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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74/162)



〈 74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쯔르레이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일찍이 아주 오래  슈라헤가 정말로 용을 잡던 시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비록 전설 속의 이야기라 진실된지는 몰랐으나 그런 얘기는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그 전설의 진상이 이런 것이었다니.


속이 울렁거렸다.

이 몸 안에


울푸레의 피가 흐른다.


“우욱.”


구역질이 흘러나왔다.

“역겨운가? 그렇겠지. 그러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니라고? 이보다  추악한 역사가 있는 것인가? 쯔르레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창백해진 안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쥬느비에브는 노래하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쯔르레이는 쥬느비에브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슈라헤는 용을 죽였다. 그 손에 일곱의 용이 이름을 잃었다.

가늠쇠자리 아르테미아,

대신 흘리는 눈물의 토이카,

붉은 태양의 제국 바르사타,


여섯 황혼의 노예 셰밀,


겨울을 파는 키스마인,

늙은이의 친구 캐러웨이,

이름 받지 못한 우르테가,

그러나 그 중에 울푸레의 이름은 없었다.

아르테미아는 아홉가지 별의 수호자였다. 그녀가 죽고 아홉 개의 별은 길을 잃었다.  날 일어난 해일로 죽은 생명의 숫자가 별을 수놓았다. 인류는 대신 운명의 자유를 얻었다.

토이카는 슈라헤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저주받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슈라헤에게 바쳤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사막을 바다로 만들었고 그녀가 흘린 피는 아직도 영혼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바르사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제국의 수호룡이었다. 바르사타가 죽고 제국은 붕괴했고 인간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막혔다. 인류는 스스로의 발로 서게 되었고, 퇴보했다. 영원히 제자리를 맴돌게 되었다.

셰밀은 인간의 노예로 전락한 창녀였다. 분수에 맞지 않는 노예는 점차 주변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착취당한 채 스스로의 긍지를 버리고 타락한 그녀에게 슈라헤가 자유를 주었다. 그녀는 죽어서야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키스마인은 스스로를 사랑했다. 세상을 사랑했다. 너무 사랑해서 세상에 겨울을 팔아주었다. 슈라헤는 키스마인이 내리는 첫눈을 보고 그녀를 죽였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도 사랑스러웠다. 그날 이후로 슈라헤가 가는 곳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섯 용을 죽인 슈라헤에게 울푸레가 찾아왔다. 5개의 용의 심장을 먹은 슈라헤는 울푸레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그는 패배했고 울푸레는 그를 겁간하였다. 울푸레는 자신의 아들의 아이를 배었다. 끔찍한 근친상간의 결과로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다.


그것이 일족의 시작이었다.

슈라헤는 딸을 데리고 아주 오랫동안 헤맸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 어린 아이들의 향을 피울 시간이 왔을 때까지.


딸의 피는 그의 것보다 더욱 짙었다. 용의 피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한 딸을 살리기 위해 슈라헤는 현자 캐러웨이를 죽이고 그의 심장을 딸에게 먹였다. 딸은 살아났고 인간들의 오랜 친구였던 용이 죽었다.


시간이 흘러 슈라헤 또한 죽음의 때가 임박했다. 죽어가는 그는 울푸레를 찾아갔으나 울푸레의 둥지에는 알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알이 깨지고 어린 용이 태어났다. 슈라헤는 마지막 힘을 모아 아직 이름조차 받지 못한 어린 용을 죽였다. 그의 여동생이었다.


훗날  어린 용을 두고 이렇게 부르기를 ‘우르테가’라고, 그 뜻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였다.

이름 없는 여동생의 시체 앞에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 곳에는 영원히 눈이 내리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세상은 그 곳을 슈라헤라고 불렀다.

울푸레는 이 모든 꼴을 지켜보고 웃었으니 이것은 울푸레가 자아낸 가장 천박한 재앙이리라.]


쥬느비에브의 이야기가 끝났다. 쯔르레이는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에 몸을 휘청거렸다.


“나는 이 모든 역사를 지켜보았다.”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옛이야기라기에는 결코 아이에게는 들려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쯔르레이가 자신의 일족에 자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일종의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벨투리안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곳에서 일족은 위대한 용사냥꾼이었으며 악룡에게서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었다.

현실은 그저 악룡의 찌꺼기였는데.


쯔르레이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일족의 끔찍한 역사가 역겨웠다. 추악했다. 그러나 일족은 어디까지나 일족이었고 자신은 자신이었다. 그 일족조차 지금은 멸망했다. 용의 피는 이미 인간에게 섞일 대로 섞여 더는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만큼 희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쯔르레이는 자신을 위로하려 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다음 질문의 대답이었다. 일족의 이야기보다 더욱 궁금한 이야기. 일족의 이야기보다 더욱 무서운 이야기.


“내 몸의 피에 대해서 한 얘기는… 무슨 뜻이었지?”


자신의 정체.

