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8화 〉들개들의 진혼가 (118/162)


  • 〈 118화 〉들개들의 진혼가


    쯔르레이는 울고 있었다. 이전, 아레히를 때리면서 울었을 때처럼 처절하게 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눈물을 한 방울씩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물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건 고통 때문은 아니었다.

    그 눈물은 스스로의 나약함 때문에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은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 겉으로는  발자국 씩 전진하고 있는  같아보였으나 실상은 뒷걸음질 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런 곳에 수감되어서 고문 조금 당한 정도에 울면서 정보를 토해냈다.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결국 류나벨트의 구출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맡겨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신은 이 곳에서 그리고 조용히 썩어가는 것이다. 은인이 죽는지 사는지 알 수 조차 없게. 그것이 자신의 결말이었다.

    지독한 무력감, 무력감, 무력감! 무력감이 몸을 덮쳤다. 왜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가? 발버둥치는 것만이라도 허락하게 해준다면 이 빌어먹을 몸뚱이라 할지라도 움직일 수 있을텐데. 그러나 세상은 발버둥 치는 것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높았다. 너무 높아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쯔르레이는 곧 감옥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다시 누군가가 찾아온 것인가? 다시 고문? 순간적으로 떠올린 생각에 쯔르레이가 흠칫했지만 들어온 이는 갑작스레 쯔르레이의 얼굴을 잡아올렸을 뿐이었다.

    “….”

    짧은 침묵, 눈물이 시야를 가린 쯔르레이는 순간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 상대가 손으로 쯔르레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쯔르레이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있었다. 그리고 쯔르레이는 돌연  상황이 한심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너….”

    “큭….”

    쯔르레이가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헛웃음을 토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광소였다.

    “하하하하하, 하하… 하하하하하!!!”

    당황한 엘핀이 쯔르레이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쯔르레이의 웃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뭐냐. 너 정신이 나가기라도 해버린거냐?”

    엘핀이 말을 걸자 쯔르레이는 더더욱 웃을 뿐이었다. 그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던 엘핀은 어떻게든 쯔르레이를 진정시키려고 하다가, 곧 쯔르레이를 껴안아버렸다.

    “젠장, 진정해라. 진정해. 지금 여긴 나 밖에 없어. 널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하하….”

    쯔르레이는 목이 켁켁 거릴 때까지 웃음을 토해냈다. 엘핀이 쯔르레이를 껴안고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그제서야 쯔르레이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쯔르레이는 여전히 자신을 껴안아주고 있었다. 마치 진짜 동생을 달래주는 오빠의 모습처럼. 그 말도 안되는 빌어먹을 장면에 쯔르레이는 기꺼이 비웃음을 지어주었다.

    “너는….”

    쯔르레이는 한참을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웃기지 않나?”

    이 빌어먹을 상황이.

    그러나 엘핀은 답할 수 없었다. 쯔르레이의 표정이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듯이 처참한 그 얼굴에 아무런 말도 꺼낼  없었다.

    “웃기다고, 웃겨. 웃어봐라.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웃겨서 할 말이 없어. 뭐가 용이냐, 뭐가 인간이냐. 빌어먹을. 나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딴 곳에 잡혀서 죽음을 기다리고나 있지. 아무 것도 못해. 나는 아무 것도 못한다고!”

    “진정해라.”

    “진정? 웃기는 얘기하고 있군. 손가락 다섯  꺾인 정도로 울며 비명을 지르는 어린 것이 뭘 어떻게 진정하라는거지? 젠장,  모습을 봐. 빌어먹을 어린 것이라고. 나는 이렇지 않아! 나는 이 빌어먹을모습이 싫어. 증오스러워! 저주받을 울푸레! 저주받을 네메시스! 전부 죽어라, 빌어먹을 용들아. 전부 죽어! 사라져! 내 삶에서 꺼지란 말이다!”

    그렇게 울부짖는 쯔르레이의 모습은 숫제 광인을 방불케 했다. 그걸 보고 있는 엘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게  자신의 가짜 여동생은 반쯤 정신을 놓은것이었다.

    결국 엘핀은 미친 듯이 혼자 중얼거리는 쯔르레이의 뺨을 가볍게  대 쳤다. 가혹한 방법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쯔르레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마 힘조절을  것이 다행이었다.

    잠시 쯔르레이의 중얼거림이 멈췄다. 그러나 일시적이었다. 순간적으로 말을 멈춘 쯔르레이는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을 조롱했다.

    “웃기지 않나? 나는 너를 떠났어.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떠났지. 그게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때를 생각해. 만약 네 말을 따랐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나는 결국 너를 떠나고 다시금 이 길에 발을 올렸지. 그런데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더라고. 나는 여전히 이 빌어먹을 몸뚱아리고 은인을 살리기 위해 잠입한 뒤에 똑같이 너한테 뒤를 맞아 잡혀있어. 그리고 너는 그런 나를 보러 이곳에 왔지. 웃기지 않아?”

    “진정해라. 빌어먹을. 미안하다. 너인지 몰랐어. 변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너인  알고 공격한 게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여기서 너한테 투정이나 부리고 있지….”

    쯔르레이의 자조섞인 목소리가 감옥에 울렸다. 쯔르레이는 미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치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지금 호소하고 있는 것이었다. 연기라고 해도 좋았다.  감정은 비록 거짓이 아니었으나 쯔르레이는 결코 미친 것이 아니었으니.

