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8화 〉들개들의 진혼가 (128/162)


  • 〈 128화 〉들개들의 진혼가

    다시 류나벨트의 집으로 향하는 벨투리안과 류나벨트가 가는 길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다. 이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류나벨트의 말을 들은 이후로 그 풀벌레 소리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그러나 바쁜 여정에 일일이 풀벌레들을 쫓으며 갈 수도 없는 길이라 둘이 가는 길에는 아름답지만 구슬픈 노랫소리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벨투리안은 해가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는 사이에 류나벨트는 세 번의 토혈을 했다. 처음 토해낸 피는 아직 붉은색이었으나 마지막으로 토해낸 것은 진한 검은색이었다. 벨투리안이 뺏어입었던 기사 갑옷은 이미 피로 얼룩지게 되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옷이 다 젖었네요….”

    “신경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옷도 아니니까.”

    “들개들의… 기사단원이 아니셨나요?”

    “예, 이 옷은 뺏어입은 겁니다.”

    “푸훗, 그거 쌤통이네, 쿨럭쿨럭!”

    말을 하던 도중 다시 류나벨트가 피를 토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크게 피를 토한 것은 아니어서 손을 좀 적신 정도였으나 벨투리안은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과연 그 시간 안에 류나벨트의 집에 도착할  있을지, 모든 게 걱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벨투리안의 체력이 바닥나지 않는  뿐이었다. 확실히 한계는 존재했으나 어느 정도 쉬고 나면 다시 류나벨트를 업고 달릴 수 있을만큼의 체력이 돌아왔다. 만약 평범한 인간의 체력이라면 결코 견딜  없었을 것이다.

    둘이 다시 쉬는 동안 류나벨트는 피를 토한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마냥 다시 재잘댔지만 이윽고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순간 정신을 놓은 듯한 류나벨트의 모습에 당황한 벨투리안이 그 어깨를 잡았으나, 그저 잠들었음을 깨닫고는 손을 놓고 안심했다.

    “…어…죽……전부….”

    그런 벨투리안이 뒤를 돌아보자 류나벨트의 잠꼬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벨투리안은 무례임을 알면서도 무심코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전부… 죽어버려….”

    아아, 류나벨트. 나의 류나. 그녀 역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냥 천사 같고 구원자 같던 그녀 역시 속에는 증오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섬뜩한 느낌이 벨투리안의 손을 타고 올랐다. 자신이 그녀를 구한 것에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결백함이 만약 거짓이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지?

    물론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류나벨트를 살린다. 그 목적을 위해서 달려왔고 그 목적만이 전부였다. 그녀가 정말로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오직 자신을 구한 류나벨트라는 것 뿐이었다.

    벨투리안은 류나벨트를 다시 업었다. 그녀가 깨지 않게 조용히. 그리고는 달릴 준비를 했다.  때 벨투리안의 귓속으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나벨트의 잠꼬대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쯔르레이.”

    아아, 나의 류나.

    벨투리안은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보다 느린 속도로 류나벨트가 깨지 않게 달릴 뿐이었다.

    ~

    류나벨트의 집에 도착한 것은 거기서 하루가 더 지나서였다.

    그러나 벨투리안이 기억하던 류나벨트의 집은 더 이상 없었다. 집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기사들이 휩쓸고 갔기 때문일까, 사실상 반쯤 폐허가되어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벨투리안은 분노와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안…으로 가주세요. 지하실이 있어요.”

    벨투리안은 류나벨트가 시키는 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단 밑에 숨겨진 지하실의 문을 발견했다. 류나벨트가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벨투리안은 조심스레 류나벨트를 내려주었다. 그러자 류나벨트가 지하실의 문에 손을 대고 읇조렸다.

    “루크…아루, 테이아.”

    그러자 문에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그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이 직접 털썩하고 열렸다. 문 안에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오세요.”

     안은 흑마법사의 공방이었다. 이미 각오한 상황일텐데도 살짝 어지러웠다. 그녀는 결국 정말로 흑마법사였던 것이다. 흑마법사의 공방 같은 것은한번도 상상해본 적 조차 없지만, 그녀의 공방은 딱 보기에도 흑마법사의 것이라는 것이 느껴지게 생겼다. 마녀의 것처럼 어둡고 음침하며 불길해보였다.

    류나벨트는 구석에 박혀있는 작은 침대에 가서 누웠다.

    “벨투리안씨… 저 좀 도와줄래요?”

    “…말해보십시오.”

    “약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 몸이 이래서는, 쉽게 만들 수가 없겠어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벨투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나벨트는 누워서 벨투리안에게 지시했다. 처음에는 공방의  가운데에 있는 솥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류나벨트가 시키는대로 재료와 여러 시약들을 섞고 저었다. 류나벨트의 지시는 자세하면서 복잡했다. 약 하나도 대충 넣어서는 되는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은 시계 방향으로 젓고 어떤 것은 반만 저어야 했고 어떤 것은 그 반대 방향으로 저어야 했다. 그 횟수와 시간 까지 모든 것이 정해져있었다.

    벨투리안은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류나벨트의 목숨은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그 지시들을 수행했다. 두어 시간이 지날 즈음이 되어서야 류나벨트의 지시는 끝이 났고 약의 색은 불쾌하게 물들어있었다.

    “이제… 쿨럭 쿨럭! 에흑! 끄으윽.”

