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3화 〉들개들의 진혼가 (113/162)


  • 〈 113화 〉들개들의 진혼가

    “잠입은 성의 사람들이 어느정도 잠들었을 시점에 가게 될거야. 만약 밤새 찾아서 못찾는다면 그대로 메이드들 틈새에 숨어서 정보를 알아내봐. 잠을 못잘 테니 지금이라도 좀 자두고.”

    쯔르레이는 순순히 실비아의 말을 따랐다. 안그래도 강행군으로 벨루나까지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그다지 컨디션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 적어도 몸이 바뀔 것 같지는 않으니 지금 최대한 쉬어서 컨디션을 호전시켜야 했다.

    그러나 휴식 시간은 여름에 내리는 눈처럼 빠르게 녹아내렸고 쯔르레이는 제대로 자긴 한건지, 눈을 감자마자 일어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이미 밤은 도착해 하늘에 커다란 달을 띄우고 있었다.

    실비아와 함께 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향하자 그곳에서는 아레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지, 위험할거 같으면 곧바로 빠져나와야 한다. 한번 들키고 나면 도망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니까. 네가 안면이 있다는 그 엘핀이란 초월자가 널 봐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아레히가 주저했다.

    “네가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처음 계획했던 대로 움직이게 될거다. 아마 처형식의 틈에 맞춰 우리가 소란을 피우면  틈에 에리히를 구하고 여력이 된다면 그 엘프도….”

    “아니, 말은 틀렸다.

    “응?”

    “만약 내가 잡혀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류나벨트는 반드시 구해라. 이건 명령이다. 아니, 맹약이다! 결코 어길  없는 이야기야. 너는 반드시 그녀를 구해야 해. 이것이 나의 맹약이다.”

    “…대체 그녀가 너의 무엇이길래.”

    “알겠나? 반드시 구하도록 해라. 이것은 맹약의 대가야. 결코 벗어나선 안돼! 이미 한 번 네가 져버린 이상!”

    “그래, 약속…하겠다.”

    “됐다, 그럼.”

    쯔르레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레히도 큰 소리로 조심하라고 외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고, 그렇기에 알 수 없었다. 다시금 둘이 만날 수 있을지를, 그 둘 서로는 알 수 없었다. 아레히는 성으로 들어간 쯔르레이가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가죠, 리더.”

    “아, 그래. 실비아. 알았어.”

    아니,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잠시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쯔르레이에게는 다행히도 듄벨의 성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물론 혼자서 하룻나절만에 성 전부를 둘러볼 만한 크기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애초에 듄벨이란 것의 시초는 용병대에서 시작한 것이다. 용병대에서 시작하여 공훈을 얻어 귀족으로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그들도 이제는 용병 냄새는더는 맡기 힘든 푸른 피를 가진 귀족들로변하였으나 여전히 용병의 성향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처음 국왕에게서 직접 하사 받은 이 벨루나 성은 그 크기는 비록 작을지언정 그들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쯔르레이에게는 그저 작다는 것만이 장점이었지만.

    쯔르레이는 당연하다면 당연한거지만 감옥을 찾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류나벨트는 흑마법사로 잡힌거니 귀한 대접을 받고 있을거란 생각을 하긴 어려웠다. 감옥에 있을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감옥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성이 작다고 하더라도 성은 성이었고 아무런 단서도 없는 와중에 순찰하는 기사들까지도 피해서 움직여야 했다. 금방 찾아내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만약 쯔르레이가 돌아가지 못한다면, 처형식 전날 밤 다 같이 잠입하여 류나벨트와 에리히를 구하는 작전은 물거품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 다음날 처형식 때에 무력으로 처형을 막아야  테고 그렇게 되면 작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류나벨트를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이용하기로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야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최선을 다한다고 모든 일에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쯔르레이는 초조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쯔르레이에게 천운이 다가왔다. 잠을 자던 도중 깨어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했던 걸까. 시종으로 보이는 인물 한 명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움직였다.

    “으억…!”

