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건방지구나.]
뮈미르가 서서히 생하울라를 향해 다가갔다. 그 걸음에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강한 힘이 담겨있어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위압감이 생하울라에게로 향해 들어갔다.
그러나 생하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위압감을 받아채고는 앞으로 나섰다.
[감히, 이 몸을 한낱 심장 따위로 표현하다니.]
쯔르레이는 뮈미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거인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지금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뮈미르의 무표정은 이미 깨진지 오래였고 고고한 분노가 그 얼굴에 흘러 담겨 있었다.
[천한 오크 따위가, 너무나도 건방져,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구나.]
[…처음 뵙겠소. 거인 왕녀.]
그러한 분노에 생하울라 역시 능숙한 거인어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 안에 왕녀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예의 같은 것은 없었다.]
[무릎 꿇어라, 비천한 것.]
[아쉽게도, 당신의 상냥한 거인 노예들은 아닌지라, 그 부탁은 들어줄 수없겠군.]
[상이하로다는거냐, 한 때 엘프들의 노예를 자처한 것이.]
[그것이 용의 노예보다는 낫지 않겠소?]
둘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서로를 매도했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쯔르레이는 다만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차원이 달랐다. 쯔르레이조차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고 그것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농은 그만하도록 하지.”
다행히도 생하울라가 쯔르레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바꿔주었다.
“거인 왕녀 뮈미르, 당신의 심장을 받으러 왔소.”
“맡겨놓은 듯 말합니다. 비참한 것.”
“나는 그대들에게 충분히 맡겨놓은 것이 많은몸이니.”
생하울라가 옆에 놓여있는 자신의 반신, 거대한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뮈미르를 향해 다가갔다.
생하울라의 키 역시 평범한 인간보다는 훨씬 컸지만 뮈미르에게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생하울라의 키는 뮈미르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 그러나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녀려보이는 뮈미르에 비하면 생하울라의 우락부락한 몸집은 충분히 그 제값을 하고 있었다.
“돌려받도록 하지.”
생하울라가 도끼를 휘둘렀다.
양손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생하울라의 힘은 굉장했다. 뮈미르는 단순한 뒷 달음박질로 그것을 피해냈으나 그 뒤에 몰아치는 바람에 휘청였다.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라도 무기 없이 나를 상대할 수 있겠소?”
“그 귀여운 도끼로 이 주먹을 잡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잠시 멈췄으나 쯔르레이는 자신이 랜슬롯을 갖고 있는 것 때문에 뮈미르가 고전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랜슬롯을 손에 쥐고 소리쳤다.
“뮈미르!”
랜슬롯을 뮈미르에게 던지려고 한 쯔르레이였다. 그러나 소리친 것이 무색하게 쯔르레이의 손에서 던져진 망치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힘없이 떨어졌다.
“뭐야?!”
쯔르레이는 알 수 없었으나, 그곳에는 이미 생하울라가 펼쳐놓은 결계가 있었다. 쯔르레이의 안전을 위해 두 사람과 격리시켜 놓은 결계가. 생하울라가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그것이 뮈미르에게는 꽤나 불리하게 작용되어졌다.
“이 결계는 당신이직접 만든 거였군요.”
“소싯적에 조금 공부해봤다오. 주술이란 것이 꽤나 쓸모가 있어서 말이지.”
그러나 생하울라의 결계는 조금이라고 표현할 정도가 아니었다. 확실히 그것은 강력했고 적어도 쯔르레이의 손으로는 깨부술 수 없었다. 쯔르레이는 랜슬롯으로 결계를 계속해서 공격했지만 흠집도 나지 않았다.
“전사인 척 하더니 비겁합니다.”
“전장에서는 살아남는 자가 정의지.”
“비천한 정의로군요.”
“마음껏 말하시게나.”
“용의 피로 결계를 짜는 것도?”
“눈이 좋으시구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공방을 이어나갔다. 한 방, 한 방의 공격이 방을 부수고 지반을 흔들었다. 생하울라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바람이 벽을 부쉈고 뮈미르가 지르는 주먹이 땅을 갈랐다.
뮈미르는 생각하고 있다.
허세를 조금 부려봤지만 확실히 뮈미르는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 정도는알고 있었다. 무기가 없는 것 정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결계는 분명 용의 피로 만들어졌고 그것이 뮈미르의 힘을 압박하고 있었다.
무기를 받기 위해 쯔르레이에게 있는 결계를 부숴버릴 생각도 해봤지만 용의 피로 만든 결계가 깨질지 확신할 수도 없고 생하울라 역시 계속 두고 볼 생각은 없을 것이다.
다시금 거대한 도끼가 뮈미르의 허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뮈미르는 이번에는 반대로 안쪽으로 들어가서 피해 주먹을휘둘렀지만 생하울라는 도끼를 땅에 내려 놓고 그대로 주먹으로 마주했다. 아무래도 박투술에 능한 것은 뮈미르만이 아닌 것 같았다.
