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5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35/162)


  • 〈 135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이윽고 쯔르레이가 잠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무렵 필로아는 조용히 침대 안으로 들어갔고 쯔르레이를 안고 눈을 감았다. 쯔르레이는 조금 뒤척였으나 곧 필로아의 품에 파고들었고 그런 쯔르레이를 보며 필로아는 눈을 감은  미소지었다.

    쯔르레이는 엄마 품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의 품을 갈망하고 있었고 단 하룻 밤 뿐인 일이지만 필로아는 그걸 줄  있었다. 외로운 쯔르레이. 아기라도 된 듯이 웅크려 필로아의 품 속에서, 그 가슴에 안겨 잠을 자는 것이 그렇게 큰 사치는 아닐 터이다.

    불타르가 생각한 것이 이런 식의 도움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기녀와 밤을 새는 것은 확실히 쯔르레이에게 도움이 되었다. 술도, 여자도, 쯔르레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쯔르레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는게 우스운 이야기였다.

    ~

    잠에서 쯔르레이는 스스로가 필로아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혼자 자게 해줄거라면서 침대로 들어온 필로아의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직 잠에 빠져 있는 필로아를 두고 쯔르레이는 일어섰다. 조용히 필로아가 잠에서 깨지 않게 침대에서 나온 쯔르레이는 곧바로 기방에서 줬다는 속옷을 벗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마  속옷도 대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일 테니 입고 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긴  너무 불쾌했다. 정말 창녀가 되어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다.

    쯔르레이가 옷을 갈아입자 그 부스럭대는 소리 때문인지 필로아가 잠에서 깨어났다. 필로아는 옷을 갈아입는 쯔르레이를 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응, 아가? 일어났니?”

    “아, 그래.”

    “이제 겨우 아침인데, 좀만  있다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거짓말쟁이랑 더 같이 있을 생각은 없다.”

    쯔르레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말쟁이 소리에 필로아는 쯔르레이가 혼자 자게 해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필로아가 꺄르르 웃었다. 쯔르레이의 볼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쯔르레이가 자신을 욕하는 것이 아닌 것은 명확해보였다.

    쯔르레이는 옷을  갈아입자,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모습을 하게 되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지만 낯설지는않았다.

    “…잘있어라.”

    쯔르레이의 인사에 필로아는 아쉽다는 듯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나 정말 가지 말라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하룻밤 꿈의 잠자리였다. 이런 곳에 계속 사로잡혀 있다간 결국 저 아이도 자신처럼 변하겠지. 씁쓸한 이야기기에 그것만큼은 결코 바라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불타르의 방으로 다시 찾아들어갔다. 거기에 들어가자 불타르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불타르와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기녀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  이를 찾아온거니?”

    쯔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기녀는 천천히 기지개를 펴더니 곧 일어나 쯔르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살짝 얼굴을 갸웃하더니 고개를 내리고는 쯔르레이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럼 나는 비켜줄 테니, 알아서 하렴.”

    자리를 비켜주는 와중에도 기녀는 기녀라는 걸까, 요염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녀는 사라졌다. 쯔르레이는 여전히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코를 고는 불타르를 보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어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불타르.”

    다행히도 불타르는 금세 잠에서 깨어났다. 조금 흔들었더니 곧바로 정신을 차린 것이다.  와중에도 아직 정신을 완전히 되찾은  아닌지헛소리를 했지만.

    “에띠르…?”

    “쯔르레이다.”

    “음… 아, 미안. 지금 살짝 여동생이 떠올랐어.”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불길한 얘기해서 미안.”

    대답하는 불타르는 조금 울적해보였다. 불타르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평소대로의 불타르로 돌아왔다.

    “그럼 나가볼까.”

    불타르의 옷은 방 주변에 제멋대로 널려있었다. 쯔르레이는 불타르가 옷을 줍는 걸 적당히 도와줬다. 불타르는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그나저나,  이렇게 비싼 곳을 고른 거지? 하룻밤 여자와 잠을 청하는 게 전부라면    곳도 있을텐데.”

