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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화 〉들개들의 진혼가 (109/162)


  • 〈 109화 〉들개들의 진혼가

    벨투리안은 말했다.

    “다음 마을까지만이다. 그 이상은 도와줄 수 없어.”

    벨투리안의 말에 불타르는 크게 고마운지 호들갑을 떨며 감사를 표시했다.

    “고마워, 형씨! 이 은혜 결코 잊지 않을게. 진짜 진짜 복 받을거야, 형씨는.”

    “은혜는 갚을 필요 없다. 말한대로, 보답을 한  뿐이니.”

    “그렇게 말해도 나는 전혀 기억 못하지만 말이야~. 하하.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잘모르겠어. 정말 그 은혜라는 게 내가 한게 맞는건가?”

    벨투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쓰러진 병사들을 대충 묶어둔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어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도망친 한 사람이 돌아와 그들을 구해주겠지.  전까지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불타르가 그들을 묶으면서 뭔가 뒤적거린 기색이 있었지만 벨투리안은 눈치채지 못했다.

    둘이 길을 옮기자 밤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날씨가점점 추워지고 있다. 원래부터 이 지역은 설산과 가까운 지역이기에 추운 바람이 몰려오곤 했다. 벨투리안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낡은 코트 한 장만을 대충 덮어입은 불타르는 싸늘한 날씨에 괴로워했다. 불타르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망할! 날씨가 이렇게까지 가혹할 필요는 없잖아. 콜테르는 이렇게 춥지 않았는데.”

    “콜테르에서 왔나?”

    물론 불타르를 콜테르에서 만난 것은 당연히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벨투리안은 모르는 척 시치미 떼며 물었다. 다분히 충동적인 말이었다. 벨투리안은 휴식을 취하려던 와중에 갑자기 일이 생겨 잠도 자지 못한 채 다시 움직이게 된 터라 몰려오는 졸음을 참기 위해 말을 건 것이었다. 다행히 불타르는 충분히 수다적이어서 벨투리안을 졸음에서 구해줄 수 있었다.

    “아아, 그렇지. 콜테르에서 있다가 일이 좀 생겨서 내려왔는데 운 나쁘게 붙잡혀 버렸지 뭐야. 어이쿠, 그런 얼굴로 쳐다보는 건 아직 이르다고. 좀도둑이긴 하다만, 벨루나에서는 아무 것도 안훔쳤어. 도둑에게도 영역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나 같은 외지인이 함부러 설쳐봐야 아무 것도 못해. 뭐 이번에는  중요한 일도 있었고 말이지.”

    “중요한 일?”

    “아, 여동생이 아팠거든. 약을  찾으러 왔지. 불행히도 여기는 없는 모양이더군.”

    순간 벨투리안은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불타르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시선을 느낀 불타르가 말했다. 순간에 날카로움이 오간 얼굴이었지만 당황한 벨투리안은 발견하지 못했따.

    “응? 무슨  있으쇼, 형씨?”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네놈같은 오라버니가 있다면 여동생이 많이 고생할 것 같아서 말이지.”

    “거 너무하시는구만! 이래뵈도 꽤나 좋은 오빠라고, 하하!”

    적당히 넘겨 얼버무렸지만 벨투리안은 속으로 불타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의심하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의심스러운  분명했다. 분명 과거 불타르도 여동생이 있다고는 했지만  때는 죽었다고 했다. 살아있던 여동생을 죽었다고 한거라면 모를까, 죽었던 여동생이 갑자기 살아날 리가 없었다. 적어도 그때와 지금, 둘   시점에서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왜?

    심지어 불타르는 좀도둑이었다. 평범한 좀도둑을 갑자기 다른 영지로까지 호송시키면서 보내야  이유가 있단 말인가? 보통이라면 영지 내에 감옥에 가두거나 벌금을 내게 하면 끝인 일이었다.

    벨투리안의 얼굴 조차 모르는 사람이 이제와서 갑자기 거짓말을 할 이유는무엇인가. 그 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무엇이지? 그때는 소녀이고 지금은 아저씨라서? 생각해봐야   없는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도 낭비였지만 의심은 계속해서 떠올랐다. 하릴없이 걷기만 계속 할 수 있는 이런 환경에선 어쩔  없는 일이긴 하였다.

    그가 거짓말을 하든말든 벨투리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벨투리안이 의심을 하건 어떻건 간에 불타르는 눈치없이 계속 떠들었다. 주로 자신의 여동생의 귀여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상당한 팔불출인지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한참을 떠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루브가 얼마나 귀여운지… 전에는 나한테 고맙다고 꽃을 따다주기도 했다니까? 진짜 세상 최고의 여동생이야, 그 애보다 귀여운 애는 없을 거야.”

    “하루는 내가 일하고 돌아간 후에 가니까 손가락에 작은 붕대를 감고 있길래,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나를 위해서 스튜를 끓이다가 그만 손을 데였다지 뭐야.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알아?”

    “어어, 아무리 그렇게 바라봐도 우리 루브는 안돼. 형씨 같은 사람한테 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이거든! 아무리 형씨가 날 구해줬다고 해도 이건 양보할 수 없어.”

