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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48/162)


  • 〈 148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쯔르레이는 솜뭉치를 챙겼다. 아이들과 놀러 간다, 라는 핑계를 대고 나가는 상황에서 들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율라티에에게 납치를 당할 뻔  걸 생각해보면 불안감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옷도 이전보다는 움직이기 편한 여행복으로 입었다. 뮈미르의 취향대로  옷이다보니 여전히 귀여운 옷이긴 했지만 전과는 달리 바지였고 실용성도 충분히 따진 옷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움직이는 것이 편했다.

    거대한 검을 등에 맨 채로 움직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확실히 눈에 띄기 쉬운 것이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아이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보다 우선인 것은 율라티에를 다시 만날 길을 찾는 것이었다. 우선은 자신과 율라티에가 같이 대화를 나뉘었던 골목부터 살펴보았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그곳에 율라티에가 기다리고 있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결국 쯔르레이는 주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혹시 낡은 사제복을 입고 로브를  오크를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간혹 율라티에를 목격한 사람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 며칠 전의 이야기였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던 도중 쯔르레이는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여관을 하나 발견했다. 이미 꽤 거리를 걸어온 지라 쯔르레이가 머물고 있는 여관이 있던 곳의 상점가와는 거리가 있었고 그것 때문인지 여관은 상당히 낡고 더러웠다.

    그러나 쯔르레이가 여관에 주목한 점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과거 쯔르레이가 거래를 했던 도둑 길드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기척들이 이 여관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쯔르레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 안에는 손님이  명도 없었다. 쯔르레이는 곧장 카운터로가서 졸고 있는, 졸고 있는 척을 하고 있는 주인장을 향해 말을 걸었다. 돌려 말할  모르는 쯔르레이 답게  말은 꽤나 직설적이었다.

    “정보를, 찾고 있다. 당신이 자고 있지 않다는  알고 있다. 바깥의 정보원들의 기척도, 알고 있다.”

    그러자 졸고 있는 척 하던 남자가 슬쩍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

    “…재밌는 꼬맹이로군. 장난은 그만치고 돌아,”

    “주점 옥상에 한 명, 뒷골목 사거리에  명, 이 앞에 행인으로 위장한 사람이 한 명. 더는 없는 거 같군.”

    남자는 당황스러운 모습을 애써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쯔르레이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으니 큰 효과는 없어보였다.

    “…하, 보통은 아니란 거군. 그래, 그래서 무슨 볼일인거지?”

    “아까도 말했듯이, 정보를 찾고 있다. ‘율라티에’ 라는 이름의 오크를 알고있나? 사제복을 입었고 로브를 쓰고 있었다.”

    쯔르레이가 율라티에의 이름을 입에 담자 당황을 감추고 있던 남자의 기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쯔르레이는 긴장한 채로 언제라도 솜뭉치를 꺼낼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그를  찾고 있는거지?”

    쯔르레이는 확신했다. 이 남자는 율라티에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정보의 의미가 아닌 선에서. 어쩌면 운좋게 대어를 잡은 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용무다. 물어볼 것이 있어.”

    “흠… 금액을 지불 할 수는 있고?”

    쯔르레이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이 갖고 나온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주머니에는 적지 않은 양의 금화가 들어있었다. 뮈미르가 준 것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쯔르레이는 이 돈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뮈미르에게 받은 것은 충분히 많았다. 원하던 호의는 아니었지만 받은 만큼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쯔르레이는 금화를 꺼내 내려놓았다.

    “하나로는 부족해.”

    쯔르레이가 다시 하나의 금화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남자의 입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쯔르레이가 다섯 개의 금화를 내려놓아서야 드디어 입을 열었다. 금화 5개면 일반적인 평민 가족의 생활비 반년치를 가뿐히 넘는 수준이었다.

    “오늘 밤, 다시 이 곳으로 오면 그와 접선할  있게 해주겠다. 다만,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접선은 불가야. 돈도 돌려줄 수 없다.”

    쯔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패널티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쯔르레이는 율라티에가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 할 때의 방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쯔르레이에게 뮈미르의 비밀을 말하고 바로 사라졌기에 묻지 못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뮈미르를 두려워(이 말이 맞는지는 알  없었으나 쯔르레이가 떠올릴 수 있는 어휘는 그것 하나 뿐이었다.) 하고 있었으니 쯔르레이와의 만남을 거절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쯔르레이가 길거리로 나왔다. 아마 율라티에에게 나름의 이야기가 흘러가겠지만 쯔르레이는  전에  나름대로 율라티에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이 쯔르레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루비였다.

