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34/162)


  • 〈 134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아쉽게도 겉모습과는 다르게 기방이 무슨 말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쯔르레이는 어리지 않았다. 풍만한 가슴에 야시시한 속옷을 입은 채 누워서 유혹하는 여자를 보면 더더욱 그랬다. 여자는 여전히 쯔르레이를 보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쯔르레이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들어오렴, 좀 더 편히 자려무나.

    쯔르레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당연한 거지만, 불타르가 자신을 팔았나? 싶은 것이었다. 쯔르레이 자신이 인식하는 것처럼 쯔르레이는 확실히 창녀촌에라도 팔아버리면 엄청난 거금을 받을  있는 원석이었다. 그 외모가 지금도 능히 아름답고 귀여우니 몇  후를 가정해보면, 지금 어린 것까지 생각해보면  가치가 천정부지를 치솟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여자의 태도부터 지금 이 상황까지 모든 것이 이상했다. 최소한 쯔르레이가 팔린 것이라면 적어도 검 정도는뺏어두지 않았을텐가. 그렇지만 쯔르레이의 손에는 여전히 솜뭉치가 들려 있었고 방 한 구석에는 쯔르레이의 짐도 멀쩡하게 있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쯔르레이가 깔끔하게 씻겨서 단정한 속옷을 입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속옷? 그제서야 쯔르레이는 자신의 꼴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야시시한 모습의 기녀가 입고 있는 것처럼, 마치 어린 창녀라도 된 것 같은 야한 속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확인하자 쯔르레이의 얼굴이 단번에 빨갛게 물들었다.

    “이, 이 옷은.”

    “어머, 부끄럽니? 쿠훗, 미안해. 여기에는 아무래도 옷이 그런거 밖에 없어서. 하지만 그 옷 그대로 입혀놓을 순 없었거든 다 찢어졌고 안에는 속옷도 없었고.”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쯔르레이의 얼굴은 결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려심 깊은 기녀는 그 발갛게 물든 얼굴을 지적해 더 빨갛게 만들려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왜 여기 있는거지?”

    “기억이 안나니?”

    쯔르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녀는 그런 쯔르레이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며 다시 한 번 상냥히 웃어보였다. 그 얼굴은 확실히 한 둘의 남자를 유혹한 폼새가 아니었다. 쯔르레이조차 살짝 얼굴을 붉힐 정도의 웃음이었다. 다행히 이미 얼굴은 충분히 발개져 있어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어젯 밤, 불타르…?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손님께서  데려왔단다. 처음에는 새끼창녀를 팔 생각이라도 되나 했더니, 돈을 두둑히 얹어주시더니 널  씻기고 재워달라 하시더구나. 물론 그 분은 다른 기녀를 안고 다른 방에 들어갔지만 말이야. 이쪽으로서도  거절할 만한 종류의 일은 아니었으니 너를 손님으로 받은거란다.”

    “그 자식….”

    말을 듣고 쯔르레이가 생각한 것은 불타르의 무신경함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주에 걸려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을 아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자신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이런 곳에 쳐박아두다니? 자신이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 아니었다면 큰 일이  뻔 했다.

    또 그런 이유를 제하고 보더라도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없이 기방에 쳐박아둔 것도 열이 뻗쳤다. 다행히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나 일이 잘못되어서 무기와 짐을 빼앗기고 창녀로 팔리기라도 했다면 어쩐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있지, 이름이 뭐니?”

    “…쯔르레이.”

    기녀가 부르는 말에 쯔르레이는 내키지 않지만 이름을 불러주었다.

    “특이한 이름이구나? 언니는 필로아라고 한단다.”

    “필로아.”

    “그래, 필로아. 어때? 오해가 풀렸으면 다시 언니 곁에서 잠이라도 자지 않겠어?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단다.”

    “사양하지. 여자 품은 별로라.”

    필로아는 생각보다 훨씬 쯔르레이가 맘에  것인지 다시 잠을 자지 않겠냐고 불렀지만 쯔르레이는 거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신으로 이런 옷을 입고 저런 옷을 입은 여자에게 안겨서 잠들 자신이 없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꽤 응석부렸는데?  품에 안겨서 가슴 끌어안고 만지고 엄마 소리하고….”

    “그만!”

    간신히 진정되었던 쯔르레이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필로아의 부끄러운 폭로는 쯔르레이의 정신을 괴롭혔다. 그건 다만 부끄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류나벨트가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남의 품에 기어들어간 자신이 한심했다는 것도 전적으로 큰 이유였다.

    류나벨트를 떠올리자 찔끔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되자 당황한 건 필로아였다. 엄마 소리를 꺼낸 것이 뭔가 문제가 있던 것일까. 그런 남자랑 같이 다니는 여자애가 멀쩡한 사정이 있을 리가 없는데 자신이 너무 무신경했다. 필로아는 일어나서 쯔르레이를 그대로 안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놀렸니? 엄마 소리 했단 건 거짓말이야. 너무 신경쓰지마.”

    “아니다.”

    쯔르레이는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부끄럽긴 하지만 이 슬픔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슬픔은 앞으로 평생 류나벨트를 기억하기 위해 지고 가야할 것이었다.

    쯔르레이가 팔로 눈물을 닦았다. 필로아는 여전히 쯔르레이를 신경쓰고 있었지만 아이가 조금 진정했다는 것은 깨달을 수 있었다.

