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0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50/162)


  • 〈 150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율라티에는 쯔르레이를 등에 업은 채 쯔르레이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갔다. 그대로 자신이 머물고 있던 곳에서 재우는 방법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나, 반룡 거인왕녀 뮈미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그것은 위험한 방법이었다.

    결국 율라티에가 쯔르레이, 더불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직접 데려다 줄  밖에 없는 일이었다. 만약 쯔르레이가 밝힌 일련의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런 배려는 불필요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다 쯔르레이와 만나 참견을 해버렸지만 율라티에는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거인왕녀에게 미움을 사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미 자신이 뮈미르의 진실을 밝힌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여관의 관리자와 여관 종업원들의 시선이 율라티에에게로 쏠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차림새부터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는 오크였으니까.

    율라티에가 가장 가까이 있는 종업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기, 이 아이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이를 방으로 데려다 주실 수 있겠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율라티에의 말을 이은 것은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뮈미르였다. 뮈미르는 천천히 율라티에에게로 다가와 쯔르레이를 건네 받았다. 독한 술의 냄새를 맡고 뮈미르의 얼굴이 살짝, 찌푸러졌다.

    “당신이 그 비밀을 말한 오크로군요.”

    “…예,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뮈미르님.”

    [닥쳐라, 감히  더럽고 가벼운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마라.]

    뮈미르가 거인족의 언어로 작은 분노를 드러냈다. 그 말은 어색했던 뮈미르의 인간어와는 달리 유창하고 고귀했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율라티에는 당황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거인족의 언어로 응대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살짝의 떨림이 있다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감히 왕녀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민폐를 끼쳐드렸습니다. 허나 언젠가는 밝혀졌을 진실, 새가 조금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벌레를 못잡는 것은 아니지요.]

    [감히 내게 훈계를 하는 게냐?]

    [잔인하신 왕녀님이여, 어찌감히 미천한 오크가 그리 입을 올리겠습니까? 저는 한낱 수도사일 따름이니, 그저 미천한 입이 지껄이는 흰소리라 생각하고 무시해주십시오.]

    [아이에게 술을 먹였군.]

    [그것은, 쯔르레이님의 의지였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물론 율라티에는 자신이 권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뮈미르는 더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는지 그대로 등을 돌려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흥, 흥이 식었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예, 그럼 부디.”

    율라티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겉으로는 침착하게 밖을 향해 나섰다. 적어도 몇  맞을 것을 각오한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을 맞이한 셈이었다. 어쨌든  성히 나간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닌가.

    자신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을 해결할 때까지는 최대한 조용히 있어야 했다.

    율라티에가 나가고 뮈미르는 쯔르레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뮈미르는 그러면서 생각했다.

    ‘슬슬 떠나야 할 시간인가….’

    뮈미르가 쯔르레이를 데리고 이곳에 오래 머문 것은, 오랜 여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뮈미르가 가진 것은 거인의 현명함과 용들의 탐욕이었다. 그녀는 쉽게 쯔르레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노리는 것은 익숙함이었다.

    용들의 눈에는 당신의 영혼이 보인다. 쯔르레이의 영혼은 감미롭고 달콤하여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주었다. 그것은 금시가 가진 특성이었다. 용들을 유혹하여 잡아먹기 위해 바다를 가르고 용을 불러내어 천천히 녹여먹는 금시들의 향이었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반룡, 반은 용이고 아마도 반은 금시이리라. 잡아먹힐 걱정도 없이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아름다운 향을.  향을 갖기 위하여 뮈미르는 그녀답지 않게 쯔르레이를 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았기에.

    그러나 지금 그 향을 편히 취하고 있는 것도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점점 얽히고 있는 것들이 생기는 모양이니, 이것도 운명의 일부분인가? 불길한 기운이 뮈미르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예지에 가까웠다. 예지가 뮈미르를 지배했다. 뮈미르는 쯔르레이가 일어나기 전에 이 곳을 떠나기로 뮈미르는 마음 먹었다.

    ~

    익숙치 않은 음주로 인한 숙취에 쯔르레이는 오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이 곧 마차 위에 있는  깨달았다. 며칠  신세를 졌었던 뮈미르의마차였다. 정신을 차리자마자쯔르레이는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뮈미르는 보이지 않았고 구석에는 자신의 짐과 옷가지들 그리고 솜뭉치가 있었다.

    쯔르레이가 앞으로 고개를 내밀자 마차에 말을 매고 있는 뮈미르를 찾을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슬슬 떠날 시간이 되었나 싶어서 말입니다. 쯔르레이가 일어나기 전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들켜버렸군요.”

    “…왜 내가 일어나기 전에 떠나려고 한거지?”

    쯔르레이는 물었다. 객관적으로 갑자기 이렇게 길을 떠나는 것은 그야말로 수상한 행동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있다. 뮈미르가 숨기는 무언가가.

    “굳이 이유가 필요합니까? 이 곳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습니다. 언제 출발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예, 갑자기입니다. 쯔르레이가 술을 마시고 온 걸 보면,  이곳에 놔두면 안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나는 어른이야. 술을 마셔도 상관없다.”

    “그렇습니까?”

    얼토당토 않는 뮈미르의 얘기에 쯔르레이가 변명했다. 다만 쯔르레이 역시 이 곳을 떠나는 것을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쯔르레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던가. 뮈미르의 태도가 조금 수상하긴 했지만, 막무가내로 거절할 이유는 없긴 했다. 하지만.

    “율라티에는 어떻게 됐지?”

