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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68/162)


  • 〈 68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쯔르레이는 빠르게 기척을 숨기고 오두막 뒤로 숨었다. 곧이어 마르코와 큐빗트도 오두막 밖으로 빠져나왔지만 쯔르레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제길! 어디 간거야?!”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알몸으로 이런 곳에 있으면 얼마 못가 얼어 죽어!”

    “죽으면 금화 천 개가 날라간다고요!”

    마르코의 말이 맞았다. 쯔르레이는 지금 알몸이었다.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추위에 강하긴 했지만 정도가 있었다.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몸이 떨렸다. 그렇기 때문에 쯔르레이는 애초에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기척을 숨긴 채 오두막 위로 기어올라간 쯔르레이가 마르코를 향해 솜뭉치를 들고 뛰어내렸다. 단숨에 끝내려고 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곧바로 쯔르레이를 눈치채고 옆으로 굴러 피한 것이다. 상대를 잃은 솜뭉치는 그저 눈바닥에 엄청난 파공음을 내며 눈을 휘날렸다.

    “젠장!”

    “조심해요!”

    마르코는 다시 한번 굴렀다. 휘날리는 눈 때문에 보고 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큐빗트의 소리를 듣고 굴렀을 뿐이었다. 운이 좋았다. 마르코는 덕분에 이어지는 쯔르레이의 공격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큐빗트는 눈에 눈이 들어간 모양인지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 채 나무에 기대고 있었다. 마르코의 시야에 쯔르레이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쯔르레이에게 있어서는 불운이었다. 이번 한번에 해치웠어야 했는데. 그가 조금만 반대쪽으로 굴렀더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빠르게 다시 기척을 숨겼다. 추위 때문에 몸이 점점 더 둔해지고 있었다.


    마르코는  빌어먹을 상황이 당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빠르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무기를 든 이상 저건 단순한 어린애가 아니었다. 겉보기로만 판단하기에는 이미 목숨의 위험을  번이나 겪은 상태였다.

    애초에 저건 원래 어린애도 아니지 않은가. 아직도 대체 그 남자가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변한 건지는   없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나중에 녀석을 붙잡고 물어보기라도 하자.


    마르코는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빠르게 자신의 도끼를 들고 나왔다.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망할 검은 엄청나게 무겁고 위험했다. 무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아니, 오판은 아니었다. 마르코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큐빗트를 안두에 두지 않은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마르코가 자리를 비운 순간 쯔르레이는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큐빗트가 쓰러졌다. 쯔르레이는 큐빗트가 시야가 차단되어 제대로 움직일  없는 그 순간 곧바로 타겟을 변경한 것이다. 기척 따윈 숨기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점프하여 무게에 몸을 맡기고 검을 휘둘렀다. 아니, 검에 휘둘러졌다. 솜뭉치에 얻어 맞은 큐빗트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큐빗트!”


    오두막에서 도끼를 들고 나온 마르코가 분노에 차서 외쳤다. 큐빗트는 이미 전투불능 상태였다. 아마 몸의 반절 이상의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팔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으스러졌다.


    “이 빌어쳐먹을 애새끼가!!”


    마르코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지만 분노에 몸을 맡긴 채 날뛰지는 않았다. 쯔르레이는 이미 위치를 들켰고 더 이상은 숨기 힘들었다. 이미 체력의 한계가 오고 있었고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솜뭉치를 땅바닥에 휘둘러 눈발을 휘날리게 하고 다시 기척을 숨겼다. 오두막, 오두막으로 가야 했다. 오두막 안은 화로가 켜져 따뜻했고 옷도 있었다. 어떻게든 체온을 올려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쯔르레이는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져 둔해진 상태였다.

    마르코는 바보가 아니었다. 상대가 체력이 떨어졌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고 실제로  움직임이 둔해진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쯔르레이를 뒤따라가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해버렸다.

    힘이 빠진 쯔르레이는 그대로 오두막 안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쯔르레이는 오두막 안의 온기를 반가워 할 정도로 추위에 질린 상태였다. 몸 뿐이 아니었다. 사고가 둔해졌다. 쯔르레이는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쓰러진 쯔르레이가 온기를 찾아 화로를 향해 기어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금은 작은 온기 하나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채 반도 가기 전에 마르코가 쯔르레이를 붙잡았다. 마르코는 쯔르레이의 목을 붙잡고 다시 오두막 밖으로 끌고 나왔다.

    “켁, 케윽, 윽….”

    쯔르레이가 목이 졸려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안그래도 추위로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목이 졸려 뇌에 산소가 가지 않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곧 마르코가 목의 조임을 풀었다.

    “하아하아….”


    쯔르레이가 긴박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가 갑자기 들어오자 이번엔 폐가 쓰라렸다.

