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82/162)



〈 82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우르테가’? 그게 무엇이지? 나를 부르는 것인가? 어딘가에서 들어본 기억이 분명 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는 무언가를 기억해낼 여력 같은 게 전혀 없었따.

‘벨투리안’, 아니 ‘쯔르레이’, 어쩌면 ‘우르테가’인 것이 입을 열었다.

“그………가아아악…!”

그러나 나오는 것은 오로지 채 발음이 되지 못한 언어 이전의 발버둥 뿐.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 소리를 조금 내다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좀 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가야. 병아리는 삐약삐약대기 위해 있는 것이고 도마뱀의 입은 말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리라. 그 몸은 지극히 말하는데 있어서 불편할 것이야.”

그 말에 고통스러이 비악질하던 우르테가, 라고 불린 것은 몸의 위화감을 깨달았다. 확실히 이것의 성대는 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 했다. 소리 지르면 나오는 것은 울부짖는 소리였고 조용히 신음하면 나오는 것은 작은 새소리였다.

목소리를 닫아버린 우르테가는 입을 닫고 운신에 집중했다. 갑작스런 변화로 생긴 격통은 차차 줄어들었으나 의문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유는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우르테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답을 내려줄 이를 쳐다보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도 빙룡은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수다스러운 이였다. 신음하는 이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입을 닫고 있지는 않았다.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지금은 고마웠다.

“그래,  조용하구나. 궁금한 것이 많은 눈초리야. 내게 답을 구하는 것이 있길 바라거라.”

빙룡은 천천히 우르테가에게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우르테가의 깃털로 된 황금빛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빙룡은 섬세한 손길로 우르테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은 어린 아이를 귀애하듯 쓰다듬는 손길이 아니라, 귀여운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과 같았다.

“신이,  총애를 내려, 세상 그 무엇보다 밝은 깃털을 선물해준 피조물들이 있지.”

빙룡은 곧 그 섬세한 손짓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손길에 곧 깃털 한 올이 그대로 뽑혀버렸다. 따끔함을 느낀 우르테가는 살짝 움찔했으나 고통은 잠시 뿐이었다. 우르테가는 멍하니 빙룡의 손에 담긴 자신의 깃털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분명 자신의 몸에서 나왔음이 분명한데 우르테가의 눈에는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깃털을 손에 쥔 빙룡은 더는 우르테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깃털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너털웃음을 내뱉은 채 빙룡이 입을 열었다.

“용을 먹는 새들의 이름을 아느냐?”

그리고 빙룡의 입에서 엉뚱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에는 한없는 비웃음과 경멸만이 담겨있었다. 어쩌면 조롱일지도, 어쩌면 그저 정말 재밌어서 웃은 걸지도 모르겠다.

“용은 신이 내린 피조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용이 죽으면  영혼은 자리를 잃고 소멸의 굴레를 차지. 용은 신에게 저주 받은 생물이다. 신들은 용을 저주한다. 태초의 뱀이 떨어진 생명수를 핥고, 거짓을 고해  혀가 갈라진 그 순간부터.”

빙룡의 고아한 작은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그들은 만들었다. 황금색 깃털이 탐스럽고 아름다워 그 누구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새를. 날개를 휘저어 바다를 갈라 용을 삼켜 먹는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태양의 새.”


빙룡은 잡고 있던 깃털은 손에서 놓아버렸다. 깃털은 그대로 천천히 나폴나폴 떨어지다 바닥에 닿는 그 순간 얼어붙어 조각이 되었다. 곧 빙룡은 맨발로 그 조각을 밟아버렸다. 얼어붙은 깃털은 곧 산산히 부서져 빙룡의 여린 발바닥에 핏자국이 흘러내렸다.

“[금시]를.”


그 순간, 우르테가는 떠올렸다.

석양이 지지 않는 전장, 그들이 얘기해주었다.

그 곳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새가 떠올랐다.


~


“우트가르드, 우르테가를 부축해주어라.”


빙룡의 얘기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의문만이 가득한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끝내버린  우트가르드에게 부축을 명한 이후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트가르드는 반쯤 쓰러진 채로 있던 우르테가를 두 손으로 잡아 들었다. 부축, 이라고는 했지만 빙룡도 아마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얘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그것은 우트가르드의  손에 들린 채 옮겨졌다. 우트가르드는 우르테가의 이름이 밝혀졌음에도 전혀 존중을  의지 따윈 없는 듯 보였다. 우르테가 역시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얌전히  손길에 몸을 맡겼다.


우트가르드가 우르테가를 부축하여 데려간 곳은 바로 어제 쉬었던 그 방이었다. 벨투리안이 나갔을 때만 해도 살짝 어질러져있었을 방은 대체 언제 청소를 한 건지 벌써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우트가르드는 그대로 침대에 우르테가를 눕혀주었다. 그 손길은 난폭하지는 않았으나 섬세하다고도  수 없었다. 우르테가는 익숙한 대접에 따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우트가르드가 나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우르테가의 생각과는 달리 우트가르드는 나가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던 우르테가가 먼저 물었다.

“안나가나?”


“당신을 지켜보라고 주인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어째서?”

“주인님께서 명하신 것에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말은 즉슨,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붙잡고 실랑이를 벌여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우르테가는 우트가르드를 내쫓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어차피  몸에 한바탕 통증이 왔다간 덕분에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무언가 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잠시간의 거슬림을 참으면 그만일 것이다.

“빙룡…님과는 언제 다시 만날  있지?”

“주인님께서 원하실 때.”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누운 채로 그저 가만히 몸의 통증을 식히는 것 말고는  일이 없다보니 물어본 것이었는데  인형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우르테가는 눈을 감은 채로 휴식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이 찬찬히 진정되고 있다는 것은 조금씩 느껴졌지만 여전히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우르테가는 다시 우트가르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트가르드… 라고 했던가.”


우트가르드는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한번 까딱였다. 우르테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조차 않았다. 적어도 반응이 없지는 않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며 우르테가가 물었다.


“너는… 베르헬트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혹시 너도 베르헬트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빙룡…님의 것이  것인가?”


우트가르드는 답이 없었다. 입을 열고 싶지 않은 것인지, 대답해서는 안되는 질문인 것인지.


우트가르드가 입을 연 것은 우르테가가 대답을 듣는 걸 포기하고 다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고 했을 때였다.

“나는 그와는 다릅니다.”


들려온 우트가르드의 목소리에 우르테가는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인형입니다. 아주 오래 전, 황금 난쟁이, 드워프들이 그들의 주인을 위해 만들어 바친 세가지 골렘 중 두 번째 골렘입니다.”


그렇게 오래 고민할 정도로 특별한 얘기는 아니었다. 베르헬트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서 더는 들을 이유 또한 없는 이야기였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당신의 검과 마찬가지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