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그 뒤로 둘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얘기할 게 떨어졌다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가늠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두 반룡이 다시금 말을 튼 것은 밤이 어둑어둑해질 쯤이었다. 해가 내리고 어두워지자 뮈미르가 마차를 멈췄다.
“쉽니다.”
길가에 대고 마차를 세운 뮈미르는 곧 말들을 풀어주었다. 말들은 멀리 떨어지지 않고 주변에서 풀을 뜯었다. 그 장면을 보고 쯔르레이가 물었다.
“말들을 풀어줘도 괜찮은건가?”
“출발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딱히 뭐라 할 얘기가 없었다. 뮈미르는 간단한 주문을외치더니 곧 모닥불을 만들어냈다. 쯔르레이가 부싯돌을 이용해서 불을 피우는 것보다 훨씬 간단해보였다. 쯔르레이는 이것이 자신에 대한 배려임을 깨달았다. 뮈미르는 그도 그럴 것이 불이란 게 전혀 필요없어보였으니까.
모닥불을 사이에 둔 둘은 어색해졌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것은 쯔르레이 뿐일지도. 뮈미르는 무표정했고 생각을 알기 어려웠다. 저 표정 속에서 뮈미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쯔르레이는 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만나는, 동족이나 다름없는 또다른 반룡에게 만큼은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었다.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
“내 이야기?”
“나말고 다른 반룡, 만나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궁금합니다.”
쯔르레이는 고민했다. 과연 이 거대한 소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괜찮은 일일까? 그녀가 자신을 구해주었고 그녀는 자신과 같은 반룡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옳은 일까.
생각을 좀 하던 쯔르레이는 어쩐지 귀찮아졌다. 그런거 알게 뭔가, 어차피 이제 남자로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이전이라면 하루 걸러 남자로 돌아가는 것 때문에 숨겼지만 쯔르레이는 더는 벨투리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시에 쯔르레이는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까발리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말하고 싶었다. 알리고 싶었다. 그러면 무언가 후련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슴에 담아둔 무언가를 모두 꺼내고 싶었다. 그렇게 속을 비우고나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어떤 말로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쯔르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야기를 시작할 대사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나는… 남자였다.”
뮈미르는 놀라지 않았다. 사실 표정이 무표정하여 놀란건지 안놀란건지 쯔르레이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쯔르레이는 그 변하지 않는 표정이 새삼 재밌게 느껴졌다.
“놀라지 않는건가.”
“놀랐습니다.”
“네 표정은 알기가 힘들군.”
“아버지는 제가 표정이 풍부하다고 했습니다.”
크큭, 쯔르레이가 피식하며 웃었다. 어쩐지 뮈미르와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관계였을지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쯔르레이는 마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숨기는 것은 없었다. 뮈미르는 반룡이었다. 무언가를 숨기는게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었고 지금와서는 그런 걸 신경쓸 생각도 나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흑룡 울푸레와 멸망한 일족의 이야기.
위대한 오크 초월자와의 만남과 그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
흑마법사와 베르헬트와의 동행과 빙룡네메시스가 밝힌 비밀 이야기.
엘프 류나벨트와의 만남과 죽음, 친구와의 재회와 죽음.
모든 것을 전부얘기했다.
사실 이렇게 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말이 멈추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솟구친 탓일까. 류나벨트와 아레히의 이야기를 하는 시점에서 쯔르레이의 눈에서 작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뮈미르는 그걸 말로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뿐이었다.
“아, 이게 무슨 주책인지…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쯔르레이가 옷 소매를 들어 눈물 자국을 닦아내렸다. 쯔르레이로서는 답지 않게 보이는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그 머리는, 당신 친구의 머리로군요.”
“그렇다. 몸은 없지만, 장례를 치러줘야겠지.”
“아뇨, 그러지 않는게 좋습니다.”
“무슨 이야기지?”
쯔르레이는 의문에 차 물었다. 어째서 아레히의 장례를 막는 것일까. 뮈미르는 쯔르레이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당신은 의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태, 아는 사람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오로지 벨투리안이었을 때의 벨투리안을 아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당신 친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의 죽음, 더는 당신이 세계를 속이지 못하도록 막은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깜빡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작은 충격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뮈미르의 말뜻은 즉슨 아레히가 죽어서 자신이 더는 벨투리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인가? 그래서 아레히의 죽음 이후 자신이 그 모습으로 돌아간 것인가?
“원래 모습으로, 반룡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쯔르레이는 말로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일 뿐이었다. 뮈미르가 말하였다.
“당신 친구의 머리를 잘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
아,
“그게 당신이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일 지도 모르니까.”
아레히여.
네가 열쇠였구나.
~
쯔르레이가 아레히의 머리를 꺼내들었다. 지금까지는 잘느끼지 못했지만 상당히 악취가 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악취에 아랑곳하지 않고 쯔르레이가 아레히의 머리를 껴안았다. 이것이 열쇠였다.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실마리.
