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3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33/162)



〈 133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아무리 쯔르레이라고 할지라도 불타르의 뒤를 따라 상점으로 들어갈 수 까지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숨어서 불타르가 나오길 기다리던 쯔르레이는 곧 상점의 주변에서 상당히 여럿의 인기척을 감지했다.

인기척을 느끼기는 했지만 쯔르레이의 실력으로는 단순히 인기척만으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행인 점은 그 인기척들이 노리는 것이 쯔르레이 같지는 않다는 것 뿐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상점을,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불타르를 노리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 되어서야 불타르는 상점에서 나왔다. 그러자 인기척들의 시선도 불타르의 뒤를 쫓았다. 다만 그들의 목적은 불타르가 아니었는지 그저 시선만 향한 채 불타르를 쫓아가지는 않았다. 쯔르레이는 그들의 시선에 닿지 않게 뒤를 돌아서 다른 방향으로 불타르가 가는 방향을 앞질러 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더는 불타르를 쫓지 못할 즈음에 되어서야 쯔르레이는 불타르의 앞으로 나서 말을 걸었다.

“어이.”

갑자기 튀어나온 쯔르레이의 모습에 불타르는 여간 당황한 모습이 아니었다.

“벨… 아니, 쯔르레이?”

쯔르레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바꿔 부르는 불타르의 말이 새삼 귀에 푹 들어왔다. 만약 이제, 더는 벨투리안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름을 나눠 부르는 의미도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생하울라의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지만 지금은 앞에 사람이 있었다. 다른 길로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 나다.”

“이게 어떻게  일이래? 분명 탈출에 성공해서  엘프 아가씨랑 같이 떠난 줄 알았는데.”

“류나벨트는… 죽었다.”

“죽었다고?”

“독…에 중독되었다. 순순히 보내줄 생각은 없었나보지.”

쯔르레이의 얼굴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불타르는 그런 쯔르레이의 얼굴을 보고 지금 쯔르레이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음을 깨닫고는 유감을 표했다.

“안타깝게 됐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군….”

“….”

쯔르레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류나벨트의 죽음을 스스로 말로 꺼내려니 생각보다  충격이 더했던 모양이다.

반면 불타르는 쯔르레이가 안타까웠다. 저주건 뭐건 잘모르긴 하겠지만 어쨌든 불타르의 입장에서는 쯔르레이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은 관계였고, 쯔르레이가 울상을 지은 그 모습은 실제  모습을 알고있다  지라도 동정심을 자극할만큼 안쓰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류나벨트가 정말 흑마법사라는  모르는 입장에서 류나벨트는 억울한 피해자로 보이는 것도 꽤나 컸다. 어찌됐건간에 류나벨트의 대외 평가 자체는 꽤나 좋고, 선량한 엘프로 평가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좋아, 이쪽으로 따라옵쇼.”

“응…?”

그런 불타르는 쯔르레이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물론 천출에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살아온 그에게 위로하는 방법이라고는   가지 밖에 없긴 했다. 그리고  두가지는 모두 쯔르레이의 모습을 고려하면 말이 안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불타르가 누구인가! 부랑자의 벗이요, 길 잃은 돈의 주인 되시는 분이올시다. 그는 아무 생각도 없이 쯔르레이를 이끌고 대로로 나갔다. 그리고는 적당히 작은 사람이 없는 술집으로 들어가서 외쳤다.

“여기  곳에서 제일 비싼 술! 가져오시오!”

쯔르레이는 말 없이 불타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

불타르는 꽤나 술을 잘마셨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은 술집에서 제일 비싼 술을 연거푸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으니.

“맛이 어때?”

쯔르레이는 말 없이 작은 잔에 담긴 영롱한 노란 빛의 거품 나는 술을 들이마셨다. 불타르는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쯔르레이가 생각보다 술을 잘마시는 것을 보아 옳은 선택이었다고 속으로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원래 힘들 땐 이렇게 술이라도 좀 마셔줘야 하는거라고.  성현들도 다른 건 몰라도 술만큼은 참지 못하셨지. 좀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

술집 주인은 사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갈등하고 있었다. 더러운 꼴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녀를 데려와서 밥을 먹이고 있었다면, 그를 의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소녀를 데려와술을 먹이고 있는 꼴은 솔직히 범죄자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가 신고를 참고 있는 건 그저 가장 비싼 술을 시킨 불타르의 돈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뭐 잊어버리라고 그런 뻔한 얘기나 잊지 말라는 그런 감동적인 얘기를 할 말재주는 없지만 뭐 같이 술 한 잔 마셔주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내가 쏘는거야!  터놓고 말하라고.”

“나, 나쁘, 지 안쿤….”

“그래 그래, 그렇지?”

쯔르레이는 예상 외로 쑥쑥 들어가는  맛에 반색했다.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있고 말도 점점 꼬여가고 있었지만 그걸 눈치채기에 이 몸은 술에 너무 약했다. 애당초 벨투리안의 몸으로서도 술을 마신 건, 유리히가 가져다 줬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적당히 먹고 적당히 취했던거 같은데,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한 잔… 더.”