    말을 하려던 류나벨트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다시금 피를 토했다. 벨투리안이 놀라 다가가자 류나벨트가 손사를 치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잘됐어요.”

    계속누워있던 류나벨트는 일어나서 솥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자신이 토해낸 피를 담은 손을 그대로 솥에 뿌리쳐 자신의 피를 약에 담았다. 그러자 불쾌하던 약의 색깔이 영롱한 녹색빛으로 변하였다. 류나벨트의 눈동자와 같은 색깔이었다.

    류나벨트가 구석진 책상에 놓인 작은 빈 병을 들고와 그 안에 약을 담았다. 류나벨트의 입에서 흘러나온 속삭임에 약이 병으로 스스로 흘러들어갔고 작은 빈 병 안에 그 커다란 솥에 있던 모든 약이 들어갔다.

    “그걸 마시면, 치료할 수 있는 겁니까?”

    벨투리안이 물었다. 물으면서도 벨투리안은 약을 완성시켰다는 것에 안심했다. 그러나 류나벨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뇨, 이건 먹지 않아요.”

    “네?”

    “뿌릴거에요, 이 땅에.”

    “….”

    벨투리안은 침묵했다. 그것이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땅에 뿌린다고? 왜? 기껏 완성한 약을 어째서? 대체?

    “미안해요, 거짓말해서.  독의 치료약 같은  없어요. 있다 해도 저는 만들 수 없고요.”

    어지러웠다. 류나벨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째서….”

    “하지만, 독이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죠. 내 피를 담긴  약이 이 땅에 뿌리내어 내린 모든 것은 썩히고 나와 같은 독을 뿜을거에요.  땅은 그럼 저주 받겠죠. 나를 핍박한그 모든 것이 나와 같이 썩어가고 굳어가고 피를 뿜을거에요.”

    “류나… 어째서… 왜….”

    “거짓말한  미안해요. 하지만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당신은 저를 데려다주지 않았겠죠. 그래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 덕분에 이 땅의 모든 것을 저주할  있으니까.

    “그럼, 이제 비켜주시겠어요?”

    “내가, 그 말을 듣고도 당신을… 보내주리라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하잖아요?”

    류나벨트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미 창백하고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그 말은 아프게 벨투리안을 찌르고 들어왔다.

    “사랑… 내가? 당신을?”

    “그렇지 않다면 왜 저를 구해줬나요? 왜 친구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저를 구해줬죠? 왜 죽을 정도로 힘든데 저를 업고 이 곳까지 달려왔나요? 저를 위해서잖아요?”

    “그러니 저를 보내주세요. 제 복수를 완결할  있게.  책의 마지막 장을 쓸  있게 해주세요.”

    “날 사랑하잖아요?”

    류나벨트는 당당하게 애원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웃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얼굴이었다. 자애로운 미소였으나 그 미소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미소는 너무나도 잔혹해보였다.

    류나벨트의 말에 벨투리안의 가슴이 찢어지는  같았다. 아니 이미 찢어졌다. 사실 그 자신만 몰랐을 뿐, 그의 가슴은 이미 찢어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찢어진 틈새로 들어오던 햇살에 잠시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벨투리안은 류나벨트를 보내줄 수 없었다.  햇살을 더는 느낄 수 없다면, 마지막 기억이나마 더듬거릴 수 있기 위해서. 지독히도 이기적인 결정이었다.

    벨투리안이 류나벨트를 껴안았다. 강제로. 그리고 그 손에 담긴 약을 빼앗았다.

    “어째서! 돌려줘요!”

    “미안해요, 류나. 미안해요. 미안해요.”

    벨투리안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류나, 미안해요.”

    “왜, 어째서에요?! 나를 사랑하잖아요. 나를 위해 복수해줘요! 제발!”

    “그래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벨투리안이 울었다.

    “그래서 당신이 그런 일을 하게 두고 싶지 않아요.”

    “놔줘요! 제발, 부탁이에요. 벨투리안씨. 나 이렇게 갈 수 없어요. 복수해야해요. 나를 죽인 모든 것들을 죽여야 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벨투리안의 두 눈에서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어젯밤 류나벨트의 피가 벨투리안의 옷을 적셨듯, 류나벨트의 옷을 적시고, 머리카락 위에 떨어져 흘러내렸다.

    류나벨트가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죽이게 두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괴롭힌 이들만을 죽인다고 했으면, 차라리 놔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죽인다고 선언했다. 벨투리안은 놔둘 수가 없었다. 천국을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죽어서 그 죗값을 새기지 않았으면 했다.

    강제로 벨투리안의 품에 껴안긴 류나벨트가 다시 피를 토했다. 그 순간 류나벨트는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곧이었다. 곧.

    “나, 사실 죽고 싶지 않아요….”

    류나벨트의 몸이 천천히 굳어가고 있었다. 눈과  귀 등,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류나벨트는 더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싫어요… 나 죽고 싶지 않아요.”

    류나벨트가 움직이지 않는 팔을 애써 휘두르며 애원했다. 애원의 대상은 벨투리안, 오직 그 밖에 없었다.

    “베, 벨투리안씨, 부탁이에요.  살려주세요, 제발.”

    그녀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정말로 자신이 죽는 다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복수의 갈망을 넘어선 두려움이 그녀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어떻게 할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끔찍한 상황에 한탄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벨투리안이 류나벨트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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