    쯔르레이는 질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불타르의 지갑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이런 부담스러운 곳을 어떻게 올  있었는지 알 수 없었기때문이다.  곳을 부르는 이름이 평범한 매음굴이 아닌 시점에서 이 곳이 얼마나 비싼 건지도 알  있었고.

    “꽤 목돈을 건졌거든. 뭐 그리고 그런  곳이라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안전하게 잠을 청하려면 이런 곳이 맞아.”

    쯔르레이는 수긍했다. 확실히 이렇게 고급진 곳이 아니고서야, 쯔르레이 같은 아이를 데려오면 금세 납치 당할 게 분명했다. 불타르가 적어도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있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느꼈다. 쯔르레이는 동시에 목돈을 건졌다는 것에서 뭔가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예의 그 일인가?”

    그 일은 물론, 쯔르레이가 감옥에 있었을 때 불타르가 구해준 것을 의미했다. 좀도둑인 불타르가 백작가의 성까지 아무런 이유 없이 마실 나왔을 리가 없었다. 불타르는 눈을 찡긋하며 긍정을 표했다.

    “네가 어제 들어갔던 상점은, 무슨 장소지? 그 장소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빛을 보았다. 거기에서 목돈을 얻은건가?”

    “…보고 있었나. 뭐 숨길 것까지야 없겠지. 도둑 길드의 분점이다. 확실히 돈이 될만한 걸 가져다줬지.”

    도둑 길드라고?  순간 쯔르레이의 머릿 속에 하나의 방법이 스쳐갔다.

    “도둑 길드라면… 의뢰도  수 있나?”

    “무슨 의뢰?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쯔르레이는 말을 골랐다.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도둑 길드라면 물건을 훔치는 이들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숨어들어가는 데에는 도가  이들일 것이다.

    “…백작가에 다시  번 가고 싶다. 구해야 될, 사람이 있어.”

    “무리다. 그만둬.”

    불타르는 깔끔하게 단언했다. 쯔르레이의 얼굴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불타르는 쯔르레이를 달래기 위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안되는건 안되는 거였다. 목숨이 위험한 수준을 넘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불타르도  건에 대해서는 도울 생각이 없었다. 도울 수도 없었고.

    “자네는 그때 들어가지 않았나? 어떻게 한  더 할 수….”

    “그건 그 날이 정말 특수한 상황이 겹쳐서 이뤄진거였고, 그나마도 나 혼자 들어갔다가 혼자 나온거야. 정말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나오는  불가능이다.”

    쯔르레이는그  틈새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즉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말에 쯔르레이는 단념하기는커녕 오히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꺼냈다.

    “…들어갈 수만 있다면 좋아.”

    “이봐!”

    “나오는 건 내가 어떻게든 하겠어. 주선을 부탁하지.”

    “거절하겠어.”

    “네가 거절한다면  상점으로 직접 들어가겠어. 그럼 상관없겠군.”

    “도둑 길드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 들어가기도 전에 쫓겨날거다.”

    “뭐라도 때려부순다고 해도 그들이 그럴까?”

    “….”

    말릴 수 없었다. 말려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불타르는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멍청한 아이였나? 그 의지는 분명 강렬해 보였지만 무모했다. 물론 이전에도 불타르는 쯔르레이 - 벨투리안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때와 지금은 달랐다.

    그때의 쯔르레이의 의지는 강렬했다. 누군가를 구하지 못하면 죽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쯔르레이는 그런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쯔르레이의 얼굴에 보이는 감정은 미련이었다. 방법이 정말 없다고 하면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 시도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불타르는 어느 정도 그의 이야기를 이용한 점이 있었다. 그가 침입하는 것을 알았고 그에 따라 생길 허점을 도둑 길드에 알려 감히 듄벨가의 성을 털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쯔르레이는 한번 감옥에 잡히지 않았던가.

    지금 불타르에게는 그런 이득이 생길 이야기도 전혀 없었고, 이런 상태의 쯔르레이를 보낸다면 결코 밤자리가 편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쯔르레이는 결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불타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어차피 쯔르레이의 의뢰는 말도 안되는 만큼 돈도 엄청나게 들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쯔르레이에게는 그런 보수를 줄만한 능력도 없을테고. 그냥 알려주자. 그럼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타르는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쯔르레이에게 있는 그것을.