“잠시.”
뮈미르가 그런 쯔르레이를 불렀다. 쯔르레이가 고개를 들자 뮈미르가 다가와 아레히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악취가 사라지고아레히의 머리에 남아있는 살점들이 가루로 되어 날아갔다.
“아….”
아레히의 머리는 삽시간에 깔끔한 해골로 변해버렸다. 쯔르레이는 그걸 보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미 썩어가고 있어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더는 아레히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게 그러했다.
“이것이 나름의 장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다.”
쯔르레이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뮈미르에게 감사를 표했다. 과연 정말 고마운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쯔르레이는 그렇게 말하였다. 확실히 그 상태 그대로 아레히의 머리를 들고 다닐 수는없었으니까. 해골을 들고 다니는 소녀의 모습도 사실 그렇게 썩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썩어가는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뮈미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아 말했다.
“제 이름은 뮈미르입니다.”
“알고 있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아버지는 저를 미리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뮈라고 불렀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불러도 좋습니다.”
쯔르레이는 당황스러웠다. 왜 갑자기 자신의 애칭을 얘기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뮈미르는 지금 호의를 표하고 있는 거 였다. 같은 반룡으로서의 호의를. 그렇기에 애칭을 불러달라는 거였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말했다.
“뮈미르.”
애칭을 거부했다. 그것은 결국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쯔르레이는 더 이상 누군가의 호의를 믿기에는 너무 많은 배신을 당했고 너무 많은 이별을 겪었다. 이제는 지치고 싶지 않았다.
“아쉽습니다.”
“미안하다.”
어쩐지 뮈미르에게는 계속해서 이 얘기만 하는 것 같았다. 뮈미르는 여전히 무표정했기에 그 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쉬워하는 것이 거짓인 것만 같지는 않았다.
“저는 간티아제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쯔르레이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아토그 수해로 간다. 생하울라의 얘기에 따르면 그곳에 있는 마녀, 글룸라라는 이가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생하울라, 그는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따로 갈 길이 없다.”
“저와 가지 않겠습니까?”
“너와?”
“저는 금시를 찾고 있습니다.”
금시…?
“그들, 금시는 용을 잡아먹는 새. 세상에서 가장 강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흉폭한 존재인 용들의 유일한 천적.”
“저는 그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를 먹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안식을 드리고 싶습니다.”
쯔르레이는 떠올렸다. 빙룡이 말했던 것. 그리고 자신의 깃털. 석양이 지지 않는 전장에 떠오른 황금빛의 새.
˄˄‘용은 신이 내린 피조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용이 죽으면 그 영혼은 자리를 잃고 소멸의 굴레를 차지. 용은 신에게 저주 받은 생물이다. 신들은 용을 저주한다. 태초의 뱀이 떨어진 생명수를 핥고, 거짓을 고해 그 혀가 갈라진 그 순간부터.
그래서 그들은 만들었다. 황금색 깃털이 탐스럽고 아름다워 그 누구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새를. 날개를 휘저어 바다를 갈라 용을 삼켜 먹는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태양의 새.‘
“금시.”
“그들이… 용을 먹는다고?”
“이제는 금시와 용들이 서로 싸워 먹어치우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만, 여전히 가능할겁니다, 그것은.”
쯔르레이는 혼란스러웠다. 마냥 괴물인 것 같았던 그들에게 천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보다는 금시라는 그 존재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쯔르레이 자신의 머리에서 뽑아냈던 그 황금색 깃털이 떠올랐다. 그 금시라는 존재가 자신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곳에 가면 그들을 찾을 수 있나?”
“그건 알 수 없지만, 금시가 발견된 가장 최근의 장소가 그 곳입니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가도록 하겠다.”
쯔르레이에게는 두가지 길이 있었다. 아토그의 수해로 가는 길과 석양이지지 않는 전장으로 가는 길. 둘 모두 생하울라의 편지를 전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목적은 달랐다. 쯔르레이가 석양이지지 않는 전장으로 향하는 것은 애초에 그 금시를 찾으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울푸레를 찾는 그 새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윽고 지금 아주 먼 길을 돌아서 쯔르레이는 원래의 길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결심한 것이다. 애매하고 알 수 없었던,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작았던 그 길을 벗어나 제대로 된 길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금시를 찾는다. 그리고 그에게 울푸레의 존재를 알아낼 것이다.
복수를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건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다른 생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불가능하니까. 쯔르레이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괴로웠다. 주제를 모르는 바보였다면 차라리 조금 더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 와서는 묻고 싶었다.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그대가 자신의 어미라면 어찌 자신을 이런 고통에 두는 것인가. 용이란 것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고 싶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그럼 이제부터 같이 가는겁니다.”
“그래.”
“그리고 말하는 겁니다. 앞으로. 존댓말.”
“…뭐?”
“나 칠백서른세 살, 너 서른 살 즈음.”
“….”
“내가 누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