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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51/162)


  • 〈 151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다행히 마차가 출발한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오래 걸을 필요는 없었다. 율라티에와 술을 마셨던 여관은 조촐하게 쯔르레이를 반기고 있었다.

    여관 안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쯔르레이와 율라티에가 발을 들이자 일전, 쯔르레이에게 금화를 받아갔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꼬리를 잡았나?”

    “다른 것만 잡고 왔지. 술이나  잔 내오게.”

    율라티에의 대꾸에 남자가 쯔르레이를 바라보더니 혀를 채고 말했다.

    “이런 쓸모없는 오크 같으니.”

    율라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벤클을 가리키며 쯔르레이에게 말했다.

    “이쪽은 벤클이라 합니다. 이미 면식은 있으시겠죠.”

    “벤클이다.”

    “쯔르레이다.”

    통성명은 서로 퉁명스럽게 끝이 났다. 이미쯔르레이 자신이 실력을 검증했기 때문일까, 벤클은 별 말을 꺼내진 않았으나 그 태도에서 불만이 새어나왔다. 그는 그 태도대로 뒤로 돌아 술과 우유를 꺼냈다.

    “우유?”

    “어린애는 우유나 마셔야지.”

    쯔르레이의 속을 긁는 대사였다. 그의 불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쯔르레이도 술을 마시고 아직도 숙취가 가시지 않은 것을 알기에 괜한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술을 즐기지도 않았으니.

    먼저 입을 연 것은 우유 한잔을 마셔 입가에 하얀 자국을 남긴 쯔르레이였다. 쯔르레이가 율라티에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정확히 이 곳은 어떤 곳이지?”

    “너,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데려온 거냐? 쓸모있는 전력이라면서,”

    율라티에는 손을 들어 벤클의 말을 끊었다. 지금은 벤클의 투정을 들어줄때는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정보 길드라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만, 사실 왕국 산하의 정보 기관으로 살람 후작이 지나치게 빠르게 세를 불리는 것에 의문을 가진 왕국에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출범한 조직입니다.”

    “왕국이라고? 그치들도 마냥 무능한 건 아니었군. 그렇다면 그대는 왜  곳에?”

    “제가 이미 떠난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서리 갈기 부족에서 죽은 귀족의 일, 알고 계시겠죠.”

    “…알다마다.”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서리 갈기 부족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자신이란 존재의 이질감을 직접 깨닫게 되는 일, 자신이 바로 그 일의 장본인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서리 갈기 부족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조용히 율라티에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 귀족 애송이가 죽은 걸로 인해 왕국과 서리 갈기 부족 사이에는 어느 정도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만 그 애송이가 워낙 평판이 안좋았던지라 왕국에서도 어느 정도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다만.”

    “다만?”

    “그들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노역을 부과했습니다. 인력을 요구한 셈이죠.”

    “인력이라고? 하지만 너는 서리 갈기 부족이 아닐텐데.”

    “물론 저는, 늙은 뿌리 부족 출신이지만, 서리 갈기 부족에게는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도 많고, 또 노예 상인 쪽에서 오크를 취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으니, 수도사로써 제가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요. 당연히 나서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르만 루드빅의 일은 다행히도 잘풀렸던 모양인가보다. 오래전 일이었고 자신의 일에 하도 치여 지내다보니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일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듣고보니 적당한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다행이군.”

    “아마 생하울라님께서 힘을 써주신 게 틀림없겠죠.”

    “…그의 얘기는.”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군요.”

    쾅! 하고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둘을 주목시켰다. 이 장소에 셋 밖에 없으니 당연한거지만 소리의 정체는 벤클이었다. 벤클은 짜증이 가득난 말투로 쯔르레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이번에 잡아온   꼬맹이 하나 뿐이라면 나도 할 말은 꽤 많은데.”

    “…지금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거지?”

    “별로 좋진 않습니다. 상대는 주술로 정체를 감추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진 영리하게 꼬리를 감추고 있어서 흔적을 찾지 못했지만 갑자기 이 주변의 아이들을 납치하는 일을 벌이고 있어 조금 수사가 진전되는 기미가 있다 정도 겠군요.”

    “그리고  기미가 보일라말라 하는 상황에서 네가 데려온 건  꼬맹이 하나 뿐이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벤클. 하지만 쯔르레이님은 충분히 전력이 되는 분입니다. 상대방에 초월자가 있다는 것이 단순한 소문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으니 전력은 많을 수록 좋습니다.”

    “네가 좀  제대로  증거만 찾아온다면, 라로슈님을 불러올 수도 있다. 폐하께서는 살람 후작의 상승세를 경계하고 계시니 라로슈님을 부르는 것도 가능해. 어디까지나 증거가 있다면 말이지만. 그러니까 증거! 증거를 갖고 오라고!”

    아무래도 벤클은 진전이 없는 이 상황에 상당히 짜증이 나있는  하였다. 증거를 부르짖는 그의 모습은여러모로 답답함이 미쳐보였다.

