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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화 〉들개들의 진혼가 (122/162)


  • 〈 122화 〉들개들의 진혼가

    [그럼 너는 돌아올 수 없다.]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들려왔다. 그럼 너는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올  없다. 무엇으로? 나는 무엇으로 가고 무엇으로부터 오는거지? 선문답처럼 얘기해봤지만 답은 명확했다.

    그걸, 잡는 순간,

    쯔르레이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벨투리안이 될  없었다. 다시는.

    쯔르레이는 그 말에 공포를 느꼈다.

    바보 같은 얘기였다.

    류나벨트를 구하려면 모든 걸 바치고 모든 걸 이용할거라고 마음 먹었는데,

    결코 바칠 수 없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이용하려 했지만, 결코 할  없었던 유일한 것.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던 버릴  없었던 것.

    바로 자기 자신.

    그것은 사랑도 집착도 아닌 아주 단순한 욕망,

    가장 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

    내 자신으로 있고 싶다.

    지독할 정도의 자기애였다.


    끓어오르는 자기 혐오가 쯔르레이를 덮쳤다.

    결국 모든 말이 맞았다. 자신은 어리석고 미련했다.

    그러나어찌해야하는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일지언데!

    이 자신을 버린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벨투리안을 버린다면 남는 것은 오로지 쯔르레이 뿐이었다.

    이 이름을 준 이여, 내게 무엇을 바랬단 말인가…?

    가르쳐다오, 생하울라.

    내 목숨은 너에게 무슨 가치가 있어 그리 죽음을 종용했더냐.

    이것만큼은…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을터인데….

    이미 빛이 꺼진 솜뭉치에게서는 아무 것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뻗자 솜뭉치는 바닥에 꽂혀 있던 것이 무색하게 쑥하고 빠져나오더니 쯔르레이 쪽으로 넘어졌다. 쯔르레이가 손을 대자 그 검은 거짓된 자태를 벗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일어났다.

    뭉툭했던, 평범하고 둔탁한 그 거대한 검의 겉표면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남은 그 칼날은 아름답게 서로를 비추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환희했다.

    보아라! 보아라! 이것이 나의 진정한 아름다움일지니! 추한 옷을 벗어던지고 드러내는 여인의 젖가슴처럼 가련하고 풍만하구나!

    검이 말했다. 아니, 실제로 검이 말한 것은 아니였으나 쯔르레이는  수 있었다. 이 검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 지를.

    검은 용의 비늘로 말미암아 태어나 그 용사勇士이자용사龍死인 내 주인의 피로 나는 다시 깨어나리니! 나를 잡아라! 그리고 죽여라! 학살해라! 모든 드래곤을 죽여라! 죽여라! 용들의 피로 나는 다시 태어난다! 용의 피를 멸절시켜라! 남는 것은 오직 인간! 인간 뿐이리라!

    용이 노래했다. 아니, 검이 노래했다. 그렇다. 솜뭉치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슈라헤의 검! 용살자 슈라헤가 받은 모든 용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검! 울푸레의 비늘로 빚어져 일곱 용의 피를 먹은 검!

    일곱 용의 피를 먹었노라! 부족하다! 부족해! 나에게 여덟 번째 용의 피를 다오! 피! 피! 모든 용의 피를 먹어치워 없애버리리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용들이여!

     검에 분노는 없었다. 그것은 순수한 살의였다. 오로지 순수한 용에 대한 살의만이 느껴졌다. 미친 듯이 울부짖는 검의 소리가 쯔르레이의 머리를 때렸다. 귓가에 울리지는 않았다. 그 검 소리는 오로지 쯔르레이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쯔르레이가 검의 손을 잡고 살폈다. 검은 좀 작아졌으나 여전히 쯔르레이의 몸집에는거대했고 이전의  뭉툭한 칼날은 어디갔는지  형세가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웠다. 쯔르레이의 손가락이 잠시 칼날에 닿자 그 검은 포식하듯이 쯔르레이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삼켰다!

    일곱 번째 용이여! 우르테가의 피! 어린 것! 어린 것의 피가 나를 돋우는구나! 좀 더 다오! 좀 더! 용의 피를 먹어치우기위해!

    이 검은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피를.

    그렇다면, 주면 된다.

    왜?

    용을 죽이기 위해서.

    쯔르레이를 죽이기 위해서.

    그것은 일종의 최면과도 같았다. 모든 용을 죽이라는 그 살의에 쯔르레이는 그저 응답한 것일 뿐이었다.

    쯔르레이가 죽인다.

    일곱 번째  우르테가.

    쯔르레이  자신을.

    너무 길어서 손잡이를 잡고는 찌를 수 없었다.

    그래서 칼날을 붙잡았다. 붙잡은 손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검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단 한 방울의 피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좀 더!  더! 좀 더 다오! 좀 더!

