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4화 〉들개들의 진혼가 (114/162)



〈 114화 〉들개들의 진혼가

작은 목소리로 쯔르레이가 류나벨트를 불렀다.

류나, 류나 일어나봐요, 류나.

하지만 류나벨트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들리지 않는 걸까 너무 깊게 잠이  걸까요, 그러나 그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류나벨트의 묶여있는  몸의 틈새에서 보이는 상처들이 그녀가 단순히 잠에 빠진 것이 아니란  알려주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저 모든 상처들이 하나하나 자신의 상처인 듯 괴로웠다.

대체 어떤 고초를 겪은건가요, 나의 류나벨트. 분노에 휩싸인 쯔르레이가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강하게 철창을 흔들었다. 당연히 움직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철창은 어찌된 일인지 순간적으로 우직끈 하고 큰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당황한 쯔르레이는 곧장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소리가 바깥으로 까지 새지는 않은 듯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류나벨트 역시 큰 소리에도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흔들린거지?’

혹시나 해서 다시 철창을 만져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창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살펴보아야할 것은 철창이 아니었다. 쯔르레이의  끝에서 작은 비늘 하나가 돋아있었다. 아니, 하나가 아니었다. 비늘들이 돋아있었다. 손톱은 기묘하게 조금 자라나있었고 머리칼은 어느 순간 깃털처럼 변해있었다. 쯔르레이는 그 모습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만  모습은 잠깐이었다. 소름 돋는 그 상황을 인식한 순간 돋아난 비늘들은 다시금 피부 속으로 가라앉았고 깃털들 역시 평범한 머리카락으로 돌아가버렸다.

‘용의… 힘인가.’

이것이 정말 용의 힘이라면, 철창을 흔들 정도로 강한 힘이라면, 류나벨트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쯔르레이는 다시금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철창을 잡고 애를 써봤다. 움직여라! 움직여!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봐도 다시 철창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젠장! 저주받을 이 피여! 왜 움직이지 않는 거냐, 왜 피는 흐르질 않는거냐! 자신을 비웃듯 희망만을 쥐어주고 다시 뺏아가는 그 피에 쯔르레이가 소리 없이 통곡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고 신음소린 나오지 않았으나 분명 그것은 울고 있었다.

그러나 쯔르레이에게는 마음 편히 괴로워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느낄 수 있었다. 곧 해가 떠오르고 이곳을 순찰하는 이들이 류나벨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올 것이라는 것을. 저주받을 정도로 민감해진 이 감각들이 그들이 오고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돌아가야 한다. 차마 떠올리기 힘든 그 무거운 발걸음은 우습게도 한걸음 떼고 나니 가볍게 움직였다.

차마 고통스러워 돌아보지도 못하는 쯔르레이의 뒤에서는 류나벨트가 그저 눈을 감은 채 쯔르레이를 보고 있었다. 그 감은 눈 밑으로는 흘러내린 눈물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아주 조금, 입꼬리가 올라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

바깥으로 나온 쯔르레이는 다행히도 기사들에게 걸리지 않았다. 아슬아슬했지만 시간에 맞춰 나왔고 이곳에 쯔르레이의 은신을 간파할  있을만큼 강한 기사는 없는 듯 했다. 쯔르레이는 조용히 별관에서 벗어났다.

쯔르레이가 별관을 벗어난 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별관에서 기사들은 갑작스런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 그들을 찾아온 자는 놀랍게도 초월자 엘핀 세이피어스였다. 그들에게도  등장은 일정 밖의 일이었던 듯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별 일 없나?”

“세이피어스경! 어쩌다 이런 곳까지….”

“잠깐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혹시 잠깐 죄인을 확인해볼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잠시만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기사는 다른 기사에게 문을 맡기고 그대로 엘핀을 안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세이피어스는 명백하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잠깐 몸서리를 떨었다. 뭐지, 이것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 느낄 수 없는 기운이었다.

“음? 괜찮으십니까? 몸이 안좋기라도?”

“아니,아니다. 신경쓰지 말도록.”

엘핀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평범한 기사가 보기에도 엘핀의 상태는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기사도 더 말을 꺼내진 않았다. 기사는 그대로 엘핀을 오직 엘프 혼자만을 가두어둔 감옥으로 안내했다.

“이 곳입니다.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군요. 깨울까요?”

“아니, 됐다. 이건….”

엘핀이 철창을 좀 살펴보더니 곧 주의깊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철창을 만져보더니 바닥을 살피고 주변 감옥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주변을 살피는 엘핀의 모습에 의문에 찬 기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엘핀이 대답했다.

“쥐새끼가 들어왔군.”

~

별관에서 빠져나온 쯔르레이는 곧바로 아침 일과를 준비 중인 메이드들의 틈새에 섞여들었다. 몇 몇 메이드는 처음보는 낯선 메이드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적당히 넘어갔다. 아무래도 메이드가 많다보니 자신이 몇은 놓쳤나보다 싶은 것이다. 덕분에 쯔르레이는 무사히 한 조의 메이드 그룹에 속할 수 있었다.

