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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66/162)



〈 66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아름다웠다. 온통 얼음으로 이루어진 골짜기가 눈에 부시게 들어왔다. 감성이 메마른 벨투리안 조차도 감히 그 가치를 폄하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고 반짝였다. 결코 일반적으로는 만들어 질  없는, 자연을 모독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신비스러운 모습에 벨투리안은 일순 마음을 빼앗길 뻔 했다.

정신을 차린 벨투리안은 곧 깨달았다. 품에서 제놈 그라시아가 줬던 자료를 꺼내 보았다. 그 골짜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 주변은 분명 얼마 전에 수색한 곳이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까의 그 도마뱀이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었다.

일단 돌아가야 했다. 당장에라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세미와 베르헬트를 데려와야 했다. 벨투리안은 걸음을 돌렸다. 나무에 표식을 해두면서 꼼꼼하게 길을 살폈다.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하니 대충 할 수는 없었다.

표식을 모두 남기고 벨투리안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곧 벨투리안은 이변을 깨달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벨투리안이 빠르게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느낀 대로였다. 세미가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것은 세미 뿐이 아니었다. 남겨두고  모든 짐이 다 사라져있었다.

벨투리안의 표정에서 분노와 낭패감이 떠올랐다. 세미가 혼자 사라졌다면 도망을 갔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짐이 같이 사라졌다? 일행의 짐은 결코 세미 혼자서 가지고 도망칠 수 있는 정도의 양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까, 발자국은 이미 눈으로 덮여 사라졌다. 이런 설산에서 누군가를 추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야 했다. 벨투리안은 우선 사냥해온 수확물들을 오두막에 그대로  채 밖을 나섰다.

벨투리안을 향해 화살이 날라온  그때였다.

벨투리안은 기척을 느끼자마자 곧바로 검을 화살이 날라오는 방향으로 가져다 댔다. 다행히 날이 넓은 솜뭉치는 충분히 방패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살을 막은 것은 요행이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뛰어들었다.

곧바로 다시 화살이 날아왔지만 뛰어 들어오는 벨투리안을 보고 당황한 건지 화살들은 족족 빗나갔다. 느껴지는 기척은 가까웠다. 곧 벨투리안은 활을 들고 벨투리안을 조준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벨투리안은 본 적이 있었다. 벨투리안이 솜뭉치를 상대에게 겨누며 입을 열었다.

“아폴…리온이라고 했던가?”

“와우, 이거 생각보다 더 빠른데… 아, 움직이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빗나갈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요.”


“세미는 어디 있지?”


“그 아이는 안전하게 있습니다. 순순히 잡혀 주시면 저희도 당신을 공격할 생각은,”


벨투리안은 물론 가만히 잡혀주지 않았다. 상대가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아폴리온을 향해 쇄도했고 아폴리온도 곧바로 화살을 쏘았다. 천운일까, 벨투리안은 화살에 맞지 않았고 아폴리온의 팔은 솜뭉치에 직격으로 맞아버렸다.


“끄아악!”


어린 아이의 몸이 아닌 건장한 성인의 몸으로 때린 공격이었다. 무게를 어느 정도 조절했지만 결코 가볍게 하지는 않았다. 아폴리온의 팔뼈가 둔중한 둔기에 맞은  처럼 깨져나갔다.


아폴리온을 제압한 벨투리안은 곧바로 아폴리온을 붙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와라.”

벨투리안의 말이 조용히  속을 가로질렀다. 벨투리안은 싸우면서도 이 자의 일행이 셋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다. 아폴리온을 제압한 순간 곧바로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서 아폴리온을 방패처럼 들어버렸다. 아폴리온이 고통으로 신음했다.


“솜씨가 좋군….”


벨투리안이 바라보던 곳에서 천천히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낯이 익다고 까지는 하지 못하겠지만 역시 벨투리안이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마르코가 말했다.

“괜찮나, 아폴리온?”


“끄윽… 괜찮은 거 같습니까, 형님. 죽을 맛이에요.”

“목적이 뭐지?”

벨투리안이 물었다. 이들에게 원한을  일을 한 기억은 없었다. 설마 쯔르레이의 정체를 들킨 걸까? 쯔르레이의 얼굴을 들켰더라면 노예 상인이라도 되나 하고 고민했겠지만 이들은 쯔르레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목적이 세미였다면 세미를 납치한 순간 곧바로 떠났을 것이다. 짐 또한 약탈해갔으니 벨투리안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목적은 벨투리안이 분명했다.


“처음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꽤나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야. 자네가 일을 벌여놓고도 무사할  알았나?”

“일…?”


“한밤중에 왕궁에 침입하여 성벽을 부수고 달아난 인간이 이런 외진 곳까지 도망쳤을 거라고는 나도 생각 못했지.”

마르코의 말에 벨투리안은 깨달았다. 추격대가 파견됐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안심했는데 현상금이라도 걸린 걸까? 다행히도 벨투리안의 궁금증을 마르코가 풀어주었다.

“자네에게 걸린 현상금이 무려 금화 이천 개야! 산채로 덷고 온다면 천 개를 더 준다는 군. 그러니 우리를 위해서라도 순순히 잡혀주지 않겠나?”


“거절하지.”


“그럴 줄 알았지.”

마르코가 킬킬 거리며 웃었다. 거대한 도끼를 든 그의 신체는 건장했고 벨투리안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폴리온이라는 놈은 애송이였지만 마르코의 실력은 알 수 없었다. 싸움이 제대로 돌입하기 전에 벨투리안이 물었다.

“궁금한게 있는데, 어째서 처음 만났을 때 공격해오지 않은 거지? 산장에서도, 마을에서도 기회는 있었을텐데.”

