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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들개들의 진혼가 (110/162)



〈 110화 〉들개들의 진혼가

벨투리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라고?

지금 이 놈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지?

흑마법사라고? 엘프?

이 곳 주변에 사는 엘프가 류나벨트 말고 다른 이가 더 있었던가? 그럴 리가 없다. 엘프가 그렇게 쉽게 볼  있는 종족은 절대 아니었으니.

하지만 류나벨트는 흑마법사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불타르가 말한 흑마법사 엘프가 과연 류나벨트가 아닐 수 있나? 지금 상황에서?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그 자가 류나벨트는 아니어야 했다.

벨투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불타르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누구 하나라도 당장 죽일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얘기… 자세히 해봐라.”

“으앗, 형씨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나도 잘몰라! 그냥 이 주변에 살던 엘프 한명이 사실 흑마법사라는게 밝혀지고 뭔가를 도주시켰다고 해서 이번에 처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야! 나는 이 지역 사람도 아니라 더는 몰라. 정말이야!”

그렇게 쓸모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뭔가를 도주시켰다… 그건 분명 흑마법사의 포탈에서 나온 자신의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류나벨트가 맞았다. 불길한 기운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꼭 정확하게 들어맞아버린다.

“날짜는?”

“어?”

“날짜는 언제냐고 물었다.”

“아마… 나흘 뒤. 지금 출발하면 처형식에 맞춰서 도착할  있을거야.”

안된다. 안된다. 그래서는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 젠장! 뭐가 편안한 잠이냐!! 어제 피곤하다고 잠을든 순간부터,아니 그 도시를 떠나는 순간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원망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하루, 아니 반나절만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빨리 도착할  있을텐데…!

그러나 이미 늦은 일,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법이었다. 벨투리안은 당장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 없는  분위기의 정체는 바로 처형식 때문이었던건가. 벨투리안이 당장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멈춘 것은 불타르였다. 불타르가 뒤따라와서 벨투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뭐냐! 난 바쁘다!”

“형씨…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벨루나로 다시 가야한다는  알겠어. 하지만 그대로 걸어갈 생각이야? 급한거 아닌가?”

“무슨 이야기지?”

“헤헤… 미안하지만   불타르 세너맨은 결코 은혜를 잊지않는 법이거든.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봐.”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불타르의 말을 듣고 이대로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고 벨투리안의정신은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불타르의 자신감 있는 말투가 순간 벨투리안의 다리를 붙들었다.

아주 조금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지체된다면 곧바로 떠나버릴 것이다. 그러나 불타르는 정말 순식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말 한 마리를 타고 있었다.

“어이, 형씨! 한 마리 밖에 못구했어! 미안하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단 빠를거야, 어때?”

초라한 갈색을 가진 늙은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벨투리안에게는 좋은 혈통의 백마보다 더 귀해보였고, 불타르는 마치 백마를 타고 공주를 구하러 나타난 일국의 왕자 같아 보였다. 벨투리안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불타르의 뒤에 올라탔다. 감사인사는 나중에 하면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말을 나눌 시간이 아니었다.

“자, 가자. 이럇!”

두 사람을 태운 말이 벨루나를 향해 달리기시작했다.

현재 시간은 점심을  지난 시점, 처형식은 4일 뒤 점심이다. 남은 시간은 4일이다. 도착해서 어떻게 할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늦어서 류나벨트의 처형식을 눈으로보게 되는 일 같은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막을 것이다.

두 사람은 단  번의 휴식도 없이 밤까지 쭉 달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은  그대로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말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말이 지쳐서 탈진하기 직전이 되자 결국 두사람은 말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고 더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에게 물을 먹이고  사람은 야영 준비에 나섰다. 벨투리안은 여전히 마음이 심란했지만 당장 자기가 초조해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가고 싶다는 마음을 접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일, 어째서 벨투리안이 반드시 혼자서 여행을 하여야 했는가. 벨투리안이 도저히 상정못할 끔찍한 미래를 보았기에 잊어버린 일. 정신이 반쯤 나가버리지 않고서야 잊어버릴  없는 일.

그것을 깨달은 것은 밤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였다.

이변을 먼저 눈치챈 것은 당연하게도 벨투리안 본인이었다.

몸이 변하고 있었다.

그렇다. 쯔르레이에게서 벨투리안으로 돌아오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벨투리안에서 쯔르레이로 변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벨투리안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세어나왔다.

“끄으으윽….”

어떻게든 소리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응? 형씨 무슨 일이요? 괜찮은거요?”

“아, 안돼… 보지마.”

“무슨 일이요? 대체!”

“보지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것을, 그리고 불타르가 바라보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얼마나 끔찍했을까 하나의 인간이 전혀 다른 존재의 것으로 변해버리는 장면은. 불타르는 아무 말도할 수 없었다.