“좋아, 여기 주인장! 아가씨가 한 잔 더 달라신다!”

불타르는 겁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뭐,  모습을 보고도 결국 돈 때문에 신고를 안하는 주인장도 거기서 거기였지만.

다행히도 이 술집에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없어 그들의 비도덕적인 모습을 규탄할 이는 없었다. 쯔르레이는 다시금 받은 술  잔을 그대로 들이마셨다. 살짝 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달하게 매달리는 이 뒷맛이 중독적이었다.

“그나저나, 그 눈은 어떻게 된 거야? 전에 봤을 때랑 확실히 색이 다른데.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눈이 확실히 달라.”

“나도 모라….”

“모르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자 쭉쭉 들이켜.”

“웅….”

둘의 대작은 그대로 한참을 더 이어졌다. 마시는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풍류라도 즐기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비싼 술 한 잔에 뭔가를 잊어버릴 만할 정도의 취기는 담겨 있었다.

쯔르레이는 술에 취했지만 주사를 부리지는 않았다. 뭔가 말썽이라도 생겨 병사들이 오게 된다면 쯔르레이의 거취가 위험했을 테니 쯔르레이가 주사를 부리지 않은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문제는 불타르가 슬슬 밤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 쯔르레이에게 일어나자고 말을 건네는 참이었다. 쯔르레이가 잔을 내밀었다.

“더 줘.”

“하하, 슬슬 그만 마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더 줘.”

“슬슬 진정하지 않았나? 그만 마시고….”

불타르는 살며시 쯔르레이의 어깨를 잡았다. 마실 것도  마셨으니 그만 강제로 일으켜서라도 데려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쯔르레이의 어깨는 무거운 강철더미처럼 꾹 눌러 앉아 들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쯔르레이는 그대로 등을 돌려서 불타르의 멱살을 잡았다. 이 무슨 엄청난 힘일까, 쯔르레이에게 멱살을 잡힌 불타르는 그대로 쯔르레이에게 끌려들어갔다.

“더, 줘.”

“드, 드리고맙죠.”

결국 불타르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 쯔르레이가 술을 먹다 쓰러질 때가  되어서야 멈출수 있었다.

“무슨 힘이 이렇게….”

다행히도 불타르는 더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취기에 몸이 지배당하지는 않았다. 덕분이었다.  뒤에 생길 문제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불타르는 쯔르레이를 등에 업었다.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바깥에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갑옷이 철컹거리는 그 걸음소리는 분명 기사 혹은 병사들의 발걸음이 분명했다.

“이 곳인가?”

“예, 어떤 놈팽이가 애를 데려와서 술을 잔뜩 맥이고 있습니다.  아이요? 금발이 확실하냐고요? 네, 분명하죠. 그런데  것은 왜.”

“신경 쓸 거 없다.”

문 뒤에서 병사와 주인장의 말소리를 들은 불타르는 좆됐다는  깨달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상대는 쯔르레이를 찾고 있었고 여기서 잡힌다면 빈말로라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불타르가 누구신가! 좀도둑의 왕, 시궁쥐들의 리더! 따르는 부하 같은 건 없지만 그는 스스로를 왕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미리 생각해둔 술집의 뒷문을 찾아내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에서 호통치는 소리와 함께 뒷문으로 나오는 병사들이 보였으나 이미 불타르는 쯔르레이와 함께 떠난 상태였다.

불타르는 유유히 병사들을 뒤로 한 채 골목길을 넘어서 갔다. 가는 곳의 목적지는… 창녀촌이었다.

~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쯔르레이는 잠결에 자신도 모르게  앞에 있는 감촉을 힘껏 껴안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쯔르레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이 느껴졌다.

행복한 기분이었다. 지금만큼은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마치 류나벨트의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사실 여자의 감촉은 그것 외에는 몰랐기에 그런 것이지만 어쨌든 마치 그런 행복감에 감싸여 있었다.

“후후… 귀여워라.”

잠에 빠진 쯔르레이에게도 그 목소리는 들렸다. 기분 나빠야 할게 정상인 이야기임에도 이미 익숙해져서 일까,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더 그 품 속에 파고들어 껴안을 뿐이었다. 쯔르레이는 알 수 없는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더 파묻었다.

시간이 흘러 잠에서 깨어난 쯔르레이는 자신이 어떤 여자의 품 안에 있단 걸 깨닫고 곧바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 곧바로 솜뭉치를 찾아내 손에 쥐었다.

“어머, 더 자지 않는거니? 조금 더 품에 있어도 괜찮은데 말이야.”

“여긴, 어디지?”

취기 때문일까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쯔르레이가 상대에게 칼을 내밀며 위협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술에 취해 실려왔던 여자아이가 일어나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위험을 느낄 사람은 없었다. 여자가 쿡쿡 웃으며 말해줬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긴 안전하단다.”

“여긴 어디지?”

쯔르레이가 재차 물었다. 여자는 답해줬다.

“여긴 기방이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