“마을에서 공격한다니, 우린 바보가 아닐세. 냄새를 맡은 놈들이 붙는다면 우리 파이가 적어질 거 아닌가? 그리고 산장에서라면, 단순하게 안전을 추구한 거라고 말해두지. 그 때는 우리도 지쳐있었으니까 기회를 기다린 거야… 바로 이 때를 말이지!”

마르코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들고 있던 도끼를 벨투리안을 향해 집어던졌다. 무기를 던진다고? 저걸 맞는다면 아폴리온이 방패가 된다고 해도 위험할  뻔했다. 그 의아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벨투리안은 충실하게 몸을 움직여 도끼를 피해냈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다. 벨투리안은 도끼를 피하는 순간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도끼에 시선을 빼앗겼기에 생긴 일이었다.


‘당했다!’


놈들의 수는 분명 세 명, 잊지 않고 있었음에도 기척이 없어 세미를 데리고 있나 생각했는데 벨투리안의 뒤에서 조용히 기척을 삼키고 숨어 있던 것이었다. 벨투리안을 향해 무언가 하나가 날아왔다. 조금 늦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벨투리안은 솜뭉치를 휘둘렀다. 그러나 맞출  있을 리가 없었다. 벨투리안을 향해 날아온 것은 극히 작은 독침이었다. 검으로 휘둘러 떨어트릴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었다.


벨투리안의 목에 독침이 강하게 꽂혀 들어갔다. 벨투리안은 순간 어지러움에 몸을 휘청거렸고 곧 강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자네와 정면으로 부딪힐 생각은 없었어. 바보 아폴리온이 당한  예상 외였지만… 팔 하나에 금화 삼천 개면 싼 값이지. 안그런가?”

‘함정이었나….’


벨투리안은 이미 몸이 마비 되기 시작해 입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만 말을 담았다. 후회할 틈도 없이 벨투리안의 정신이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마르코는 벨투리안이 완전히 쓰러지고 나서야 그를 향해 다가왔다.

~


벨투리안이 정신을 차린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눈을 뜨자 벨투리안은 이미 온 몸이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버둥거려봤지만 밧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곳은 전의 오두막 안이었다.


“일어났나?”

오두막 안에는 누워있는 아폴리온과 마르코, 큐빗트가 있었다. 아폴리온은 팔에 부목을 댄 채로 누워있었고 큐빗트는 벨투리안이 잡아왔던 사냥감들의 가죽을 벗겨내고 있었다.

“이건 고맙네.”

마르코가 아주 얄미운 표정으로 벨투리안을 향해 말했다. 빌어먹을. 벨투리안이 중얼거렸다. 옆 자리를 보자 정신을 잃은 채로 똑같이 묶여 있는 세미가 보였다. 정신을 잃었다지만 그냥 자고 있는 것인지 코까지 골고 있었으니 다행히 몸에 문제가 생기진 않은  같았다.

“덕분에 아폴리온이 열이 심하게 오르고 있어서 말이지. 내려가는 것은 조금 걸릴 것 같네. 내려가면 기대하게나. 아폴리온이 네 팔도 뭉개버리겠다고 난리 쳤거든. 목숨만 붙어있으면  다니까 팔 하나 정도는 받아 가도 괜찮겠지?”


벨투리안이 마르코를 향해 침을 뱉었다. 마르코는 요령 좋게 피해낸  벨투리안을 비웃었다. 고기를 굽던 큐빗트는 그걸 보고 마구 웃어댔다.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잘보이는 게 좋을텐데? 지금 자네 신변을 생각해보게나. 킬킬.”


“아서요. 저런 놈은 절대 안굽히거든. 내가 많이 만나봐서 알지!”

“그래서 저번 놈은 어떻게 했더라?”

“다리를 잘랐지!”

큐빗트가 깔깔댔다. 벨투리안이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큐빗트를 보며 말했다.


“역겹군.”

“아앙? 우리가 상대하는 건 전부 범죄자라고! 주제에 당당하게 굴지 말란 말이야!”

큐빗트가 벗겨낸 토끼 가죽을 그대로 벨투리안에게 집어던졌다. 묶여있는 벨투리안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킥킥.”

큐빗트와 마르코의 조롱은 계속되었다.  나쁜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그나저나 이  마법검인가? 분명 아폴리온이 맞을 때는 엄청난 무게가 느껴졌댔는데. 엄청 가볍군. 무게가 없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비, 빌어먹을. 그거 진짜 무거웠다니까요. 거짓말 아니야!”

마르코가 솜뭉치를 들고 말하자 누워서 끙끙대고 있던 아폴리온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 그거만으로도 힘들었는지 다시 조용해졌다.

“어떻게 쓰는 거지? 팔아먹을라면 방법을 알아야 되거든.”

“알려줄 것 같나?”

“알려주게 될 걸. 낄낄, 너무 겁 먹지 말게나. 지금 바로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생각이 들면 얘기해주게나.”


상대의 태도에 벨투리안은 화가 치솟았다. 자신에 대한 태도보다는 검에 대해서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생하울라가 준 검을 저렇게 대하는 게 역겨웠다. 벨투리안은 조용히 복수를 다짐했다. 벨투리안에게도 믿을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정이었다. 자정이 되기 전에 이들이 잠들기만 한다면 벨투리안에게는 이런 밧줄 따위는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쯔르레이로 변하면 벨투리안의 몸에 맞춰서 묶인 이런 밧줄은 자동적으로 풀릴 테니까.

문제는 이들이 자정에 잠을 자지 않으면 생기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들킨다면 이들이 어떤 반응으로 나올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설산에서 굳이 자정까지 버티고 자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벨투리안은 조용히 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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