    그래.

    먹어라.

    먹어치워라.

     쯔르레이를

    내 안의 쯔르레이를.

    칼날을 잡은 채로 쯔르레이가  가슴을 향해 솜뭉치를 찔러넣었다.

    이름처럼, 새하얗지는 않았으나, 이름처럼, 그 모든 피를 빨아마셨다.

    ~

    그 검이 쯔르레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뼛조각,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 먹어치웠다. 그러자 남은 것은 오직 벨투리안이었다. 감옥에는 오직 벨투리안만이 남아있었다.

    쯔르레이의 모습으로 그렇게 오래 지낸 것 같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몸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쯔르레이가 몸에 걸치고 있던 메이드복은 벨투리안으로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찢어져 벗겨졌고 쯔르레이를 압박하던 사슬들은모두 벨투리안으로 돌아갈 때 변화를 막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져버렸다. 벨투리안은 자연  자체의 모습이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벨투리안과 검 한 자루, 솜뭉치 뿐이었다.

    벨투리안은 지금 자신에게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상황인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만 적어도 당분간 쯔르레이로 돌아갈 일은 없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돌아온 것인가? 다시는 그 증오스런 모습으로 돌아갈 일은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할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물론 대답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나가야 했다.

    나가서 류나벨트를 구해야했다.

    벨투리안이 솜뭉치를 들어올렸다. 아까와 같은 예기는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색의 투박했던 검신이 검은색의 윤기나는 모습으로 변했으나  성질은 과거와 별반 다를게 없어보였다. 여전히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고 검은 전혀 날카롭지 않았다. 손을 대도 피가 흐르지 않았다. 사용할 있다. 벨투리안이 검을 들어올렸다.

    이전에 성벽을 부수고 나갔던 것처럼 철창을 부수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엘핀인가? 엘핀이어서는 안됐다. 아무리 자신이 이 모습이라 하더라도엘핀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엘핀이라 할지라도 뚫고 나갈 생각 뿐이었다. 어쩐지 지금은 누가 자신을 막아도 뚫고 지나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곧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엘핀이 아니었다. 전혀 상상 외의 인물이었다.

    “…쯔르레이? 아니, 형씨?”

    좀도둑 불타르 세너맨이 그 곳에 있었다.

    “네가 어떻게…?”

    “나도 여기서 쯔르… 아니, 형씨를 만나게  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불타르 세너맨은 상황 파악이 빨랐다. 어찌 됐건 간에 벨투리안이 갇혀 있다는 걸 알고 잇기에 곧바로 손에 들고 있는 꼬챙이로 감옥 문고리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벨투리안은 문을 부수고 나갈 생각이었기에 그를 만류할 생각이었지만, 좀도둑이라는 것이 허튼 얘기는 아니었던 듯, 채 말리기도 전에 불타르는 문을 열어버렸다. 가히 경이로운 솜씨였다. 벨투리안은 잠시 이런 감옥에 갇혀 있던 것에 허무함을 느꼈다.

    “자, 나오쇼. 이걸로 전에 빚은 갚은 거요.”

    “그 은혜는 의미 없다고 했을텐데.”

    “신경 쓰이니까 그런거지 뭐. 그러려니 하쇼.”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이 일은 나중에 꼭 갚도록 하지.”

    “그래, 엘프. 그렇지. 사실 지금 내가 여기 들어온 것도 다 소동을 이용해서거든. 처형식장으로 빨리 가보쇼. 그 엘프, 적어도 내가 봤을 때까지는 살아있었으니까.”

    “고맙다.”

    벨투리안은 더 얘기를 들을 것도 없었다. 열린 문을 통해 나가려는 벨투리안을 붙잡고 불타르가 말했다. 그 말은 벨투리안이 잊고 있던 것은 일깨워주었다.

    “한 가지만 질문 좀 하지.듄벨 가에서는 죄수들을 가둘 때 알몸으로 가두나? 무기도 주고?”

    그것은 농담이었을까, 벨투리안은 순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시가 바쁜 시간이었지만 그를 붙잡은 불타르의 손이 밉지 않았다. 벨투리안은 대답하지 않은  문을 나섰다.  뒤에 남은 불타르는 그를 황당하다는 듯이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인앞에 저런 꼴로 나설 수는 없을텐데….”

    그는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했지만,  착각을 정정해줄 사람은 더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도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벨투리안은 나가자마자 처음 보이는 사람을 습격했다. 별관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였다. 솜뭉치가 주는 강력한 충격에 기사는 곧바로 쓰러졌다. 쓰러진 기사가 자신을 습격한 이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회색머리의 야만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알몸의 벨투리안이 그를 보고 말했다.

    “벗어.”

    다행히도 기사는 눈치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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