    “그는 멀쩡하게 돌아갔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뮈미르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쯔르레이도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율라티에에게 들어야  이야기도 모두 들었으니 더 찾아갈 필요도 없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갑작스런 출발에 쯔르레이는 계속해서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남아있는 숙취가 생각을 방해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쯔르레이는 찬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사이 뮈미르는 준비를  끝낸 채 말을 몰기 시작했다. 두 마리의 말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쯔르레이는 마차의 뒷 부분에서 지나가는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차는  큰 몸집 때문에 대로변으로만 그 바퀴를 옮겼고 덕분에 골목길 풍경을 바라보게  일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놓치고 지나칠 뻔한 일이었다.

    아주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면.

    “도와주세요…!”

     목소리는 루비의 것이었다. 쯔르레이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차에서 솜뭉치를 들고 뛰어내렸다. 뮈미르가  말리기도 전에 쯔르레이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입이 막힌 채 괴한들에게 잡혀서 납치당하고 있는 루비가 있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노련했다. 쯔르레이를 상대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골목 안으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쯔르레이가 그들을 쫓으려 했지만 골목길은 복잡했고 그들은 생각보다 빨랐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 쯔르레이는 결국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이런 개 같은…!”

    쯔르레이가 욕설을 내뿜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루비가 납치당했다. 그러고보면 아이들이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멜리사도 사라졌었다. 그 다음 차례가 루비였던 것인가?

     순간 쯔르레이의 뒤에서 갑작스런 인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기척이었다. 쯔르레이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는 것은 율라티에였다.

    “결국 연관이되셨군요.”

    “이게 무슨 일이지? 당장말해!”

    “그 얘기는… 왕녀님에게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의 뒤에는 어느 순간 따라온 뮈미르가 있었다. 뮈미르는 언제나의  무표정을 고수한 채 입을 열었다.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쯔르레이. 신경쓰지 마십시오. 이대로우리는  도시를 나가면 되는 겁니다.”

    “내가 허락한다! 입을 열어라, 율라티에.”

    “….”

    율라티에는 고민이 가득해보였다. 뮈미르의 말에 따라서 그는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쯔르레이가 저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최근 살람 영지를 기점으로 노예 상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볼타르 왕국은 자국 내에서의 노예 매매를 금하고 있으니 모두 불법입니다. 볼타르 왕국을 지나는 아인종들이 많으니 그들을 잡아 다른 간티아 제국이나, 사막 왕국 슬라비아 같은 곳으로 팔아넘기는 것이죠. 아이들을 잡아가는 것은  연장선입니다.”

    “살람 후작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마도, 그가 수괴입니다.”

    “빌어먹을! 너는 그럼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네가 여기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저는 이곳에서 꽤 오래 전부터 그들의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명의 오크들이 이 곳에서 사라졌단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제대로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파악한 것은 있지만 저 혼자서 그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인 데다가,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 뒤에 한 명의 초월자가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뜻을 함께하는 자들을 모아 그들의 꼬리를 잡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초월자라고?”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는 쯔르레이의 혼자 힘으로는 똑같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자신을 계속 무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향해 뮈미르가 말을 꺼냈다.

    “다들, 제 말이 말 같지가 않나봅니다.”

    뮈미르가 작게 분노를 뿜었다. 그러나 율라티에와 쯔르레이는 모두 순간적으로 웅크렸다. 그럴 정도의 기운이었다.

    “그만하십시오, 쯔르레이.  들어서 뭣하겠습니까?”

    “루비를 구해야…!”

    “구해서요?”

    “뭐?”

    “루비를 구한다고 칩시다. 그럼 다른 모든 노예들을 구할 겁니까? 다른 모든 노예들을 구하면 그들은 어떻게 관리하고 구해주고 도와줄겁니까?”

    “그런 건….”

    “네, 쯔르레이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얘기겠죠? 그렇지만 그들을 완전히 제거 하지 않는 이상 쯔르레이가 무슨 짓을 해도 해결 할  없는 일입니다. 결국 다시 돌아오겠죠. 여전히 아이들은 위험한 상황일거고요. 쯔르레이가 계속해서 그들을 지켜줄겁니까?”

    애초에

    “루비라는 그 아이를 정말 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잖습니까.”

    쯔르레이는 말문이 막혔다.

    “애초에 오랜 기간의 만남도 아니었습니다. 쯔르레이, 딱 두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 작은 인연을 위해 이 거대한 일에 끼어들 생각입니까? 해결할 수도 없는? 잘생각하십시오, 쯔르레이. 이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말이었다. 쯔르레이는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만약 뮈미르와 계속해서 같이 다닐 생각이라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정이 쌓인 쯔르레이였다. 그렇지만 뮈미르의 저런 발언은 맞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목줄을 건 것까지 포함해서.

    그래서 쯔르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뮈미르가… 도와준다면.”

    “아쉽게 됐습니다. 저는쯔르레이의 누나가 아닌지라.”

    쯔르레이가 일전에 말한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뮈미르였다. 뮈미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는 쯔르레이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주박을 걸려고 하지도 않았다. 뮈미르가 말했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영지 바깥에 마차를 두고 있겠습니다. 쯔르레이가 원한다면 그 아이를 구하러가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와주는 일은 없을겁니다. 제 말에 따른다면 마차로 돌아오십시오.”

    “…그 주박으로 강제하지는 않는 건가?”

    “그 것은 정말로 필요할 때가 되면 쓸 겁니다. 이런 일에 까지 쓸 생각은 없습니다. 쯔르레이가 정말 원한다면 해야겠죠. 이것도 하나의 교육이 될 겁니다.”

    “…알았다. 가자, 율라티에.”

    “어딜 말씁이십니까.”

    “네 패거리가 있는 곳이겠지, 어디겠나.”

    율라티에는 앞장서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방향은 쯔르레이도 익히 알고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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