    “앗! 쯔르레이다!”

    “…루비.”

    “안녕, 쯔르레이. 몸은 괜찮은거야? 물어서 여관에 찾아가봤는데 막,여관이 엄청 반짝반짝 빛나고 비싸보여서 막… 아, 이런게 아니지, 참. 아무튼 가봤는데 그 거인 언니가 쯔르레이는 아프다고 해서. 그래서 못만났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그래.”

    “쯔르레이는 말이 너무 짧아…. 우리랑 놀러 나온거야? 그 등 뒤에 검은 뭐야? 진짜 검이야? 되게 크다! 만져봐도 돼?”

    “아니.”

    “으응, 그렇구나. 난  쯔르레이가 놀러 오는 줄 알고… 사실 지금은 놀 수도 없겠지만.”

    “놀 수도 없다는  무슨 소리지?”

    “그게 실은… 멜리사가 사라져버렸어. 놀고 있는 중에 갑자기. 그래서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우디랑 다른 애들이랑도 같이 찾아보는 중이야.”

    우연이었다. 쯔르레이도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었는데 루비도 사람을 찾고 있던 것이었다. 쯔르레이는 생각을 바꾸었다. 어차피 율라티에를 만나는 것은 밤에 예정된 일이었으니 멜리사를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한 것이었다. 작은 호의였다. 같이 놀았던 아이들과의.

    “나도 도와주지.”

    “정말? 고마워! 저기부터 둘러보자!”

    루비는 이 일을 멜리사의 장난이라고 반쯤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까지는 쯔르레이와 같이 다니게 된 것에 대해 더 즐거워 하는 것 같았으니. 실제로 둘은 반쯤 잡담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쯔르레이는 거의 단문으로만 대답했지만 무시하지는 않았다. 루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밤이 되고 나서 다른 아이들과 만나고 그들 모두가 멜리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자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멜리사가 사라졌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어딘가에 납치를 당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얼마전부터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어쩌지… 멜리사가 안보여.”

    “어른들한테 알려야겠어.”

    “으응, 쯔르레이는 이만 들어가. 멜리사네 엄마 아빠한테는 우리가 말해줄 테니까. 조심해서 들어가야 해.”

    결국 아무도 멜리사를 찾지못한 채 아이들의 모임은 끝이 났다. 어찌되었건 간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랑 정해져 있는 법이었다. 루비는 쯔르레이의 시간까지 뺏고 싶진 않았는지 쯔르레이는 돌려보냈다. 물론 쯔르레이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밤이 어둑하니 이제 시간이 되었을거라고 판단하여 아까의 여관으로 발을 옮겼다. 닫혀 있는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쯔르레이가 만지지 않았음에도 문이 바로 닫혀 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직율라티에 혼자만이 술을 한잔 들이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벨투리안님. 앉으시죠.”

    “… 말하는 것이 늦었지만, 그 이름은 지금은 쓰고 있지 않다. 쯔르레이라고 불러라.”

    “쯔르레이, 종달새의 이름이로군요. 생하울라님께서 지어주셨습니까?”

    생하울라의 이름이 나오자 쯔르레이는 긴장했다. 이 자는 전장의 순례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걷는 수도사이며 생하울라는 전장의 순례자였다. 그와 생하울라의 관계가 얼마나 될까? 혹시 길을 떠난 그 후 둘은 만난 적이 있었을까? 그는 생하울라의 배신에 대해 알고 있을까?

    “그래.”

    “그  치고는 뛰어난 작명이군요. 저는 꼼짝없이 생슈크레 같은 거로 지어주기라도  줄 알았습니다.”

    “…그 이름도 명단에 들어 있었지.”

    “하하하!”

    율라티에는 거나하게 웃고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쯔르레이에게도 술을   건네는 것이 아니겠는가. 쯔르레이는 다시금 술을 율라티에 쪽으로 보내면서 거절했다.

    “술은 마시지 못한다. 거두어주게.”

    “이런 실례를 했군요. 그럼 이건 제가.”

    율라티에는 쯔르레이에게 건넨 잔을 다시 되돌리더니 자신이 마시는 술에 섞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술을 한잔 들이켰다. 다 마신 후에 그는 쯔르레이의 목덜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야기가 잘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래. 돌아가자마자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냐고 몰아붙였지.”

