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9화 〉들개들의 진혼가 (129/162)


  • 〈 129화 〉들개들의 진혼가

    이윽고 류나벨트의 눈에서 흐르는 핏물이 마르기 시작했을 즈음에 류나벨트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니, 적어도 자신이 반드시 죽을 거란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포기한건지, 단념한건지, 더는 삶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죽음을 구걸했다. 지독하게 끔찍한.

    “…벨투리안씨… 그럼 나… 부탁할  있어요.”

    그러나 류나벨트의 눈은 이미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의 건너편을 향하고 있었다.

    “혼자… 죽고 싶지 않아요. 나랑 같이 죽어주세요.”

    “….”

    “복수를, 막을 거라면… 그거라도 해주세요. 혼자, 가고 싶지 않아요.”

    “어째서.”

    내게 그리 잔인한 말을 하는 겁니까.

    어째서 이 여인은 내게 이리도 잔인한 요청을 하는 걸까. 너무나도 잔인하다. 너무나도 비참하다. 이 역겨운 상황이 끔찍했다.  순간만큼은 류나벨트가 너무나도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벨투리안은,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 불행하고 역겨운, 용들의 꼭두각시의 인생의 지독함에 몸부림치면서도, 결코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몇 번이고 죽음을 갈구했는데도 살아서 움직이는 이유가무엇이겠는가.

    벨투리안은 지독히도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사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벨투리안은 결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계속해서 눈물만 흘리는 벨투리안을 보고 자신의 부탁을 거절당한 걸 깨달은 류나벨트가 쿡쿡 웃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는  웃었다. 그리고 벨투리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을 걸었다.

    “미안해요, 내가 이상한 말을 했네요.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류나벨트는 죽음의 끝자락에 도달해서야 정신을 놓아버린걸까, 마지막으로 벨투리안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벨투리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습이 너무도 미안하고 가여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더는 자신을 미워하지 못하는 거에 안심하는 자신이 한심하였다.

    그리고 류나벨트가 울면서 노래 불렀다.

    “잘있어요, 멋있는 신사분.”

    “왜… 또 우시나요?”

    “내가 노래… 한  불러줄…까요?”

    “랄랄라~….”

    류나벨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힘없이 퍼져나가 노래의 선율을 품었다. 힘없고 비참한 노래였고 벨투리안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선율이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벨투리안은 눈물의 목소리를 뽑아내었다. 그 목소리는 처절하고 비탄스러웠다. 벨투리안은 입을 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녀에게 전해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죽기 직전에라도 모든 걸 공개하고 싶었다. 벨투리안이 입을 열었다.

    “류나 미안해요, 사실 나는… 쯔,”

    그러나 류나벨트가 벨투리안의 입에 손을 갖다대어 쉿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벨투리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류나벨트의 손이 떨어져내렸다.

    류나벨트에게 구해지고, 류나벨트가 해준 음식을 먹고, 류나벨트가 사준 옷을 입고, 류나벨트에게 안겼다. 그리고 류나벨트를 안았다. 그런 짧은 시간이었다.

    벨투리안의 소리 없는 절규가 작은 지하실에 울려퍼졌다.

    ~

    벨투리안이 말 없이 류나벨트의 집 뒷마당의 땅을 파고 있었다. 류나벨트의 집에는 마침 삽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사용해서 땅을 팔 수 있었다. 천천히 아무 생각 없이 땅을 파고 있었지만 작업은 영 더뎠다.

    류나벨트가 만든 복수의 독약은 공방에 그대로  채 문을 닫아 버렸다. 다행히도 지하실에서 나와 문을 닫자 지하실 문은 사라지고 그대로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류나벨트만이 열 수 있는 것이겠지. 위험한 물건이니 다행이었다.

    천천히 구멍을 파내려가는데 풀벌레들이 모여들었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풀벌레들이 구슬피 울었다. 이번만큼은 벨투리안도 그들을 쫓을 수 없었다. 사실, 그들의 소리가 벨투리안에게 들릴지도 알  없었다. 벨투리안은 그저 땅을 파고 있었을 뿐이니.

    한참이 걸려 구멍을  파내자 벨투리안은 그 안에 나뭇 잎사귀들은 한아름 따다가 풀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류나벨트의 시체를 안고 그 밑으로 내려가 편안한 자세로 그녀를 눕혔다.

    다시 올라온 벨투리안은 말 없이 그녀의 시체 위로 흙을 뿌렸고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흙 속에 파묻힌 류나벨트의 위로 작은 나무로 된 묘비 하나를 세웠다. 이번에는 일족의 묘비와는 다르게, 글을 써줄  있었다.

    ‘나의 류나.’

    벨투리안은 그렇게 써버렸다. 조금 바보 같은 묘비 같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말릴 사람은 주변에 없었으니까. 그때까지도 벨투리안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전부 말라버린 양, 흘러나오지 않았다. 풀벌레들민이 대신 그를 위해 울어주었다.

