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들개들의 진혼가 (117/162)


  • 〈 117화 〉들개들의 진혼가

    쯔르레이는 곧장 동쪽 별관으로 수감되었다. 그러나 그 곳은 류나벨트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쯔르레이가 살펴보지 못했던 다른 감옥으로 류나벨트가 수감된 지하와는 다르게 지상에 있는 곳이었다.

    쯔르레이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다. 몸은 밧줄로 묶여있었고  수색을 당해 단검과 검집 역시 빼앗긴 상태였다.

    그런 쯔르레이를 억지로 깨운 것은 차가운 물 한바가지였다. 얼굴에 쏟아지는 차가움에 쯔르레이가 콜록 대며 정신을 차렸다.

    “에흑!”

    “정신을 차렸나.”

    뼛속까지 아리는 차가움에 쯔르레이는 강제로 각성하였지만 사태파악을 하는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곧 자신이 묶여있다는 걸 깨달은 쯔르레이가 고개를 들자 그 곳에는 금발의 미남자 한명이 있었다. 그리고 쯔르레이는 그 얼굴이 꽤나 낯이 익다는  느꼈다.

    “태평한 년이로군. 이런 곳에서 멍하니 잠이나 들다니.”

    물론 쯔르레이는 잠에  것이 아니라 기절한거였지만 남자는 태평스레 그렇게 쯔르레이를 조롱했다. 그 말에 쯔르레이는 자신이 잡혔을 뿐만 아니라, 임무까지도 완전히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걸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설마 벌써 류나벨트의 처형식이 끝나버린 건 아니겠지? 쯔르레이는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쯔르레이에게 친절하게 그런 것을 알려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앞에 있는 남자 뿐이었다. 쯔르레이는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그를 관찰했다. 그리고 그의 외모, 그리고 그의 차림새에서 그의 정체를 알아낼  있었다. 그는 들개의 기사단장, 아마티코 듄벨이었다.

    낯이 익다고 생각한데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에리히의 얼굴과 쏙 빼닮은  얼굴에서. 오히려 이전에 보았던 알바디엔 듄벨의 얼굴과는 별로 닮은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지?”

    아마티코 듄벨이 물었다.

    “….”

    쯔르레이는 당연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쯔르레이는 어떻게 하면 이 남자에게서 정보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확실히 신사는 아니었다.

    “악!”

    아마티코가 가볍게 쯔르레이를 걷어찼다. 얼굴이었다. 밧줄에 묶인 쯔르레이는 속절없이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린애를 때리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란 말이지.”

    쯔르레이는 느껴지는 고통에 잠시 몸부림쳤다. 단련된 기사의 발길질은 가볍게 쳤다 하더라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쯔르레이는 표독스런 눈으로 아마티코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눈으로 본다 한들, 네가 딱히  수 있는  없어보이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아서 뭐하게?”

    “아, 그도 그렇군. 질문을 바꾸도록 할까?”

    아마티코가 천천히 쯔르레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쯔르레이의 뒤로 돌아가 묶인 손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그대로 꺾어버렸다.

    “아아아아악!”

    쯔르레이가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차원이다른 고통이었다. 손가락 끝에서 올라오는 처참한 통증이 온 몸으로 치솟았다. 아니, 물론 실제 고통은 손가락에 집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쯔르레이가 느끼기엔 온 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어린 육체를 유린하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었다.

    “누가 보냈지?”

    “끄으윽….”

    “조금 기다려줄 수는 있지만 말이야.”

    아마티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다른 손을 쓰다듬어주었다. 무언의 압박이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알아듣지 못할만큼 쯔르레이는 멍청하지 않았다. 쯔르레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흘리고 싶지 않았건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흑, 흐으윽.”

    “누가 보냈지?”

    “아, 아레히 오바드….”

    “그래, 착한 아이구나.”

    아마티코가 쯔르레이의 손가락을 꺾은 그 손으로 상냥하게 쯔르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른다면 일견 훈훈하게도 보일만한 장면이었지만 쯔르레이의 눈물이 그를 허하지 않았다.

