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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39/162)


  • 〈 139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붉게 물든 태양이 쯔르레이의 눈을 비쳤다. 따사로운 공기와 동시에 느껴지는 밝은 빛에 쯔르레이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 자신이 모포를 덮은 채 어떤 마차에 실려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어디일까.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모든 것이 의미없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본능적으로 솜뭉치를 찾았다.

    솜뭉치는 손에 잡히는 곳에 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쯔르레이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리고  마차의 흔들림에 반응하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쯔르레이는 마차의 구석진 곳에 놓여있는 자신의 가방과 솜뭉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방 앞에 놓여있는 것은 아레히의 머리였다.

    쯔르레이는 솜뭉치가 웅웅거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솜뭉치를 손에 쥐자 그 웅웅거리는 소리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따. 솜뭉치를 손에  쯔르레이는 당장 앞으로 나아가 이 마차를 끌고 있는 이를 향해 다가갔다.

    “일어나셨습니다.”

    그러자 아직 미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구속해둔 것도, 무기를 빼앗은 것도, 짐을 훔쳐간 것도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여인이 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쯔르레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여인의 키 때문이었다. 추운 겨울의 복식을 하고 있는 여인의 키는 쯔르레이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섰다.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쯔르레이는 잠시 말을 잊어버렸다.

    “일어나셨군요. 몸은 어떠십니까.”

    여인이 마차를 멈춘  등을 돌려 쯔르레이를 바라보았다. 쯔르레이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확실히, 키만 봐도 그녀가 인간이 아닌, 거인이라는 것은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인은, 여인, 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앳댄 얼굴의 소녀였다. 그 키를 가지고 소녀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이상했지만 결코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얼굴이었다. 회색빛의 풍성한 머리가 그녀의 어깨를 덮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머리에는 한 바퀴 돌아 다시 앞을 향하는 뿔이 달려 있었다. 마치 인간이 양으로 체한 듯 모습을 한 소녀의 눈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금색의 동공을 갖고 있었다. 쯔르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녀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켰다.

    소녀는 자신의 뿔을 슬쩍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후우

    “반룡 뮈미르입니다.”

    감히 놀라지 않을  없는 그 얘기에 쯔르레이는 그녀를 가리키던 손을 내렸다. 무례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걸 떠올릴 여유는 쯔르레이에게 없으리라. 쯔르레이는 곧장 솜뭉치를 들어 그녀를 향해 겨눴다.

    “무슨, 용건이지? 나를 잡으러 왔나?”

    그러나 뮈미르는 쯔르레이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말을 쳐서 마차를 출발시킬 뿐이었다. 갑작스런 출발에 쯔르레이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들리지 않나?”

    “들립니다. 하지만 대화는 말을 몰면서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쯔르레이는 순간 놀라 들었던 솜뭉치를 다시 내려놓았다. 손에서 떼어두지는 않았다.

    “너는… 누구지?”

    “말했습니다. 저는 반룡 뮈미르입니다.”

    “아니, 그런  묻는게 아니다. 무슨 목적으로 날 데려온거지? 여긴 어디지?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나는 분명 벨루나에 있었을 텐데.”

    “그곳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기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했습니다.”

    “…어째서? 나를  구한거지? 반룡이란 건 뭐지?”

    “당신을 구했습니다. 당신의 검이 궁금해서였습니다. 반룡은 용과 다른 종족의 혼혈을 의미합니다.”

    그 순간 다시 뮈미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쯔르레이는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자신을 향하는 것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그렇다. 그녀는 반룡이다. 뮈미르는 반룡이었다. 그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몸 안에서 그녀가 자신과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애써 감추며 쯔르레이가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저 당신의 검 때문에 당신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신을 잃은 순간 당신의 눈색이 빨개졌습니다. 그리고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반룡입니다.”

     말에 쯔르레이가솜뭉치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았다. 검은 색으로 변한 검신 때문에 잘보이지는 않았지만 금색이었던 눈색이 다시 붉은 색으로 돌아온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솜뭉치로 자신을 찔러 벨투리안이 된 그 후, 다시 돌아온 후에 금색이  눈이었다. 어째서 금색으로 변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어째서 다시 돌아온 것인지도 알  없었다.

    “저희는 지금 간티아 제국으로 가는 방향에 있습니다. 당신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왜?”

    “당신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내 이름은… 쯔르레이. 쯔르레이다. 지금은 그렇게 불리고 있다.”

    물론 쯔르레이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르테가라는 이름을 꺼낼 일은 없었고 벨투리안의 이름은 더는 쓸 수 없었다.

    “쯔르레이, 부탁입니다. 그 검을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쯔르레이는 침묵했다. 이 검을? 솜뭉치를? 물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돼. 빌려줄 수 없다.”