“내 몸에 울푸레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냔 말이다.”

쯔르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그것은 공동 전체에 울려퍼졌다. 강한 공포,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담긴 그 울림에 쥬느비에브의 호수가 진동했다. 결코 쯔르레이의 작은 목소리로 일어날 일이 아니었지만 쯔르레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사실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내 호수를 울리지 마라.”


“말해다오. 제발.”


“정말 모르는 것이냐?”

쯔르레이의 탄식에 쥬느비에브가 의문을 표했다. 쥬느비에브의 빛을 잃은 눈에는 선명하게 쯔르레이가 보였다. 그 모습은 겉은 아름다웠으나 속은 비틀려 역겹기 그지 없었다. 그건 마치….


“이 몸은  몸이 아니다!”


“뭐라?”


“슈라헤는… 슈라헤는 이미 멸망했다. 울푸레의 손 아래에.”


쥬느비에브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울푸레는 그 손으로 직접 모든 슈라헤를 죽였다. 살아남은 것은 오직 나뿐이다. 그러나 나는 하루마다 이렇게 모습이 변하는 저주에 걸렸다. 말해다오!  몸이 무엇인지!”

쯔르레이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공동에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쯔르레이조차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동굴이 흔들리고 공기가 진동했다. 호수에 파문이 흘렀다.


“그만해라! 내 호수를 울리지 말란 말이야!”


“이… 이건, 뭐지? 나는 누구냐. 무엇이란 말이냐?!”


쯔르레이는 자신의 목소리에 공포를 느꼈다. 아니다, 이런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소리는 이렇게 작고 여리지도 않았으며 공동을 흔들리게 할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명백히 ‘자신’의 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다, 이 몸은 과연 ‘자신’이라고  수 있는가?

나는 벨투리안이다. 벨투리안.

그러나 그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나는 네 정체 같은 것은 모른다.”

아,

“그러나 보일 뿐이다. 내 눈에는.”


쥬느비에브가 말했다.


“울푸레의 검은 비늘이  몸을 뒤덮고 있는 것이.”

끔찍한 사실을


“네 몸 안에 담긴 피는 그 어떤 용사냥꾼의 것보다 짙다. 그건 마치….”

매우 경멸스럽다는 듯이


“첫 번째 슈라헤만큼이나.”


지독하게 .

기어코 쯔르레이가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이 없어 입 속에서는 위액만이 나올 뿐이었다. 속이 쓰렸다. 쥬느비에브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당신은 분명히 용을 찾으러 왔겠지요. 당신 몸에 담긴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


“…그렇다.”


“과연 네메시스가 답을 줄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쥬브쥬브.”

쥬느비에브의 말에 호수 밑바닥에서 아까 사라진 도마뱀이 기어나왔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십시오. 길을 안내해줄겁니다.”

“….”


쯔르레이는 감사인사를 하려 했지만 목이 매여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은 그저 고개를 조금 끄덕일 뿐이었다. 표정을 찌푸린 쥬느비에브가 휘청거리는 쯔르레이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만약 울푸레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동쪽으로 가십시오.”

“동쪽?”

“정확한 위치는 나도 알 수 없습니다. 항상 떠돌아다니는 이니까요. 하지만 꽤나 오랜 시간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 방향은 맞을 겁니다.”

“무슨 얘기지…?”

“동쪽에, 슈라헤의 딸이 있습니다.”

!!

“슈라헤는 그녀에게 토이카, 죽은 연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녀를 찾아가세요.”


“그녀가… 아직 살아있나?”

“용의 피를 4분의 3을 잇고 캐러웨이의 심장을 먹은 아이입니다. 수명이 다하기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 맙다.”


아까는 목이 매어 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비록 쥬느비에브는 쯔르레이를 결코 좋아하는  같지 않았지만 그녀 덕에 많은 빙룡을 찾아갈 수 있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쯔르레이가 결코 알고 싶어 하던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쯔르레이는 결코 이런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저주를 풀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생하울라의 말처럼 울푸레에게 복수를 할 생각 또한 없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런 진실들을 알아버리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번 얼어붙은 물은 녹는다 할지라도 그 이전과 같은 모습이 아닐지니.

빙룡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을 제외한다면 쥬느비에브의 얘기에 저주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토이카에 대한 이야기는 쓸모를 차치하더라도 들은 것이 다행이었다. 쯔르레이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나는… 가겠다.”

쥬느비에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호수 밑으로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었다. 혼자 남은 쥬브쥬브가 빠르게 기어서 쯔르레이에게 다가왔다. 녀석은 낯을 가리지도 않는 건지 쯔르레이의 바지를 타고 기어 올라와 천연덕스럽게 쯔르레이의 머리에 앉았다.

“후.”


쯔르레이가 밧줄을 잡고 흔들었다. 돌아간다는 신호였다. 쯔르레이는 다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가는 시간은, 오는 시간보다 조금 더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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