    벨투리안은 반쯤 폐허가 된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다시 왔었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류나벨트와 함께 밥을 먹었던 식탁, 이건 류나벨트가 항상 보고 있었던 책, 이건 류나벨트가 읽어주었던 동화책, 이건 류나벨트가 웃으며 앉았던 의자… 모든 곳에 류나벨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기적적이게도 쯔르레이 였을 시절 머물었던 방은 상당히 멀쩡한 모습으로 있었다. 벨투리안은 자신이 누웠던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러자 쯔르레이였을 때는 넓직했던 침대가 자리가 부족해 쪼그려 누울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벨투리안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아주 긴 잠에 빠져들었다.

    꿈 속에서 벨투리안은 쯔르레이의 모습이었고, 류나벨트와 함께 있었다.

    류나벨트는 잠을 자는 쯔르레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무슨 동화책이었을까, 내용은 기억나지않았지만, 류나벨트가 웃었고 나도 웃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이윽고 쯔르레이가 잠에 빠지자류나벨트는 동화책을접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 방을 빠져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쯔르레이가 잠든 방의 창문 밖으로는 벨투리안이 길을 걷고 있었다. 벨투리안은 뭔가 잊은 것이라도 있는 듯이 류나벨트의 집을 계속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발걸음을 돌리지 않은 채 떠났고,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벨투리안은 다시 쯔르레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린 그 모습으로 돌아온  깨달았을 때, 쯔르레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쯔르레이는 마구 눈물을 흘리며 어린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아아, 어린아이는 참 좋구나. 적어도 쉽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 만큼은.

    쯔르레이는 탈진하여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울고  울었다.

    류나벨트, 류나벨트, 뭐가 그리도 미안한지, 류나벨트를 부르짖으며 울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 눈물은 쯔르레이가 쓰러져서도 멈추지 않았고 계속해서 침대에 놓인 베개를 적셔나갔다.

    그 눈물이 흐르는 눈은, 금색이었다.

    ~

    기사들이 류나벨트의 집에 도착한 것은 쯔르레이가 떠나고서 이틀이 지나서였다. 이상하리만치 울어재끼는 풀벌레 소리에 진저리를 내던 기사들이 류나벨트의 집을 살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없군.”

    “그렇군요. 이미 다 도망간 걸까요?”

    “젠장, 당장 샅샅이 뒤져봐라!”

    기사들은 류나벨트의 집을 쥐잡듯이 뒤졌지만 아무도 발견할  없었다. 찾을 수 있던 것은 이곳에 누군가 있다간 흔적 뿐이었다. 소득 없는 수색을 계속하던 도중, 한 기사가 외쳤다.

    “여기! 묘비가 생겼다!”

    “묘비라고?”

    그 외침에 모든 기사들, 그리고 올리안 살람이 뒷마당으로 모였다.

    “‘나의 류나’라고 써져있다. 그 엘프의 이름 분명 류나벨트였지.”

    “이 무덤이  엘프의 것이란 건가?”

    “확신할 수는 없지, 파보자고.”

    “잠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한 기사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의 감은 꽤나 정확했다. 아까부터 울리고 있던 풀벌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하게 시끄러웠던 숲이 고요해지고 있었다.

    “뭐지? 이봐 무덤 주변에 꽃들이 전부 썩어있어.”

    “이건… 벌레들의 시체로군.  주변에벌레들이 잔뜩 죽어있어.”

    그러나 이미 그걸 깨달았을 때는 늦은 것이었다. 처음 쓰러진 이는 올리안 살람이었다.

    “어, 어이, 뭐야 갑자기?!”

    다른 기사들은 갑자기 쓰러진 살람의 모습에 당황해 쓰러진 살람을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살람의 입에서는 영문 모를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모두… 도 망….”

    “뭐라고? 도망? 치라고?”

     기사들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기사들도 한명씩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깨달았을 때에는 늦었다.

    “제, 젠장… 뭐야… 이… 게….”

    이윽고 모든 기사들이 쓰러지자  속에서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갈색머리의 작은 몹집을 한 소녀였고, 한명은 메이드복을 입은 분홍색 머리의 성인 여성이었다. 갈색머리의 소녀는 전형적인 마법사의 로브를 입고 후드를 쓰고 있었다. 소녀는 그 후드를 내려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세르미나카가 조용히 기사들이 쓰러진 무덤의 주변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경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소서, 나의 왕이시여.”

    그러자 류나벨트의 무덤에서 류나벨트의 것이 분명할 손이 팍 하고 올라왔다. 그 손은 묻힌지 며칠의 시간이 지났음이 분명함에도 전혀 상하지도 썩지도 않은 상태였다.

    류나벨트의 책은 아직 닫힐 때가 되지 않았다.

    세미의 표정이 아주 밝은 태양을 보기라도 한 듯이 빛이 났다.

    “울푸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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