    “아쉽게 됐습니다.”

    쯔르레이는 뮈미르를 경계했다. 어째서 솜뭉치를 원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쯔르레이는 알 수 있었다. 뮈미르는 강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히 반항이란 것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단순한 힘의 강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포식자였다. 쯔르레이는 그녀의 앞에서는 그저 어린 양에 불과할 정도로 차이가 났고, 뮈미르는 태생부터 누군가를 찍어누르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쯔르레이와는 다르게.

    그러나 뮈미르는 쯔르레이의 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쉬운게 없다는 듯이 아쉬움을 논했다. 쯔르레이의 경계가 무색하게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녀의 말은 무감각했다.

    “어째서 빌려달라는거지?”

    “아버지가 아픕니다. 그래서 죽입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필요합니다. 용살검 아흐레.”

    쯔르레이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가 아픈데 어째서 죽인다고 하는거지?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이 저주받은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아흐레란 무엇인가? 솜뭉치를 부르는 이름인건가?“

    “아흐레가 무엇이지?”

    “모르십니까? 그 검의 이름입니다. 일찍이 일곱의 용을 죽인 용살검. 그 검이라면 아버지를 죽일  있습니다.”

    “이 검… 이름이 아흐레라고?”

    “그렇습니다. 몰랐습니까?”

    “나는 솜뭉치라고 불렀다.”

    그 어처구니 없는 네이밍 센스에 뮈미르도 나름 생각하는 것이 있었을까 뮈미르는 갑자기 마차를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뮈미르의 입에서는 예상 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귀엽습니다.”

    무엇이 귀엽다는 걸까, 그 이름이 귀엽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이름으로 검을 부르는 쯔르레이가 귀엽다는 것일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어쩐지 쯔르레이는 굉장히 놀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뮈미르는  마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어째서 아버지를 죽인다는거지? 너의 아버지는… 용인가?”

    “아버지가 아픈게 슬픕니다. 그래서 죽입니다. 고통에서 해방시켜줍니다.아버지는 용입니다. 아버지는 갤러해드. 흑룡입니다.”

    흑룡이라는 말에 흠칫한 쯔르레이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아니다, 그는 다른 용이다. 울푸레와는 다른 용이었다. 아무튼 그제서야 쯔르레이는 뮈미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고통 받는 것을 해결시켜주기 위해 죽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쯔르레이에게 그건 보통 미친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를 싫어하나?”

    “아닙니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죽입니다.”

    쯔르레이는 더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애초에 쯔르레이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뮈미르였다. 자신이 감히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할 능력도 없었다. 쯔르레이는 대신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그렇다면 왜 내가 빌려줄  없다는데도 마음대로 뺏어가지 않지? 너는 그럴 힘이 있을 것이다.”

    “용살검은 차선책입니다. 저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쯔르레이는 다른 방법을 묻지 않았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쯔르레이는 알 수 없었다.

    “…벨루나에서 나는 어떻게  거였지? 네가 나를구한건가?”

    “당신은 기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인간의 머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기사들을 쓰러트리고 당신을 데리고 도망나왔습니다.”

    “도망나왔다고? 왜 그들을 죽이지 않았지?”

    “죽이길 바랬습니까?”

    “아니, 그냥 궁금해서였다.”

    “인간을 죽이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 말을 뮈미르는 마치 개미를 죽일 필요가 있냐는 듯한 투로 말하였다. 쯔르레이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하찮은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 같은 뮈미르의 말에 그녀와 자신이 아예 다른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주 비슷한 존재임에도.

    “나를… 이 검을 계속 찾고 있었나?”

    “우연히 마주친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 검이 울었을 겁니다.  검은 용의 피를 갈구합니다.”

    집히는 것이 있었다. 처음 광장에서 쯔르레이가 아레히의 머리를 보았을 때,검이 울렸었다. 그때를 말하는 것일까.

    쯔르레이는 여태껏 궁금한 것을 잔뜩 물었지만 고맙단 인사는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런 걸  여유를 느낄 수 없었지만, 뮈미르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말이 늦었군. 도와줘서 고맙다.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다.”

    “은혜 갚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솜뭉치 빌려주십시오.”

    쯔르레이는 당혹스러운 눈치를 보였다. 그녀가 곧바로 검을 솜뭉치라고 불러서는 아니었다. 당연히 솜뭉치를 빌려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안되는군요.”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사이의 대화는 거기서 잠시 끝이 났다. 쯔르레이는 마차에 앉아서 뮈미르를 지켜보았다. 커다란  때문에 그녀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위압감 있게 느껴졌다.

    “저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

    “무엇입니까?”

    “그… 나도 반룡이라면 나도 너처럼 커지는 건가?”

    “저의 어머니는 거인이었습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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