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들개들의 진혼가 (96/162)


  • 〈 96화 〉들개들의 진혼가

    벨투리안은 걷고 있었다. 그저 걷고  걷고,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벨투리안을 반기는 거은 오직 춥고 척박한 대지 뿐이었다. 속도는 느렸다. 그렇지만 벨투리안은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걷는 것을 반복했다.


    인가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곳에 들어가봐야 제대로 마음 놓고 있을 수 조차 없다. 그 정도의 이성적인 판단 정도는 아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벨투리안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평범한 안식만큼은 아니란 것이었다.

    벨투리안은 쉬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어딘가를 헤매이고 있었다.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우트가르드에게 두들겨 맞은 후유증은 아직도 채 낫지 않은  벨투리안의 몸을 좀먹고 있었다.


    물론 벨투리안의 몸은 그 정도로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벨투리안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치료했더라면 이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벨투리안은 단 하루도 쉬지 않은 채 그저 걷는 것을 반복했다.

    제아무리 튼튼한 몸이라고 해도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벨투리안이 피를 토한 것은 나흘 째의 밤이었다. 몸의 상태가 이러니 당연히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지금의 벨투리안이 그걸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됐건간에 벨투리안의 멈추지 않는 걸음은 결국 무언가에 도달하긴 했다. 춥고 척박했던 대지가 점점 초목에 둘러쌓이는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번의 피를 토한 이후 벨투리안은 무성한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벨투리안의 발걸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쉬는 일 역시 없었다. 몸은 계속해서 떨려왔다. 휴식을 취하라고 몸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벨투리안은 무시했다.


    숲이라고 벨투리안의 걸음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저 계속 걷고 또 걸었다. 벌써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 이레째였다. 벨투리안의 손에 쥐인 솜뭉치는 질질 끌려 벨투리안이 오고 간 흔적대로 길이 남았다.

    그리고 여드레는 오지 않았다.

    벨투리안은 팔  째가 되기 전, 쓰러졌다. 이미 혈색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누가 봐도 벨투리안의 몸 상태는 한계에 달아있었다. 그러나 벨투리안의 곁에 그걸 지적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섯 번째 피를 토하고 나서 벨투리안은 더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천천히, 나뭇잎 사이로 벨투리안의 신형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솜뭉치를 놓는 일은 없었다.

    ~

    벨투리안의 정신이 혼미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온 몸이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제대로 앞을 볼 수 조차 없었다. 머리가 뜨거웠다.

    자신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어딘가에 누워있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한계였다. 가쁜 숨이 새어나왔다.

    “하아하아….”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벨투리안의 몸이 그걸 따라줄리 없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자 정갈한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벨투리안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무슨 상황인건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도 힘들만큼 정신이 어지러웠다.

    끼이익하고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벨투리안의 눈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 ……….”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키가 큰 여자였다. 여자인가? 모르겠다. 벨투리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도저히 무언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여자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없었다. 물론 그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벨투리안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여자는 벨투리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벨투리안에게로 손을 뻗었다. 정신이 어지러운 상태라고 할지라도 벨투리안은 본능적으로 여자를 막아서려 했다.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미 지겹도록 말했듯이 이런 상태로 벨투리안의 몸이 의도대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벨투리안의 손은 그저 여자를 향해 뻗어 조금 들렸다 말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그런 벨투리안의 손을 잡아주었다.

    따뜻한 손길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임에도 여자의 손이 매우 따뜻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낯선 온기였다.


    여자는 벨투리안의 작은 손을 잡고 천천히 내려주었다. 벨투리안은 아쉬움을 느꼈다.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는 벨투리안의 머리 위에 놓여있는 수건을 떼어주었다. 벨투리안은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머리 위에 수건이 놓여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곧바로 새로운 수건을 벨투리안의 머리 위에 올려주었다. 차가웠다. 손을 잡아주었을 때 느낀 온기와는 정반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 한기가 마냥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수건을 갈아준 여자는 다시금 벨투리안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시 따뜻한 손길이 벨투리안을 쓰다듬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몸이 아픈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 ………~”


    그리고 여자가 나지막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벨투리안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지만 그건 자장가였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여자의 목소리는 곱고 따뜻했으며 편안했다. 알아들을  없는 노랫소리가 벨투리안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벨투리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언젠가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였다. 기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열병에 걸려 밤새 몸이 끓어오를 때, 그때도 이렇게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점점 좁아지는 시야에 여자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잡아주는 손을 결코 놓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의 마지막 온기라도 되는 것마냥 필사적으로 그 온기를 부여잡았다. 여자도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잡아주었다.

    노랫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끊기지는 않았다 .작고 자애로운 목소리가 벨투리안의 귀에 아른거렸다. 결국 눈이 감기고 벨투리안은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벨투리안의 입에서 작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나왔다.


    “…엄마.”

    여자는 손을 놓지 않았다.


    ~

    아이가 완전히 눈을 감고 오랜 시간이 지나 고요한 숨소리가 흘러나올 때가 돼서야 여자는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아이의  잡은 손은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여자의 힘이라면 이런 어린 아이의 손아귀 정도는 쉽게 뿌리칠 수 있었지만 여자에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었다. 이렇게 가녀린 아이가 필사적으로 잡고 있는 손을 놓는 일 같은 것은 결코.


     아이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외출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최근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그 날따라 어쩐지 밖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숲이 울고 있었다. 아니, 움츠려들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일까, 가볍게 밖을 둘러보았더니 이 작은 아이가 쓰러져 있던 것이다.

    아이의 몸은 망신창이였다. 대체 어째서 아직 죽지 않은걸까,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뼈가 붙어있는  신기할 정도로  몸에 맞은 흔적이 있었고 혈색은 창백했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상태를 봐서는 며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참상이었다.


    그 자리에 아이를 놔두고 오는 선택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곧장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헌신적으로 간호했다. 다행히 차도가 있었다. 처음 발견할 때만 해도 언제 죽을지 걱정한 아이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잠깐이지만 의식을 되찾은 것 같았다.

    자신을 보며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모습은 참을  없이 처량했다. 자신의 손을 얼마 없는 힘으로  잡는 아이의 작은 손에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차림새를 보아하니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란 것 정도는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검은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평범한 검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걸까, 아니면 일행과 떨어진 걸까.

    하지만 대체 이런 작은 아이에게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여자는 바보 같이 순진한 시골 처녀가 아니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작은 아이에게 가해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음 또한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이 아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만큼은 평온할 수 있길 바랬다.

    잠에 빠진 아이의 표정은 다행히도 평온했다. 자장가의 효과가 있는 걸까. 새근새근 새어나오는 숨소리는 아이의 상태가 조금이나마 안정되었음을 의미했다. 다행히도 악몽 같은  꾸고 있는 것은 아닌거 같았다.


    여자는 그저 아이의 손을 잡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부디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기를.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여자의 손을 좀  강하게 붙잡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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