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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화 〉들개들의 진혼가 (99/162)


  • 〈 99화 〉들개들의 진혼가

    쯔르레이가 겨우 잠에 들게 된 건 아침이 다 되어서였다. 그나마도 뒤척이던 류나벨트가 쯔르레이를 놓아준 것이 아니었으면 쉽게 잠에 들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쯔르레이는 꽤 오랜만에 늦잠을 자버렸다.


    “잘잤니?”

    늦잠에서  쯔르레이를 반긴 건 당연하게도 류나벨트였다. 다행히도 류나벨트는 왜 갑자기 늦잠을 잔건지 물어보진 않았다. 쯔르레이는 그저 작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응.”

    물론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사이에 내리던 비는 이미 그쳐있었다. 꽃과 나무들은 오랜만에 흠뻑 내린 비에 즐거워하는 듯 보였지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쯔르레이는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다행히 오늘의 햇볕은 쨍쨍했다. 어제까지 내리던 폭우가 거짓말 같이 강한 햇빛이 숲을 비추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류나벨트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


    “….”

    늘 그렇 듯 류나벨트는 쯔르레이가 조용히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그 뒤는 평소와 같았다. 쯔르레이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 류나벨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무언가 시키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류나벨트는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한가했다. 집 앞에는 류나벨트가 직접 기른 채소밭이 있었고 류나벨트와 쯔르레이는 채소밭을 돌보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특별히 고된 일은 아니었다. 쯔르레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일라치면 류나벨트는 바로 일을 그만두게 했으니.

    밭일이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사슴 스튜를 만들어주었을 때 이미 느낀 것이었지만 류나벨트의 요리 솜씨는 훌륭했다. 아직 많이 남은 사슴 고기와 채소 과일 등을 활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비견할 데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식사 시간만 되면 답지 않게 들떠있었다. 가끔은 처음 사슴 스튜를 먹었던 날처럼 작은 목소리로  그릇 더 달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류나벨트는 그럴 때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거절했지만, 가끔은 아주 조금 음식을 더 덜어줄 때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류나벨트는 보통 책을 읽었고 쯔르레이는 그런 류나벨트를 바라보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쯔르레이가 잠에 빠져들면 류나벨트는 조용히 일어나 그런 쯔르레이를 안아 들고 침대로 데려가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책을 가져와 쯔르레이의 침대 앞에서 읽었다.


    쯔르레이가 눈을 뜨면 그 앞에는 류나벨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일이 익숙한 생활이었다.

    이제는 류나벨트가 없는 생활이 더욱 낯설어질 무렵이었다. 아침잠에서 깨어난 쯔르레이에게 낯선 일이 생겼다. 평소처럼 쯔르레이는 말하려고 했다. 류나벨트가 인사하면 다시 돌려주는 좋은 아침이라는 대답. 그러나 쯔르레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아침인사가 오는 일은 없었다.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류나벨트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당황한 쯔르레이는 방을 나가보았지만 그곳에도 류나벨트는 없었다. 어디로 간거지. 사냥이라도 나간 걸까? 저번처럼? 하지만 그 때는 분명 쯔르레이에게 말을 하고 나갔었다.


    그렇게 방 안을 둘러보던 쯔르레이는 다행히도 곧 방 안에 있는 쪽지를 발견할  있었다. 너무 당황하여 처음에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쪽지는 침대 앞 탁자에 놓여있었다. 쪽지에는 인간의 언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잠시 마을에 다녀올게. 누가 오더라도  열어주지마.’

    쯔르레이가 느낀 것은 안도감이었다. 자신을 버린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런 생각을 느낀 자신에게 놀랐다. 버려? 자신을?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류나벨트에게 의존하고 있었나?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자신은 언젠가 이 곳을 떠나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속으로 쯔르레이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을. 어쩌면 애초부터 강한 존재도 아니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서 류나벨트와 지내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 그것을 추억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쯔르레이가  한 구석에 놓여있는 자신의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쯔르레이의 가슴에 한 쪽에 박혀서 떠나지 않았다.


    생하울라.

    너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며 나와 같이 있었나.

    똑똑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깥에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쯔르레이는 방을 나가서 현관 앞에 섰다. 확실히 누군가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류나벨트의 손님일까?

    쯔르레이는 기척만 확인했을 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류나벨트가 남기고 간 쪽지에는 누가 오더라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써있었다. 물론 그런 얘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바보 같이 문을 열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류나! 있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만 나오십시오!”