    그러자 율라티에가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몰아붙였다고 했다.”

    율라티에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의 당황스러움을 숨기지도 않고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 당황은 곧 그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쯔르레이는 그의 직설적인 물음에 살짝 이상함을 느꼈다.

    “제정신입니까?”

    “왜 그러지?”

    “제가 거인 왕녀를 조심하라고 한 건 당연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주시하라는 얘기였습니다. 설마 곧바로 그렇게 달려가서 말을 할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짧으셨던거 같군요.”

    율라티에는 예스런 말로 쯔르레이를 비난했다. 쯔르레이의 짧은 생각과 어리석음을 탓한 것이었다. 쯔르레이는 그걸 깨닫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솔직히 부끄러워 얼굴을 들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어리석은 짓이 맞았다.

    그러나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그 얘기를 꺼낸 것은 이미 뮈미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겨서였다. 뮈미르에게 숨기려고 했어도 그녀는 이미 자신이 율라티에를 만난 것을 알고 있었다. 쯔르레이가 변명했다.

    “뮈미르는 이미 자네와 내가 만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지…. 그때 사실, 잠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흔적을 느꼈다네.”

    “그럴 리가없습니다. 그녀 정도의 인물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제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자네와 만난 것을 알았단 말인가?”

    “냄새를 맡았겠죠. 그걸로 쯔르레이님이 오크와 만난 것은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었을 겁니다.”

    “….”

    “성급하셨습니다.”

    “그렇군….”

    결국 쯔르레이는 자신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같다는 얘기만큼은 철회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느낀 것이었기 때문에, 쯔르레이의 부끄러움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제 시선을 피할 수 있을만큼 강자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겠군요. 신경 써야 하겠습니다.”

    “믿어주는 건가?”

    “저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거인 왕녀의 낌새를 찾는데 온 신경을 다하고 있었으니 다른 누군가를 놓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죠.”

    “그런가….”

    다시 율라티에는 쯔르레이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쯔르레이가 살짝 희망을 담아 물어보었다.

    “그 주박은….”

    “풀 수 있나?”

    “아뇨, 제 힘으로는 무리군요. 술자 본인을 어떻게 해지우던가… 그보다 더 강한 술자가 직접 해제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단적으로 말해, 그녀는 반룡이니, 최소 초월자 수준의 주술사나 마법사가 아니라면 가능성이 없습니다.”

    “껄끄럽게 됐군.”

    “그녀가 공격한겁니까?”

    “그녀는 곧 사과했다네.”

    “사과했다고요?”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지. 그러나 주박은 풀어줄 수 없다고 했어. 내가 보기엔 적어도 거짓말은 아닌거 같아.”

    쯔르레이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분명 뮈미르가 말하는 것은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째 그녀를 변명하는 것과 같아서 어색하여 이상했다. 율라티에 역시  것을 느낀  얼굴을 굳혔다.

    “쯔르레이님. 기억하셔야 합니다. 용은 탐욕스럽고 교활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무서운 것은 그 강대한 힘 때문이 아니라, 감히 그 아래의 어리석은 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 성정 때문입니다. 그녀는 반룡이지만 용의 피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그 몸에 머물고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녀와 관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만… 이미 늦은 것 같고.”

    쯔르레이는 그 말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자는 자신이 용에게 당한 피해자이고 상대가 용의 피를 갖고 있기에, 그리고 서리 갈기 부족과 맺었던 우정의 연 때문에 자신을 신경써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그 말은 용의 피를 매도하는 것이니 그것은 쯔르레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 얘기를 해주면 그는 대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무슨 뜻이십니까?”

    “나 역시, 그녀와 같은 반룡이라고 한다면 어떻단 말이네.”

    율라티에는 단번에 혼란스러운 얼굴로 쯔르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술잔을 잡던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손을 턱에 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혼란을 넘어서 그의 표정은 말도 안된다는 얘기를 들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건… 무슨… 설마? 하지만… 농담은….”

    “아니다.”

    “….”

    “나는 반룡이야. 그것도 날 이런 몸으로 만든  장본인, 울푸레의 반룡이다.”

    “…그런! 하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다면 이건, 이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만약 당신이 정말로 반룡이라면 생하울라님께서….”

    “생하울라님께서?”

    “당신을 죽이셨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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