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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52/162)


  • 〈 152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쯔르레이의얼굴은 고집스러웠다. 자기 자신도 알고 있는 걸까. 그 길이 어리석은 길이라는  알고 있는 걸까. 그렇지만 어리석은 길이긴 해도 그것이 틀린 길은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그걸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그것이 틀린 길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 것이었다.

    뮈미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쯔르레이 잠시만 기다리시겠습니까.”

    “…?”

    뮈미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거대한 망치를 꺼내왔다. 거의 뮈미르의 키에 필적할만큼 거대한 장도리 망치였다. 마치 대장장이 신이 사용할 법한 모습의 거대한 망치는 무기라기 보다는 공구처럼 생겼지만, 그 크기만 봐도 알 수 듯이 무기로 사용하는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가져가십시오.”

    쯔르레이는 당연히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이런 거대한 물건을 쯔르레이가 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곧 쯔르레이의 표정이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뮈미르가 들고 있던 거대한 망치가 아주 작은, 장난감 수준의 크기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는 뮈미르는 장난감 수준으로 작아진 망치를 쯔르레이의 손목에 갖다대었다. 그러자 망치는 곧 작은 팔찌로 변해 쯔르레이의 손목에 감겨들었다. 팔찌는 쇠로 만들어진 투박한 고리 같았다.

    “이건…?”

    “‘랜슬롯’이라고 합니다. 제 애병. 쯔르레이의 검, 솜뭉치를 만든 드워프들이 만든 무기 중에 하나이죠. 자유자재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솜뭉치처럼 무게를 조절할 수는 없으니, 쯔르레이가 다룰  있는 크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솜뭉치를 다루는 쯔르레이라면 충분히 사용 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뮈미르의 애병을 왜 나한테….”

    “지금 가는 곳에는 솜뭉치를 들고가지 못할 것 아닙니까. 적어도 자기 자신을 지킬 힘 정도는 갖고 있어야겠지요.”

    뮈미르는 알고 있는 것이었다. 쯔르레이가 어떤 역할로, 어떤 상황으로 그들과 싸우게 될지를. 어쩌면 뮈미르가 말린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뮈미르는 쯔르레이를 말렸겠지만, 적어도 아까보다는 마음이 편해진 노릇이었다.

    “꼭 돌려주셔야 합니다. 소중한 물건이니까요.”

    “…알았, 다.  돌려주러…돌아오겠다.”

    뮈미르의 선물은 쯔르레이게 의미가 컸다. 쯔르레이는 솜뭉치 없이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당연하지만 미끼로 잡혀들어가면 솜뭉치를 갖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쯔르레이는 전투력을 상실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걸 해결할 도구를 쥐어준 것이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뮈미르는 쯔르레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쯔르레이가 곧 뮈미르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뮈미르는 다시금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도시와 완전히 멀어지자 뮈미르는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말들을 풀어주었다. 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숲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뮈미르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말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뮈미르는 마차를 보며 주문을 외웠다. 곧 마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고 뮈미르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목적지는, 지금 떠나왔던 도시.

    노예상인들의 본거지 에레보스이다.

    앞서 말했던 것과는 달리 뮈미르는 가만히 쯔르레이를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정말로 쯔르레이가 그 일에 참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더라면 뮈미르는 주박을 발동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발동시키지 않은 것은  불길한예지 때문이었다.

    뮈미르는 무대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됐다.

    피해갈  있는 길이었다. 쯔르레이도 느꼈고 뮈미르도 느꼈으리라.

    그러나 둘은 방법은 다를지 언정, 똑바로 마주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용혈의 숙명이리라. 용들은 교활하고 탐욕스러우나 어리석어 결코 뒤를 돌아보지 못하리니.

    그 예지를 정면으로 마주해 모든 것을 없애리라 마음 먹을 것이다.

    그렇기에 알지 못하리라.  선택이 결국 모든 것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임을.

    곧 에레보스에 폭풍이 몰아치리라.

    ~

    돌아온 쯔르레이는 곧바로 여관 문을 쾅! 박차고 들어갔다. 안에는 벤클과 율라티에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왔군. 도망친 줄 알았는데.”

    “닥쳐라. 도망치는  이제 질렸어.”

    “좋은 기세다.  이리로 따라와라.”

    쯔르레이는 별 말 않고 벤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쯔르레이의 모습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그런 쯔르레이를 데리고 벤클이 율라티에에게 쯔르레이를 선보였다.

    “어때?”

    “감쪽같군요.”

    쯔르레이의 모습은 이전의 귀티나는 귀족 같은 모습과는 확실히 거리 있게 변해있었다. 옷은 거적데기로 바뀌었고 아름답고 깨끗하던 금발머리는 더러운 갈색머리의 가발로 자취를 감추었다. 무엇보다 그 얼굴, 가짜 흉터를 붙이고 먼지를 치덕치덕 쳐바른 그 얼굴은 완전히 빈민가의고아와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원판 얼굴의 미모 자체는 완전히 가리지 못했기 때문에 쯔르레이는 얼굴은 예쁜데 고아에 빈민가 출신인, 노예상인 입장에서는 꽤나 먹음직스러운 미끼로 완성된 것이다.