    “…기다려라. 내가 어떻게든 빼내줄 테니까.”

    엘핀의 말에 쯔르레이는 엘핀에게 달려들었다. 원하고 있는 얘기였다. 그래,  풀어줘. 내가 정말로 미쳐버리기 전에, 제발.

    “얼마나?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며칠만 기다려라. 금방 꺼내주겠다.”

     말에 쯔르레이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늦어! 처형식이 끝나! 그러면 너무 늦는단 말이다!”

    “처형식이라고?  엘프의 이야기를 하는 거냐?”

    “그래, 엘핀. 너라면 알지 않겠는가. 류나벨트를 구해줘.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부탁하겠네.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모든 것은  잘못이야.”

    “…그 엘프와 무슨 관계지?”

    “그녀는… 날 구해줬어. 내 생명의 은인일세. 부탁할게. 아니, 부탁해요. 제발. 류나벨트를 구해줘요.”

    쯔르레이는 숫제 자비를 구걸하는 것처럼 빌었다. 길거리의 걸인도 그렇게 비참하게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 참담한 광경에 엘핀의 얼굴이 썩어들어갔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거절이었다.

    “안돼, 미안하지만 그건 안돼. 흑마법사는 결코 살려보낼 수 없다.”

    “그건 전부 오해야.  마법 포탈은 그녀가 만든게 아니야! 내가 나왔어… 그 포탈은 세미가, 세르미나카 휘리오비치가 만들었어. 내가  포탈을 통해서 나온거라고. 그녀는 누명을 쓴거야. 전부 누명이라고!”

    이제 엘핀은 정말로 쯔르레이가 미친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휘리오비치는 이미 그의 손에 명을 달리했으니까.

    “뭐? 휘리오비치? 정신차려라. 넌 지금 혼동하고 있는거야. 휘리오비치는 나와 르로망샤가 죽였어. 이미 시신도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설령 네 말이 전부 맞다 하더라도 이미 이 처형식은 멈출 수 없어.”

    “어째서?! 어째서 내 말을 믿지 않는거냐. 휘리오비치는 두명이야! 처음부터 두명이었다고! 너는 속고 있는 거야!”

    “진정해라, 제발. 설령  모든 게 누명이라고 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고.”

    “어째서!”

    “왜냐하면 엘프 류나벨트는 진짜 흑마법사니까.”

    쯔르레이의 머리에 강한 충격이 내리쳤다. 뭐, 라고? 지금 엘핀이 뭐라고 하고 있는거지? 그 입으로 지금 어떤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거지? 잘못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결코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쯔르레이의 귀는 멀쩡했다. 불행하게도.

    “무슨… 허, 헛소리야.”

    “헛소리가 아니다. 내가 보증할 수 있어. 그녀에게서 상당히 강력한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 숨기고 있지만  정도 되는 사람이면 눈치챌  있다. 엘프 류나벨트는 흑마법사가 확실하고, 설사  모든게 누명이라 하더라도 흑마법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처형을 피할 수 없어.”

    거짓말, 거짓말이야. 그러나 쯔르레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엘핀 세이피어스는좀 미숙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분명한 초월자이다. 혼자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이다. 이미 흑마법사를 상대해서, 상대를 해치운 전적까지 있는 자이다. 그런 자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곧 쯔르레이는 기묘할 정도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머리가 깨끗해졌다. 그래,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류나벨트가 흑마법사라고 해서,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뭐?”

    “그녀가 흑마법사라고 해도 상관없어. 그녀를 구해야해.”

    “제정신이냐?”

    “제정신이다! 류나는 날 살려줬고 날 구원해줬어! 그녀가 이대로 죽게 놔둘 수 없어! 날 풀어줘!”

    쯔르레이는 어쩌면 정말로 미친 게 아닐까. 고된 여행의 끝에서 결국 스스로를 놓아버린 것이 아닐까, 흑마법사여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마음 짓고 오히려 마음이 깨끗해진 걸 보면 정말로 그게 사실이 아닐까 의심되는 모양새였다.

    “…어차피 곧바로 풀어줄 수도 없지만, 네 목적이 그 엘프의 구출이라면 더더욱 풀어줄 수 없어. 잠시만 이곳에 있어라.”

    엘핀은 잔혹했다. 아니, 분명 그가 정상인거겠지. 반쯤 미쳐 날뛰는 어린 것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것도 흑마법사를 살려달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면? 흑마법사여도 상관없다고 날뛰는 쯔르레이가 분명히 이상한 것이었다. 쯔르레이의 머리가 맑아진 만큼 엘핀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쯔르레이가 엘핀을 불렀다. 그러나 엘핀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엘핀!”

    “조금, 정신을 식혀라.”

    “빌어먹을 엘핀! 엘핀 세이피어스!  풀어줘!”

    그러나 엘핀은 그 말에 고개를 돌리는  없이 그대로 감옥 밖으로 나갔다. 문을 잠그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쯔르레이의 몸은 여전히 밧줄에 묶인 채였고 눈물로 얼룩진 쯔르레이의 얼굴은 비참하고 처참해서 광인이 아닐 수가 없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런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쯔르레이는 아름다웠다.

    쯔르레이는 그것이 죽을만큼 싫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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