    “그럼 다시 물어볼까. 목적은 뭐지?”

    “에리히의 구출….”

    이번에 쯔르레이는 순순히 말했다. 숨긴다 한들 의미가 없는 정보였고 이미 상대방이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은 얘기였으니까.하지만 아마티코는 쯔르레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단느 걸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손가락이 꺾였다.

    이번에 쯔르레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고통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고통이 조금 가시고 난 후에는 입 안에 갇힌 울음이 터져나왔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울음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아픈걸까.  정말로 진짜 어린아이라도 된 것마냥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걸까? 이 몸은 좀 더 강인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지금 태평하게 그런 걸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은 쯔르레이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다시 질문을 바꿔보도록 할까. 엘프의 감옥에 침입한 이유는 뭐지?”

    “류, 류나벨, 트를 구,구하려고. 흑.”

    “그 엘프와 아는 사이였던가?”

    쯔르레이는 류나벨트의 관계만큼은 대답할 없었기에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말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아마티코의 얘기는 혼잣말이었는지 다시금 고문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자 그럼, 중요한 얘기를 좀 더 해볼까. 계획이 뭐지?”

    심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쯔르레이는 결국 아레히와의 계획을 모두 불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쯔르레이라고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마지막에 마지막에는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이것마저 사실대로 말한다면 류나벨트를 구할 희망은 사라지는 것과 다름 없었다. 팔이 잘린다고 해도 숨길 수밖에 없다.

    “그래, 네가 실패한다면 모든 계획은 중지, 다음 기회로 넘긴다….”

    쯔르레이가 울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손가락이 3개는 더 꺾이고 난 후였고 강인했던 쯔르레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번을 더 꺾이면서까지 지켜낸 계획이었다. 다행히도 아마티코도 그 즈음에서는 의심을 거두었다.

    “어이, 이 꼬마를 치료해주도록 해라.”

    그 말에 바깥에서 마법사 한 명이 들어왔다. 이미 반쯤 혼절한 쯔르레이는 알  없었지만 들개 기사단의 전속 마법사였다.

    “왜 굳이 치료까지 시켜주는 겁니까?”

    마법사가 쯔르레이의 손을 치료해주며 물었다.

    “얼굴이 꽤나 반반하지 않은가. 아직 어리고, 적당히 길러두면 써먹을 곳이 있겠지.”

    “과연, 그렇군요.”

    “그러니 제대로 고쳐놔라. 대강 하지 말고.”

    “네.”

    아마티코는 마법사와 쯔르레이를 뒤로 하고 감옥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동쪽 별관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기사들이 그를 보고 인사하였다.

    “그래, 별 일은 없었나?”

    “아까 세이피어스 경께서 잠시 왔다갔습니다.”

    “그래? 무슨 일로.”

    “이번에 잡은  아이를 살펴보고 싶어하시는 눈치였습니다. 단장님께서 계신다하니 나중으로 미루시더군요.”

    “그렇군.지금 어디 계시지?”

    “방금 정원 쪽으로 가셨으니 산책이라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래, 수고하도록.”

    그대로 정원으로 걸어가자 얼마 안있어 투박하게 장식된 꽃을 바라보고있는 엘핀이 나왔다.

    “이거부끄럽군요. 아무래도 집안에 여자애가 없다보니 정원이 볼게 못됩니다.”

    “아닙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군요.”

    “누님께서 계실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아쉽군요.”

    “누님께서는 지금…?”

    “지금은 타계했습니다.”

    “실례를 저질렀군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미 오래전 일인 걸요.”

    아마티코는 드물게 쓴 웃음을 지었다.

    “아까 별관에 들렸다고요. 이번에 잡은 녀석이 궁금하신 겁니까?”

    “예,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요.”

    “이미 심문은 해둔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어린애라 그런지 그렇게 어렵진 않더군요.”

    “심문이라면…?”

    “손가락을 좀.”