    마르코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망할 꼬맹이를 죽여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분노에 몸을 맡겼다면 이미 이 꼬마의 목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금화 삼천 개, 그 금화만이 그의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큐빗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빨리 조치를 취하면 살 수 있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엄청난 양의 돈이.


    죽이지 않더라도 복수를 하는 방법은 여럿 있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의 모습이 반반하니 몸을 팔게 시킬 수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변한 건지  수 없었지만 어쨌든 간에 지금  날을 미친 듯이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사창가에 보내 처녀를 팔아치우고 손님을 받게 하자. 온 몸을 묶어둔 채 이 가련한 육체에 온갖 쾌락과 고통의 낙인을 찍어주자. 애원해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지독한 변태들에게 맡겨버리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목을 조르고 풀어주고를 반복하자. 더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 매질을 하고 스스로 쾌락에 몸을 맡기는 더러운 창녀가 될 때까지 강간하자. 이런 몸이면 금화 삼천 개는 우습게 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다시 남자로 변한다면  다리를 잘라버리자. 오뚝이 인형처럼 사지를 절단하고 자신의 모습을 꼼꼼하게 보여주자. 절망하는 남자의 얼굴이 최고의 반찬이 될 것이다. 큐빗트와 아폴리온의 복수였다. 눈이라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왕궁에 넘길 때 얼굴이 변해있는 것은 위험했다.

    짧은 시간 사이에 마르코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흘러갔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다. 큐빗트가 당한 꼴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족한 편이었다. 마르코가 쯔르레이의 배를 주먹으로 강타했다. 쯔르레이는 먹은  없는 빈속으로 구역질을 했다.


    폭행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배는 이미 보라색으로 심하게 멍이 들어있었다. 폭행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너무 추웠다. 알몸으로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동안 밖에 있었다. 쯔르레이는 마르코의 폭행이 아니었다면 이미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마르코는 끈질기게 쯔르레이를 때리면서도 얼굴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상품성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 덕분에 쯔르레이가 멍투성이가 되어버린 몸과는 다르게 쯔르레이의 얼굴은 오직 눈물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쯔르레이는 살려달라고 빌지 않았다. 이미 정신은 반쯤 놓은 상태였기에 그런 건지, 아니면 이미 의미가 사라졌을 자존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입에서 나오는 건 신음소리 뿐이었다. 마르코는 그게 더 약이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계속하면 이 녀석이 죽을지도 몰랐다. 죽으면 끝이었다. 돈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마르코는 더 이상 이 녀석이 저항할 힘이 없을거라는 판단 하에 대충 오두막 안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큐빗트를 데리고 오두막 안에 눕혔다.


    다행히도 상태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팔은 완전히 으스러져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지만 아직 목숨은 붙어있었고 그러면 마을로 돌아가서 치료를 하면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순간 오두막 안에서 아폴리온이 일어났다. 아폴리온은 이런 난장판이 될 때까지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팔이 부러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드디어 열이 내리고 일어난 그가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잡아두었던 그 하녀와 남자는 어딘가로 사라져있었고 큐빗트는 팔이 으스러진 채 오두막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형님은 분노에 가득 찬 채로 금발의 어린 아이를 잡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 큐빗트! 큐빗트는 갑자기 왜 이렇게!”

    “망할, 이게 다 이 애새끼 때문이야!”


    마르코는 아폴리온에게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처음 아폴리온은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했지만 분노하는 마르코 때문에 결국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르코가 큐빗트가 저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농담을  사람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그럼 그 다른 여자애는 어디로 간 겁니까?”

    “빌어먹을, 나도 몰라. 도망갔나본데.”

    “그… 남자… 아니 그 아무튼 그 여자애는 어떻게 할겁니까?”

    “이대로 남자로 안돌아온다면 창녀촌에 팔아버리고 남자로 돌아온다면 원래 계획대로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죽기 직전까지 패버릴 거야.”

    “이미 죽기 직전인 거 같은데요.”

    “닥치고 약이라도 쳐맥이고 있어.  새끼 죽으면 우린 끝장이야.”

    마르코의 말에 아폴리온이 한숨을 쉬며 한손으로 가방을 뒤적였다.  가방에서 붕대와 약을 꺼낸 우선 큐빗트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응급처치는 잘되어있었다. 마르코가 워낙 분위기가 안좋아서 혹시나 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큐빗트의 상태를 확인한 아폴리온은 쯔르레이에게 다가갔다. 쯔르레이의 몸상태는 처참했다. 폭행 당한 것 때문에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다행히 어디가 부러지거나 한 것 같진 않았지만 그게 상태가 좋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체온이 너무 낮았다. 아폴리온은 쯔르레이를 데리고 화로에 가까이 가서 앉았다.


    화로의 온기로 쯔르레이의 체온을 데우면서 아폴리온은 생각했다. 여전히 실감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그 남자라고? 큐빗트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아폴리온은 자고 일어난 사이에 생긴 일들이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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