    ~

    도둑 길드, 라고 알고 있는 상점에 도착하자 쯔르레이는 다시금 시선을 느꼈다. 이번에는 명백히 쯔르레이와 불타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쯔르레이는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시선을 조율했다.

    불타르가 먼저  앞에서 쯔르레이가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문이 다시 열리면 들어와라.”

    쯔르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타르는 문을 열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틈새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평범한 잡화상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문이 다시 열리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쯔르레이가 시선들에게서 최대한 신경을 끄도록 하며 손가락을 접어올렸을 때 다시 문이 열렸다.

    쯔르레이는 천천히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평범한 잡화 상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온통 어두운 공간이 쯔르레이를 반겨주었다. 마법이 분명했다.

    쯔르레이는 밤눈이 밝은 편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법으로 만든 인위적인 어둠임이 분명했다. 쯔르레이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쯔르레이를 향해 비수가 날아왔다.

    쯔르레이는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피해냈다. 그리고 순발력 있게 솜뭉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쯔르레이를 향한 습격이 이어졌다. 쯔르레이는 순전히 본능에 의지해 공격을 막아내고 적을 역습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쯔르레이가 곧바로 뒤로 한 발자국 움직여 다음에 이어질 공격을 대비했다. 그러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만.”

    “…?!”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두웠던 방이 환하게 밝혀졌다.

    “앉으시죠.”

    “여기 사람들은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나?”.

    “도둑놈들이 손님 대접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겠습니까?”

    쯔르레이가 비꼬았지만 남자의 대꾸에 쯔르레이는 할 말이 없어졌다. 쯔르레이는 방 안을 마저 둘러보았다. 자신을 공격하던  이 남자였을까?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확신할 수 없었다. 쯔르레이가 불타르의 위치를 물었다.

    “불타르는 어디있지?”

    “그는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그를 겁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당연 도둑 길드의 얘기인데 안심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어떻게 그를 찾아낼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쯔르레이는 일단 그의 말을 수긍했다.

    “의뢰 내용은 이미 들었습니다. 터무니 없는 얘기더군요.”

    “하지만 가능하다 들었다.”

    남자는 킬킬 웃어댔다. 그리고는 쯔르레이의 몸을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훑어보았다.

    “네, 가능하긴 합니다. 불타르, 그는 거절하라고 말했지만요.”

    쓸데없는 말을 하고 갔군. 불타르. 쯔르레이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다행히 남자에게 그 말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신경쓰지마라.”

    “그래서 얼마나 준비해오셨습니까?”‘

    “얼마나?”

    “돈 말입니다.”

    남자의 말에 쯔르레이는 그제서야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사실 아닌가, 의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쯔르레이였기에 잊어버릴 수 있던 일이었다.

    쯔르레이는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전부 내보였다. 그럭저럭 여비로 쓸 정도의 돈은 되었지만 남자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남자는 오히려 그게 즐겁다는  웃으며 말했다.

    “부족하군요, 한참이나.”

    “…어떻게 안되겠나?”

    쯔르레이는 당연히 안된다는 말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남자는 예상 외로 다른 제안을 꺼내왔다. 어째서일까?

    “안될 것 없죠. 꼭 돈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준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죠.”

    “…가치가 있는 물건, 나한테 그런 것은….”

    “왜 그러십니까? 없을 리가 없죠. 하나 있지 않습니까, 가치가 있는 물건.”

    당신의 몸입니다.

    그렇지, 어째서겠냐.

    노리는 것이 있어서 그렇지.

    쯔르레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을 노예로 팔라고 하고 있는거였다. 물론 쯔르레이는 그럴 수 없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에리히를 구한다고 자신을 파는 것은.

    쯔르레이는 필사적으로 남자의 맘에 들만한 물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솜뭉치 외에는
    쯔르레이가 갖고 있는 특별한 물건 같은 건 생각나지 않았고 솜뭉치를 판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쯔르레이에게는. 그런 것 같았다.

    아니, 하나 있었다.

    가방을 뒤지던 쯔르레이에게 하나의물건이 딸려나왔다.

    베르헬트 가문의 인장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