    악취미 같은 대사였지만 엘핀은 조금 눈살을 찌푸릴 뿐 아마티코에게 특별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고 그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다른 방법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손가락에서 끝난 것이 더 자비롭다고 해야할 정도였다. 만약 단장 본인이 아닌 전문 고문가가 행했더라면 더 끔찍했겠지. 물론 설사  더 잔인하다고 할지라도 그건 들개들의 소관, 엘핀이 참견할 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어린 아이다보니 엘핀도 살짝 안타까울 뿐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누군가를 떠올렸기 때문에.

    “혹시 생각이 있으시다면 경께서도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아뇨,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보이는 군요. 사양하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이번에 형님과 식사를 함께하셨다고.”

    “예, 여러 가지로 신경써주시더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는 저희 영지 모두가 하고 있습니다. 경께요. 아무리 흑마법사와 관계된 사안이라고 한들 타국의 기사단장께서 이곳까지 와주셨으니까요. 그러고보니 같이 오셨다던 영애 분께서는 괜찮으신지?”

    “울펜슈타인 영애께서는 건강을 회복하시고 현재 왕궁에서 보내고 계십니다. 제가 돌아가는 대로 본국으로 귀환하실 예정이죠.”

    “그거 다행이군요. 그러고보면, 여동생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군요.”

    “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그 말은 즉슨 산책이 끝났다는 것과도 같아서 엘핀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잡았다. 아마티코 듄벨과도 헤어질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며 둘은 서로의 갈 길을 갔다. 아마티코는 기사단의 본부로 향했고 엘핀은 본관에 위치한 자신의 방으로 길을 잡았다.

    엘핀이 그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들개 기사단의 고문 마법사였다.

    “아, 세이피어스 경이시군요. 안녕하십니까.”

    “아, 들개 기사단의….”

    “전속 마법사인 올리안 살람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군요.”

    둘의 이야기는 본디라면 원래 여기서 끝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올리안 살람은 꽤나 수다스러운 인종이었고 자연스럽게 엘핀의 곁에 붙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엘핀의 지위 상 그걸 들어줄 필요는 없었지만 하필이면 꺼낸 이야기가 자신과 관련된 것이기에 그 이야기는 계속 될  있었다.

    “저는 지금 막 그 오늘 경께서 잡으신 그 아이를 치료하고 왔는데요. 단장님께서 손가락을 다섯 개나분질러노셨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아이인데  너무한 것도 같지 않나요? 경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래라면 무시할만도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잡은 아이다 보니 그러기도  애매했다. 엘핀은 아마티코의 편을 들었다.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라고 봐주다가 무슨 화근이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역시 같은 기사단장님이라서그런가 엄격하시군요. 그래도   살람, 항상 그런 면에서 뭔가 배워가곤 합니다. 그래도 역시 엄청 이쁘장한 아이라 그런지 치료하면서도 좀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금발머리도 그렇고….”

    어느 정도는 흘려듣고 있던 엘핀에게 마지막 말만이 순간적으로 귀에 들어왔다. 엘핀이 고개를 돌려 올리안에게 물었다.

    “금발머리라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분명 갈색머리였는데.”

    “아 경께서는 모르셨나보군요. 하기야 아마 단장님도 모를겁니다.  갈색 머리는 가발이고 안에는 빛나는 금발머리가 있더라고요. 아마 잘라서 내다 팔면 엄청나게 비쌀겁니다.”

    엘핀은 그 말에 곧장 다리를 돌렸다. 동쪽 별관 방향이었다.

    “에, 어디 가십니까? 경? 경?!”

    그리고 혼자 남은 올리안은 그저 잠시 당황하다  원래 자신이 향하던 기사단 본부로 걸음을 옮겼다. 이 일에 대해서 단장에게 보고 하기 위해.

    엘핀이 동쪽 별관에 도착하자 기사들이 반겨줬지만 엘핀은 그들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기사를 향해. 자신이 잡은 아이가 어디있는지부터 물어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핀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감옥에 있는 아이는 고개를 숙여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머리는 분명 본 기억이 있는 색깔이었다.

    엘핀이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의 얼굴을 잡아올렸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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