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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46/162)


  • 〈 146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율라티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법을 갖춰 인사했다. 그 모습은 과거 단정하게 예스런 모습으로 술을 받아마시던 그의 모습과 같았다. 쯔르레이는 그의 인사에 아니 되물을 수가 없었다. 상당히 얼빠진 목소리였다.

    “율라티에?”

    율라티에는 여전히 예의발랐고, 동시에 금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로브는 낡았고 오크들의 사제복은 닳고 닳아 누더기나 마찬가지인 모습이었다. 사실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답지 않게 쯔르레이를 반기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다행히 당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군요.”

    율라티에의 말은 마치 당연히 문제가 있을 거라는 얘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뛰어노느라 더러워진, 그러면서옷은 여자아이처럼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진 쯔르레이는 그것을 애써 감추며 화제를 돌렸다.

    “지금 나와 자네가 회포나 풀 상황은 아닌거 같군.”

    “과정이 불쾌하셨을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이런 방법을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율라티에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는 아니 하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그 모습에 쯔르레이는 의문에 차 물었다. 율라티에와 큰 친분을 쌓은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가 그런 이가 아닐 거라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좀  주변을 살펴보며 경계할 따름이었다.

    “무엇을 살피는 거지? 이 주변은 아무도 없다.”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그녀라면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그녀…? 누구를 말하는 거지?”

    “오로지 한 명 밖에 없지 않습니까.”

    반룡 뮈미르입니다.

    그 순간 쯔르레이의 등에서 소름이 돋아올랐고 쯔르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나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쯔르레이는 정신은 혼란만으로 가득하여 뭔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쯔르레이가  수 있는거라곤 질문 뿐이었다.

    “뮈미르가… 왜?”

    율라티에는 여전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결국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작았고 조심스러웠다. 쯔르레이는 그의 목소리를 자세히 듣기 위해 더욱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거인족의 왕녀, 광룡 갤러해드의 여식, 몰아치는 폭풍, 반룡 뮈미르 아유시한. 그녀는… 위험합니다.”

    율라티에가 칭하는 그녀의 호칭에는 알고 있는 것도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쯔르레이가 물었다.

    “그녀의 아버지… 흑룡 갤러해드가 광룡이라고?”

    “예, 그는 이미 용의 이성 같은 것은 전부 놓아버린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입니다. 지금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태지만 언제 다시 깨어나서 난동을 부릴지 알  없습니다.”

    “자네의 말은 잘알겠네. 하지만 뮈미르가 위험하다는  어째서지? 나랑 뮈미르는… 그렇게 만난지 오래  것은 아니지만 뮈미르는 조금 독선적일지 언정 위험하지는 않았어.”

    “벨투리안님. 광증은 유전됩니다.”

    “….”

    “물론 그녀가 미쳤다거나 해서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용의 피를 갖고 있고 용은  위의 존재들이 감히 대적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감히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납득할  없으며 우리의 몰이해속에 세워지는 흉물입니다. 어떻게 그녀와 친분을 쌓게 됐는지, 이 율라티에로서는 알  없는 노릇이나, 우리들의 친구로써 당신에게 조언합니다.”

    그녀를 믿지 마십시오.

    “그러나 어째서?”

    “광룡 갤러해드가 울푸레의 아버지니까요.”

    ~

    쯔르레이는 터덜터덜 여관으로 돌아왔다. 더러워진 그 모습에 여관바리들이 나와 쯔르레이의 옷을 받아들고 시중을 들었다. 평소라면 살짝 불쾌하게 여겼을 그 상황에도 쯔르레이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율라티에가 남긴 마지막 말을 계속해서 곱씹을 따름이었다.

    광룡 갤러해드가 울푸레의 아버지이다.

    그렇다면 뮈미르가 자신의 이모가 되는 셈이다.

    쯔르레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배신감? 그런 걸 느끼기에는 이미 자신은 닳아버린 걸까. 그런 감정 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쯔르레이는 평소에 거절하던 목욕 시중을 받았다. 혼자서 씻을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관바리들은 과거 엘핀과 함께 있었을  대접받았던 것만큼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목욕 시중을 끝내고옷을 완전히 갈아입은 쯔르레이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뮈미르가 앉아있었다. 어쩐지 쯔르레이는 그녀를 보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은 채로 쯔르레이가 솜뭉치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솜뭉치를 잡으며 말했다.

    “뮈미르.”

    “돌아왔군요, 쯔르레이. 재밌게 놀다왔습니까?”

    뮈미르가 평소처럼의무표정으로 쯔르레이를 반겼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뮈미르의 얘기에 쯔르레이는 돋아오른 소름이 싸늘하게 굳어감을 느꼈다.

    “오크와는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

    쯔르레이는 잠시 말을 골랐다. 그래, 뮈미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율라티에와 만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직접 보고 있었던 걸까? 아까 느껴졌던 그 시선의 정체가 뮈미르였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쯔르레이가 말했다.

    “광룡 갤러해드가, 울푸레의 아버지라는 것이 사실입니까?”