    “불타르는 어디에 있지?”

    “나가서 왼쪽으로 쭉 가서 마지막 방일 거야.”

    쯔르레이는  말을 듣고 솜뭉치를 내려놓은 채 방을 나갔다. 어쨌건 지금은 불타르 그 자식을  대 때리지 않고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복도를 따라 그대로 쯔르레이가 방을 찾아 들어가자 거기에는 알몸으로 침대에서 뒹굴며 자고 있는 불타르와 기녀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쯔르레이는 불타르를 끌어내 땅에 떨궈버렸다. 잠이 깰만도 하거늘, 불타르는 그럼에도 여전히 정신없이 코를 골고 있었다.

    “일어나라!”

    물론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쯔르레이가 정강이를 한 번 쎄게 걷어차자 불타르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 모양새가 꽤나 웃겨 쯔르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을 꺼냈다.

    “으악!”

    “일어났냐?”

    “끄으윽… 뭐야 이건… 어어, 쯔르레이? 뭔일이냐?”

     무신경한 소리에 쯔르레이는 다시  번 불타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직도 상황을 영 파악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여러 가지로 한심해보였다. 쯔르레이가 살짝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바보인가?”

    “아침, 아니 새벽인가. 새벽부터 이렇게 깨워놓고 해주는 말이 그거라면 꽤나 실망스러운데.”

    “너는, 내, 비밀을, 알면서도 이런 곳을 데려오는 거냐?!”

    “비밀…? 그런 게 있었던, 아.”

    그제서야 뭔가 깨달은 듯한 불타르의 모습에 쯔르레이가 이마를 짚었다. 혹시나 했지만, 현실은 더했다. 불타르는 아예 자신이 남자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였다. 만약 자신이 남자로 돌아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내가 더는 돌아갈 수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돌아갔다면 큰일날 뻔 했다고.”

    “더는 돌아갈 수 없단 건 무슨 소리?”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얘기해주도록 하지.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쯔르레이는 말을 속으로 삼키었다.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는 확실히 아니었다. 아직 기녀는 자고 있는 듯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이런 어린 아이를 이런 곳에 데려오다니! 생각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나는 네가 나를 팔아버린 줄 알았다!”

    “이런이런, 그거 실망이군. 말한대로 이 몸은 좀도둑들의 왕! 어린 것들의 친구요, 스승이요, 길잡이라고. 이런 데에 어린애를 팔아버릴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다.”

    “난… 실제 어린애가 아니지 않나.”

    “아참.”

    “후.”

    쯔르레이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한심스러운 인간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게 있기는 한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간에 그가 배신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그에게 완전한 믿음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배신당하는 것은 결코 익숙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대체  이런 곳으로 데려온거냐.”

    “내가 아는 사람을 위로 하는 방법이라고는, 술이랑 여자 밖에 없거든.”

    “…내 이 모습을 보고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나?”

    “뭐 어떠쇼. 원래는 그런데. 무엇보다, 여자는 여자로 잊는게 제일이거든. 어때, 하룻밤 괜찮은 꿈이라도 꾸었나?”

    “…나쁘지는 않았다.”

    쯔르레이의 말에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옆에 누워있던 알몸의 기녀가 몸을 꿈틀거렸지만 다행히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잠시 그 기녀를 바라보던 불타르가 쯔르레이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굉장한 모습인 걸.”

    “응?”

    “옷 말이다, 옷. 그러고 있으니 진짜 여기 취직이라도  것 같은,”

    쯔르레이는 곧바로 불타르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그제서야 깨달았지만 쯔르레이는 지금 아까 그 모습 그대로 이 방에 온 것이었다. 그야말로 새끼창녀나 다름없는 모습이었기에 쯔르레이는 불타르를 망설임없이   있었다. 그에게 알몸도 보인적이 있었건만, 알몸은 괜찮지만 야한 속옷 차림은 안된다는 것이 참 쯔르레이다웠다.

    원래의 방으로 돌아오자 필로아가 반겨주었다. 필로아는 잠깐 헤어진 것임에도 격렬하게 티를 내며 반가워했다. 확실히 남자에게 인기가 많을 법한 태도였다.

    “갔던 일은 잘 해결 됐니?”

    “그래.”

    필로아의 물음에 쯔르레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럼에도 필로아의 시선에는 쯔르레이가 사랑스럽다는 표정이 잔뜩 들어있었다. 쯔르레이 자신은 몰랐지만 쯔르레이의 울적한 표정에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것이 숨어있었다.

    쯔르레이는  이 곳에 있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곧장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쯔르레이를 필로아가 막아섰다.

    “조금 더 자고 가지 않을래? 아직 새벽이란다. 내가 부담스럽다면 혼자서라도 조금 잠을 자는 건 어떻니, 어제 술도 많이 마셔서 아직 상태가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쯔르레이는 갈등했다. 사실 필로아의 말대로 아직 술기운이 좀 남아있어 그렇게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새벽이라 시간은  남아있었고 불타르도 좀 더 잘 것 같았다. 조금 어리광을 부려도  문제는 없을 상황이었다. 지친 쯔르레이는 결국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쯔르레이가 눕자 필로아가 옆에서 작게 자장가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치 류나벨트의 노래를 들으며 잤을  같은 기분이 들어 쯔르레이는 좀 더 편안해졌고,  더 울적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