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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화 〉들개들의 진혼가 (111/162)


  • 〈 111화 〉들개들의 진혼가


    두 사람의 낭만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안그래도 지칠대로 지친 쯔르레이는 잠깐 사이에 쓰러지듯 잠에 빠졌고 피곤에 지친 말은 움직이고 싶지 않은 듯 주변에 풀이나 질겅질겅 뜯어먹고 있을 뿐이었다. 불타르는 아까까지의 의리있는 표정과는 달리 고심에 찬 얼굴로  쯔르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불타르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던졌다. 불타르의 손에 떨어진 금화는 팅하고 잠깐 구르다 그대로 떨어졌다.

    “두고  일이겠지.”

    ~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가 쯔르레이의 잠을 깨웠다. 정확히는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불타르가 쯔르레이의 어깨를 흔들어깨운 것이다. 쯔르레이는 잠시 몸을 뒤척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정신을 차렸다.

    “비가….”

    “내리는 군. 더 자는 건 무리야. 어딘가에서 비를 피할까?”

    “아니, 그러다간 늦어. 비가 언제까지 올지 알 수 없으니 그대로 강행한다.”

    “말을 타는 것은 무리야. 이 늙은 놈이 비 오는 와중에 두 사람이나 태우기는 힘들어.”

    “어쩔 수 없나.”

    두 사람은 말에 짐을 싣고 천천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역시  때문에 속도를 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빨리 벨루나에 가기 위해  사람, 아니 쯔르레이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비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거세게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바닥은 이미 진창이 되어있고  사람의 옷은 완전히 푹 젖어버렸다. 결국 불타르가 말을 꺼냈다.

    “이대로는 힘들어. 벨루나에 도착하더라도 몸에 탈이라도 나면 어떡하겠어? 마침 저기 동굴이 있는 듯 하니 비가 그치길 기다리자고.”

    “….”

    쯔르레이는 명백히 불만인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결국 불타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쯔르레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괜한 강행군을 주장하는 것이 멍청한 일이란 것을. 마음은 한시라도 빨리 벨루나로 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불타르와 쯔르레이가 동굴로 들어섰다. 쯔르레이는 제일 먼저 동굴 속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짐승의 흔적이 없거나 옅은  보면 다행히도 임자가 있는 동굴은 아닌  했다. 있다 할지라도 지금은 없었다. 입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쯔르레이가 능숙하게 부싯돌로 불을 피워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축축히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그런 상황이 되자 당황한 것은 불타르였다. 불타르가 당장 뒤를 보며 외쳤다.

    “지, 지금 뭐하는거냐. 남자 앞에서 함부러 옷이나 벗고!”

    “너도 봐서 알겠지만 나는 원래 남자이다. 신경 쓸게 있나?”

    쯔르레이는 여자아이 옷을 입는 것이면 몰라도 알몸 차림에 부끄러움 같은것은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타르에게는 고역인 일이었다. 갑자기 여동생 뻘의 아이가 바로 옆에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불타르는 멀리 떨어져 쯔르레이가 대충 말린 옷으로 자신을가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에 불타르는 계속해서 축축히 젖은 옷을 입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도 빨리 옷을 벗는게 좋을 걸.”

    “제길, 그런 말은 쭉쭉빵빵한 누님한테나 듣고 싶었는데.”

    물론 쯔르레이의 말은 체온이 내려가기 전에 젖은 옷을 벗으란 의미였다. 불타르의 궁시렁은 아쉽게도 쯔르레이에게는 닿지 않았다. 닿는다 한 들 핀잔이나 들었겠지만.

    두 사람은 거진 알몸이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옷이 마르기 전까진 다 이런 차림일 상황이었다.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만이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었다. 침묵이 어느 정도 깔릴 즈음에 쯔르레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꽤나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여동생이 있다고 했지.”

    “아… 그랬었지.”

    “전에는 여동생이 죽었다고 했고, 이번에는 여동생이 아프다고 했지. 두 번의 이름도 다 달랐어. 둘 중에 뭐가 사실이지?”

    “내 여동생은 죽은  맞아. 약을 구하러 왔다는 건 거짓말이었지.”

    “왜 거짓말을 했지?”

    쯔르레이는 만약 불타르가 거짓말을 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넘길 생각이었다. 필요한 정보도 아니었고 단순한 호기심에 질문한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불타르는 시원스럽게 이유를 가르쳐줬다.

    “반응을 살펴본 거였어. 네가 나를 쫓는 사람이라면  여동생이 살아있단 말에 동요를 감출 수 없을 테니까. 실제로 너는  당황했었지. 그때까진 의심이었고, 실제론 전형 상관 없는 이유였으니 다행이다만.”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나?”

    “뭐 그렇지.  이런 변방까지 내려왔겠어?”

    그렇게 말하는 불타르는 평소의 능청스러운 얼굴과는 다르게 꽤나 냉소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아 싸늘했다. 쯔르레이는 답지 않게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나?”

