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1화 〉들개들의 진혼가 (121/162)


  • 〈 121화 〉들개들의 진혼가

    반명 듄벨가의 성은 생각 외로 조용했다. 처형식으로 기사들이 다수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침입해온 아레히의 용병단들이 있음에도 그러했다. 용병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이 함정이라는 것은 곧 금방 눈치챌  있었다.

    조용해도 너무나 조용했다.

    “젠장, 벌써 어디에 숨겨버린 건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별관 쪽이다. 어딘가에 숨겨놓고 있다면 그 쪽일 가능성이 높아. 아마 감옥이 있을 동쪽 별관은 아닐거라고 생각하지만….  수 없는 일이지.”

    “제길. 에리히를 감옥에 가둬놨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거야.”

    “에리히의 마력을 추적해보고 있는데, 마력 결계 때문에 반응이 희미해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어.”

    “방향 정도만 알 수 있어도 충분해.”

    “시간이 좀 걸릴거야.”

    “이렇게 쉽게 길을 허하다니. 너무 함정이라는게 뻔해서 되려 화가 나는 걸.”

    다른 용병들의 말에 입을 다물고있던 실비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머리 한구석으로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었던 바로 그 녀석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시원찮았다.

    “…그 꼬마 녀석은 찾을 수 있어?”

    “무리, 시간도 없고 따로 마력 반응을 기억해둔게 아니라 방법이 없어. 동쪽 별관 쪽에 가둬놨을  같지만… 에리히의 반응은 정 반대 방향이로군.”

    “제기랄. 에리히의 반응을 찾은 게 다행인가, 그나마. 가자고.”

    “그 녀석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어. 아레히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에리히까지가 한계다.”

    용병단이 에리히의 반응을 쫓아 서쪽 별관에 도착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쪽이다.”

    그러나 용병단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곧바로 그들을 향해 수많은 화살 세례가 날아왔다. 다행히도 용병단의 마법사가 빠르게 마법 방벽을 전개하여 피해는 없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니까.”

    “들개 새끼들 같으니!”

    “그거 영광이군! 그러는 너희는 쥐새끼가 아닌가!”

    기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대놓고 파둔 함정에 빠진 용병단을 조롱하는 모양새였다. 아마티코 듄벨이 그 곳에 있었다. 용병단은 함정까진 예상했지만 단장이 직접 그 자리에 와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꽤나 당황한 모양새였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왜 여기 있어?!”

    “분명 처형식을 주관한다고 했을텐데.”

    그러나 그들도 산전수전을  겪은 프로였다. 곧바로 태세를 정비해 기사들과 대치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돌진하지는 않았다.상대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마티코 듄벨은 명백히 누군가를 신경쓰고 그들 사이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를 보고 용병단의 부단장 제리코가 소리쳤다.

    “하, 이런 쥐새끼들한테도 단장이 직접 나오다니! 들개들도 꽤나 겁을 먹었나보군?”

    “그런 허실 없는 도발을 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레히 오바드는 어디 있지?”

    “하, 결국 또 아레히인가! 아직도 네 누나를 빼앗아간 도둑놈한테 복수라도 하고 싶은거냐? 어리광쟁이 듄벨!”

    뼈있는 도발은 꽤나 효과있었다. 이번만큼은 아마티코도 여유롭게 넘기지 못했다. 아까까지의 여유로운태도는 어딘가 사라지고 분노가 그 얼굴을 덮었다. 그러나  노성은 토해지는 일 없이 삼켜지고 아마티코는 차분하게 말했다.

    “…아레히는 어딨지? 그 놈을 바치면 다른 놈들의 목숨만큼은 살려주지.”

    자신들의 단장을 바치라는 얘기에 이번엔 반대로 용병들 사이에서 조롱이 퍼졌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제리코가 그를 비웃으며 다시   소리쳤다.

    “유감이군! 단장은 여기 없다! 우릴 죽이고 어디 한  찾아보시지?”

    “도망친건가! 비겁자 같으니! 항상 쥐새끼처럼 도망만 치는 용병단장이라, 그 용병단의 수준도 알만하다!”

    “비겁? 우리가 두려워 이런 함정을 파둔 녀석이 할 말인가? 들개들의 명예는 늘 항상 땅에 떨어져 있었지! 진짜 들개는 주인이 없으니까! 주인을 찾은 집개 주제에 들개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번의 조롱만큼은 아마티코도, 그의 기사들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을 필요 또한 없는 것이었다.

    “더 얘기할 것도 없군.”

     말이 시작이었다. 기사들이 용병단을 향해 돌진했고 용병들 역시 무기를 들었다. 결과가 훤히 보이는 싸움이었으나 용병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인을 찾은 들개와, 찾지 못한 들개들의 싸움이었다.

    땅에 떨어진 명예는, 주워서 삼키는 이가 임자일 것이다.