    들려오는 것은 젋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류나? 류나벨트의 애칭인걸까.  사람은 누구길래 류나벨트를 애칭으로 부르는 걸까. 쯔르레이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문 앞에서 류나벨트를 불렀다. 혼자  것이 아니었는지, 종종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결국 집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포기하고 돌아갔지만 그 때는 이미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류나벨트는 언제쯤 돌아올까. 그녀가 있든 없든 간에 쯔르레이의 하루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똑같이 지루하고, 똑같이 한가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없다는 것만으로 그 평범한 시간들이 버티기가 힘들었다. 너무 느린 시간이었다.


    류나벨트가 돌아온 시간은 점심을 훌쩍 넘겨서였다. 집 밖에서 류나벨트의 기척이 느껴졌다. 쯔르레이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문 앞으로 갔다.

    문이 열리고 무언가가 잔뜩 든 바구니를 들고 있는 류나벨트가 보였다. 류나벨트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쯔르레이를 보며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안해. 혼자서 집 지키게 해서.”


    쯔르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녀를 반기는 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었다. 쯔르레이는 그저 손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류나벨트는 흔쾌히 바구니를 넘겨주었다. 바구니는 무거웠지만 못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조금씩 휘청거리며 바구니를 부엌까지 날랐다.


    “나 없는 동안 혹시 누가 오거나 하지 않았니?”


    “왔어…요. 남자들. 류나벨트를 찾았어.”


    “정말로? 문은 안열어줬지?”

    “응.”


    그 말을 듣자 류나벨트의 얼굴에 곤란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은 처음 보았다. 한편으로는 그런 표정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에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남자, 류나벨트를 류나라고 불렀어.”

    “아… 신경 안써도 돼. 그쪽에서 멋대로 부르는거니까.”


    류나벨트는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도 자신이 자리를 비울 때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쯔르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남자가 누군지 물어보는 것, 그건 류나벨트에게 폐가 될까? 자신이 왜 궁금한지도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었다. 그 남자와 무슨 관계인지. 하지만 결국 쯔르레이는 입을 닫았다.

    “그건 그렇고, 이거 한 번 입어보지 않겠니?”

    류나벨트가 그런 쯔르레이에게 말했다. 류나벨트가 같이 매고온 가방에서 나온 것은 바로 어린 아이들이나 입을 법한 원피스였다. 아니, 옷은  벌이 아니었다. 류나벨트는 계속해서 여러벌의 옷을 꺼냈다. 거기에는 속옷도 섞여 있었다.


    지금의 쯔르레이가 입고 있는 것은 류나벨트의 것이었다. 어느 정도 급하게 수선을 하긴 했지만 어린 아이가 엄마 옷을 빌려입은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쯔르레이가 원래 입고 있던 옷은 이미 걸레짝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쯔르레이는 여전히 저런 옷들을 입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거부감보단 자신을 생각해주는 류나벨트에게 느끼는 고마움이 더욱 컸다. 어차피 저런 옷들을 입는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류나벨트가 사온 옷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어때? 잘맞니? 좀 작거나 그러진 않지?”


    “응… 괜찮아.”

    사실 조금 컸다. 어느 정도는 류나벨트가 의도하고 사왔을 것이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니까. 물론 쯔르레이의 몸이 자라는지 안자라는지 정확히 알  없었지만 류나벨트는 알 수 없었다. 쯔르레이는 이전에 자신의 머리가 아주 조금 자랐던 것을 생각해냈지만 곧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이 옷을 입을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테니까.

     옷을 입은 쯔르레이의 모습은 천사처럼 사랑스러웠다. 류나벨트의 취향인 걸까, 옷들은 모두 귀여운 계통이었다. 물론 쯔르레이의 취향은 아니었다.


    “맘에 드니?”

    “…응.”

    하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류나벨트에게 쯔르레이는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없었다. 아마 류나벨트가 사온 것이 평범한 원피스가 아니라 끔찍하게 못생긴 옷이라고 하더라도 쯔르레이는 맘에 들었다고 했을 것이다.


    조금 대답하는 것이 늦었지만 류나벨트는 다행히 의심 없이 받아들인  같았다.

    “후후, 쯔르레이는 귀엽구나.”


    류나벨트는 갑자기 쯔르레이를 꼭 껴안았다. 가끔씩 류나벨트는 이렇게 쯔르레이를 껴안곤 했다. 그때마다 쯔르레이는 가슴팍, 혹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류나벨트의 가슴 감촉에 얼굴이 빨개졌다.


    다행히 류나벨트는 순진하게 열이라도 있니? 하고 물어왔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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