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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69/162)


  • 〈 69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마르코는  모든 상황이 도저히 참을  없는지 담배를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차마 담배라도 피지 않고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잘풀렸었는데 이상한 조화로 사냥감이 여자애로 변하고는 모든  이상해졌다. 그래,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큐빗트가 저런 상태가 된 건… 끔찍했다.


    큐빗트는 마르코의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런 소중한 존재가 지금 죽어가고 있었다. 마르코는 결코 저 망할 년을 용서할  없었다.

    한 남자를 팔아먹으려고 한 사람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도 같았지만 마르코의 입장에선 어떠한 죄책감도 없었다. 그 남자는 범죄자였다. 범죄자를 잡아서 넘기는 일에 어떤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마르코는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마르코 일행은 상당히 과격하고 무자비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범죄자들에게 국한된 얘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코는 지금 상황이 억울했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으니 언젠가 문제가 생길거라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그건 이런 상황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형태로는 아니었다.

    가만, 문득 마르코는 저 얼굴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거듭하던 마르코는 곧 한 수배서가 떠올랐다. 마르코는 곧바로 오두막으로 돌아가 가방을 뒤졌다.


    “뭐, 뭐하세요, 형님?”

    갑작스레 수배서 뭉치를 꺼내 살피는 마르코를 보며 아폴리온이 물었다. 마르코는 대답하지 않은 채 수배서를 뒤지는데 집중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마르코는 자신이 찾던 수배서를 찾아냈다.


    그건 바로 이전 엘핀과의 트러블에 휘말려서 만들어졌던 쯔르레이의 수배서였다.

    “이걸 봐라. 똑같이 생겼어. 이 녀석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거… 귀족가의 여식이라고 나오는데… 그 솔직히 잘모르겠지만 그 남자가 이 녀석이라면서요? 그럼 이 수배서는….”

    “거짓이겠지. 어차피 이미 수배가 종료된 수배서야. 갑자기 생각나서 찾았는데, 제길, 이래서야 아무 의미도 없군.”

    “햐, 그나저나 진짜 엄청 이쁘네요…. 이런 외모라면 금화 삼천 개는 우습게 벌어먹을 수 있을  같은데.”


    아폴리온이 아쉽다는  중얼거렸다. 아폴리온은 상당히 소녀에게 무른 태도를 보였다. 아무래도 그 모든 상황을 제 눈으로 본 게 아니었으니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 소녀의 외모에 홀렸다고 해도 좋았따. 마르코는 그의 태도가 심상치 않자 주의를 주었다.


    “팔아야 하는 거야. 건드릴 생각 하지마.”


    “저는 어린애는 관심없어요. 것보다 엄청 건드린 건 형님이잖아요. 봐요 저, 어어?”


    고개를 돌려 소녀를 가리킨 아폴리온은 곧 놀라서 말을 잃었다. 마르코 또한 같았다. 분명 정신을 잃어서 쓰러져 있던 쯔르레이가 일어나 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칼, 솜뭉치를 들고.


    아폴리온은 곧바로 소녀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분명 시커멓게 소녀의 배를 가리고 있던 멍자국이 벌써 옅어져 있었던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건 소녀의 머리였다.

    소녀의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새의 날개와도 같았다. 그 머리칼이 깃털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없는  모습을 보고 아폴리온과 마르코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아름답다….’


    아폴리온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짧은 생각 때문에 그는 잠깐의 시간을  때리게 되었다. 마르코는 욕설을 날리고 있었다. ‘젠장, 저게 뭐야.’그리고 마르코는 지체하지 않고 쯔르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는 대체 저 망할 년이 뭐하는 것인지 도저히 알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방금 전까지 쓰러져 있었는데 벌써 피로와 상처를  회복할 리가 없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벌써부터 멍자국이 줄어들고 있는 걸 보면 시간을 줘서 좋을 것은 없었다.  저 년이 아까처럼 날뛰기 전에 제압해야 했다.

    마르코의 돌진은 그저 당황과 분노가 아닌 일리 있는 신중한 생각의 결과였다.

