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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들개들의 진혼가 (100/162)


  • 〈 100화 〉들개들의 진혼가

    오도독 하며 입 안에서 과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류나벨트가 사온 것은 옷 뿐이 아니었다. 류나벨트가 자랑하듯 꺼낸 상자에는 과자가 잔뜩 들어있었다.


    “점심 아직 안먹었어?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네. 기다리는 동안 먹고 있어. 하나 뿐이야! 너무 많이 먹으면 점심을 못먹게 되니까.”

    달콤한 맛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쯔르레이는  달콤함에게 만큼은 반항할 수가 없었다. 이런 모습이 되어버려서 식성도 변한걸까, 하고 생각하기에는  이전에는 애초에 달콤한 간식 같은  먹어본 경험 자체가 없어서 알  없었다.


    그러고보면 휘리엘과 엘핀과 함께 있었을 때는 이런 과자들만큼은 원없이 먹을  있었지. 생각에 빠진 쯔르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 더 과자에 손을 댔다.

    “안돼!”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쯔르레이의 시도는 류나벨트가 귀신 같이 막아서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류나벨트의 단호한 얼굴이 쯔르레이를 비췄다.


    “과자는 하나까지만 이라고 했지? 점심 먹고 나서 먹게 해줄 테니까 조금 더 기다리세요?”


    류나벨트는 어린 아이 달래듯 쯔르레이를 달랬다. 물론 그녀의 눈에는 당연히 어린 아이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어린 아이가 아닌 쯔르레이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일부러  일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죄책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자신이 류나벨트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되고 나서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 동안 쯔르레이는 결코 능동적으로 자신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으로 이득을 얻어내려고  적도 없었다. 결코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은 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았던 것이다.

    모습이 바뀌었다고  모습에 맞춰 살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일부러 말을 줄여 스스로를 감추고, 마치 진짜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류나벨트에게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모습을 감추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고 있다. 두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류나벨트가 자신을 버리는 것이.


    류나벨트는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돌봐주고 감싸주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이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쯔르레이도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다. 가녀리고 어리고 연약한 모습이다.

    자신이 원래의 모습이었다고 하더라도 류나벨트가 지금처럼 대해줬을까? 착하고 마음 약한 류나벨트라면, 분명 못본 채 지나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숨겼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기했다.

    그래서 버린 이름을 다시 주워삼켰다.


    적어도, 여기까지  이상은 절대로 말할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남자의 모습으로 발견 되었더라면 마음이 편했을텐데. 이미 류나벨트를 속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정체를 밝히는 것은 결코 할  없었다.

    왜냐하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류나벨트가 자신을 경멸하는 얼굴만큼은.


    쯔르레이는 지쳤다. 그래, 변명이다. 그것이 변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투정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다. 더 나아가는 것도 무리였다. 자신은 실패했다. 지금 살아있는 것은 그저 우연에 불과했다. 목적이라는 것을 분실한 채, 희망은 배신당한 채, 그저 걷고  걸었다.

    그것말고는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때 류나벨트가 손을 내밀어줬다.

    손을

    잡아줬다.


    여태껏 이런 순수한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아무런 의도도, 거짓도, 사건도 없이 그저 순수한 선의로 자신을 봐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 이가 있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끝은 배신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주한 류나벨트의 호의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감미로워 놓을 수가 없었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나약한 것은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다.

    “점심 준비 다 됐어! 이리 오렴~.”


    고통스레 자신을 되새김질하던 쯔르레이를 멈춘 것은 류나벨트가 부르는 소리였다. 쯔르레이는 표정을 가다듬고 조용히 다시 가면을 썼다. 류나벨트의 앞에서 자신은 그저 불행한 어린 아이여야만 했다.


    식탁에 앉아 즐겁게 웃고 있는 류나벨트를 바라보며 쯔르레이도 마주 웃었다. 정말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그러나 쯔르레이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기만이라는 것을.


    ~


    하늘 높이 달이 걸렸다.

    쯔르레이가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일까, 식사 중 류나벨트는 쯔르레이에게 무슨 일 있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얼버무렸지만 류나벨트가 자신을 신경써주고 있다는게 눈에 띄게 느껴져서 괴로웠다.

    결국 먹는 둥 마는  적당히 식사를 한 후 쯔르레이는 방에 틀어박혔다. 점점 류나벨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류나벨트는 그런 쯔르레이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게 내버려두었을 뿐이었다.