    “특별한 일은아니야. 형씨는  필요 없다고.”

    “그렇군.”

    불타르는 이번만큼은 답하지 않을 예정인지 정색을 하며 막았다.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단,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다시금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옷은 거의 다 마른 듯 하였다. 바깥을 보자니 비가 천천히 줄어드는 기미를 보였다. 쯔르레이는 더 묻지 않고 일어났다. 그러자 대충 몸을 가리고 있던 거적데기가 땅으로 떨어져 쯔르레이의 알몸이 드러났다.

    “제길!일어날거면  좀 하고 일어나!  어린애 알몸 보고 싶은 생각 같은 거 없으니까.”

    “신경쓰지마라.”

    물론 신경을 안쓸 수는 없었다. 쯔르레이가 옷을 다 갈아입을 때까지 불타르는 다시 구석에 쳐박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행히도 신사였다.

    “너 말이야…. 나니까 망정이지. 다른 남자들 앞에서 이런  하면 절대 안된다고. 세상에는 형씨… 너 같은 어린애한테 발정하는 변태들도 있으니까. 아, 제길 말이 꼬이네.”

    “말은 편하게 해도 좋다. 이런 몸에 형씨라고 불리우는 것도 이상하니.”

    옷을 막 다 갈아 입은 쯔르레이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그리고 나도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내가 이러는 건 널 믿어서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믿지 말란 이야기라고, 아무튼 간에비도 다 그쳤네.  이 곳에 있을 필요는 없겠다.”

    불타르 역시 옷을 막 다 갈아입은 참이었다. 비는 거의 그친 상태였다. 아직 조금씩 부슬비가 내리고는 있었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조금 더 비가 세게 내려도 쯔르레이는 다시금 갈 생각이었다.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워이, 가자 발부르가.”

    불타르가 모닥불 주변에서 꾸벅꾸벅 졸던 말을 깨우며 불렀다. 말은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는지 머리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름도 지어줬나?”

    “뭐 부를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불타르의 재촉에 발부르가는 천천히, 싫은 티를 잔뜩 내며 일어섰다. 좀  쉬고 싶다는 것이 명백한 움직임이었지만 쯔르레이는 자비가 없었다. 쯔르레이가  위에 올라타고 그 뒤에 불타르가 올라탔다.

    “땅이 질은데 괜찮을까.”

    “발부르가를 믿어보자고. 이럇!”

    동굴에서 벨루나까지 도착하기는 이틀의 시간이 걸렸다.  이틀의 시간 동안 쯔르레이는 계속해서 쯔르레이로 있었다.

    자해를 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벨투리안의 몸으로 돌아가면 그만큼 무게가 늘어 말이 느려지는 것 때문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지만 쯔르레이는 그만큼 절박했다. 불타르에게는 말하지 않고 몰래 숨어서 했지만 피 냄새가진동을 하는데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선 특별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불타르는 엘프에 관한 이야기를 물을만한데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대화는 대부분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 정도였다. 쯔르레이가 자해를 했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불타르는 더 깊게 묻지 않았다. 그저 괜찮냐는 안부 정도만 물을 뿐이었다.

    “너… 괜찮은거냐?”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쯔르레이가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곧 지나갈 고통이었다.

    벨루나에 도착하자 불타르는 빠르게 이별 선언을 했다. 자신은 하던 일이 있기때문에 함께해줄 수 없단 것이었다. 쯔르레이 역시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자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아직 몰랐지만 그것이 분명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는  알고 있었기에 불타르가 함께 해줄거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럼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그래. 어디로 갈거지?”

    “아마 이 곳에서의 일이 끝난다면 살람 영지로 가볼 생각.”

    “그런가… 어쩌면 길이 겹칠 수도 있겠군.”

    “언젠가, 일이 다 마무리 되고 나면 다시 보자고. 쯔르레이.”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고마웠다.”

    “그 엘프, 구하고 나면  번 소개시켜달라고. 엘프들이 그렇게 미인이라지?”

    “그건 힘들거 같군.”

    “하하하하!”

    불타르는 그렇게 웃음, 그리고 발부르가와 함께 떠나갔다. 꽤나 떠들썩한 헤어짐이었다. 그러나혼자 남게 된 쯔르레이는 상황이 궁해졌다. 당장 이틀이면 류나벨트의 처형식 날이었다. 그럼 쯔르레이는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무작정 성으로 달려가 그녀를 풀어달라고 한다 해서 그들이 류나를 풀어줄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멍청이다. 어떻게든 몰래 류나가 갇힌 곳을 찾아 그녀를 풀어줘야 했다.

    그러고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류나가 잡혔다는 소식에 정신을 놓고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류나를 어떻게 잡은거지? 류나는 굉장히 뛰어난 능력의 마법사이다. 쉽게 붙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기사들이 널려있긴 하지만 마법사가 작정하고 도망친다면 기사들에게는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럼 생각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류나가 일부러 잡혔거나, 아니면…

    류나 정도는 가볍게 잡을 수 있는 마법사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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