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들개들의 진혼가 (108/162)


  • 〈 108화 〉들개들의 진혼가

    실비아가 사라지고 난  쯔르레이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기이할 정도로 깨어있는 상태였다. 왜 이런 상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최대한 빨리 도시와 멀어져야 할 상황에서는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몸 상태는 그리좋지 않았으나 깨끗한 정신 덕분에 그리 고통스럽지만도 않았다.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이틀이 꼬박 지나서였다. 그 동안 묵은 피로가 마치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처럼 쏟아졌다. 쯔르레이는 결국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때마침 동굴을 찾아내는 요행 같은 일은 이뤄지지 않았고 적당한 나무둥지를 찾았을 뿐이었다. 쯔르레이가 바닥에 앉아 쉴 준비를 시작했다.

    불을 피워 차갑게 굳은 몸을 녹였다. 그리고 수통을 꺼내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불꽃에 피로가 천천히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따뜻한 물을 마시니 몸도 좀 가뿐해졌다. 물론 기분뿐이었고 실제로 몸 상태가 바로 멀쩡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편안했다. 얼마전까지의 오락가락하던 정신 상태가 우스울 정도였다.

    그  밤 쯔르레이는 다시 벨투리안의 몸으로 돌아왔다.

    벨투리안의 몸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느껴지는 그리움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되찾은 것 때문일까. 그런 감정들의 어울거림이 물씬 차올랐다.

    사실 이제는 이 몸을 더는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쯔르레이의 몸으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지 않았던가. 자신이 원한다면 계속해서 쯔르레이의 몸으로 지내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원하여 그렇게 된 것은 아니나, 오히려 이제는 그 몸이 조금  익숙해지기 까지 해버렸다. 실제로도 그 몸이 원래 몸이라는, 결코 믿고 싶지 않을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러나 벨투리안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일종의 오기 뿐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천천히 쯔르레이의 몸, 용이 자신을 침식해서 원래의 자신이란 것이 사라지고 남는 것이 그 어린 몸뚱이 뿐일지라도 결코 자신은 버리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매일 밤 다짐 하고 있었다.

    자신이 자신을 포기하는 순간 더는 남는 것이 없다고 벨투리안은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직감이었다. 희망을 놓고 모든 걸 포기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강한 직감이.

    용이 나를 침식한다.[거부하지마!]

    아니,

    내가

    용을 침식할 것이다.

    ~

    바람이 불어왔다.

    아까 모습이 변하기 전에 빠진 머리카락일까, 어둠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한 올이 불꽃 속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화려하게 타오르더니  불꽃은 곧 깃털 모양으로 변하였다.

    잊고 있었던 빙룡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분명 빙룡은 자신을 슈라헤의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정말로 용의 아이라면 이 모습은 무엇인가? 어째서 자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만약, 자신이 알에서 태어난게 사실이라면.

     아비는 누구인 것인가?

    빙룡은 말했다. 네메시스의 오라비 유벤투스가 자신을 그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나 빙룡은 말했다.

    유벤투스에게서 깃털 달린 것이 태어날리 없다고.

    자신의 깃털은 무엇인가? 자신의 아비는 누구인가?

    자신은 그냥 뱀이 아니었다. 깃털 달린 뱀이었다.

    뱀에게 깃털이 달릴 수 있던가? 용에게는 날개가 있으나 그 날개에는 피막 뿐이었다.

    [네 아비가 궁금하더냐?]

    [그럼 ‘내’가 된다고 말해!]

    [그럼 ‘내’가 된다고 말해!]

    아무 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빙룡은 분명 많은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빙룡조차도 모든 걸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빙룡이 증오와 한숨에 차서 말한 것, ‘금시’ 라는 존재, 태양의 새를 말이다.

    서리 갈기 부족에서 석양이 지지 않는 전장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새가 강철 부리 부족에게 찾아왔다고 했다.그것이 자신이 그 전장으로 가는 이유  하나가 아니었던가.

    울푸레를 찾는 새, 그 새가 나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이 깃털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가?

    이제 더는 자신을 붙잡을 것이 없었다. 석양이 지지 않는 전장으로 가자. 그리고  새를 찾아내서 다시금 묻는 것이다.

    내가 누구냐고. 당신은 누구냐고.

    울푸레는… 어디에 있냐고.

    그리고 강철 부리 부족을 찾아내서… 찾아내서…

    깊게 생각해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이 편지를 전해야 할까?

    모르겠다.

    생하울라의 편지에는 자신을 죽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알고 있을까? 생하울라는 어째서 자신을 배신하였는가….

