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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61/162)


  • 〈 161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하하…하.”

    쯔르레이가 힘없이 웃음기를 흘렸다.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괴로웠다. 또한 우스웠다. 이 오크는 정말 자신이 울푸레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아니, 죽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는 쯔르레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실패가 쯔르레이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었다. 단순히 힘을 얻는 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쯔르레이는 알고 있었다. 너무나 지독한 딜레마였다. 자신은 분명 실패작이 될 것임을 알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밀어 넣는 것이다. 벗어날  없는 지옥의 굴레 속에. 결코 빠져나갈 수 없도록.

    그러나 쯔르레이는 그 말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반항할 수 없었다.

    차라리 걸린 것이 자신의 목숨이었다면 기꺼이 버렸을 것을.

    “…자네가 지키던 왕국의 멸망 때문인가?”

    “흐음?”

    “자네가 지키던 공주의 죽음이 자네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건가? 대체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어버린건가?”

    그 말에 생하울라는 엉뚱한 소리를 들었다는  웃었다. 처음 작은 실소로 시작된 것이, 점점 커지더니 그 끝은 광소였다. 그는 정말 미친 듯이, 정말 너무나 우스운 것을 들었다는 듯이 웃어댔다.

    “왜… 웃는, 거지?”

    “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그야 우습지 않겠나? 우습지 않겠냐고?”

    낯선 모습이었다. 생하울라가 웃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평소의 그 예의바르고, 교활할지 언정 놓지 않던 겉모습이 다 벗겨져 있었다.  웃음에 쯔르레이는 어쩐지 소름까지 끼칠 정도였다. 아니, 무서웠다. 그렇게 웃는 그가 두려웠다.

    그것이 어디서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순식간에 웃음을 멈추고 정색했다.

    “먹어라.”

    생하울라가 쯔르레이의 앞으로 다가와 심장을 들이댔다.

    “먹어치워라!”

    “들이대지 않아도 그럴…!”

    쯔르레이의 말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생하울라는 쯔르레이의 입에 심장을 강제로 쑤셔넣었다. 핏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숨이 막혀왔다. 쯔르레이는 그의 손길을 억지로 떨쳐내었다.

    “내가 알아서 먹겠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서는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쯔르레이가 떨쳐내는 것에 맞춰서 손을 놓았고 쯔르레이의 손에는 뮈미르의 심장만이 남아있었다.

    쯔르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심장을 입에 갖다대었다. 거부감이 물씬 들었다. 그건 생리적인 혐오감이었다. 쯔르레이가 결연한 마음을 먹고  먹고는 상관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어쩔  없었다. 쯔르레이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먹어선 안돼….]

    뮈미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거인어로 말한 그녀의 이야기는 쯔르레이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외면하고 말았다.

    먹어서 안되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걸.

    그러나 뮈미르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쯔르레이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물었다.

    거대한 심장은 그 모습과는 달리 연약할 정도로 쉽게 쯔르레이에게 뜯어먹혔다. 첫 맛을 본 쯔르레이의 감상은 이랬다.

    ‘맛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쯔르레이는 흠칫 놀랐다. 끔찍한 생각이었다. 이 피투성이 심장이 맛있다니.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데 한 입을 맛본 순간 그것이너무나도 달콤하고 감미롭게 쯔르레이에게 다가왔다. 그것이 쯔르레이에게는 너무나도 죄스럽게 다가왔다. 이것은 결코 그렇게 먹어서는 안되는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뮈미르의심장이니까. 이것을 먹는 것은 아주 괴롭고 끔찍한 고행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기가,  맛이, 그 식감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차마 참을 수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다시금 한입 뮈미르의 심장을 뜯어먹었다. 그것은 마치 솜사탕처럼 가볍게 뜯겼고, 금방 입에서 녹아 없어졌다. 또한 과자처럼 달콤했다. 너무나도 매혹적인 이름이었다.

    용의 그것은.

    거부감 같은 것은 솜사탕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쯔르레이의 먹는 속도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결국에는 생하울라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게걸스럽게 심장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피 한 방울 흘릴까 아까워 손에 묻은 것까지 남김없이 핥았다.

    그 광경을 생하울라는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무표정이 아니었다. 작지만  얼굴에는 분명한 희열이 담겨 있었다.

    “그래, 오로지 너만이,흑룡 울푸레를 죽일 수 있는거다.”

    생하울라가 말했지만 쯔르레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딴 것보다는 당장의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생하울라? 그게 뭐지? 울푸레는 누구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먹어라! 먹어치워라! 반룡의 심장을 먹고  심장이 하나가 되리니! 그리하여 너는 진정한 용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맛있다. 너무나도 맛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은 더 없을 것이 분명했다.  먹고 싶었다. 먹고 싶었다. 더! 더욱! 내게 가져와라!

    “용을 먹는 용이 되어라…. 나의 자매, 우르테가.”

    아!!!

    ~

    생하울라는 뮈미르를 데리고 바깥으로 향했다. 그가 데리고 있는 뮈미르의 가슴팍에는 하나의 고풍스러운 문양을 가진 단검이 꽂혀 있었다.뮈미르의 숨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뒤에서는 식탐에 차 바닥에 흘린 피까지 핥아먹기 시작한 쯔르레이가 있었다.  모습이 역겨울 법도 한데, 그럼에도 쯔르레이는 아름다웠다.

