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85/162)


  • 〈 85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손님?”


    벨투리안은 기꺼이 그 말에 응대해주었다. 고마운 타이밍이었다. 지금까지 생각하던 주제에 대해서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었다.


    “초대 받지 않은 이들, 침입자입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방치했지만 바깥의 골렘만으로는 부족했나 보군요.”


    “그 말은… 네가 가야한다는 뜻인가?”

    그건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우트가르드 마저 이 방에서 나가버린다면 다시금 상념에 빠져 한없이 자아를 괴롭히는 일만이 남을  같았다.

    “그렇습니다.”


    불행히도 우트가르드는 벨투리안의 말을 긍정하는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트가르드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신 또한 가야합니다. 저는 우르테가를 지켜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꽤나 강압적인 이야기였다. 우트가르드에게 주어진 의무는  가지였다. 네메시스의 동굴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가 우르테가, 벨투리안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두 가지 의무를 모두 지키기 위해서 벨투리안을 보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것은 평소라면 기분 나빴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의 벨투리안에게는 마냥 반가운 이야기였다.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우트가르드가 침입자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는 것에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르고.


    기분이 좋아져?

    “따라가도록 하지.”

    더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계속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무언가가 점점 더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

    우트가르드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이전, 자신과 베르헬트가 우트가르드와 싸웠던 동굴의 입구 부분이었다. 우트가르드는 높이 솟아오른 동굴  한쪽의 절벽 위에 벨투리안을 두고 내려가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갔다. 우트가르드가 침입자들과 마주친 것은 금방이었다.


    “이거이거… 꽤나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왔구만.”

    침입자들의 정체는 인상이 좀 험해보이는 모험가들이었다. 두 명의 남성으로 이루어진 모험가들은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메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우트가드르의 등장이 이상하지도 않은지 낄낄대며 웃어대고 있었다.

    벨투리안은 그들이 대체 어떻게 이 곳을 찾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자신과 베르헬트 또한 쥬브쥬브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찾아낸 입구였다. 어떻게 평범한 모험가들이 용의 굴을 찾아낼  있었던 걸까?  [사방팔방 찢겨 짖밟힐 것들이.]

    벨투리안은 순간 그들에게서 강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걸 깨달았다. 이상한 것은 그들의 태도 뿐이 아니라 냄새였다. 멀리 있을 터인데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강한 향유 냄새가 그들에게서 났다. 이것 또한 육체의 변화 때문에 눈치챌 수 있는 걸까?


    “세상에나 가디언이라니… 여기가 용의 동굴이라는  사실이었군.”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겠어, 흐흐흐.”


    그들의 대화가 선명하게 벨투리안의 귀에 들려왔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험가들인걸까?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기색에게서는 무언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물에 대한 강렬한 기대감도, 용에 대한 두려움도.

    그러나 우트가르드는 그런 위화감 같은 건 신경 쓸 여지조차 없다는 듯, 곧바로 침입자들에게 돌진했다. 물론 돌진은 가벼운 페이크였고, 침입자들의 뒤에서는 이미 그들이 해치운 얼음 골렘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우트가르드의 서릿발을 두른 돌진을 침입자들이 가볍게 피해내고 역공까지 가한 것이었다. 침입자들의 무기에 동시에 얻어맞은 우트가르드가 순간 주저 앉았다, 빠르게 뒤로 도망갔다. 뒤에서 만들어진 얼음골렘은 다시금 주저앉아 부서져버렸다. [기대했었는데, 쓸모없는 것.]


    침입자들이 예상 외로 강한 자들이었던걸까? 초월자인 베르헬트와 동수를 겨뤘던 우트가르드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만큼?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들이 예상 외로 강한 이들인 것은 맞았지만 문제는 우트가르드에게 있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우트가르드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우트가르드 역시 곧 자신에게 생긴 이변을 깨달았다. 모험가들의 무기를 맞고 부서진 몸이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는 벨투리안은 몰랐지만 우트가르드는 곧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전, 자신을 베었던 검이 무엇이었나? 초월자 베르헬트가 몇 번이고 우트가르드의 팔과 다리를 베어냈던 것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용의 비늘, 네메시스의 비늘 한켤로 만들어진 검.

    용살검 백상.


    가장 강력한 봉인자 네메시스의 비늘이 우트가르드를 조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더욱 큰 의미인 것. 주인의 비늘.

    그것은 우트가르드의 주인의 비늘이었다. 주인의 것에게 베였다는 것은  주인에게 버려짐을 의미했다. 비록  검이 가공되어 있는 것이기에 다행히도 효과는 덜했으나 골렘에게 있어서 그것은 치명적인 저주와도 같았다.

    골렘인 우트가르드에게 있어서 본디 저주란 것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것이나 주인과 소유물로써 계약이 맺어진 골렘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치명적인 상처가 우트가르드를 천천히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우트가르드는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공방은 꽤나 일방적이었다.


    우트가르드는 최선을 다해서 적을 막아내기 위해 움직였으나 그 시도는 번번히 침입자들에게 막혔고 되려 우트가르드에게 상처만 쌓이고 있었다. 우트가르드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침입자들은 더 강하게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우트가르드는 그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무표정으로 말없이 공방을 이어나갔다. 이대로 가면 우트가르드가 완전히 부서질 것이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물러섬은 없었다. 침음성 하나 흘리지 않으며 우트가르드가 벽을 뒤에 두고 적들과 대치했다.

    지금, 자신의 주인은 자리에 없다. 그렇다면 이 곳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의무요, 사명이요, 그리고 마땅히 행사할 권리였다.

    도망치는 일 따윈 없었다.

    그럴 터였다.

    어린 아이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을 대검이 적들과 우트가르드의 사이로 던져져 벽에 박혔다. 솜뭉치였다. 솜뭉치가 적들의 시선을  사이에 벨투리안이 빠르게 달려 우트가르드를 안았다.

    우트가르드는 벨투리안의 행동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자신을 안고 달리기 시작하는 벨투리안을 보며 적어도 지금  상황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라는 정도는 깨달을  있었다.


    “놔주십시오. 저는 저들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 의무입니다.”


    벨투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득할 자신도 없었으며 어째서 자신이 이 인형을 구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쓸모도 없는 것을.] 그러나 적어도 그대로 거기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행히 이미 몸의 일부가 박살난 우트가르드는 벨투리안의 힘으로도 안고 움직일 수 있었고 우트가르드의 반항도 틀어막을 수 있었다.


    물론 침임자들 또한 그대로 도망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당황한 것도 잠시 벨투리안과 우트가르드를 쫓기 시작했다. 쫓기 전에 잠깐 솜뭉치를 벽에서 뽑아보려고 했지만 압도적인 무게 때문에 무리였다. 덕분에 좀 더 시간을 벌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벨투리안은 그들이 당황한 틈에 최대한 거리를 벌렸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단 우트가르드를 안고 움직이는데다가 보폭도 작아 빨리 움직여도 그들을 상대할 수준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벨투리안은 어느 곳에서 침입자들과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은 베르헬트가 스스로를 백상으로 찌른 그곳이었다.


    “헤헤… 저기 저건 뭐지? 오브제라도 되는 건가?”

    “저 검은 꽤나 비쌀  같은데, 뽑아서 가져가자고.”


    물론 그렇게  수는 없었다. 더는 도망칠  없다는 것을 판단한 시점에서 벨투리안은 우트가르드를 내려주고 싸울 준비를 했다. 솜뭉치는 아까 던져버렸고 몸 상태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방도가 없었다. 우트가르드 역시 준비태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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