    ~

    용병단은 시간 때문에, 그리고 우선 순위 때문에 동쪽 별관을 수색하지 않고 넘어갔다. 우연이었지만 그건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들이 동쪽 별관에 쳐들어왔다면 거기에서 그들이 마주할 것은 초월자 엘핀 세이피어스였을 테니까.

    엘핀 세이피어스는 동쪽 별관의 감옥 앞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그가 지키고 있는 감옥은 오직  하나, 쯔르레이가 갇혀 있는 감옥이었다. 쯔르레이에게 말은 걸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 자신이 이 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엘핀은 그저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쯔르레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사실, 쯔르레이가 혼자의 힘으로 탈출하는 것도, 누군가가 쯔르레이를 탈출시키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엘핀은 어쩐지 불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엘프의 감옥에서 느꼈던 형용하기 어려운, 인간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그 기운 때문일까, 잠깐 눈을 떼면 쯔르레이가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만…그……해.”

    쯔르레이가 뭔가 중얼거렸지만 엘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사실 들었다 하더라도 그는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쯔르레이가 흑마법사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로써는 뭔가 쯔르레이의 말을  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쯔르레이의 중얼거림은 엘핀에게로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해.’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

    [한심한 자여! 비겁한 자여!]

    [너는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구나!]

    [네 존재는 해악이다!]

    [재앙을 부르는 자여!]

    [애끓는 비명이 네 속을 채우는 구나!]

    [너 때문에 모든 일족이 죽었어! 네가 그 모든 재앙의 원흉이어라!]

    [너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 생하울라가 너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더냐?!]

    [네가 울펜슈타인에 저주를 걸었어! 구해주려고 애쓴 아가씨를!]

    [네가 베르헬트를 영원한 탄식의 길로 인도했어! 그는 다시는 안식을 찾지 못할거야!]

    ‘그만해.’

    쯔르레이는 지금 애원하고 있었다. 쯔르레이 안의 목소리가 쯔르레이를 끊임없이 비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애써 무시하고 넘겼던 목소리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쯔르레이를 끝없이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유혹하고 있었다.

    [힘을 원하지 않느냐?]

    [이 속삭임이 독살스럽더냐?]

    [그러나 오직 힘이 전부다!]

    [나를 먹고 용이 되어라!]

    [그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그 엘프의 육체를 탐하고 싶지 않더냐?]

    [복수! 복수도 좋지! 너를 괴롭히는 것들 모두를 잡아먹어라!]

    [탐식하라! 모든 것을 먹어치워라!  식욕에 저항하지마라!]

    무슨 뜻일까, 그건. 대체 무슨 의도로 나를 유혹하는 걸까, 괴로웠다. 끊임없이 귀를 매이는 방음에 쯔르레이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손은 묶여있었다. 아아, 엘핀 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그러나 엘핀에게 내는 소리는 닿지 않았다. 사실, 나오지도 못했다. 쯔르레이의 입에서는 그저 그만해달라는 애원만이 나올 뿐이었다.

    정신이 극도로 취약해진 쯔르레이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제대로 들리지조차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들으면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속에 남아서 귀를 틀어 막고 있었다. 그렇게 효과가 있는  같지는 않았지만.

    [네가 류나벨트를 죽일거다!]

    [네가 아레히를 죽일거다!]

    [네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일 초에 오직 일 초만이!]

    [네가 그 모든 이들을 죽일거다!]

    [실비아와 마틴! 다른 모든 용병들까지!]

    [그들의 시체 속에서 너는 또 살아나겠지!]

    “…그만… 그만해… 제발… 나를… 구원해줘.”

    쯔르레이가 지금 바라는 것은 구원이었다. 그러나 류나벨트는 지금 이 곳에 없었다.  손길을 거둬줄 구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이 잡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손이 묶인 쯔르레이는 아무 것도 잡지 못하리라.

    [용이 되어라! 용이 되어라!]

    [나를 삼켜 내가 되어라!]

    [내가 되겠다고 말해! 내가 되겠다고 말해!]

    [내가 되겠다고 말해! 내가 되겠다고 말해!]

    “그럼 ‘류나벨트’를 구할 수 있어.”

    애원하는 쯔르레이의 귀에 들린 마지막 소리가 쯔르레이의 심장을 잡았다.

    ‘류나벨트를….’

    “구할 수 있다.”

    반짝이는 빛이  앞을 아른거렸다. 엘핀은 어느 순간인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쯔르레이의 눈 앞에는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쯔르레이의 눈 앞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솜뭉치가 빛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수 있었다.

    그것을 잡으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의 해결책이  수 있었다.

    끝낼 있었다.

    자기 자신을 삼켜

    류나벨트를 구할 수 있었다.

    쯔르레이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솜뭉치에 손을, 뻗, 어



    그러나

    쯔르레이는

    잡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