    뒤에서 전력으로 몸통박치기, 그후엔 곧바로 뒷목을 치고 목을 졸랐다. 곧 남자는 정신을 잃었다. 기사쯤 되는 인물이면 택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다행히 상대는 호리호리한 몸에 상당히 마른 체형이었다. 정신을 잃은 남자를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정말 다행히도 누군가에게 발각되는 일은 없었다. 이는 쯔르레이에게도 꽤나 큰 도박이었다. 그러나 성공한 도박은 언제나 옳은 것이었다.

    정원의 구석진 곳으로 남자를 끌고 가 나무에 남자를 묶은 채 머리를 때렸다. 남자는 다행히도 한번에 정신을 차렸다.

    “켁,켁! 뭐, 뭐야 이,”

    “조용.”

    쯔르레이가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말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말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쯔르레이는 보이지 않고 그저 목에 들이대는 칼만을 느낄 수 있는 남자는 공포에 질렸다.

    “지금 단 한마디라도 내가 묻는 것과 관계가 없는 말을 한다면 너는 죽는다.”

    협박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겉보기에도 어설픔이 팍팍 드러났지만 쯔르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는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엘프가 갇힌 감옥은 어디에 있지.”

    “도, 동쪽 별관의 지하실에 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살려…!”

    “고맙다.”

    쯔르레이는 그대로 다시 남자의 목을 졸라 기절시켰다. 이번에는 남자가 한번에 기절하지 않아 위험할 뻔 했다.

    “동쪽이란 말이지….”

    다행히도 밤은 밝았고 하늘의 별들은 무수히 떠있었다. 쯔르레이가 동쪽을 찾아내어 그쪽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달이 밝았다.

    별관에 도착하자 아까까지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별관은 확실히 아닌 듯 기사들이 교대 근무를 하며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쯔르레이는 순간 주저했다. 무엇을 주저했느냐,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죽이고서] 류나벨트를 데려가는 것을 원해 주저한 것이다. 이대로 위치만 파악하고 돌아가는 것이 맞나? 지금이라도 [저들을 죽이고] 류나벨트를 데려가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사실,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쯔르레이에게는 힘이 없었다. 힘이! 그렇기에 억울하게도 가장 바라는 보석이 안에 있는 것을 아는데도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이다. 아아, 자신이 류나벨트 대신에 갇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의  쓸모없는 목숨 따위를 그녀에게 바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 때문에 사로잡힌 류나벨트가 너무나도 가여워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결국 쯔르레이는 조금 욕심을 내기로 했다. 기사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서 직접 감옥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새벽 동이 틀 무렵쯤이 되자 드디어 틈이 생겼다. 쯔르레이는 기척을 죽이고 그들의 틈새 사이로 스며들어 성공적으로 별관에 진입했다.

    별관은 평범한 별관처럼 보였지만 분명 이 곳 안 어딘가에 류나벨트를 가둬둔 곳이 있을 것이다. 기사들이 순찰을 도는 것에 몇 번이고 그들과 마주칠 뻔 하면서도 들키지 않은 채 그들을 살피자 그들이 어느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수 있었다. 쯔르레이는 그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그러자 지하로 가는 길을 찾아냈다. 지하로 들어가자 철창이 달린 방이 가득한, 스테레오적인 모습의 감옥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안에 죄수들은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단 한명의 죄수도 감옥 안에는 보이지 않았다. 감옥의 가장 깊은 곳까지 천천히 쯔르레이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쯔르레이는 마침내 발견했다. 온 몸에 구속구가 달린 채 묶여서 감옥에 갇혀 있는 류나벨트를.

    “류…나!”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뻔한 쯔르레이가 간신히 참고 그 소리를 줄였다. 하지만 류나벨트의 귀에는 닿지 않는 듯 했다. 쯔르레이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히, 감히 류나를! 이런 꼴로 놔두다니! 누군지 알 없는  모든 것들에 분노와 증오가 솟아올랐다. 류나는 결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이런 누명에 씌여 이런 꼴을 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니.

    그럴 순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류나를 데리고 나가야했다. 그러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쯔르레이는 빈 손이었다. 만약 솜뭉치가 있었더라면 이런 감옥  같은 것 쯤은 손쉽게 부숴버릴  있을텐데! 어째서 자신은 무기를 두고 온 것일까. 솜뭉치! 그 어느 때보다 그 검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그러나 쯔르레이의 여린 손은 철창을 흔드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그마저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무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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