    뮈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어쩐지 살짝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뮈미르는 나의 이모입니까?”

    뮈미르는 역시 답하지 않았다. 답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뮈미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웃지도 않았다. 평소대로의 무표정 그대로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뮈미르는 화가  있었다. 쯔르레이는  수 있었다.

    “맞군요.”

    “누가 얘기해주었습니까?”

    뮈미르가 조곤조곤 물었다. 물론 쯔르레이는 멀쩡하게 대답해줄 생각 같은 것은 같고 있지 않았다. 쯔르레이가 한껏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걸 알아서 어쩌려는거지? 죽이기라도 할 생각인가?”

    “쯔르레이, 존댓말을 쓰십시오.”

    거기서 뮈미르가 꺼낸 얘기는 우습게도 장난삼아 얘기하던 그 존댓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쯔르레이는 뮈미르를 존중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존댓말을, 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그럴 필요는, 없겠군요.”

    “무슨 기분이었지? 나를 속이면서?”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속이지 않았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

    “그게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군요.”

    “무엇을 위해 날 속인거지?”

    “속일 생각은 정말 없었습니다. 쯔르레이와 만나게 된 건, 울푸레와 관련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둘의 만남은 우연이었습니다.”

    뮈미르는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  속에 쯔르레이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 차있음을 쯔르레이는 알 수 있었다.순간 멈칫한 쯔르레이가 다시금 말했다.

    “그걸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쯔르레이가저와의 동행을 계속할 생각이 있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당신을 믿을 것 같나?”

    쯔르레이는 고민했다. 쯔르레이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뮈미르가 결백할 때와 결백하지 않을 때, 두가지의 길이었다. 결백하다면 이대로 동행을 계속한다. 울푸레와의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백하지 않다면….

    “그래야 할 겁니다.”

    뮈미르는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쯔르레이에게로 다가왔다. 쯔르레이는 뮈미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이 결코 제대로 된 일은 아니라는 것은   있었다. 곧바로 쯔르레이가 뒤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문은 어째서인지 잠겨있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솜뭉치를 들어올려 뮈미르에게 겨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 잠깐의 틈새 사이에 쯔르레이의 목이 뮈미르의 손에 붙잡혔다.

    “크윽.”

    “미안합니다, 쯔르레이. 조금 아플 겁니다.”

    뮈미르는 그대로 쯔르레이의 목을 물어뜯었다. 아니, 실제로 물어뜯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뮈미르의 송곳니가 쯔르레이의 목을 스쳐지나갔고 그곳에는 작은 인장이 하나 새겨졌다. 인장은 양뿔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뮈미르가 목에서 입을 떼고 쯔르레이를 놓아주었다. 순순히 놓아주는 모양새에 쯔르레이가 의문에 가득차 뮈미르를 적대하며 물었다.

    “뭐, 지, 이건?”

    “간단한 주박입니다. ‘쯔르레이’”

    뮈미르의 말에 쯔르레이는 목에 새겨진 인장에서 강렬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쯔르레이는 곧장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무너져내렸다.

    “아아아아악!!!”


    “미안합니다, 쯔르레이.”

    그리고 뮈미르는 곧장 쯔르레이를 껴안아주었다. 너무나 상냥한 그 모습이 마치 평소의 뮈미르와 전혀 다를 거 없었기에 쯔르레이는 그저 위화감을 가득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고통은 순식간에 가라앉았지만 공포는 그렇지 않았다.  고통보다도 자신을 상냥히 어루만져주는 뮈미르가 더욱 무서웠다.

    “모, 목적이 뭐지?”

    “목적?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이런….”

    “그냥 슬퍼서 그랬습니다.‘쯔르레이’.”

    다시 한번 쯔르레이가 뮈미르의 품에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번에는 목에서 시작한 고통이 쯔르레이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쯔르레이의 기력이 다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 어째서.”

    “쯔르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네메시스님께서 참으로 ‘자비’롭다는 거였습니다. 저였다면 결코 쯔르레이를 놓아주지 않을 거였으니까요. 거기서 굳이 직접 쯔르레이를 잡지 않고 부하들에게 맡긴 것은 쯔르레이가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직접 나섰다면놓칠 일은 결코 없으니까요.”

    “그, 그런….”

    “저는 쯔르레이가 정말 좋습니다. 같은 반룡이라 좋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만나는 동족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그 오크입니까? 그 오크가 말한거군요. 나중에 손을 봐줘야겠습니다.”

    “안돼… 율라티에는.”

    “그 오크가 그렇게 좋습니까? 좋아요. 그럼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쯔르레이가 착한 아이로 있으면요. 잠깐, 목줄을 채워두는 겁니다. 쯔르레이가 제 말을 잘들을 때까지 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울푸레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울푸레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쯔르레이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미안합니다. 하지만 쯔르레이가 저를 떠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잠깐만 참아보도록 합시다. 금방 익숙해질겁니다. 쯔르레이도, 뮈미르와 함께 있는 걸 원하게 될 겁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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