벨투리안, 아니 쯔르레이의  몸에서 땀이 범벅으로 흘러내렸다. 벨투리안의훨씬  옷을 뒤집어   반쯤 정신을 놓은 쯔르레이의 어린 몸은 일견 지상에 내려온 성스러운 아기 천사와도 같이 보였다. 불타르가 침을 꿀껌 삼켰다.

“너, 너는… 쯔르…레이?”

아아, 신이시여. 그대는 잔혹하구나. 어린 천사를 이리도 잔혹한 상황에 몰아넣다니. 그대는 분명 너무나도 아름답고 치명적인 여신이여. 어린 천사의 추한 모습을 이리 몰아넣다니. 너무나도 고상한 악취미가 아니신가. 쯔르레이는 거진 반쯤 알몸인 상태로 명백한, 너무나도 명백한 수치스러움을 얼굴에 드러내며 그 천사의 목소리를 입에서꺼내었다.

“고개를 돌려라. 옷을 갈아입겠다.”

천사의 목소리는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 그러나 지금 그 목소리는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그 모습을 더욱 처량히 보이게 할 뿐이었다.

“그, 그래….”

불타르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를 돌리는 선을 넘어서 잠시 멀리 떨어지기까지 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혐오감의 발로일까. 아무튼 간에 고마운 행동이었다. 쯔르레이는 벨투리안의 헐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쯔르레이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느샌가 아기 천사는 사라지고 어린 모험가 한명만이 자리에 남았다.

“되었다. 와라.”

불타르는 천천히 쯔르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그 얼굴에는차마 숨기지 못하는 강한 당혹감이 깃들어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이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어도 혐오감이 가득한 얼굴은 아니었단 거였다. 만약 그 얼굴이 혐오감을 띄고 있었다면 쯔르레이는 수치스러워 목이라도 매었을 것이다.

“할 말이 있나?”

“…너, 너는 뭐지?”

쯔르레이는 침묵했다. 자신도 그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무엇인가? 용인가? 인간인가? 그도 뭣도 아닌 무언가인가? 그러나 이런 허상스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불타르가 그런 대답을 원한 것도 아니겠지. 어리석게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벨투리안이다.”

“벨투리안…이라고?”

“그리고 동시에 쯔르레이이기도 하지.”

“….”

“저주를 받았다.”

“저주…라고?”

“나는 어느 날은 벨투리안이며 어느 날은 쯔르레이이기도 하다.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갖는 저주를 풀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너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그런 저주를 받았다.”

“그렇다면 콜테르에서는….”

“속이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들의 친구’. 미안하게 됐군. 진짜 어린애가 아니라서.”

“깜빡 속아넘어갔군.”

불타르의 표정에서 배신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황당한 이야기였기에 차마 배신감을 느끼기도 어려운 것이 분명했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타르는 생각만큼 놀란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이미 그런 장면을 봤는데 놀라는 것을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긴 했다.

“그렇다면  은혜라는 것은….”

“그래, 네가  도와줬던 것에 대한 은혜였다.”

불타르의 표정은 복잡해보였다. 은혜의 값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런 건지는 알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사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보였다. 쯔르레이는 안심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에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런가.”

“너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무슨 이야기지?”

“날 떠날 생각이냐 물었다.  은혜는 이미 충분히 갚고도 남았고 나는 어찌됐건 간에 너를 속인 셈이 되었다. 네가  나와 같이 있을 이유는 없어보이는데.”

불타르는 그 말에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쯔르레이는 그가 자신을 떠날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이런 괴물 같은 모습과 배신을 받아들여줄  같지 않았다. 말을 빌려준 것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으니, 쯔르레이는 그가 떠난다 하여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타르는 고민 끝에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아니, 가지 않겠어. 형씨…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할지, 어색하군. 아무튼 간에 형씨, 너와함께 가겠어. 도와준다고 이미 말을 꺼냈는데, 그걸 어길 수야 없지.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 아닌가?”

“…누가?”

“그 엘프, 나야 잘모르지만 당신이 얘기할 때, 엄청나게 심각한 얼굴을 하더군.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고 한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에 이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않겠어?”

불타르는 말을 마치고는 찡긋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생각 외로 우스꽝스럽고, 그러면서 동시에 멋있게 보여 쯔르레이는 조금 웃음을 토해내었다. 그 금세 자리를 잡는 능청스러운 태도에 쯔르레이는 한가지 궁금한 이야기를 자기도 모르게 꺼내버렸다.

“한가지 질문을 하지. 술집에  돈은 어디서 났지? 말을 살 돈은?”

“그거야 당연한거 아니겠어? 병사들 주머니를 슬쩍 했지.”

“하하하.”

“이 말을 구하는데는 슬쩍한 주머니를 통째로 건네줘야 했다고. 이 은혜는 언젠가 다시 돌려받도록 하지.”

“반드시 돌려주마.”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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