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83/162)


  • 〈 83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자연스럽게 우르테가의 시선이 솜뭉치에게로 향했다. 무게를 조절 가능한 신비로운 검. 우르테가가   있는 유일한 무력. 그러나 우르테가는 특별히 솜뭉치에 대해 특별한 호기심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건 분명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이 검을 알고 있는 건가?”


    “그 검은 드워프들이 만든 검입니다. 나와 다른 골렘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찍이 생하울라도  검을 건네주면서 얘기하지 않았는가. 고대에서 만들어진 신비로운 검이라고.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니, 그들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훌륭한 대장장이라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 알고 있다. 분명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었어야 했다.

    “그런 검이었군. 알려줘서 고맙다.”

    우르테가는 감사를 표했다. 딱히 의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쨌든간에 검의 정체를 알려준 것이니. 하지만 우트가르드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과묵했던 것이 무색하게 우트가르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나는 그 검에 대해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미안하지만 나 역시 이 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다.”


    솜뭉치에 관해서라면 오히려 저 얘기를 해준 우트가르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트가르드가 묻는 것은 우트레가가 충분히 답변해줄  있는 범위의 것이었다.

    “그 검, 어디서 얻었습니까?”

    잠시 고민한 우르테가는 입을 열었다.  인형에게 생하울라의 얘기를 꺼내도 괜찮을까?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우르테가는 입을 열었다. 말해준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진 않을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생하울라는 오크고, 고령이지만 네메시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만큼 오래 살았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내게 검을 가르쳐준 오크가 있다. 이름은 생하울라. 전장의 순례자이다. 그가 나에게 주었다.”


    우트가르드의 표정 없던 얼굴이 조금 변했다. 그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혹시 네메시스와 생하울라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조금 입을 성급히 놀린  아닐까 고민하던 우르테가는 곧 우트가르드의 말을 듣고는 안심했다.


    “들어본  없는 이름이군요.”


    그러나 그 안심은 우트가르드의 이어지는 이야기에 더는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르테가가 질문의 이유를 물었다.

    “검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어째서 물어본 것이지?”

    “당신에게 검을 가르친 이가 그걸 주었다고 했죠.”


    “그래.”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무엇을?”

    “그 검을 바친 황금 난쟁이들은 일찍이 한 주인을 섬겼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생하울라를 조심하라고 하더니 갑자기 난쟁이들의 주인 얘기는 왜 나오는 것인가. 우르테가는 순간 강렬한 불길함이 몸을 휘감는 걸 느꼈다. 근거 없는 불길함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우르테가는 자신의 불길함이 결코 허튼 느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트가르드의 입이 그 불길함을 무수히 긍정하였다.


    “주인의 이름은 울푸레.”


    우르테가가 조용히 탄식하며 입을 벌렸다.

    “재앙을 조각하는 울푸레입니다.”


    ~

    우르테가는 누워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나아가던 몸이 다시 격통에 시달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그저 단순히 그런 것에 신경을  여지가 없었을 뿐이다.


    머릿속에서 강한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검의 주인이 울푸레라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생하울라는 어떻게 이 검을 얻은 것이지? 그는 대체 울푸레와 무슨 관계인 것이지? 자신을 도와준 이유는? 자신을 찾아낸 것인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는 말했다. 자신을 돕는 이유가, 언젠가 용을 쓰러트릴 전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라고. 그것이 거짓말인 것은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더는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를 믿었기 때문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건 간에, 자신을 도와준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으니.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울푸레와 관련이 있다고?

    숨이 막혔다.

    막힌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몸의 통증은 남았지만 더는 의미가 없었다. 더는 가만히 누워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강렬한 배신감이 가슴을 때렸다.

    그는 울푸레의 하수인인건가?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혹시나 우연인 것인가?


    우연히 그가 울푸레의 검을 얻고, 우연히 울푸레의 저주를 받은 이를 만나, 우연히 그에게 딱 필요한 검을 건네주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질이 나빴다.

    기분 나쁠 정도로.


    이것을 우연이라고 넘긴다면 그건 그야말로 자신이 바보라고 세상에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코 넘길  없는 일이었다.


    순간 그가 자신에게 주었던 편지가 생각났다. 하나는 수해의 마녀 글룸라에게 전하는 편지, 그리고 하나는 강철부리 부족의 오크들에게 전하는 편지였다.

    우르테가는 먼저 글룸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뜯어보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써져있는 것은 전혀 알 수 없는 언어였던 것이다. 우르테가가 배운 것은 오직 볼타르 왕국의 언어 뿐이었다. 아마도 오크의 것일 언어를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글룸라의 편지뿐 아니라 강철부리 부족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뜯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강철부리의 부족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엄청나게 짧았단 것 뿐이었다.

    우르테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트가르드를 불렀다.

    “이봐, 우트가르드… 너는 혹시  편지를 읽을 수 있나?”

    우트가르드가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을까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우트가르드는 말없이 다가와 편지를 살펴보았다.


    “이건, 오크의 언어로군요.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같지만 읽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거기에 무슨 내용이 써져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글룸라에게, 오랜만일세. 생하울라이네. 봄딸기는 철이 지났는가? 자네가 전에 보내줬던 딸기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군.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전히 그대와 함께 했던 일이 생각나네.
    여전히  실험은 계속하고 있는가? 좀 진전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군. 다름이 아니라 자네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있네.  편지를 가져간 이가 그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네. 용과 관련된 일이라네.
    자세한 얘기는 편지를 가져간 이와 얘기해보게나. 그대가 힘을 빌려줬으면 고맙겠네. 내 귀한 친구라네. 자네가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야.
    다음에 여유가 되면 꼭 그 봄딸기를 다시  보내줬으면 좋겠군.
    이만 줄이겠네. 그대의 오랜 친구, 생하울라가.’”

    평범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자신을 귀한 친구라고 불러주기까지 했다. 이런 편지를 써준 생하울라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편지가 한 장  남아있었다.

    우르테가는 곧 바로 강철부리 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우트가르드에게 건네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짧았다.

    우트가르드가 읽는 것도 금방이었다.


    “‘기회를 봐서 편지를 가져간 이를 죽여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우르테가는 곧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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