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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131/162)


  • 〈 131화 〉잃어버린 사자의 걸음걸이


    쯔르레이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만약 마틴이 오지 않는다거나 병사가 그를 찾지 못한다면 적당히 기다렸다가 몰래 빠져나가거나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짐을 찾고 나면 곧바로 이 곳을  것이니 큰 문제가 있을 것도 아니었다.

    물론 쯔르레이는 자신이 한 번 잡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있는거는 위험한 줄타기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마틴이 도착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였다. 병사가 술집을 찾는데 꽤 헤맨 듯한 모양이었다. 도착한 마틴의 표정은 꽤나 처참한 상태였다. 그가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쯔르레이 역시 짐작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런 마틴을 바라보는 쯔르레이의 표정도 처참했기에 둘의 얼굴은 꽤나 닮은 꼴을 하고 있었다.

    “예, 제가 아는 아이가 맞군요. 아이 아버지요? 아뇨, 죄송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건 잘모르겠군요. 일단 제가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잘돌봐주쇼, 애가 착하고 얌전하던데… 쯧쯧, 어린 애를 어찌….”

    쯔르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틴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마틴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쯔르레이는 그의 심정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병사들의 숙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마틴이 말했다.

    “…대체.”

    “….”

    “대체, 어떻게 그 곳에서 빠져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틴은 숨을 골랐다.

    “도망쳤으면 그대로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이지 무슨 낮짝으로 다시 온 거냐.”

    마틴의 말투는 이전과 달리 험악하게 변해있었다. 쯔르레이는 늘 예의바르던 마틴의 다른 모습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허나 그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너 때문에… 아레히씨가… 아레히씨가 개죽음, 을 당했는데.”

    “….”

    “뭐 생각나는게 없는거냐? 빌어먹을…. 아레히씨에게 사과라도 할 생각은 없는거냐고.”

    쯔르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할테고,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애초에 아레히와의 약속은 그와의 맹약을 통해 넘겨받은 것. 쯔르레이가 비난 받을 이유가 없었다, 라고 쯔르레이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뭐라도 말이나 해봐라.”

    “할 말이 없으니, 하지 않는다.”

    “젠장, 뭐라도 말해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쯔르레이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쯔르레이의 작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강철 같던 소녀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는 마틴도 당황했다. 그리고는 소녀에게서 변한 점이 있다는  깨달았다.

    “너, 눈이?”

    “신경쓰지 마라.”

    명백하게 변한 눈 색깔은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한번 눈치채자 흙으로 더럽혀진 얼굴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당황하고 있던 마틴은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흥분했기에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이 어린 아이에게 화를 내고 혼내는 모양새로 주변에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울자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고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쯔르레이의 엉망진창인 모양새 또한  상황에 한몫했다.

    명백하게 어린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마틴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쯔르레이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따라갔다.

     이럴 때 빌어먹을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불과 며칠 전 어린게 울기 좋아 편하다고생각했던 쯔르레이는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것은 불편했다. 아레히를 떠올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건 자신답지 않았다.

    그들의 본거지인 술집에 도착하자 확실히 줄어든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실의에 빠진 표정이었고 누군가는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의 이유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쯔르레이가 술집에 들어서자 곧바로 욕설이 날라왔다.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기어들어온거냐?!”

    “저주받을 년 같으니!”

    쯔르레이는 묵묵히 참아넘겼다. 자신 때문에 아레히가 죽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분노에 대항할 수도없었다. 먹다 남은 맥주병이 날아와 머리를 때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쯔르레이는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맥주병을 던진 용병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그 것이 상대를  화나게 한 걸까. 용병이 쫓아와서 쯔르레이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쯔르레이는 꼼짝없이 들어올려지고 말았다. 발버둥 쳤지만 헛수고였다.

    “육시랄 년! 너 때문에 단장이 죽었는데, 그딴 표정을 지어?!”

    “그만하십시오!”

    “가만놔둬! 이 년은 좀 쳐맞아야 해.”

    “아레히씨가 이러는  바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젠장, 그럼 어쩌라고?! 단장의 목은 저기 저 곳에 걸려서 눈도 감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 뭐라고 했지?”