    졸음을 버티기 위해서 참고 들어주곤 있었지만 벨투리안도 차마 그 얘기만은 무시할 수 없었는지 결국 대답하고야 말았다. 무시하기엔 짜증나는 이야기였다.

    “필요없다.”

    “필요없다니, 말이 너무하잖아. 우리 루브가 얼마나 귀여운데.”

    “둘 중 하나만 해라.”

    “너무해라. 뭐 형씨 정도면 벌써 결혼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긴 하지.”

    “나는 미혼이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거야?”

    벨투리안은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벨투리안의 품 안이라면 쏙 들어올 정도의 키를 가진 그녀는 뾰족한 귀를 가졌고, 요리를 잘하고 상냥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는 알지조차 못한다. 그녀가 아는 것은 오로지 작고 귀여운 쯔르레이 뿐일 테니.

    벨투리안이 입을 닫자 불타르는 그제야 좀 말을 줄였지만  다시 부활해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졸음을 달래기에는 적절한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덕분인지 벨투리안은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벨루나에 간티….”

    “얘기는 그만해도 될  같군.”

    벨투리안이 불타르의 말을 끊었다. 마을이 보이는데 굳이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반나절을 걸어 도착한 마을이었다. 철통 같았던 체력이 무색하게도 벨투리안은 빨리 쉬고 싶었다.

    “그럼 이만.”

    “형씨, 매정하구만. 인연도 인연인데 같이 술이라도 한잔 하지 않고.”

    “너는 빨리 도망가는게 좋을거다. 병사들이 쫓을지도 모르니까.”

    “어허, 그렇게 꽁지가 빠지게 도망간 놈들이 이렇게 금방 다시 올리는 없을 테니 걱정 붙들어매쇼. 이런 좀도둑 하나 붙잡는다고 지원병력까지 부를 일도 없고 아마 본인들 선에서 적당히 묻어버릴 테니. 안심해도 될거요.”

    그럴듯한 말이었다. 확실히 불타르가 평범한 좀도둑이라면 그를 잡는다고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평범한 좀도둑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벨투리안은 그런 생각을 입으로 꺼내진 않았다.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다. 더 이상은.

    “그거 다행이군.”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벨투리안이 불타르와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빠르게 여관이라도 잡아서 잠을 자고 싶을 뿐이었다. 불타르는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곧장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호송 당하고 있던 주제에 대단한 간덩이였다. 그런데 죄수 신분이던 놈이 돈은 어디서 나서 술집을 가는거지?

    벨투리안은 순간 드는 소름 돋는 생각에 지갑을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돈은 멀쩡히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자신의 지갑을 훔쳤을거란 생각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여관을 잡아 방에 들어가자 잠이 쏟아기지 시작했다. 곧 기끝없이 벨투리안은 잠자리에 들었다.

    ~

    벨투리안이 잠에서  것은 점심 때가 다 되어서였다. 그리 오랜 시간을 잔 것은 아니었지만 간만에  하나 꾸지 않은 편안한 잠이었다. 방에서 나와 여관 주인에게 식사를 주문했다. 다행히 식사 때다보니 금방 스튜와 빵이 나왔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었다.

    여관에서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가자 너른 햇볕이 반겨줬다. 아직 피로가 다 풀린 것도 아니고 여전히 좀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여관 밖을 나오는 순간 그런 생각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여서 무언가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어쩐지 그들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곳에 오래 있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건 일종의 불안감이었는데, 아레히와 불타르 모두와 결국 다시 만나게 된 걸 생각해보면 누군가와 또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내밀었다.

    마을을 나가기 위해 움직이던 도중 들은 이야기가 더욱 그랬다.

    “…라고? 그래서 지금… 그래….”

    일부러 엿들으려 하지 않다보니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잘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신경이 쓰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벨투리안은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불안했다. 막 일어났을 때의 상쾌하고 편안했던 기분과는 다르게 자꾸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어서 이 곳을 나가야했다.

    “어이, 형씨! 일어나셨어? 어제는 고마웠다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불타르의 등장은 결코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벨투리안은 까칠하게 그를 쳐냈다. 불타르는 신경질적인 벨투리안의 모습에 의아한 투를 냈다.

    “비켜라.  빨리 나가봐야해.”

    “무슨 일이라도 있나 봐? 혹시나 형씨도 벨루나로다시 돌아가나 했는데 그건 아닌가보지?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그러나 불타르의 말이 그를 붙잡았다. 신경쓰면 안된다. 그렇게 머리 한 구석에서 예지에 가까운 것이 머리를 틀었지만 만약 지금 묻지 않는다면 어쩐지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벨루나로 돌아가…? 무슨 생각이지? 거기 다시 돌아가면 붙잡힐텐데.”

    “아니, 그게 말이지 얼마 후에 굉장한 볼거리가 있다고. 그걸 보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같은 놈한테 신경 쓰는 녀석은 없을 거야.”

    하지만 안돼.

    안돼.

    “…볼거리? 그게….”

    묻지마.

    물어선 안돼.

    “뭐지?”

    더는

    돌이킬 수 없어.

    “흑마법사 엘프의 처형식이라나 뭐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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