    그래도 가야했다.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내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예민해진 감각은 이미 자신이 어떤 몸을 하고 있던지 상관없이 그 괴력을 발휘했다.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아마도  명… 아니 어쩌면 네 명일 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가까이 온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필이면 이쪽 방향인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겠지. 멀리서나마 보이는 불빛과 연기로 인해 방향이 특정되는 것이 분명했다. 벨투리안은 불을 끄고 조용히 기척을 숨겼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네 명의, 아니 세 명의 병사가 오는 것을 확인했다. 네 명이 아닌 세 명인 이유는, 나머지 한 사람은 죄인으로 호송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목에 칼을 찬 채로 밧줄에 팔이 밧줄에 묶이고 발에는 쇠사슬이 걸린 상황이었다.

    “어이, 여기 불이 꺼진 흔적이 있다. 누가 있었던 모양인데?”

    “제길 알게 뭐야. 이 망할 녀석 때문에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시 피워!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가자.”

    “살람 영지까지는 한참이나 더 남았군. 대체 뭔 일때매 이런 좀도둑을 원하고 있는건지….”

    “거기서 사람이라도 몇  죽였나보지.”

    뒤에 있는 죄인은 뭔가  말이 많은 듯한 모양이었지만 피곤한 모양새에다 입에 재갈이 물려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피운 불길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자 쯔르레이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바로 얼마 전 벨루나에서 마주쳤던, 자신을 도와줬던 좀도둑 불타르 세너맨이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불타르를 나무에 묶어놓은 채 불을 피워서 쉬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 꽁꽁 묶여서 타 영지로 까지 호송되고 있는 걸까. 무슨  죄라도 저지른 건 아닌가 싶었지만 병사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도 아닌 듯 했다. 전에 그를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그를 다시 만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가 곤궁에 쳐한 상황일 때는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는 두 번이나 큰 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을 도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엘핀에게 팔아넘기지도 않았고 웅담을  때도 가지고 도망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떼먹긴 했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되었다. 그를 두고 지나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벨투리안은 행동했다.

    나무 위에서 갑자기 떨어진 벨투리안의 공격에 병사 한 명은 곧바로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 부상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기절할 정도로만 때렸다. 과거 힘 조절을 전혀 못하던 때와는 달리 요령이 생긴 것이다.

    앉아 있던 나머지 두 병사는 곧바로 일어났지만 한 사람은 바로 제압되어버렸다. 결국 남은 것은 한 명의 병사 뿐이었다. 병사는 당황했는지 곧바로 무기를 꺼냈지만 벨투리안이 휘두르는 솜뭉치에 곧바로 칼을 놓친 채 도망가버렸다.

    허무한 싸움이었다. 아니, 싸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수준이었다. 벨투리안은 천천히 나무에 묶인 불타르에게 다가가 재갈을 풀어주었다.

    “푸하…!”

    “오랜만이군….”

    벨투리안은 그뒤로 바로 목에 걸린 나무칼을 부숴버리고 발에 걸린 쇠사슬도 끊어버렸다. 솜뭉치의 힘으로는 충분했다. 되려 불타르가 다치지 않게 힘조심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고, 고마워, 형씨. 덕분에 살았군. 근데 우리 구면이던가? 미안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말이야.”

    그런가, 그때는 분명 이 모습이 아니었지. 그냥 구해주고 말 없이 바로 떠날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벨투리안은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이 모습에서 찾을  있는 공통점은 솜뭉치 뿐이었다. 부디 그가 눈치채지 못하기를 빌었다.

    “신경쓰지 마라. 너는 기억하지 못할 과거의 도움을 보답한  뿐이니.”

    “아니, 아무튼 엄청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살람 영지까지 갔으면 이대로 꼼짝없이 목이 잘렸겠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잡힌거지?”

    “이런, 누굴 범죄자처럼 생각하다니. 미안하지만 내가  낭만을 훔치는 일은 있을지언정 위험한 일은 안했다고. 이건 그냥… 글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말하지 않아도 좋다. 이걸로 과거의 은혜는 갚았다.”

    벨투리안은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와의 인연도 끝이었다. 그대로 떠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데 불타르는 어찌된 일인지 그대로 벨투리안을 쫓아오는 것 아닌가.

    “무슨 일이지…?”

    “헤헤, 형씨. 미안하지만 조금 신세 좀 질까 싶어서 말이지. 오래까지는 안바랄게. 적당한 마을까지만이라도 데려가주겠어? 미안하지만 이 곳 지리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면 아까  놈들한테 다시 붙잡힐 것 같아서.”

    벨투리안은 그대로 불타르를 버리고 갈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말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렇게 도와준 다음에 다시 그가 붙잡힌다면 도와준 보람조차 없어지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지만, 벨투리안은 불타르를 잠시까지만 데려가주기로 정했다.

    이렇게 마음써주는 이유는 뭘까. 그에게서 받았던 호의가 그가 받은 몇 안되는 진짜 호의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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