타스하의 음성증폭기(스피커)에서 마니응개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물속에 잠긴 타스하도, 타스하의 하체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오르타크도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그래서 무승부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마니응개의 패배였다. 타스하와 오르타크의 격(格)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제가 졌습니다!”
오르타크의 확성기에서 이성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끼우우웅-!
오르타크의 두 눈이 빛을 잃었다.
***
“만약에 제가 싸웠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었을 겁니다.”
무칼리가 말했다.
“공자님이 오르타크를 폭주시켰으니까요. 그래서 공자님과 오르타크 모두 오래 버틸 수 없었죠.”
무칼리가 이성계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성계는 어머니와 아내로부터 폭풍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씨 부인과 이천계는 보이지 않았다. 오르타크가 의외로 잘 싸우는 걸 보고 돌아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마니응개 장군님은 곧바로 반격하셨죠. 공자님의 작전에 말려든 겁니다.”
마니응개가 허리를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의 여운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타스하가 변신할 때 어디가 취약한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변신할 때 꼬리가 사출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도 훌륭했습니다.”
수천 명의 기갑기사들을 훈련시켜 온 무칼리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이자춘은 냉정했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마니응개 경이 방심했을 뿐이니까. 타스하의 궁극기 <화염창귀>를 시전했다면, 아니 <화염탄>이나 <화염방사기>만 사용했어도 결과는 정반대였을 거요. 그렇지 않소, 장군?”
“그거야 그렇지만…….”
마니응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르타크도 궁극기가 없으니까요.”
그때였다.
절뚝 절뚝 절뚝
이성계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걸어왔다.
“일군(一軍)의 장수가 아니라 시정잡배에게나 어울리는 전술이더군.”
이자춘이 차갑게 말했다.
“마니응개 장군에게 처음부터 다시 배워라.”
“아버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장군님!”
이성계가 마니응개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그러자 이자춘과 무칼리, 카이샨의 눈이 커졌다.
‘이것 봐라……?’
‘자기가 더 잘 싸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한 마디 변명도 없이 깔끔하게 인정하다니…….’
그러나 마니응개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노익장의 주름진 얼굴에 아빠미소, 아니 할배미소가 피어났다.
“그래요 그래!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셨으니, 이 늙은이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마니응개가 젖은 눈으로 말했다.
이성계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마니응개를 따랐다. 마니응개도 친손자처럼 귀여워했고.
하지만 이성계 때문에 남몰래 속도 많이 썩였다. 이성계가 술과 사냥, 기생놀음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니다. 청춘은 짧고 대업(大業)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시도 낭비하지 않을 것이야!’
스무 살 이성계가 결심을 굳혔다.
“아버지, 저도 <장사성 토벌전>에 참전하고 싶습니다.”
***
무칼리와 마니응개, 카이샨이 깜짝 놀랐다.
“예? 장사성 토벌전에요?”
“실전과 훈련은 다릅니다 공자님!”
이자춘이 이성계를 바라보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이자춘을 마주보았다.
“이유가 뭐냐?”
“실전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고려와 원나라 장수들에게 눈도장도 찍고요.”
“나는 말을 돌리는 자를 싫어한다. 본심을 말해라.”
“예?”
“장사성의 반란을 진압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자는 꿍꿍이가 있는 법이지.”
이성계가 놀란 눈으로 이자춘을 바라보았다. 흉터로 가득한 근육질의 거구에서 위압감이 흘러넘쳤다.
‘역시 예리하시군.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조선의 환조(桓祖)라 불릴 자격이 있지.’
이성계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갑기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 기갑기요?”
“중원까지 가서 기갑기를 찾겠다는 겁니까?”
무칼리와 마니응개가 동시에 외쳤다. 카이샨도 거들었다.
“쌍성총관부나 개원로에도 좋은 기갑기가 많습니다. 더 좋은 걸 원하시면 옷치긴 울루스에 요청할 수도 있고요.”
이씨 천호부는 쌍성총관부에 속해 있었고. 쌍성총관부는 개원로(開原路)에 속해 있었으며, 개원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을 지배하는 <동방3왕가(王家)> 중 하나인 <옷치긴 울루스>에 속해 있었다.
‘자신을 통해서 원나라에 부탁하라는 소리군. 그래야 자신의 발언권도 높아지고, 나한테 빚을 지울 수 있으니까.’
74살의 청년(?) 이성계가 카이샨의 의도를 즉시 간파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유린청보다 강한 기갑기를 원합니다.”
“유, 유린청보다요?”
무칼리와 마니응개가 동시에 외쳤다. 그리고는 이자춘의 눈치를 보았다. 유린청은 아직 이자춘의 기갑기였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유린청을 물려받은 것은 그가 26세 되던 해, 즉 이자춘이 46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이었다.
“그럼 그렇게 강한 기갑기가 고우성에 있단 말입니까?”
마니응개가 물었다. 고우성(城)은 중국 강소성에 있는 장사성의 본거지였다.
“저도 모릅니다. 다만 천하의 기물(奇物)과 이인(異人)이 모여드는 곳이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성계가 카이샨을 슬쩍 본 다음 말했다.
‘뭔가 숨기고 있군.’
이자춘과 마니응개가 이성계의 속마음을 날카롭게 간파했다.
“내공. 무술. 도술. 기갑술. 용병술.”
이자춘이 말했다.
“전부 가베치 장군급 이상에 도달할 것. 기한은 3개월이다.”
말투는 차가웠지만 눈빛은 따뜻했다.
술과 여자, 사냥밖에 모르던 녀석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니까. 철없고 게으르던 철부지가 부쩍 어른스러워졌으니까.
이자춘이 몸을 돌려 침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성계가 두 손을 받들어 읍(揖)했다.
“각오는 되셨나요 공자님~?”
“어느 전쟁터에 갖다놔도 부끄럽지 않을 전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무칼리와 마니응개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병장에 있던 백여 명의 가베치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칼리와 마니응개에게 혹독하게 ‘굴려질’ 모습이 눈에 선해서였다.
하지만 이성계는 여유만만했다. 이자춘이 말한 다섯 가지 중에서 부족한 것은 체력과 내공뿐이었으니까.
‘체력은 금방 는다. 문제는 내공이야. 전생에 쌓은 내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하지만 이성계는 전생에서 주천화후(周天火候)와 신수화지(神水華池)를 대성했었다.
‘그 경험을 활용하고 영약(靈藥)을 최대한 많이 섭취해야 해. 그래도 3개월만에 전생의 무위(武威)를 되찾진 못하겠지만.’
“시간이 없어요. 지금 바로 시작하시죠.”
이성계가 몸을 풀며 말했다.
***
그로부터 약 6개월 뒤인 1354년 겨울, 중국 강소성(江蘇省) 고우(高郵).
고우는 양쯔강 하류에 있는 부유한 도시로서, 소금을 비롯한 물자가 풍부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참혹한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장사성의 반란군과 원나라의 토벌군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쾅! 콰앙! 콰아아앙!
엄청난 함성과 포성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수백 대의 기갑기들이 지축을 울리며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개 같은 원나라 놈들!”
39살의 고려 장수 최영이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