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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81/162)


  • 〈 81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잠에서  벨투리안은 정신을 차리고는 곧 당황했다. 분명 무언가 꿈을 꿨던 것만 같은데 제대로 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 같은 거에 그렇게 얽매이는 편이 아닌 벨투리안은 이내 털어버리고 신경을 끄기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마음 속에서 떠나지가 않는다. 꿈에 대한 생각이.

    무언가 중요한 꿈이었을까? 그러나 꿈이 중요하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어찌되었건 간에 기억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생각해봐야 아무 방도가 없다. 애써 떠나지 않는 생각들을 지우며 벨투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제서야 벨투리안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이 다시 벨투리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외의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자신의 옷이 갈아입혀져 있던 것 뿐이었다. 빠르게 자신의 몸을 살폈지만 그것말고 이상은 없었다. 옷도 평범한 잠옷이었다. 자신의 옷은 깨끗하게 손질되어  한쪽에 개여있었다.


    ‘그 메이드가 한 건가.’


    옷을 갈아입혀준 것에 감사를 표해야할지, 아니면 멋대로 갈아입힌 것에 화를 내야할지 애매한 기분이었다. 무작정 화를 내기엔 그것의 뒤에 있는 것이 너무 거대했다. 게다가 덕분에 그대로 자고 있다가 옷을 찢어먹을 뻔 한 것을 막지 않았는가.

    결국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은 벨투리안은 그대로 다시 잠옷을 벗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짐을 챙겨 준비를 끝내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다시금 어제의 그 얼음동굴이 벨투리안의 눈을 반겨줬다.


    그리고 방문 옆에는 우트가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트가르드는 여전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어린 소녀가 하루 아침에 변한 이 이상한 상황에 표정이라도 조금은 변할만 한 것을, 그저 고개를 까딱하고는 동굴 안을 가리키고 걸어갈 뿐이었다. 벨투리안 역시 그런 우트가르드에게 따로 말을 걸지 않았다. 천천히 우트가르드의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동굴 안은 점점 거대해져갔다. 바깥에서 보다도 훨씬 넓은 동굴의 모습은 분명 마법의 결과임이 분명했다. 심지어 동굴의 천장은 하늘까지 비쳐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장엄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에 압도당하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더욱 거대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윽고 도착한 동굴의 끝에는 작은 원탁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 원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존재는, 물론 빙룡의 것이었다.


    “어서 오거라, 병아리야. 밤새 이매망량이라도 다녀갔느냐? 낱짝이 헤쓱하구나.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는 게냐? 말하지 않아도 좋거라. 말해도 좋거라. 사실 무엇이든 큰 해석은 없으니, 나는 무엇이든 상관 없거라.”


    빙룡은 벨투리안의 변한 모습에는 단 하나의 언급도 없이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빙룡의 말은 난잡하고 제대로 된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벨투리안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벨투리안에게는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어제의 이야기를 연장하기 이전에 물을 것을 떠올렸다.


    “그는… 베르헬트는 언제 깨어나는 것입니까?”


    “아가야, 내가 램프 속에서 세상의 진리를 소각하는 마인이었다면 그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었을 거라고 말해줄 수 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주전자 속의 마인이 아니라 늙고 이기적인 도마뱀이니, 너에게는 아쉽게도 차감될만한 소원의 개수가 없구나. 그래, 그 질문의 답은 ‘아주 조금 뒤’ 라고 결산해주마. 달을 먹는 늑대가 눈을 깜빡이는 그 아주 짧은 순간이 흐른 후다.”


    의외로 빙룡은 순순히 답해주었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빙룡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니, 그가 대체 언제 깨어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 뒤’라 그것이 대체 얼마나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의 기준은 용의 것인가, 인간의 것인가? 달을 먹는 늑대는 무엇인가? 다시금 물어보려고 입을 열려했건만 그 입을 열리지 않았다.

    빙룡의 공허하고 투명한 눈빛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보았다. 빙룡이 더는 이 화제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병아리야. 다음 질문은 무엇이더냐? 늑대 할머니가 손녀를 먹어치우듯 상냥하게 대답해주마. 얼마든지 물어보거라.”

    “…나는 내 몸에 깃든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저주가 저주가 아니라 하였고, 당신은 풀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즉슨 당신께서는 이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나는 칭찬에 야박한 도마뱀이야. 그런 사소한 이야기로 영특한 병아리라는 이야기를 해주기에는 아직 닭벼슬도 채 익지 않았어. 병아리야.”


    “당치도 않습니다.”

    “그래, 그것은 저주가 아니리라. 너는 분명 흑룡 울푸레와 만나 그런 모습으로 변했음이라, 하루를 걸러 소녀와 남성의 몸을 번갈아가고 있더라.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그건 ‘깜빡임’이라.”


    “‘깜빡임’… 이라고요?”

    지금까지  한번을 감지 않고 있던 빙룡이 직접 벨투리안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며 눈을 깜빡이는 것을 보여줬다. 당황한 벨투리안이 순간적으로 뒤로 몸을 제치려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깜빡임’이다. 세계가 눈을 깜빡이는 것이야. 그리고 눈을 닫을 때 네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몸이 가진 것의 정체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제 진짜 모습을 가릴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너는 바보구나.”


    빙룡의 난대없는 매도에 벨투리안은 말문을 잃었다.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걸까?


    있었다.


    “깜빡인다고 하지 않았느냐. 세계가 눈을 떴는데 어찌 거짓된 모습이 드러나리까?”


    빙룡의 말이 끝나자 곧장 동굴이 변했다. 천장이 열리고 미친 듯이 하늘에 박힌 별들이 눈을 드러내고 어두운 밤을 비추었다. 그리고 온 동굴의 얼음벽이 깨끗하게 반사되어 [ ]을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은 누구더냐.

    이 검은 하늘이 보는 것은 무엇이더냐?


    벨투리안은 끔찍한 격통을 느꼈다. 평소 모습이 변하던 때에 느끼던 강력한 열도 동반했다.

    “끄아아아악…!!! 끄읏… 끼야아아악…!!!”


    그리고 그 지독한 격통에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둔중한 성인 남성의 비명소리는 곧 천천히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리는 가련하고 연약한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우트가르드도 빙룡도 그저 그 장면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우트가르드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고, 빙룡의 얼굴에선 더는 무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웃음은 과연 즐거움일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웃음일지.

    이윽고 비명소리가 줄어들었다. 그곳에 이미 벨투리안은 없었다. 작은 어린 소녀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쯔르레이 또한 아니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검은 동공과 몸을 군데군데 뒤덮은 검은 비늘, 그리고 금색으로 반짝이는 깃털들은 결코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벨투리안도 쯔르레이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어서 오거라 아가야. 처음 보는구나.”

    빙룡이 말했다.

    “‘우르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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