메이드들의 나이는  너덧쯤 되어보였다. 쯔르레이는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어떻게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수 없어 침묵한 채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가기만 했다. 조용히 뒤따르자 메이드들은 쯔르레이가 따라오는지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오신 기사님이 엄청 멋있는거야. 내가 저번에 실수로 넘어졌더니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거 있지?”

“진짜? 애리, 너 거짓말하는거 아니지? 겉보기에는 완전 싸가지 없게 생겼던데 그 기사님.”

“내 이 아름다운 금발에 반한게 분명하다니까! 어른들도 유혹하는 나! 대단하지 않아?”

“꼬맹이가 무슨… 너랑 그 기사님이랑 나이차가  배는 더 나겠다!”

“애리가 늘 그렇지 뭐. 저 금발 타령하는 거 하루 이틀이야?”

“나도 알아, 그건! 그래도  나이차가 있는게 좋지 않아? 우리 또래는 시종 애들은 너무 건방져!”

“그건 맞아. 스티븐은 전에 나한테 벌레를 던졌다고!”

꼬마 메이드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딱히 도움이  내용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쯔르레이는 어떻게 정보를 얻어내야 하는지, 폭력적인 방법 밖에 몰랐고 그건 이런 아이들에게 사용할 것이 못되었다. 이 아이들이 에리히가 있는 곳을 알지도 잘몰랐고.

그렇게 천천히 뒤를 따라가자 나오는 곳은 빨랫터였다. 빨랫감들이 잔뜩 널린 곳에서 다 빨린 빨랫감들을 주워들던 메이드들은 순간 뒤에서 자신들을 따라오던 쯔르레이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어머, 얘. 너는 누구니? 언제부터 따라온거야?”

“….”

쯔르레이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닫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메이드들은 대답 없는 쯔르레이를 의심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알아서 얘기를 해나갔다.

“어머어머,  얘 봐, 완전 귀엽게 생겼는데? 너 몇 살이니? 저번에 새로 들어온 애인가?”

“그런가보지. 어린애들 잔뜩 들어왔더만. 이름이 뭐야?”

“시, 실비아에요.”

쯔르레이는 갑작스런 물음에 실비아의 이름을 팔았다. 바로 생각나는 이름이 그것 밖에 없었다.

“실비아! 여기 새로 배정된 거구나! 여기 일은 좀 힘들텐데 이런 어린애도 할  있나?”

“하,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래. 일단 빨랫감부터 옮기자고. 늦으면 마디슨 할매가 경을 칠거야.”

쯔르레이는 그대로 같이 메이드들과 빨랫감을 옮기기 시작했다. 쯔르레이는 연약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다른 메이드들의 배는 되는 빨랫감 바구니를 옮겼는데  모습에 다른 메이드들이 놀란  당연지사였다.

“와, 여기 배정된 이유가 있었네. 대단하네. 어린데.”

“대박이네, 대박. 이 애 아주 대박이야. 일이 두배는 빨라지겠어!”

빨랫감 옮기는 일을 하면서 쯔르레이는 메이드들과 통성명을 했는데 그녀가 자랑하는 대로 꽤나 밝은 금발의 생머리를 가진 예쁘장한 소녀는 애리아나, 투박한 안경을 쓴 붉은 머리의 메이드는 우리에, 약간 옅은 검은 머리를 한 소녀는 에이란이라 했다.

“너는 여기서 잘살아가려면 우리 말만 따르면 되는거야. 우리 세탁방 조가 우리 또래들 사이에선 제일 쎄거든? 여기 배정된 걸 행운으로 여기면 돼!”

“애리 말은 신경쓰지마. 쟤는 맨날 저러거든. 애초에 우리 또래 애들은 너희 나잇대 애들까지 합쳐도 스물이 안돼.”

“우리에! 조용히해! 이렇게 미리미리 세력을 불려놔야 나중에 대박을 내는거라고!”

“무슨 대박?”

“음… 우리 중에 하나가 멋진 귀족님 눈에 뜨인다던가? 그럼 그 애 따라가면 우리들 인생 다 피는거 아니야? 물론 그건 내가 되겠지만!”

금발머리의 애리아나는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사실 그녀는 밝고 활기차고 얼굴도 꽤 예뻐 그녀의 말이 마냥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무작정 그녀에게 동의해주기보다는 그녀를 놀려먹는 게 더 좋은 듯 했다.

“여기 이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는데? 짜잔, 실비아에요.”

에이란이 쯔르레이의 뺨을붙잡고 애리아나에게 갖다 댔다. 애리아나는 쯔르레이의 그 순수하고 귀여운 얼굴을 보고 과장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윽, 무시하기 어려운 얼굴이로군. 너 기억해둬야 해. 나중에 대박나면 우리들도 데려가는거야?”

“네, 네 알겠어요.”

쯔르레이는 살짝 기세에 눌려 대답했다. 아무래도  나잇대의 여자애들과는 대화해본 적이 아예 없다보니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애 잡겠다. 그만해.”

에이란과 애리아나를 말리는 것은 우리에 뿐이었다. 우리에가 쯔르레이의 뺨을 만지작거리는 에이란을 떼어내주었다. 쯔르레이는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 후 우리에가 애리아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면 에이란이 오후에 맡는 서쪽 별관에 우리 또래 애가 한 명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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