    류나벨트가 보이지 않는 방이란, 생각보다 낯선 것이었다. 그러니 아침에도 그렇게 난리를 쳤던 것이겠지. 혼자 있는 것에 다시 익숙해져야 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리 길지 않을거라는 것만큼은 잊을 수 없으니.


    똑똑

    “들어가도 될까?”

    “…응.”

    문이 열리고 류나벨트가 들어왔다. 쯔르레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류나벨트를 그런 쯔르레이를 살짝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쯔르레이.”


    쯔르레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목욕, 하지 않겠니?”

    ~

    쯔르레이가 옷을 벗고 작은 목욕탕 속으로 들어갔다. 알맞은 온도로 적당히 달궈진 물이 쯔르레이를 반겨줬다.

    제대로 몸을 씻게 된 것은 오랜만이었다. 빙룡을 찾으러 갈 때에는 당연히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 적당히 냇가를 발견하면 대충 씻는 정도였고, 추운 지방으로 간 후에는 그럴 수도 없었다. 이 곳으로 온 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몸져누워있었으니 류나벨트가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는 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다.


    특별히 목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 제대로 씻지 못했으니 이런 목욕탕이 꽤나 반가웠다. 후끈한 열기가 몸을 데웠다.


    목욕을 하니 자연스럽게 쯔르레이는 자신의 몸에 시선이 갔다. 음심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럴 정도로 성숙한 몸도 아니었고 애초에 자신의 몸이었다. 그럴 마음이 생길리는 없었다. 쯔르레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상처였다.

    정확히는 상처가 없는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깨끗한 나신이었다. 그렇게나 두들겨 맞고 상처 입은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회복력은 자신이 용의 피를 이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분명 빙룡은 자신이 의태를 했기에 이런 모습이 된 것이라고 했다. 허나 용의 본질이라는 것은 용의 모습이 아닌 것인가?  어째서 본질을 되찾으려 한다면서 이런 모습이 된느 것인지 쯔르레이는 이해할  없었다.


    빙룡에게 모든 것을 들었음에도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쯔르레이가  속에 머리를 담궜다. 긴 머리가 물 위에 둥둥 떴다. 숨을 참자 생각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  바깥에서 류나벨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갈게~”

    “…?!”


    그 소리에 당황하여 쯔르레이가 물 속에 담군 머리를 들어올렸다. 들어온다고? 어째서? 왜? 쯔르레이에게서 온갖 의문이 떠올랐다. 뜨거운 열기에 어지러운 머리가 잘돌아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류나벨트는 그런 쯔르레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쯔르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벽을 마주본 덕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류나벨트의 나신을 몸에 담는 일도 없었다.

    “머리 감겨줄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쯔르레이에게 특별히 뭐라 말을 걸지 않은 채, 그대로 쯔르레이의 머리를 만져주기 시작했다. 쯔르레이는 고개를 돌릴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얌전히 류나벨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기분 좋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쯔르레이는 몸이 한껏 나른해졌다. 류나벨트가 알몸이라는 것에 긴장했지만 그런 긴장조차 잊혀질만한 느낌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에 용기가 났을까, 쯔르레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왜….”


    “응?”

    “왜, 나를 도와주는 건가요?”


    그렇게 말해놓고 쯔르레이는 곧 후회했다. 류나벨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워졌다. 류나벨트가 순수한 선의로 자신을 바라본 게 아니었으면 어떡할까. 그녀에게도 사실 또다른 의도가 숨어있으면 어떡할까, 무서웠다. 또다시 순수한 선의에 배신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으로는 차라리 그러면 어떠냐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류나벨트에게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그녀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거라면, 그렇다면 적어도  죄책감은 희석되지 않을까. 그런 비뚤어진 욕망이 떠올라버렸다.


    배신당하면, 적어도 이 마음은 편해질  있었다.


    “그냥.”


    “그…냥?”

    “그냥, 네가 울고 있었으니까.”


    “….”


    “그래서 그랬을 뿐이야.”


    그러나 쯔르레이가 다시 배신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류나벨트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투명하고, 깨끗했다.

    보내주는 선의에 결코 거짓은 없었다.

    무거운 선의가 쯔르레이의 마음을 짓눌렀다.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는다면 익사해버릴 것이다.


    무엇에 익사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쯔르레이는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선의는 나를 죽일 것이라고.

    쯔르레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류나벨트에게 보이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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