    “상대는 영리합니다. 적어도 초월자가 실제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패를 드러내진 않겠죠. 어떻게든 살람 후작과의 연계를 증거하거나 초월자의 존재를 증거할 수 있어야 르로망샤 경을 부를  있을 겁니다.”

    마냥 쉽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들 뿐이었다. 결국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우유를 한 잔 더 비운 쯔르레이는 떠올리는게 있었다. 그것은 루비를 만났던 날, 뮈미르와 함께 보았던 것. 아인족들의 노예가 나오는 서커스. 쯔르레이가 물었다.

    “서커스는?”

    “물론 이미 그쪽도 조사해봤습니다. 아인족의 노예와 노예 상인이라, 이렇게도 수상한 얘기도 따로 없을 이야기라 당연히 그들이 왔을때부터 조사했지요.”

    “그렇다면 결과는….”

    “예, 무혐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영지나 외국에서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없습니다. 노예도 모두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들이었죠.”

    “결국 방법은….”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 꼬맹이 하나 데려온다고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닐…지도모르지만.”

    벤클이 쯔르레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는 키를 재보고 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행동에 쯔르레이가 그의 손을 치워내며 되물었다.

    “확실히 딱이군.”

    “무슨 소리지?”

    “키도 적당하고, 얼굴도 반반하고, 아니, 좀 너무 반반한거 같기도 한데 그건 화장으로 커버할  있고 괜찮긴 하군.”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데.”

    “무슨 소리겠어? 미끼 얘기다.”

    쯔르레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쯔르레이는 율라티에를 돌아보자, 그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쯔르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 소리가 안나올 수가 없었다.

    “너, 이 자식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날…!”

    “진정하십시오, 쯔르레이님.”

    “빌어먹을, 어딜 가든 날 이용해먹으려는 녀석 밖에 없어! 미끼라고?! 또?!”

    “불쾌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원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강요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빌어먹을!”

    물론 율라티에의 강요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국은 허울만 좋을 뿐인 이야기였다. 여기서 거부한다면쯔르레이는 뮈미르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고  말은 루비의 구출을 포기한다는 말이 되었다.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루비의 구출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쯔르레이는 루비가 대체 뭐라고 집착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루비는 사실 진짜 친구도 뭣도 아니었으니까. 애정이 깃든 것도 아니다. 루비에게 가진 감정이 호감이라고 하면야 호감이겠지만 그것이 이렇게 미끼를 자처할 만큼의 거대한 호감도 아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빚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아니었다. 만난 것은 단 두 번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준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

    쯔르레이는 인간을 버릴  없었다.

    쯔르레이는 눈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가 있는데 그걸 두고갈  있는 성정이 되지 않았다. 못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쯔르레이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인간이 아니었기에, 조금 더 인간적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좀  인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쓸모가 있다고. 그래서야지만 쯔르레이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고.

    조금 인간다운 행위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인간성의 증명을 위하여.

    휘리엘을 구하기 위해 때려부순 암살자가 생각났다. 자신이 괴물이 되어 죽인 그 현상금 사냥꾼들을 떠올렸다. 인간이란 뭘까?

    대체 그게 뭐길래 자신에게 속죄의 업과를 부여하는 걸까?

    물론, 이것은 속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망할! 한다고! 그래, 한다고!”

    “좋은 생각하셨습니다.”

    결국 쯔르레이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할 것은 율라티에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젠장!”

    “어디가십니까?”

    “바람 쐬러 간다!”

    “그 전에, 저기.”

    “왜?!”

    “입가를 좀 닦으셔야.”

    “야!!!”

    ~

    쯔르레이는 뮈미르를 찾아갔다. 도망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뮈미르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뿐이었다. 뮈미르는 도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뮈미르를 향해 뛰었다.젠장, 젠장. 어쩐지 기분이 더러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만 같았다.

    쯔르레이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뮈미르는 천천히 마차를 몰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빠져나가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뮈미르!”

    뮈미르는 마차를 멈췄다.천천히 말들이 걸음을 줄이고 그녀가 마차에서 내렸다. 뮈미르는 쯔르레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쯔르레이를 불렀다.

    “쯔르레이.”

    “…무슨 말을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오지 않는거군요.”

    “그렇게 됐다.”

    “왜 그러는 겁니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쯔르레이가 말을 골랐다.

    “지나칠 수가 없다.”

    “어리석습니다.”

    “알고 있다.”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네 말대로 루비는 내게 아무 것도 아니다. 친구도 아니고 빚을 진 것도 아니지. 하지만… 이대로 두고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인간입니다. 쯔르레이.”

    “나도, 인간이다.”

    “아니요, 쯔르레이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으로 살아왔어!”

    “쯔르레이.”

    뮈미르는 가끔 무표정을 풀고 표정을 보일 때가있었다. 한번은 웃음이었고 한번은 분노였다. 그러나 지금의 표정은 안타까움이었다. 뮈미르가 쯔르레이를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열병에 걸렸군요.”

    무슨 이야기인지, 쯔르레이는  것도 같았다. 그렇다, 이것은 병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걸릴 수 없는, 인간이었기에 걸리는 열병.

    그러나 쯔르레이는 약을 거부했다.

    “아주 지독한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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