    온 몸에, 얼굴까지 피칠갑을  채 피를 핥는 쯔르레이의 몸은 검은 비늘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머리칼은 이미 금빛 깃털로 바뀐지 오래였다.

    차마  핥을 수 없을 만큼 바닥의 피가 말랐을 시점에서 쯔르레이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냄새를 맡았다.

    맛있는 것의 냄새였다.

    이렇게나 맛있는 것이, 또 있었다.

    그것의 냄새는 저쪽 길을 따라 사라지고 있었다.

    쯔르레이는 천천히 그 냄새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그는 언제나 사냥꾼이었으니.

    ~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 뮈미르의 몸인 것은 당연했다. 생하울라는 뮈미르의 몸을 들고 지상으로 향했다. 길이란 길은 뮈미르가 퍼부었던 중력장 때문에 무너져있었다. 물론생하울라에게 신경 쓰일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입구의 앞에는  명의 오크가 있었다. 중력장의 여파가 결계를 뒤흔들어서 바깥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 확실했다. 나무와 바위는 찌그러져 있었고 입구는 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오직그 정도를 견딜 수 있는 강자인 율라티에 뿐이었다. 벤클과 불타르, 나머지 정보원들과 아이들은 모두 일찌감치 피신을 떠난 상태였다.

    율라티에는 망연자실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생하울라와 뮈미르를 보고 있었다.

    “생하울라님… 정녕 그 청년의 이야기가 사실이었습니까?”

    “율라티에, 오랜만이구나.”

    율라티에는 혼란스러워보였다. 생하울라는그가 존경하고 믿고 마지 않았던 이였다. 그는 가장위대한 전장의 순례자였고 오크들의 영웅이었다. 그가 노예상인들과 결탁하고 있었던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피범벅이 되어있는 뮈미르가 잠들어 있었다.

    “어째서… 뮈미르님을 죽인 것입니까.”

    “자네가 알 바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말하는 생하울라의 표정은 대답을 거부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쾌했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평범하게 즐거워 보였기에 율라티에는 이 상황이 마치 연극 같다고 느껴졌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당신이….”

    그러나 연극에는 막이 있는 법.

    이번 막은 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그에게는 더 말을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율라티에는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생하울라가  일을 벌인 사람이라면 그를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아주 잠깐 그가 입을 여는 사이, 생하울라 대신 그의 도끼가 대신 그에게 대답을 전해주었다.

    율라티에의 삶은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마감지어졌다.

    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몸은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생하울라는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문서를 꺼내들었다.

    “미안하네.”

    생하울라가 문서에 후하고 바람을 불자  문서는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광경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생하울라는 물론 놓치지 않았다.

    생하울라가 도끼를 집어던지자 나무가 갈라지고 그 뒤에 숨어있는 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절묘하게도 그에게는 도끼가 닿지 않았고 불타르는 목숨을 부지했다. 불타르가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말했다.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이미 깨달았다.

    “…도둑질 은퇴하는 게 맞긴   같군. 이래저래 다 들키고 말이야.”

    “자네 솜씨는 훌륭했네. 상대가 나빴을 뿐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죠? 그처럼 나도 죽일 생각인가요?”

    불타르는 말투는 꽤나 날이 서있었다. 도끼가 날아오는 것을 봤을 때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은 죽지 않았다. 그렇기에 불타르는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직감하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렸다.

    “이쪽으로 오게나. 오지 않는다면 자네의 말처럼 될지도 모르겠지.”

    불타르가 생하울라에게 다가갔다. 둘이 마주 서게 되자 불타르는 위압감에 질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것이 진정한 초월자의 힘인가. 힘이 빠지고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 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불타르는 참았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도망 간다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그 미래가 현실이 될 테니까.

    “흐음… 아슬아슬하군. 하지만… 합격이다.”

    그리고 생하울라는 익숙한 느낌으로 품 안에서 병을 꺼내들었다. 안에는 쯔르레이의 피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 능숙하게 병의 뚜껑을 따버린 생하울라는 불타르의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억지로 병을 그의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으윽!”

    “잘삼키게. 한 방울이라도 떨군다면 죽을 테니까.”

    그 말에 필사적으로 불타르는 입에 들어오는 것들을 삼켰다. 끔찍한 맛이었다. 역겹고 더러웠다. 쓰고 추악했다. 그런 죄악스러운 맛이었다.

    이런 맛이 감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용납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토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야만 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사약을 마시는, 그런 말도 안되는 기분이었다.

    결국 불타르는 모든 피를 마시고 말았다. 생하울라가 그를 놓아주자 그는 당장에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침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다. 멀리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한쪽에서는 살람의 기사들, 다른 한쪽에서는 벤클의 정보원들이었다. 생하울라는 불타르를 향해말 한 마디를 남기고는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잘 보살피게나. 그리고 잘 막아보게나.”

    불타르는 그 말에 이미 무너진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생하울라가 뚫고 지나온 길이 그대로 보이는 그 곳에는,

    기어다니는 한 작은 소녀가 있었다.

    머리가 금색 깃털로 장식된 산호 색깔 적색 눈의 소녀였다. 그러나 소녀의 몸에는 군데군데 검은 비늘이 돋아 올랐고 그 등에는 기형적으로 생긴 징그러운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달려있었다. 추악했다. 그러나 어쩐지 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눈에는 빛이 서려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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