    그게 마르코의 패착이었다.

    쯔르레이는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그저 칼을 들고 멍하니 휘둘렀을 뿐이었다. 당연히 평소의 마르코라면 쉽게 피할  있는 아주 간단한 움직임.


    그러나 바로 달려든 마르코는 피할  없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쯔르레이와 눈이 마주친 마르코는  안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읽어내 버린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움직이지 마라.’


    마르코가 당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쯔르레이의 돌발적인 움직임에 휘말린 것도, 쯔르레이가 피로를 전부 회복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마르코가 방심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거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마르코는 그 말에 거부할  없었다.

    마르코의 신체가 뭉개지듯이 부서졌다. 간신히 그 상체와 하체가 붙어는 있었으나 그게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마르코에게 다행인 것은, 그가 지독한 고통에 신음소리 한웅큼조차 내기 전에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곧 그는 죽을 테니  길이 없다면 고통이라도 덜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폴리온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눈 앞에서 마르코가 작은 소녀에게 그대로 뭉개져버렸다.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아직도 팔이 부러져 오른 열에 잠들어 있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것 이전에 적어도 그는 지금이 분노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형님!!”


    아폴리온이 무너지는 마르코의 신형을 받아들였다. 이미 아폴리온이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르코의 눈이 뒤집어지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노를 참지 못한 아폴리온은 곧장 남은  손으로 자신의 칼을 들고 소녀, 아니 빌어먹을 망할 괴물년에게 달려들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금화고 나발이고 그런게 중요할 때가 아니었다. 이미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이 괴물이!!”

    하지만 아폴리온은 이해했어야 했다. 자신보다 더 강한 마르코가 단 칼에 부서졌다는 것이, 큐빗트가 왜 저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그는 분노했기에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아니, 아직도  외모에 홀려 보지 못한 것이다.  어린 외모 때문에 그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를.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얕보게 된 것이다. 만약 쯔르레이가 벨투리안의 외모였다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어쩌면 남은 이가 아폴리온이 아니라 마르코였다면 그는 한 명이 당한 시점에서 곧바로 도망쳤을 것이다. 적어도 이 오두막 안에서 곧바로 싸울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냉철했고 신중했다. 하지만 아폴리온은 미숙했고 그 대가를 받게 되었다. 더 이상 그를 이끌어줄 마르코가 없었기 때문에.

    쯔르레이는 이번에는 그저 멍하니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폴리온이 찌르고 들어오는 것을 한 손으로 잡아 흘렸다. 손이 베여 피가 줄줄 흘렀지만 쯔르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쉬웠다. 솜뭉치가 아폴리온의 심장을 꿰뚫고 들어갔다.


    ‘아, 아름답다.’

    그 순간 아폴리온이 생각한 것은 얄궂게도 아까와 같은 것이었다.

    아폴리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쯔르레이가 멍하니 무너지는 아폴리온의 신형을 바라보았다.


    과거 서리 갈기 부족들 사이에 있었을 때, 아르만을 죽였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 생하울라는 말했다. 쯔르레이가 그를 죽였다고.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 때는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를 어떻게 죽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분명 그 때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듣긴 했다.


     모습은 바로 지금의 자신이었다.

    길게 자란 깃털들을 보았다. 쯔르레이는 자신이 이미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것은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는 것과 체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차라리 이전처럼 정신을 잃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토악질이 나왔다. 자신이 마르코를 바라보았을  자신은 분명히 그를 향해 말했다. 입으로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전한 것이다. ‘움직이지 마라.’ 그렇게. 그리고 마르코는 충실히 그 말을 따랐다. 대체 무엇인걸까, 그것은 마치… 과거 울푸레가 했던 언어의 울림과도 같았다.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바라보았다. 아폴리온의 검을 받아낸 손이었다. 그러나 손의 상처는 벌써부터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고통 또한 빠르게 줄어들었다.  몸이 보통 몸은 아니란 걸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습은 마치…. 아폴리온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괴물.

    “나는… 괴물이구나.”

    쯔르레이, 자신은 괴물이었다.


    알게 되어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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