    거울을 본 쯔르레이조차도 자기 자신이 이렇게 변했다는게 신기할 지경이었으니 벤클의 솜씨는 확실했다.

    “이대로 빈민가에서 적당히 굴러다니다 보면 알아서 상대가 잡아갈 게 분명해.”

    “그래서 계획은 어떻게 되지? 설마 이대로 붙잡히고 나서 알아서 탈출하란 건 아닐테고.”

    “목적은 어디까지나 증거 확보다. 자 이걸 먹어라. 씹지 말고 삼켜야 돼.”

    벤클이 건네준 것은 빨간색 동그란 알약이었다. 쯔르레이는 살짝 의심스러웠지만 이제 와서 뭘, 하면서 그 약을 곧바로 삼켜버렸다.

    “흠…좋아. 자 기다려봐라.”

    그렇게 말한 벤클은 갑자기 여관의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는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쯔르레이의 머릿속에서 벤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들리나?’

    “뭐지, 이건?”

    ‘좋아, 들리나 보군. 효과는 확실하군 그래.“

    말을 마친 벤클이 다시 2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쯔르레이가 방금 삼킨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알약은 마도구의 일종이다.  위치를 파악하고 이렇게 대화도  수 있는 굉장한 물건이지.  어느 정도 거리 제한이 있긴 하다만 이 도시 하나 정도는 커버할 수 있으니 그건 그리 문제가 안되겠지.”

    “놀라운 물건이군. 이런 건 어디서 났지?”

    “그건 영업 비밀이지. 기간은 사흘이다. 사흘이 지나면 마도구가 네 안에서 소화되어 그대로 사라져버릴 거다. 사흘 안에 정보를 찾아서 연락하면, 우리가 그쪽을 습격할 거다. 뭐 놈들은 도망칠테지만 정보만 확보하면 살람 후작을 압박할  있게 되고 그럼 줄줄이 해결될 거다. 하지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으니까 중요한 상황에만 연락해야 한다.”

    “말은 쉽게 하는군요. 물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살람 후작과의 거래 증명서류 같은 걸 찾아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겁니다. 다만 증거를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노예들을 구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헛소리하지말고. 증거 찾아와라. 그거 못찾으면 당장 노예들은 구할 수 있을지라도 왕국에서 해결 못하고 놔버릴 지도 몰라서 말짱도루묵이니까.”

    실패하더라도 쯔르레이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있다고 안심시켜주려하는 율라티에와 달리 벤클은 신랄했다. 왕국에 충성하면서도 왕국을 믿지 못하는  모습은 모순적으로 보였다.

    “흰소리가 아니다. 괜히 들쑤셔놓고 아무런 성과가 없으면 살람 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닐 테니. 왕국에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할 생각일거야. 타국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나는 그런 정치적인 얘기까지는 모른다.”

    “하긴, 내가 애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자, 여기 받아라.”

    벤클은 쯔르레이에게 작은 나이프를 두 개 건넸다.

    “하나는 열쇠 구멍에 박으면 문을 열어주는 마도구다. 굉장히 비싼거라고.아마  다섯  정도 쓰면 녹아버릴 테니까 조심하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을 찌르면 상대방을 곧바로 마비시키는 마도구다. 어지간한 놈이라면 통하겠지만 진짜 강한 놈들 상대로는 안통하니 조심해서 써야 한다.”

    “강한 놈들이라면 어느 정도로?”

    “여기 이 오크놈 정도라면 안통할 거다.”

    “그렇군.”

    “이거 참….”

    율라티에가 자신이 대상으로 쓰인 게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쯔르레이는 그걸 보고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자네는 얼마나 강한거지?”

    “글쎄요. 특별한 기준이 없이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생하울라와 비교한다면?”

    그러자 율라티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더니 그가 정색하면서 말했다.

    “제가 수십이 있어도 그  한 명에게는 못당할 겁니다.”

    “그는 자네 다섯이 있으면 능히 그를 상대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글쎄요,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할 일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입발린 소리이실 겁니다.”

    율라티에는 잠시 입을 닫고 고민하다 말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뮈미르님이라고 하더라도 생하울라님에게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겁니다.”

    “뮈미르는 반룡인데도?”

    “반룡인데도 그렇습니다. 생하울라님은 평범한 초월자와는 다릅니다.”

    “….”

    쯔르레이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거 그렇게 강하다면, 지금까지 그가 자신에게 해준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째서 그는 자신의 강함조차 숨기려고 한 것일까? 그와 자신의 관계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기만 뿐이었나? 율라티에는 생하울라가 결코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닐 것이라 말했지만 그걸 쉽사리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더는 율라티에에게 묻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생하울라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애써생각을 뒤로 물리며 쯔르레이가 벤클에게 물었다.

    “언제 시작하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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