    쯔르레이는 반항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정도 맞아주는  까지는 감안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병의 말에 쯔르레이는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 이제와서 뭐가 궁금하기라도 하냐? 흑마법사의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로 단장은 시체채로 참수 되어서 저기 매달려 있다고! 이제 죄책감이라도,”

    용병은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쯔르레이의 표정이 처참하게 변하더니 그 얼굴에서 다시금 눈물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소리내어 우는 것은 아니었으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너… 우냐?”

    “안운다.”

    쯔르레이는 눈물을 닦고 의미없는 거짓말을 했다. 그제서야 용병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지 혀를 체고는 쯔르레이를 던지고 자리로 돌아갔다. 가기 전에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젠장, 빨리 꺼져버려!”

    마틴이 넘어진 쯔르레이를 부축해주었다.

    “괜찮…니?”

    “신경쓰지마라. 아무렇지도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하기에는  얼굴에 티가 나게 눈물자국이 번져 있었으나 마틴은 지적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라는 걸 느꼈는지 전보다는 반응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흉흉한 반응이었다.

    반면 쯔르레이는 시도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에 가슴이 아려왔다. 아레히의 죽음 따위에 더 흘릴 눈물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레히의 목이 참수되어 걸려있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죽은 자조차 편히 쉬게 해줄 수 없었다. 그런 운명인 것이다.

    “아레히의 목은… 어디에 있지?”

    “혹시나 되찾으러 갈 생각이라면 그만둬라. 명백한 함정이니까. 다시 잡혀들어갈 게 아니라면 말이야.”

    “…알았다.”

    “광장이야. 광장에 있다. 흑마법사의 도주를 도운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전시되어있지.”

    쯔르레이는  말에 뭐라  수 없었다. 아레히의 희생으로 되찾은 류나벨트는 이미 죽었고 그는 죄인으로 죽어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망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틴은 더 말을 잇지 않고 쯔르레이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안에서 보관해둔 쯔르레이의 짐을 건네주었다.

    “자, 네 짐이다.”

    쯔르레이는 짐을 받아들이고는 안에 담긴 것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사라진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틴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해야 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한가지만 묻지. 너는 알고 있는 거냐? 엘프와 함께 도주했다는 야만인이 누구인지?”

    쯔르레이는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마틴은 쯔르레이와 그 야만인이 무슨 관계인지 이미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 야만인이라고 밝히자니, 믿어줄  같지도 않았고 헛소리를 한다고 여겨질 것이다. 결국 쯔르레이는 모른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모른다.”

    “…꽤나 고민하는군. 정말로 모른다면 바로 모른다고 했을텐데 말이야.”

    “안다고 하더라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다. 나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니.”

    이 말은 사실이었다. 더는 쯔르레이는 벨투리안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것이 일시적인 증상인지 영구적인 증상인지는   없었으니 결국 벨투리안이 어떻게 되었는 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 알았다. 그럼, 떠나라. 더는 아레히씨가 없으니 이곳에서 너를 돌봐줄 수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다. 어디가서 잡히지 말고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거다. 혹여나 허튼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마틴이 남긴 마지막 배려였다. 쯔르레이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는방을 나갔다. 다시 술집의 로비로 들어서니 강렬한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쯔르레이는 무시했다. 이제는 엮일 일이 없는 이들이었다. 술집을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여관 같은데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싶었으나 마틴의 말대로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좋지 못했다. 행여나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기사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벨투리안은 전에 실비아와 함께 나섰던 성문의 방향으로 향했다. 그쪽의 병사들이 뇌물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뇌물을 주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광장이 있었다.

    쯔르레이가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레히의 목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한  죽어있는 그의 목은 참으로 끔찍한 모양새였다. 쯔르레이는 그 목을 보고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욱….”

    다행히 제대로 먹은 게 없어 토악질을 하진 않았으나 입에서 신물이 흘러나왔다.

    아, 아레히. 어찌 이런 꼴이더냐. 아레히의 죽음은 각오하였으나 이런 꼴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그렇게도 밉더냐? 죽어서조차 나를 괴롭게 할 생각으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이냐. 물론 아레히가 결코 원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 터이나 그것이 쯔르레이를 더욱 괴롭게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해야하는거냐,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내가. 얼마나 더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냐, 이 세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아레히의 저 목을 내려 안식에 들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함정이고 자신이 저 목을 내리는 순간 곧바로 잡힐 거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찌 해야하는가? 답을 내려다오.

    그러자, 등에 매달린 솜뭉치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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