생하울라는 그대로 뮈미르를 잡아 집어던졌고 다시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땅을 향해 그대로 도끼를 끌어 박아 버렸다. 지하임을 생각하고 한 일은 맞는 걸까, 땅은 그대로 갈라져서 거대한 협곡을 만들 듯이 벌어졌고 그 충격은 벽을 넘어서 까지 이어졌다. 뮈미르가 땅을 디딛는 것을 힘들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계속되는 전투에이미 주변은 반파 되었다. 벽은 무너졌고 땅은 갈라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아직 남아있던 노예 상인들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지만 이미 결계로 막혀서 그들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전투의 무대는 점점 넓어졌다. 뮈미르는 무기가 없으니 만큼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빈틈을 노리려고 했고 반대로 생하울라는 적극적으로 뮈미르를 공격하기 위해 들이대었다. 결국 노예 상인의 거처는 점점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도망치기만 할 생각이오?!”
뮈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대답할 시간에 그가 휘두르는 도끼를 피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생하울라는 점점 집요하게 그녀를 몰아쳤다.
생하울라의 도끼에 강렬한 생기가 물들었다. 생하울라 역시 이 답답한 교전이 이어지는 상황을 타파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오직 초월자들만이 쓸 수 있는 경지의 것이었다. 자신의 생기 그 자체를 뽑아내어 싸우는.
뮈미르 역시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다. 생기를 두른 채 휘둘려지는 그의 도끼를 뮈미르가 맨손으로 붙잡은 채 막아내었다. 단단한 뮈미르의 피부도 그 도끼를 막지 못해 피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뮈미르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도끼를 붙잡아 반대로 휘둘러버렸다.
생하울라에게 들어가는 첫 번째 일격이었다. 도끼에 끌린 채 공중에 던져진 생하울라를 향해 뮈미르가 주먹을 내질렀다. 생하울라는 그대로 뒤로 날라갔고 그의 입에선 피를 토하고 말았다.
“쿨럭!”
뮈미르는 거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땅에서 피를 토한 채 잠깐 눕혀진 생하울라를 향해 달려가 그의 도끼를 걷어찼다. 이 싸움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기의 차이였으니까. 잠깐은 생하울라의 도끼를 그대로 사용할 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주술을 사용하는 이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
무기를 잃어버렸지만 생하울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내질러오는 뮈미르를 일어나는 반동을 통해 주먹을 잡아 다시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그 틈을 이용해 생하울라는 멀리 날아가버린 도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생하울라의 도끼가 날아와 다시 그의 손에 쥐어졌다.
무기를 뺏는 것은 무리인가. 하고 뮈미르가 생각했다. 여기까지 오면 말은 더는 필요 없으리라. 생하울라가 다시 달려들었다. 지금까지는 힘을 비축하고 있던 거였다고 말하듯 아까까지 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였다. 그 속도에 뮈미르조차 결국은 정면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한 손으로 생하울라의 도끼를 막아냈다. 아직은 여유였다. 그러나 그 생각과는달리 뮈미르는 뒤로 밀렸고 벽까지 몰렸다. 뮈미르는 뒷발차기로 벽을 부쉈고 공간은 충분히 늘었으나 생하울라의 힘은 대단했다.
뮈미르도 계속해서 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 결국에는 다시 원점, 아니 그보다 더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리라.
저 멀리서 쯔르레이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어떻게든 결계를 부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쯔르레이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뮈미르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땅에 발을 박아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짧은 순간이 패착이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아주 잠깐의 순간 발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 순간 생하울라가 그대로 도끼를 뒤로 빼버렸다. 덕분에 갑자기 상대할 것이 사라진 뮈미르가 아주 조금 휘청였다.
그 순간 생하울라가 도끼를 휘둘렀다.
뮈미르의 왼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뮈미르!!!!!!”
쯔르레이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빠듯하게 유지되던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뮈미르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뒤로 빠졌지만 생하울라는 가만 보지 않았다. 그대로 뮈미르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팔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린 뮈미르는 반항하였다.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더라도 그 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남은 오른팔로 생하울라를 공격했다. 오른팔이 멱살을 잡고 있는 생하울라의 오른팔을 계속해서 두드렸지만 생하울라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의 팔이 흔들리는 것은 느껴졌다. 그러나 결정적인 타격은 들어가지 않았다. 생하울라는 그대로 뮈미르를 붙잡고 집어던졌다. 방향은 쯔르레이의 결계가 있는 곳이었다.뮈미르는 결계에 부딪혀 튕겨나오며 그대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려는 뮈미르를 향해 생하울라가 도끼를 들어 올렸다.
“안돼!”
그 순간 쯔르레이의 힘이 닿은 것일까 결계가 깨졌다. 뮈미르와 부딪힌 충격과 쯔르레이가 계속 두들긴 효과 덕분이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휘둘려지는 도끼와 뮈미르의 사이를 막으려고 끼어들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온 몸에 갑작스런 통증이 느껴진다. 불타는 것처럼, 온 몸에 강렬한 격통이 느껴졌다. 기억에 있는 통증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쯔르레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쯔르레이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뮈미르였다.
뮈미르는 쯔르레이에게 주박을 발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생하울라의 도끼가 뮈미르의 목을 향해 내려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